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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앨리스의 아프리카 방랑기] 천연의 마사이 마을과 아프리카의 뉴욕인 케냐 나이로비 동아프리카의 극과 극을 넘나들다
[앨리스의 아프리카 방랑기] 천연의 마사이 마을과 아프리카의 뉴욕인 케냐 나이로비 동아프리카의 극과 극을 넘나들다
  • 성은경 기자
  • 승인 2007.09.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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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7년 8월. 사진 / 성은경 기자
나이로비에서 만난 사람. 2007년 8월. 사진 / 성은경 기자

[여행스케치=탄자니아]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끝나고, 붉은 흙길이 끝난 후에도 길이 없는 숲을 30분 이상 달려 그곳에 다다랐을 때, 파란 옷의 마사이 아낙네들이 불을 피우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교통체증이 심한 나이로비 시내를 걸었다. 고층 빌딩과 기성복 차림의 사람들 속에서 나는 며칠 전 만났던 그 수많은 별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

비자 여행을 떠나다
탄자니아에 온 지도 3개월이 지났다. 어느덧 이곳 생활이 내 집처럼 편해지고 검은 피부의 친구들이 너무나 익숙한 풍경으로 다가올 즈음, 처음 입국시 여러 가지 절차 문제로 3개월짜리 관광 비자를 받았던 일로 인해 뜻밖의 일을 하게 되었다. 일명 비자 여행! 학기 중이라 자리를 비우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에 우리는 가까운 이웃나라인 케냐를 다녀오기로 했다. 다르에스살람에서 나이로비까지 차로 16시간. 상상만 해도 엉덩이에 쥐가 날 것 같지만 지난 빅토리아폭포 여행 경험 덕분에 장거리 여행이 그리 두렵지 않았다. 단지 떠난다는 설렘, 그걸로 족했다.     

2007년 8월. 사진 / 성은경 기자
아이들은 귀에 코르크 마개를 끼워 구멍을 넓힌다. 2007년 8월. 사진 / 성은경 기자

키 큰 마사이를 만나러 가는 길
케냐행을 준비하던 중 관광객을 위한 마사이 마을이 아닌 진짜 오리지널 마사이 마을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내가 일하는 기관에서 몇 해 전부터 돕고 있는 봉기라는 지역에 마사이 마을이 있다. 현재 내가 가르치는 2학년 아이들 중 모니카 또한 그 마을 출신이다. 모니카의 아버지는 그 마을의 추장이었다. 기관에서는 마을에 필요한 물자를 보내기 위해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데리고 방문하기로 하였고, 케냐로 향하는 길과 방향이 같기에 나도 더불어 잠시 합류하기로 했다. 

마사이 마을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길고 험했다. 5시간 정도 열심히 아스팔트 도로를 달린 후 붉은 흙길을 2시간가량 더 가야 했다. 그리고 더 이상 길이 없는 그곳에서 다시 숲을 이리저리 통과하며 1시간가량을 더 달린다. 초행인 사람들을 절대 찾을 수 없는 그런 곳에 마사이들이 살고 있었다. 탄자니아에서는 특별히 부족들을 구분하지 않지만 마사이족만큼은 예외다. 아마도 키가 크고 늘씬한 그들의 외모와 여전히 지켜지고 있는 옷차림 때문이리라. 이들은 소와 양, 염소를 키우며 일반 마을과 동떨어진 초원 속에 살고 있다. 

그렇게 도착한 그곳엔 파란 옷의 전통복장을 한 마사이 아낙네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통신수단이 없는 곳이지만 우리가 간다는 소식이 바람결에 전해졌나보다. 불을 피우고 밥 지을 준비를 하는 그녀들이 아이를 하나씩 안고 우리에게 환한 웃음을 건넨다. 얼굴이 하얀 우리를 본 아기들은 울음을 터뜨리거나 도망가버린다. 우리의 외모가 아이들에겐 낯설음을 넘어 무서운 존재로 인식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자 꽤 많은 숫자가 됐다. 둘러서서 북을 치고 노래를 불러준다. 미의 기준이 다른 이들에겐 귀고리 거는 구멍을 크게 뚫는 것이 전통인가 보다. 아이들은 구멍을 넓히느라 코르크마개같이 생긴 나무 조각을 귀에 박아두었다. 괜히 안쓰러워지는 이유는 아직 그들을 다 이해하지 못해서일까?       

