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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고목나무와 개미 부부 이야기] 페루, 마지막 여행의 추억 맙소사, 아마존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까?
[고목나무와 개미 부부 이야기] 페루, 마지막 여행의 추억 맙소사, 아마존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까?
  • 김문숙 기자
  • 승인 2007.11.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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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7년 11월. 사진 / 김문숙 기자
마지막 페루 여행을 하던 모습. 2007년 11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여행스케치=페루] 인간의 발길을 거부하는 아마존에 도전한 부부. 그러나 그 벽은 높고 험했다. 자연 앞에 맨몸으로 맞선다는 것의 실체를 온몸으로 깨달았던 페루 여행의 하이라이트. 

2007년 11월. 사진 / 김문숙 기자
과일파는 아줌마. 2007년 11월. 사진 / 김문숙 기자

Chinita가 아니고 Corea라구요
페루인들은 China, 그러니까 중국은 어떻게 거의 다 안다. 중국인이 경영을 하지 않아도 조그마한 마을에 Chifa라고 씌어 있는 중국 식당을 쉽게 볼 수 있다. 아마도 중국인들이 처음에 식당을 경영할 때 페루인들의 입맛에 잘 맞는 음식을 개발하여 판 모양이다. 실제로 대부분 의 중식당에서는 볶음밥과 볶음국수를 해주는데 먹을 만한다. 아무튼 과일장사 아줌마와 또 입씨름이 벌어졌다. 

“Corea는 China처럼 아시아의 한 나라예요. 그리고 저는 Coreana이구요.”
“아!  중국 근처구만, 어쩐지 얼굴이 까무잡잡하다 했지.”
“아니요, 아줌마. 전 Chinita가 아니라 Coreana라구요.”

아니, 이렇게 설명을 해도 한국을 모르다니. 그리고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계속 엉뚱한 소리만 하는 것이 화가 나기까지 했다. TV에  광고도 나오고 현대와 기아차가 도로에서 버젓이 돌아다니고 삼성 제품들이 즐비한데, 시골사람들에게는 그 물건이 어디서 왔는지 아무 관심이 없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거나 아니면 중국이나 일본 제품으로 알고 있다. 에릭은 페루인이 한국을 모른다고 시골 사람들을 어떻게 계몽해야 되느냐며 광분하는 내 모습이 오히려 더 우습단다. 

“한국의 시골 할머니들이 페루가 어디에 붙었는지 알 것 같냐”는 것이다.

하긴 그렇다. 우리 시골 할머니들에게 페루를 물으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심지어 나의 할머니는 독일이 어디 붙었는지도 모르신다. 그런 것에 의문을 가져보지 않았었는데 막상 한국을 모른다고 하니 왜 그리 화가 나던지. 남미 여행하면서 처음 있는 일이라 좀 의아했던 것 같다. 그래도 여행을 하면서 주민들에게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버릇은 여전히 고치기가 힘들다. 

2007년 11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스페인 분위기가 나는 카페. 2007년 11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영화관이 아니라 음악회라고요! 
트루히요(Trujillo)에 오니 바흐 연주가 있다는 광고가 여러 군데 있다. 오랜만에 문화생활을 해보고 싶어 티켓을 사려고 가니 음악회 2시간 전에 표를 판다고 한다. 그래서 음악회 당일 2시간 전에 가서 표를 사려고 기다렸는데 2시간 전이 되어도 표를 팔 생각을 하지 않는다. 1시간 전에 가서 표를 사도 정시에 시작하지 않을 것이라는 에릭의 의견이 딱 맞아떨어졌다.  30분 전에 표를 팔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음악회 연주장은 현대적인 감각은 아니지만 오래된 영화 속에서 보던 콘서트홀 같은 분위기다. 지휘자와 피아니스트는 페루인으로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현재 페루 및 여러 나라에서 순회 연주를 하고 있는 실력자들이었다. 

