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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도심 속 숨은 문화유산 19] 서울 한복판, 옛날 붉은 벽돌집 홍난파의 집 & 딜쿠샤
[도심 속 숨은 문화유산 19] 서울 한복판, 옛날 붉은 벽돌집 홍난파의 집 & 딜쿠샤
  • 구완회 작가
  • 승인 2014.07.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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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4년 8월 사진 / 구완회 작가
2014년 8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여행스케치=서울] 서울 성곽길, 경희궁에서 사직공원 코스 중간에는 담쟁이 넝쿨이 아름다운 붉은 벽돌집이 있다. 일제강점기 음악가 홍난파가 6년 동안 살았다 해서, 일명 ‘홍난파의 집’으로 불리는 곳이다. 지금은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작은 전시관으로 꾸며져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그곳에서 걸어서 5분쯤 떨어진 곳에는 또 하나의 근대문화유산, 딜쿠샤가 자리잡고 있다.


담장 없는 정원으로 들어서자 꽃밭 사이에 청동 흉상 하나가 엷은 미소를 띄고 있다. 그 아래 ‘홍난파 상’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를 설명하는 짧은 글이 이어진다. 
“봉숭아를 비롯한 많은 가곡과 동요 백 곡을 남기신 난파 홍영후(1898. 4. 10~1941. 8. 30) 선생은 우리나라 맨 처음 바이얼리니스트로 1936년에는 경성방송 관현악단을 창설하여 지휘하신 방송 음악의 선구자이시다. 난파를 기리는 이들이 정성을 모아 그 모습을 새겨 여기 세우니 과연 인생은 짧아도 조국과 예술과 우정은 길구나.” 

‘인생은 짧아도 조국과 예술과 우정은 길구나’라니. 뭔가 심상치 않은(?) 문구에 흉상 뒤를 보니 이 글을 쓴 이는 아동문학가 윤석중이다. 윤석중은 홍난파가 작곡한 동요 ‘퐁당퐁당’의 작사가이기도 하다. 

2014년 8월 사진 / 구완회 작가
힌디어로 ‘희망의 궁전’이라는 뜻의 딜쿠샤는 권율 장군 집터에 자리 잡고 있다. 3·1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미국인 저널리스트가 살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형편이 넉넉지 못한 이들이 모여 살고 있다. 2014년 8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천재와 친일 사이
이 흉상은 1968년 홍난파 탄생 70주년을 기념해 당시 남산에 있던 KBS에 세운 것을 옮겨온 것이다. 우리나라 첫 방송악단을 만들고 이끌었던 인물의 흉상이 방송국에 세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여의도 KBS본관에 있던 홍난파의 흉상은 시민들의 반발로 KBS가 자진 철거하는 수모를 겪었다. 일제강점기에 벌어진 홍난파의 친일행적 때문이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는 홍난파의 친일행적, 일제와 침략전쟁을 찬양하는 음악을 짓고 연주한 행위들이 꽤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물론 이것 때문에 ‘고향의 봄’이나 ‘퐁당퐁당’, 혹은 ‘봉선화’를 즐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를 남긴 홍난파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훌륭한 업적을 남겼기 때문에 그의 친일행적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지만 말이다.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이라는 작은 명패가 붙어있는 현관으로 들어가면 아담한 거실에 그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소개를 볼 수 있다. 거실과 터놓은 방에는 홍난파의 또 다른 흉상과 함께 피아노와 첼로 등이 눈에 띈다. 아쉽지만 이것들은 홍난파와는 상관없는 물건이다. 그가 생전에 쓰던 악기와 유물들은 현재 단국대학교에 있는 홍난파 박물관에 전시 중이란다. 이곳에 유물이 없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바로 이 집에서 홍난파가 6년간 살면서 주옥 같은 노래들을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2014년 8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실내에 있는 피아노와 첼로 등은 아쉽게도 홍난파와 관련된 유물은 아니다. 대신 매주 목요일에는 피아니스트로 활동 중인 홍난파의 손녀가 직접 피아노를 연주한다. 2014년 8월 사진 / 구완회 작가

권율 장군 집터에 세워진 ‘희망의 궁전’
붉은 벽돌 위로 초록 담쟁이 넝쿨이 아름다운 이 집은 1930년에 독일인 선교사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00년대 초반 인근 송월동에 독일 영사관이 있었기 때문에 이 일대에 독일인 거주지가 형성되었는데, 지금은 이 집만 남아 있다고 한다. 서쪽 길에서 계단으로 연결된 마당에는 일부러 야트막한 나무 담장을 만들고 그 아래 봉숭아를 심어놓았다. 

2014년 8월 사진 / 구완회 작가
딜쿠샤 바로 옆에는 권율 장군이 심었다는 수백 년 된 은행나무가 위풍당당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14년 8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울밑에 선 봉숭아를 떠나 5분쯤 걸으면 또 다른 붉은 벽돌 건물이 나온다. 분명 고풍스러워 보이기는 한데, 아주 낡고 쇠락한 느낌이다. 이 집의 이름은 딜쿠샤. 힌디어로 ‘희망의 궁전’이란 뜻이란다. 원래 이곳은 조선 시대 권율 장군의 집이 있던 자리다. 지금도 딜쿠샤 옆에는 권율 장군이 심은 것으로 알려진 수백 년 된 은행나무가 우람한 덩치를 자랑하고 있다. 딜쿠샤는 전세계에 3.1운동 소식을 알린 미국인 저널리스트 앨버트 테일러가 살던 집이지만, 지금은 종로구 소유 건물로 가난한 이들이 모여들어 무허가의 살림살이를 꾸려가고 있다. 이들의 이주 계획이 마련되는 대로 딜쿠샤를 근대문화유산으로 다시 태어날 예정이다. 그때는 여기도 홍난파의 집처럼 예쁜 담쟁이 넝쿨이 자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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