2007년 8월. 사진 / 성은경 기자
마사이들은 일반인들이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오지에 살고 있다. 2007년 8월. 사진 / 성은경 기자

소똥 집에서의 하룻밤
처음부터 이들이 낯선 얼굴의 한국인들을 반겼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경계하고 무서워하고, 하지만 차로 8시간이나 되는 이곳을 꾸준히 찾아가 여러 방면으로 도와주고 마음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이들의 마음도 열렸다고 한다. 처음 보는 마사이들의 소똥 집과 가축우리, 그리고 마사이들이 너무 좋아 풍경 하나하나를 카메라에 담는데, 어느새 아낙네들이 아이를 안고 와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조른다. 비록 말이 통하지 않지만 눈빛으로 대화를 한다. 그때 방학을 맞이해서 집에 온 모니카가 다가왔다. 영어를 아는 모니카가 내가 한 말을 마사이말로 통역해 아낙네들에게 전해주었다. 그들은 뭐가 그리 우스운지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다. 

저녁이 되자 우리 기관을 자주 오가던 마사이 아저씨가 너른 풀밭에 천연 소가죽을 깔고 저녁식사를 내왔다.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에서 마사이식 진수성찬을 받았다. 맛있게 간을 해 지은 밥과 튀긴 닭. 한솥 가득한 밥을 보니 시장기가 밀려왔다. 어둠이 완연하게 내리자 밤하늘엔 온통 별과 은하수다. 어쩌면 하늘이 없다고 해야 옳을지도…. 밤9시 넘어서 숙소가 정해졌다. 나는 모니카의 소똥 집에서 자기로 했다. 잠을 자는 곳은 바닥보다 높게 만들어져 있었다. 침낭을 펴고 몸을 넣었다. 쉽게 잠이 오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2007년 8월. 사진 / 성은경 기자
마사이족들이 풍성히 차려준 저녁식사. 2007년 8월. 사진 / 성은경 기자

얼마나 잤을까? 새벽을 알린 것은 다름 아닌 집안을 돌아다니는 병아리, 닭, 염소들이었다. 얼마나 시끄럽게 울어대는지 도저히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것 같았지만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밖은 집 안보다 밝았다. 그도 그럴 것이 소똥 집은 허리를 푹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문 이외에는 빛이 들어올 구멍이 없었다. 어린 마사이들은 가축들을 몰고 초원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초원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에 어린 시절부터 용맹할 수밖에 없나보다.

아침으로는 직접 짠 우유에 옥수수 가루를 탄 ‘우지’라고 불리는 죽이 나왔다. 탄자니아에 온 후 항상 소에서 직접 짠 우유를 마셨지만 이곳 우유는 또 다른 맛이다. 자리를 정리하고 출발하려는 우리에게 아낙네들은 직접 손으로 만든 마사이 스타일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나도 그들의 옷을 입고 하늘 높이 뛰어오르는 그들의 전통춤을 따라 추고 싶어졌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드는 그들을 뒤로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2007년 8월. 사진 / 성은경 기자
화려한 의상과 액세서리를 한 마사이 여인들. 2007년 8월. 사진 / 성은경 기자

아프리카의 뉴욕, 나이로비
이제 본격적으로 나이로비로 향하는 여정에 올랐다. 스칸디나비아 버스를 타고 가끔 마사이 목동밖에 없는 초원을 5시간 이상 달려 드디어 탄자니아와 케냐의 국경지대인 나망가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탄자니아 사무실에서 출국 도장을 받고 다시 케냐 쪽 사무실로 가서 50달러를 지불하고 관광 비자를 받았다. 케냐 영역으로 넘어오자 화려한 장식을 한 마사이 아낙네들이 각종 액세서리를 가져와 팔고 있었다. 내가 만났던 수수한 아낙네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마사이들은 탄자니아와 케냐에 걸쳐 살고 있는데 관광업이 성행하고 있는 케냐에서는 마사이들도 하나의 상품화가 되어버렸다. 나이로비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약 5~6시간이 지나서였다. 어느새 한밤중이 되었고 겨우 택시를 잡아타고 나이로비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P의 집으로 향했다. 비가 와서 인지 긴팔 점퍼를 입었지만 찬 기운이 밀려들어왔다. 해발 1700m에 자리한 도시답게 나이로비는 서늘했다. 밤에 추울 거라며 두꺼운 후드티를 건네는 P에게 여기가 아프리카가 맞긴 맞냐며 농담을 하였다. 

2007년 8월. 사진 / 성은경 기자
서구 도시를 연상시키는 나이로비 시내. 2007년 8월. 사진 / 성은경 기자

아침부터 비가 왔다. 비가 오면 작업장에 갈 수 없다며 P는 우리와 늦은 아침식사를 함께했다. P는 나이로비에 있는 쓰레기장에 사는 아이들을 위해 보건교육을 하고 있다. 숙소에서부터 버스로 세시간이 걸리는 슬램, 그나마 비가 오면 쓰레기장이 잠겨 걸어 들어갈 수도 없다. 그런 위험한 곳에서 아이들이 놀고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집에만 머물 수 없기에 우리는 길을 나섰다. 거리는 보랏빛 자카란다 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탄자니아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대형 시내버스, 수많은 고층 빌딩, 호텔, 너무나 잘 가꾸어진 공원, 대형마트들. 아프리카의 뉴욕이라 불릴 만하다며 ‘여기 서울 같다’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그만큼 크고 화려하고 복잡했다.

