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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아이와 놀며 배우는 여름] 600년 전 과거로 떠나는 여름 바캉스 고성 왕곡마을
[아이와 놀며 배우는 여름] 600년 전 과거로 떠나는 여름 바캉스 고성 왕곡마을
  • 전설 기자
  • 승인 2014.07.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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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4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2014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여행스케치=고성] 여름마다 산과 바다를 오간 내 아이에게 넌지시 물어보자. “아들 딸, 올 여름방학에는 타임머신 타고 600년 전 과거로 시간여행 다녀올까? 저녁연기 모락모락 피어나는 초가집에서 에어컨보다 시원한 산바람 쐬면서 하룻밤 자고 올까?” 동그래진 아이의 두 눈에 반짝반짝 호기심이 깃들 것이다.

강원도 고성군 왕곡마을은 두백산, 공모산, 순방산, 제공산, 호근산 다섯 산을 갑옷처럼 껴입고 있다. 그 앞으론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송지호가 흐른다. 산과 호수에 포위된 마을로 들어서는 유일한 통로는 한고갯길. 기운 센 황소도 칼바람에 쓸려 갈까 쌀 3가마를 이고 지났다는 고개를 넘어간다고 생각하니 앞이 다 캄캄하다. 마음 단단히 먹고 나서는데 이게 웬걸? 한적한 시골길을 10여 분 걸었을까, 야트막한 언덕배기로 초가집 서너 채가 보인다.

2014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2014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여기가 왕곡마을 저잣거리예요. 옛날 음식 맛볼 수 있는 향토식당과 떡메 치고 한과 만드는 체험장이 있죠. 마을은 여기서 5분 거리에 있고요. 첩첩산중 오지라는 말도 다 옛말이거든요. 왕곡마을이 1988년에 전통마을 보존지구, 2000년에 국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면서 도로를 새로 닦았어요. 고성 시내버스가 10분마다 마을 입구에 서니까 접근성도 좋고요.”

‘고성 왕곡마을로 떠나는 생생(生生) 시간여행’ 프로그램을 주관하는 문화예술단체 여민의 김영옥 대표가 저잣거리 곳곳을 안내해 준다. 쿵덕쿵 경쾌한 가락에 발 묶여 체험장을 들여다보니 꼬까옷 입은 유치원생들이 떡메치기에 도전 중이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떡메를 붙잡고 단숨에 내려치는 솜씨가 퍽 야무지다. 차지게 친 쑥떡은 그 자리에서 콩고물에 굴려 쑥인절미를 만들어 먹는다. 왕곡마을에는 떡메치기 외에도 한과, 두부 등의 먹거리 만들기 체험과 단추 쌩쌩이, 전통 제기, 유두 팔찌, 한지 발 만들기 체험을 상시로 운영한다. 고누, 비석치기, 칠교판 등 새로 배워야 할 놀 거리도 많으니 왕곡마을의 아이들은 저절로 부지런해진다.

2014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으라차차, 호랑이 기운으로 떡메를 치던 공형진 초등학교·유치원 아이들. 2014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600년 전 조선을 거닐다
본격적인 시간여행은 마을로 들어서는 순간 시작된다. 들꽃 가득 핀 시골길에 수백 년 전 지어진 함경도식 초가집, 기와집, 돌너와집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마을 전체가 나라에서 지장한 중요민속자료라더니 과연. 걸음걸음 떼는 것이 아까울 만큼 귀한 정취를 내놓는다. 초가집과 기와집 사이는 푸성귀를 키우는 텃밭이 담장을 대신하고 마당에는 살구, 개복숭아, 앵두, 매실이 툭툭 떨어진다. 담장 밖에는 제멋대로 피어난 접시꽃이 한아름, 연못에는 희고 고운 백련이 한가득. 아주 오래전에 촬영한 한국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
“6·25전쟁 당시 비행기 포격으로 포탄 3발이 마을에 떨어졌어요. 그런데 이게 셋 다 불발탄이라 터지질 않았죠. 1996년에는 고성에 산불이 크게 나 마을 사람들이 죄다 대피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마을 어귀에서 불이 자연적으로 꺼졌어요. 비도 안 왔는데 말입니다.”

