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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여행과 나의 인생] ‘여행광 교수’ 경일대 교육문화콘텐츠학과 윤정헌 교수 내 가슴에 새겨진 마추픽추의 굿바이 소년
[여행과 나의 인생] ‘여행광 교수’ 경일대 교육문화콘텐츠학과 윤정헌 교수 내 가슴에 새겨진 마추픽추의 굿바이 소년
  • 윤정헌 작가
  • 승인 2007.08.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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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7년 8월. 사진 / 윤정헌 작가
경일대 교육문화콘텐츠학과 윤정헌 교수. 2007년 8월. 사진 / 윤정헌 작가

[여행스케치=페루] “가고 싶은 곳은 많은데 돈도 없고 시간도 없다”는 변명을 늘어놓는 이들에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갈 곳이 정해졌다면 돈이든 시간이든 어떻게든 해결된다는 것이 이 사람이 사는 법이다. 지금까지 세계 70여 개국을 짬짬이 다양한 방법으로 다녀온 베테랑 여행자, 경일대 윤정헌 교수의 여행지에서의 잊지 못할 추억을 들어보았다.

언제부턴가 내 가슴속엔 라틴아메리카를 가리키는 기묘하고도 거대한 자석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야와 잉카문명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확인한 체 게베라의 여정과 맞물리면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광기(狂氣)로 날 압박해왔다. 그리하여 2005년 신유년의 마지막 날, 나는 마침내 남미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말았다. 17박 18일 동안 열여덟 번이나 갈아탈 18장의 항공권 뭉치를 불끈 쥐고서, 눈 아래 멀어져가는 영종도를 내려다보는 내 입가엔 야릇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마야와 아즈텍 문명의 보고(寶庫) 멕시코에서 시작된 여정은 쿠바와 칠레, 브라질, 아르헨티나를 거쳐 어느덧 잉카의 고혼(孤魂)이 숨쉬는 페루에서 마지막 숨결을 가다듬었다. 산티아고공항에서 무려 7시간을 대기한 끝에 리마의 호텔에 여장을 푼 것은 2006년 1월 8일 새벽 1시. 이튿날 아침, 란페루항공으로 리마 공항을 이륙해 목적지인 쿠스코에 도착했을 때, 시계는 정오를 가리키고 있었다. 

2007년 8월. 사진 / 윤정헌 작가
마추픽추로 향하는 열차. 이곳은 마추픽추역. 2007년 8월. 사진 / 윤정헌 작가
2007년 8월. 사진 / 윤정헌 작가
잉카의 호혼이 살아 숨쉬는 마추픽추. 2007년 8월. 사진 / 윤정헌 작가

기내에서 페루가 자랑하는 노란색 잉카 콜라로 목을 축이는 사이, 내려다보이는 쿠스코의 빛깔은 온통 황토색이었다. 잉카제국의 고풍스러운 색채에 가슴이 설레었다. 쿠스코! 케추아어로 ‘배꼽’이란 의미를 가진 이곳은 해발 3740m 안데스 산중에 위치한 분지로 잉카인이 13세기 초에 건설해 1533년 스페인의 피사로에 정복될 때까지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정연한 시가지와 아름다운 건축물…,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리마로 천도할 때까지 잉카문명의 심장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곳다웠다. 

쿠스코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식당에서 페루 전통식으로 즐긴 점심식사는 아직까지 내 가슴에 멋진 사진으로 남아 있다. 중세의 돌바닥이 깔린 길과 운치 있는 골목 사이로 푸른 안데스 산록이 미소 짓고 있는 쿠스코 광장은 이곳이 전형적인 분지의 심장임을 일깨운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방사선형 구도에 화원과 산록이 조화를 이룬 일대는 그대로 한  폭의 수채화다.

이튿날, 일찌감치 우루밤바의 숙소를 출발한 나는 ‘페루의 청학동’이라 할 만한 욜란타이역에서 마추픽추행 기차에 올랐다. 우루밤바강의 굽이치는 회색 물결을 좌우에 두르며 협곡을 구비 돈 기차는 약 1시간 30분 후 마추픽추역에 도착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약 30분간 지그재그 산행 끝에 잉카의 공중도시 마추픽추(Machu Picchu, 케추아족 언어로 ‘늙은 산’이라는 뜻)의 입구에 다다랐다. 해발 2280m 지점에 세워진 약 5㎢ 면적의 이 유적지는 아직도 그 연원이 수수께끼에 싸여 있다. 1534년 정복자 스페인의 공권력에 저항해 반란을 일으켰던 만코 2세의 휘하 무리가 거점으로 삼았던 성채도시로만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2007년 8월. 사진 / 윤정헌 작가
배꼽이라는 뜻의 쿠스코. 안데시 분지로 잉카의 수도이기도 했다. 2007년 8월. 사진 / 윤정헌 작가
2007년 8월. 사진 / 윤정헌 작가
쿠스코 시내에서 마추픽추 여행의 설렘을 만끽하며 한 장. 2007년 8월. 사진 / 윤정헌 작가