2007년 8월. 사진 / 성은경 기자
나이로비 거리에서 한 컷. 2007년 8월. 사진 / 성은경 기자

토이마켓에서 보물찾기
나이로비에 오면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바로 응공로드의 아담스아케이드 뒤에 있는 토이마켓이다. 많은 사람들이 길가에서부터 골목 깊숙한 곳까지 허술한 가판대를 설치하고 구호품으로 들어온 각종 유명 브랜드 중고품들을 팔고 있다. 가판대가 족히 100여 개는 되는 것 같다.

P 또한 입고 있던 리바이스 셔츠를 가리키며 여기서 장만한 것이라며 자랑을 한다. 가게마다 특징도 다양하다. 옷을 폐품처럼 쌓아두고 무조건 30~50실링(약 500~800원)에 파는 곳부터 윗옷을 옷걸이에 걸어서 두고 청바지도 차곡차곡 잘 정리해두고 파는 곳도 있다. 이렇게 깨끗이 빨고 다려서 팔면 더 많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청바지 하나와 티셔츠 하나를 총 9000원에 구입하고 마치 횡재라도 한 듯 한 기분에 더 구경을 하고 싶다고 하자 P가 이제 피부색 다른 애들은 돌아갈 시간이라며 우리를 골목에서 끌어냈다. 오후 5시가 조금 지난 시각. 나이로비같이 휘황찬란한 대도시도 외국인에겐 해진 후에는 걸어 다닐 수 없는 삭막한 도시인 걸까?

우리들은 택시를 잡아타고 저녁을 먹기 위해 한국 식당으로 이동했다. 탄자니아엔 한국 식당은커녕 한국 식품을 구입할 곳도 없는데 그래도 교민 숫자가 많은 케냐는 형편이 좀 나은 듯하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P녀석은 케냐인 매니저에게 삼촌이라고 불러가며 친한 척을 한다. 주문도 한국말로 해버리는 이 녀석을 누가 말리겠는가. 오늘의 메뉴는 ‘반반’이다. 우동 반 회덮밥 반. 사실 반이라고 하지만 거의 각각 1인분 수준이다. 배가 터지도록 실컷 먹고 나오니 또 비가 내리고 있다. 

아프리카에 와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소리소문 없이 비가 자주 온다는 것이다. 바람소리 같아 보면 어느새 비가 내리고 있다.  

2007년 8월. 사진 / 성은경 기자
북적이는 시내버스 정류장. 2007년 8월. 사진 / 성은경 기자

케냐 전통 춤과의 만남 Bomas of Kenya
나이로비 시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많지 않았다. 국립공원으로 사파리 관광을 떠날까 해서 여행사 몇 곳을 돌아다녀 보았지만 비용도 많이 들고 탄자니아에서 동물 사파리를 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의욕도 떨어졌다. 그러던 차에 나이로비 외곽에 있는 보마스 오브 케냐(Bomas of Kenya)라는 민속촌을 추천받고 급하게 그곳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케냐 또한 나이로비를 벗어나자 탄자니아 같은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어쩌면 나이로비가 이곳 아프리카의 돌연변이 같은 도시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07년 8월. 사진 / 성은경 기자
얼마 만에 느껴보는 커피향인가... 2007년 8월. 사진 / 성은경 기자

민속촌에 도착하여 민속춤 공연 티켓을 끊은 후 남는 시간 동안 각 부족의 가옥들을 재현해놓은 마을을 둘러보았다. 케냐하면 마사이족밖에 떠오르지 않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수십 개의 부족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부족마다 가옥의 형태가 달랐다. 대부분 일부다처제였는데 남편의 방과 여러 명의 아내들의 방의 크기와 배치를 통해 가족 안에서의 권력 관계를  짐작해볼 수 있었다. 

평일이라 민속춤 공연장에 손님이 우리밖에 없을까 걱정했는 데 중학교 학생들인지 단체로 방문을 하여 좌석을 가득 채웠다. 공연은 10팀 이상의 다양한 지역춤과 전통악기 연주로 이루어졌다. 춤 또한 군무에서부터 남녀가 짝을 지어 추는 춤까지 다양했다. 특히 원형공연장을 가득 울리는 소박한 전통악기 연주는 마음속 깊숙이 평안을 가져다 주었다. 눈을 감고 그 소리에 내 마음을 기대본다. 이곳에 오기 전 만났던 마사이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오르며 푸른 초원의 마사이 마을에서 피어오르던 밥 짓는 연기 내음이 코끝을 스쳤다. 

아!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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