2014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고사리 손으로 콩고물을 입혀 직접 맛보는 인절미 맛은? “맛있어요!” 2014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이광수 문화해설사는 마을이 수백 년간 전란과 화마로부터 옛 모습을 지킬 수 있던 것은 마을이 물에 떠 있는 배를 닮은 ‘방주형 길지’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마을의 어디가 배를 닮았다는 것인지 알쏭달쏭. 영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더니 “마을 뒷산에 올라가면 왜 방주라 부르는지 한눈에 보이는데 한번 올라가 볼래요? 30분이면 다녀와요” 한다. 산책도 할 겸 선뜻 따라나섰다가 ‘내가 속았구나’ 깨친 것은 두백산 중턱에서다. 비탈길을 스무 걸음정도 죽을 둥 살 둥 올라가야 딱 한걸음 숨 돌릴 평지가 나오는 산길에서 숨이 턱끝 코끝까지 차오른다. 앞서 걷는 이 해설사의 뒷모습에 원망과 투정이 쏟아진다. 하지만, 모든 산이 그러하듯 고생길 끝에는 달콤한 보상이 기다리는 법. 정상에서 내려다 본 동해, 송지호, 왕곡마을의 ‘3단 풍경’ 앞에 눈이 번쩍 뜨인다. 저 멀리 푸른 동해가 넘실거리고 그 앞으로 나비를 닮은 송지호가 찰랑인다. 거기서 더 들어가면 왕곡마을이다. 꼭 배 한 척이 바다를 건너 호수를 지나 산자락 아래 쉬고 있는 모양새. 이래서 방주로구나, 궁금증도 풀었겠다, 구경하기 힘든 풍경도 눈에 담았으니 원망이 아닌 감사를 전해야겠구나.

2014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두백산 정상에 오른 자에게만 허락된다는 동해바다, 송지호, 왕곡마을의 ‘3단 풍경’  2014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2014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초가집마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 2014년 8월 사진 / 전설 기자

600년 전 고택에서 잠들다
뜻하지 않은 산행으로 몸이 다 노곤하다. 땀으로 목욕까지 하고 났더니 찬물 뒤집어쓰고 벌렁 눕고 싶은 마음 뿐. 이왕 이렇게 된 거 왕곡마을에서 하룻밤을 머무르기로 결정 한다. 왕곡마을은 사전 예약자에 한해 고택 한 채를 통째로 내주는 한옥 숙박체험을 운영하고 있다. 총 8채의 고택 중 앞뜰에 샛노란 금계국 꽃밭이 있는 진부집에 짐을 푼다. 가마솥과 아궁이가 들어찬 부엌을 지나 디딤돌을 딛고 마루에 올라선다. 곳곳에 호롱, 다듬이 방망이, 맷돌, 칠첩반상기, 함지, 경대 등등. 박물관에서나 보던 오래된 살림살이가 빼곡하다. 손 타면 어쩌려고 이렇게 막 가져다 두었나. 귀한 풍경 귀한 살림이 눈 닿는 데마다 데굴데굴 굴러다니니 객이라는 것도 잊고 살림 걱정부터 앞선다. 후끈한 밖 공기와는 달리 서늘한 한기에 땀이 식는다. 바깥 창호를 여니 사람 허리께쯤 오는 낮은 담장 너머로 할머니 두 분의 말소리가 들린다. “이게 호두나무래?” 묻는 말에 “산추자 아닌가? 이건 못 먹어. 먹으면 물똥 싸” 답하는 일상적인 대화. 때 묻고 손 타지 않은 순박한 이야기에 미소 짓는다. 강산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는 동안에도 왕곡마을의 시간은 깊은 산골짜기에 고여 있다.

INFO. 고성 왕곡마을
주소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 왕곡마을

Tip. 마을 맛집
고성 왕곡마을은 마을 전체가 문화재이기 때문에 취사가 불가능하다. 대신 왕곡마을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별미를 파는 식당이 2곳 있다. 오봉식당은 고성 바닷가에서 난 갖가지 해초와 마을을 에워싼 다섯 산에서 캔 산나물을 맛볼 수 있는 향토식당이다. 주문과 동시에 감자를 갈아 도톰하게 부쳐낸 감자전이 별미. 왕곡마을 저잣거리의 왕곡향토식당은 토종 미꾸라지로 끓여낸 추어탕이 대표 메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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