모처럼 눈을 감고 음악에 심취하여 상상의 날개를 펼치면서 빠져드는데 뒤에서 뭐가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곧바로 뒷좌석에 한 소년과 부부가 앉으려고 들어왔는데, 소년이 너무 뚱뚱한지 자리를 잡느라고 번잡하다. 간신히 앉더니만 이제는 부스럭부스럭 과자봉지를 뜯는 소리를 낸다.

“조용히 해주세요.” 한마디 했는데 계속 부스럭부스럭 난리다. 에릭이 또 한마디 했다. “제발 조용히 하세요.”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과자봉지를 살살 뜯기 위해 전쟁인 모양이다.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도 신경이 거슬렸는지 조용히 하라고 한다.  

“여긴 영화관이 아니라 음악회라구요.”

참다 참다 못해 마지막으로 언성을 높여서 화를 내니 그 가족은 자리를 옮기느라고 또 한참동안 번잡하다. 

2007년 11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아마존강의 모습. 2007년 11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아마존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에릭이 여기까지 왔으니 악어를 꼭 보아야 한다고 빡빡 우겨댄다. 그동안 내 고집만 계속 세운 터라 에릭의 말도 들어주어야 할 것 같아 울며 겨자 먹기로 그의 말에 찬성했다.

자전거를 치클라요(Chiclayo)라는 곳에 두고 12시간 버스를 타고 아마존 지대를 향해 출발했다. 버스 여행은 정말로 지옥이다. 운전사는 꼬불꼬불 산길을 인정사정 없이 돈다. 게다가 밤새 쏟아지는 비가 우리가 앉은 자리까지 뚝뚝 떨어진다. 밤새 얼마나 오바이트를 했는지 새벽 6시에는 기진맥진하여 아무 생각이 없다.

2007년 11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우리를 아마존강으로 데리고 간 카누와 가이드 아저씨들. 2007년 11월. 사진 / 김문숙 기자

간신히 열대 지역에 도착했다. 날씨는 후텁지근하고 모터택시 소리가 귀에 따갑다. 갑자기 기후 변동이 심해 몸이 견뎌내지 못하고 밤새 시달려서 눈이 퀭하니 꼭 인디오족 모습이다.

그런데 여기서 밤이나 새벽에 4시간 동안 택시를 타고 가서 그곳에서 또 나흘 동안 배를 타야 정말로 아마존 열대 밀림으로 갈 수 있다고 한다. 1년 전만 해도 아마존 밀림으로 가는 차가 종일 있었지만 지금은 도로 공사중이라 밤 12시나 새벽 4시에 미니버스나 택시가 떠난단다. 새벽 택시 여행은 엄청난 공포였다. 모든 차량이 경주를 하듯 달려 커브를 돌 때마다 자동차 바퀴에서 ‘끽’하는 소리가 울린다. 운전자에게 천천히 달리라고 하면 한 3분 정도 천천히 달리다가 또 질주다. 뒤에서 오는 차량과 반대편에서 오는 차량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도 지기 싫어하는 페루 남자들의 심리도 한몫하는 듯했다. 

한 3시간 질주를 하고 나니 항구가 보인다. 항구에 도착하니 남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든다. 배를 이용하는 손님을 끌어오면 팁을 받기 때문이다. 배낭을 들어주겠다고, 어디까지 가느냐고, 행거가 필요하지 않느냐고….

아침잠도 덜 깨고 질주에 놀라서 아직 멍멍한데 떼거리의 남자들 때문에 더 정신이 사납다. 손님 한 명을 데려오는 데 따르는 수고비가 고작 1Sol(약 300원)이라는데, 그걸 벌기 위해 이 전쟁이다. 

으악! 저 카누를 타고 밀림으로 들어간다고?
‘난 안 가. 구명조끼도 없고 강에 빠져 악어에게 물리기라도 하면….’

2007년 11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조난당한 듯 볼품없는 식사. 2007년 11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카누여야 자연이 훼손되지 않고 또 동물을 놀래키지 않고 잘 볼 수 있다고 하니 배는 그렇다 쳐도 구명조끼는 있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명조끼를 구하느라 가이드가 온 마을을 뒤져 겨우 한 개를 구했는데 끈은 거의 다 찢어지고 그냥 빨간 천에 스티로폼만 넣은 것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모르게 얼떨결에 카누에 올라탔다.

