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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도심 속 숨은 문화유산 16] 한국은행 구본관
[도심 속 숨은 문화유산 16] 한국은행 구본관
  • 구완회 작가
  • 승인 2014.04.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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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4년 5월 사진 / 구완회 작가
2014년 5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여행스케치=서울] 착공 당시의 이름은 ‘제일은행 경성지점’이었다. 이후 한국은행, 조선은행, 다시 한국은행으로 불리다 지금은‘한국은행 화폐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방문객을 맞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아픔과 625전쟁의 폭격도 견뎌낸 육중한 화강암 건물은 오늘도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중후한 멋을 뽐낸다. 

영화 <돈의 맛>의 첫 장면. 재벌가의 데릴사위 윤 회장과 비서인 주 실장이 비자금이 쌓인 금고에 들어선다. 육중한 철문이 열리자 신사임당과 프랭클린 아저씨가 인자한 미소를 흘리고 있는 지폐가 산처럼 쌓여 있다. 주 실장뿐 아니라 보는 관객들도 침이 꼴깍.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도 지게차로 실어야 할 만큼 많은 현금 뭉치를 볼 수 있는 장소가 있다. 비록 모형 금고이고 가짜 돈이지만 영화 속 비밀 금고와 같은 육중한 철문을 지나 현금 뭉치와 마주하니 영화를 볼 때처럼 침이 꼴깍 넘어간다. 지금은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으로 운영되는 한국은행 구본관. 이곳 2층에 설치된 한국은행 금고를 그대로 재현해놓은 모형 금고에서 관람객은 잠시 영화 속 장면을 연출해볼 수 있다. 실제로 조선은행이라는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하던 일제강점기에는 지하에 조선 제일의 금고가 있었다고 한다.

2014년 5월 사진 / 구완회 작가
한국은행 구본관은 현재 화폐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2014년 5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일본은행 본관 vs 조선은행 본관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에는 모형 금고 말고도 볼만한 것이 여럿이다. 박물관 1층 ‘화폐광장’에는 한중일 시대별 화폐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진귀한 화폐를 모아놓았다. 바로 옆 ‘화폐의 일생’ 코너에서는 화폐가 만들어지고 순환하는 과정과 위조화폐를 식별하는 방법 등을 알려주고, ‘돈과 나라경제’ 코너에서는 통화정책을 비롯한 우리 경제 전반에 대해 설명한다. ‘상평통보 갤러리’에서는 조선시대 대표 화폐인 상평통보와 관련된 재미난 이야기까지 알 수 있다. 

2014년 5월 사진 / 구완회 작가
 화폐박물관은 아이들과 함께 볼거리들이 가득하다. 2014년 5월 사진 / 구완회 작가

명동 바로 옆에 있으니 근처에 왔다가 잠시 짬을 내어 둘러보기 좋은 곳. 하지만 시간이 없다면? 지나는 길에 건물 외관이라도 자세히 살펴보시길. 한국은행 구본관은 근대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인 다쓰노 긴고(1854~1919)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자 사적 제280호로 관리되고 있는 근대 문화유산이다. 다쓰노 긴고는 현재 일본의 중요 문화재인 일본은행 본점 건물을 지은 건축가이기도 하다.

한국은행 구본관 건물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외부를 감싸고 있는 우윳빛 화강암이다. 돈을 찍어내던 은행 건물답게 철근 콘크리트로 튼튼하게 지은 후 동대문 밖에서 가져온 화강암으로 마감했단다. 배흘림기둥이 멋진 현관은 앞으로 튀어나와 입구에서 바로 승하차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건물은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인데 화려한 조각을 새긴 삼각형 페디먼트와 원형 돔이 눈길을 끈다. 이것들은 모두 르네상스 시기의 건축 스타일로, 다쓰노 긴고가 지은 일본은행 본점에서도 비슷한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한국은행은 일본은행의 분신으로,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2014년 5월 사진 / 구완회 작가
‘르네상스 건축 스타일’을 느낄 수 있는 복도2014년 5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제일은행, 한국은행, 조선은행에서 다시 한국은행으로
1912년 이 건물이 들어설 때 이름은 ‘조선은행 본점’이었다. 하지만 1907년 착공 무렵에는 ‘제일은행 경성지점’이었다. 물론 이때의 제일은행은 일본의 제일은행을 말한다. 1905년 을사조약을 통해 통감부를 설치하고 한반도를 본격적으로 지배하기 시작한 일제는 서울에 일본 제일은행의 경성지점을 설립하였다. 한 나라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돈줄을 쥐는 것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2014년 5월 사진 / 구완회 작가
화폐박물관 2층에는 정교한 가짜 돈이 산처럼 쌓여 있는 모형 금고가 있다. 2014년 5월 사진 / 구완회 작가
2014년 5월 사진 / 구완회 작가
 한국은행 구본관을 설계한 다쓰노 긴고가 지은 일본은행 본점. 2014년 5월 사진 / 구완회 작가

1909년 제일은행 경성지점은 ‘한국은행’으로 이름을 바꾼다. 이때의 한국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마지막 숨을 몰아쉬던 이름뿐인 대한제국을 가리켰다. 그러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은행’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총독부 직속 금융기관이 되었다. 해방 후 ‘한국은행’이란 간판을 되찾았지만 6·25전쟁으로 내부가 거의 파괴되어 겨우 복구되면서 중앙은행의 역할을 맡았다. 이후 1987년 새로운 한국은행 본관이 들어서자 원형 그대로의 복원 과정을 거쳐 화폐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쉴 새 없이 차들이 지나다니는 요즘처럼 일제강점기에도 ‘조선은행 사거리’는 바로 옆 명동만큼이나 번화한 곳이었다고 한다. 현재 한국은행 사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서울중앙우체국과 신세계백화점 본관 자리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중앙우체국과 일본의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지점이 있었다. 날렵한 양복을 차려입은 식민지 ‘모던 뽀이’들이 활보하던 거리를, 지금은 출퇴근길의 직장인과 명동을 점령하다시피 한 중국인 관광객이 다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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