공원 입구에서 입장권을 끊은 뒤 약 20분을 오르니 숱한 다큐멘터리에서 익히 봐온 마추픽추의 웅장한 자태가 다가온다. 나는 그 자리에 할 말을 잃고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실로 강요하지 않은 경건한 배례가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왔다.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마추픽추를 찾은 체 게바라가 인디오 소년으로부터 “스페인 침략군들이 비록 잉카를 정복하고 멸망시켰지만 그들의 문명과 정신까지 정복하진 못했다”는 소리를 경건히 듣던 장면이 떠올랐다.

철기문명 이전의 석기시대를 지혜롭게 구가한 여러 가지 흔적들이 여전히 곳곳에 배어 있었다.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한 돌집의 건축양식, 석조 조형을 이용한 신전과 해시계, 여인의 쭈그려 앉은 미이라를 안장했던 동굴무덤, 그리고 관광객 무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두어 마리의 알파카 등 마추픽추는 외관뿐 아니라 갖가지 흥미로운 콘텐츠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묘한 매력이 풍기던 중년의 페루 여성 가이드와 사진을 찍으며, 그녀가 체 게바라의 혁명동지이자 정숙한 아내였던 ‘일다’와 닮은 모습이라는 생각이 얼핏 뇌리를 스쳤다. 

정상에서 훑어보니 좌측은 굴곡진 아마존강과 울울창창한 밀림의 시작이요, 우측은 창연한 안데스산록의 끝자락이다. 이런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아마존 밀림에서 고산증 특효약인 코카잎을 얻으려는 원정대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지역이 세상의 관심거리로 노출되어 이 같은 공중도시가 건설되었으리라! 부질없는 가정을 해본다.

하산하는 길에 나는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그것은 바로 ‘굿바이 소년’이다. 낭떠러지 같은 계곡을 내려오기 위해 버스는 25분 넘게 일곱 구비의 산길을 돌아야 했다. 그런데 잉카 복장의 10세 소년이 그 일곱 구비마다 나타나 우리에게 “굿바이~”를 외치는 게 아닌가. 고산증과 피곤에 절은 대부분의 승객은 두 번째 구비에 나타난 소년이 처음 소년과 동일 인물인지 반신반의하였으나 세 번째 구비에서 동일 인물임을 확인하고는 모두들 버스가 떠나갈 듯한 탄성을 질러댔다. 

2007년 8월. 사진 / 윤정헌 작가
버스 추월의 묘기를 선보여 찬사를 받았던 굿바이 소년. 2007년 8월. 사진 / 윤정헌 작가

잉카 시절의 파발꾼, ‘챠스키(Chaski)’가 이용하던 산중 지름길과 계단을 미끄러지듯 질주해 버스를 앞질러 일곱 번이나 산비탈 구비에 나타난 소년에게 세계 각국에서 모인 관광객들은 충격과 동시에 경외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곤 일곱 구비를 돌아 마지막 평지에 도착했을 때, 버스에 올라탄 그가 앳된 목소리로 “굿바이, 사요나라, 아디오스, 짜이찌엔, 뚜빠나치스카마, 안녕히 가세요” 하며 6개국어의 고별인사를 남기자 누가 먼저랄 것도 앞 다퉈 1달러짜리 지폐를 소년의 고사리 같은 손에 쥐어주었다. 나중에서야 이 소년이 출발지에서 관광객의 버스를 배당 받아 죽어라고 버스를 질러온 마추픽추의 기발한 ‘신종 앵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수입의 반을 버스 기사와 나눠 가지며 하루에 보통 두 번, 잘하면 세 번씩 ‘버스 추월’ 묘기를 선보이는 ‘강심장의 산악 전문 구보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소년이 관광객의 주머니를 노린 앵벌이란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는 변성기(變聲期) 전, 12세 전후가 정년퇴직이라는 이 가냘픈 소년의 기발한 집념과 치열한 도전정신에 일종의 대리만족과 경외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기꺼이 1달러씩의 팁을 주면서 우리의 ‘잃어버린 다리’를 위로해야만 했던 것이다. 

마추픽추에서 굿바이 소년이 보여준 투혼은 ‘건강한 육체의 순정성’을 상기시킨 보배로운 증표로 내 가슴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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