처음부터 영 불안하다 싶었다. 카누에 들어갈 때 미끄러져서 발이 강에 빠지고 난리를 칠 때부터 징조가 있었다. 아니, 내가 왜 완강하게 거부하지 않고 이 카누에 앉았을까 하는 후회와 겁밖에 나지 않았다.

게다가 모기도 아니고 이상한 곤충이 온 사방에서 몰려와 옷에 달라붙는다. 아예 옷을 뚫고 문다. 카누에서 움직이거나 설 수가 없어서 수건으로 곤충을 죽이려고 애를 써도 얼마나 많은지 이길 수가 없다. 그 무서운 아마존강의 모기이다. 모기약도 도무지 듣지 않는다.

점심 이후로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졌다. 요리하는데 밥을 강물로 끓이는 것이었다. 카누에 실은 물은 그냥 마시는 물이고 요리는 나흘 내내 아마존 강물을 사용한단다. 굶을 수는 없고 나는 기름에 튀긴 달걀과 바나나만 먹었다. 나흘 동안 어떻게 견뎌낼 수 있겠지. 오후가 되니 모기에게 물린 곳에 부풀어오르기 시작하고 덥고 가렵고 난리다. 그리고 비가 오락가락 변덕이 죽 끓듯 한다. 

그런데 강에 웬 고래. 고래가 이곳저곳에서 잠깐잠깐 모습을 드러낸다. 신기하다. 그리고 꼭 영화에서 보았던 그런 아마존의 모습이다. 으스스하고 꼭 나무에서 뱀이 스르르 내 어깨로 내려올 것 같은 그런 분위기다. 

2007년 11월. 사진 / 김문숙 기자
Naupe라는 곳에서 숙소가 없어 마을 회관에서 캠핑할 때 마침 마을의 축제가 있어 초대를 받았다. 2007년 11월. 사진 / 김문숙 기자

6시가 되니 우리가 머물 곳이라고 카누를 세우는데, 맙소사, 아무것도 없다. 텐트에서 잔다고 해서 방갈로나 무슨 시설이 있을 줄 알았더니 그냥 강 옆의 밀림이다. 나는 완전히 겁에 질리고 얼굴은 죽상이 됐다. 가이드가 나무와 풀들을 자르고 땅을 고른다. 땅을 고르더니 커다란 나무를 세 군데에 잘라 텐트가 아니라 천막을 친다. 천막을 치고 땅에다가 플라스틱을 깔고 우리가 깔고 앉았던 얇은 침낭을 침대처럼 놓아준다. 그 위에다가 모기장을 해준다. 이것이 우리의 잠자리다. 눈물이 고인다. 그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데 울 수는 없고 참느라고 혼자 강을 보면서 “이 일을 어쩌면 좋지” 하는 말만 되풀이했다.

점심으로 먹은 달걀프라이가 잘못되었는지 배는 아프고 모기는 몰려들고 정말로 지옥이 따로 없다. 결국 난 밤새 내 한잠도 못 잤다. 
날이 밝자마자 나는 기어이 “난 오늘 돌아가야겠어. 당신 혼자 원시인이 되던지 말던지” 하고 선언을 해버렸다. 에릭이 나의 의견에 완강하게 반대할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그 역시 후텁지근한 날씨, 곤충과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단다. 그래서 결국 나흘간의 아마존 원시체험을 이틀 만에 그만두었지만 후회는 없다. 비록 평생 다시는 가보기 힘든 곳이지만 그리고 우리는 아마존을 끝으로 페루 여행에 종지부를 찍었다. 비록 험난한 마지막 관문을 거쳐야 했지만 티티카카, 마추픽추 ,나스카, 초케키라우 유적지, 좋은 음식, 음악의 추억이 있다. 많은 그리움이 남는다. 페루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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