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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작업중) [특집 八道 겨울별미여행] 김치 속에 버무려진 바다, 서산 겟국지 어머, 이런 맛도 다 있었네?
(작업중) [특집 八道 겨울별미여행] 김치 속에 버무려진 바다, 서산 겟국지 어머, 이런 맛도 다 있었네?
  • 서태경 기자
  • 승인 2007.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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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여행스케치=서산] 음식만큼 문화나 환경을 잘 보여주는 것이 없다지만 아무래도 이 음식은 좀 특별하지 싶다. 토박이가 아니라면 다시 한 번 귀를 의심하게 되는 이름 ‘겟국지’. 언뜻 들어서는 어떤 음식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지만 한번 그 맛을 보고 나면 웬일인지 자꾸만 생각이 난다. 서산 사람들만 알고 먹는다는 찌개용 김치, 겟국지. 그 특별한 맛을 찾아가봤다. 

“서산 사람들만 알고, 서산 사람들만 먹는 음식이 있다던데요?” 
“글씨유…, 우덜 먹는 게 뭐 별거 있간유? 그냥 바다 가까우니까 굴이나 거이(게)는 딴 데보다 흔하게 먹기는 하쥬. 사람 먹는 거 다 똑같지 뭐 여그 사람들만 먹는 음식이 뭐가 있을라나…, 참 나(허허).” 

분명 있다고 들었다. 타 지역 사람들은 듣도 보도 못한 음식이 서산에만 있다는 소리를. 그런데 물어보는 사람 모두 고개만 갸우뚱거릴 뿐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 너무 흔해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정말 없는 건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 검색창에 ‘서산 사람들만 먹는 음식’을 쳐보니 뭐가  뜨긴 뜬다. ‘태안, 서산 지방의 향토음식 겟국지. 태안반도에서 주로 담가 먹는 찌개용 김치. 이 지역은 농사도 짓고 갯벌에서 조개나 낙지, 꽃게 등 해산물도 동시에 얻을 수 있는데, 육지와 바다가 공존하는 지역적 특성이 겟국지와 같은 음식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인 듯하다’라는 글이 보인다.

어라? 겟국지라면 우리 집에서도 자주 해 먹는 음식인데…. 서산이 고향인 부모님께 여쭤봐도 도무지 답을 하지 못하던 게 그동안 먹었던 겟국지라는 얘긴가.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지 싶다. 나 역시 겟국지 담는 모습을 보고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새우젓이나 멸치젓 대신 게장을 함께 넣고 버무리는 어머니에게 자꾸만 질문을 했던 기억이 난다. 미리 담가놓았던 게장에서 게를 꺼내 절구에 대충 찧으면 노란 속살이 빠져나오는데 아마도 이게 맛을 좌우하는 모양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겟국지라는 음식을 아느냐 물어보니 다들 그게 뭐냐고 반문한다. 일단 이름부터가 웃기단다. 하긴 듣고 보니 그렇다. 게꾹지라고도 하고 깨꾹지, 겟국찌개라고도 하는데 그중 ‘겟국찌개’가 맞는 표현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그냥 부르기 좋게 게꾹지라고 부르곤 한다.

김장 때면 빼놓지 않고 담가
겟국지에 대해 생각해보니, 의외로 여러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하다. 밭에서 나는 채소와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과의 소박한 조화지만 지혜가 담겨 있는 음식이니 말이다. 같은 김치라도 각 지방마다 개성이 풍부한 것처럼 해안을 끼고 있는 서산에서는 그곳에서 많이 나는 것들을 활용한 것이다.

서해와 가까워 해산물, 그중에서도 꽃게나 능쟁이가 풍부했던 까닭에 이 지역에선 김치를 담글 때 젓갈 대신 ‘게와 겟국’을 넣는 일이 많았고 게를 비롯해 생새우나 조개 등을 함께 넣기도 했다. 다른 지방에서는 김장 때 배추김치나 총각김치, 파김치 등을 담가 먹지만 서산 일대에서는 꼭 겟국지를 함께 담그곤 한다. 

그 맛에 대해 말해보자면, 젓갈 반찬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이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은 이런 걸 왜 먹느냐는 질문을 하기 일쑤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냄새부터가 그리 맛있지 않다. 겟국을 넣고 발효를 시켰기 때문에 특유의 꼬릿한 냄새가 나, 처음부터 겟국지를 좋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재미있는 점은 한번 두 번 계속 먹다보면 그 감칠맛에 매료된다는 사실. 김치찌개도 아닌 게 칼칼하고, 된장찌개도 아닌 것이 구수해 겟국지 한 투가리 지지면 다른 반찬은 필요 없을 정도다. 서산 사람들에게는 겟국지가 밥도둑으로 통한다.

겟국지 백반 파는 유일한 곳
서산에 겟국지를 맛볼 수 있는 곳이 딱 한 군데 있다. 그렇게 유명하다는데 한 군데뿐이라는 게 이상도 하지만 원래 겟국지라는 음식이 집에서 해 먹는 음식이라 굳이 식당에서 사 먹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서산 시내에 있는 ‘진국집’ 역시 처음엔 칼국수식당으로 시작했다가 겟국지 백반으로 메뉴를 바꾼 경우다. “뭐 첨부터 했간디, 우리 먹을라고 끓여놓은 거 손님들 가끔 퍼주니깐 다들 맛있다고 칼국수는 안 찾고 겟국지만 찾잖아. 배추 시퍼런 걸로 버물버물했는데 잘 먹데.” 진국집 조이순(74세) 할머니의 설명이다.

할머니 역시 겟국지를 식구들 반찬으로 만들어 먹다 하나 둘 맛을 본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 겟국지를 팔게 된 거라고 한다. 메뉴는 겟국지 백반 한 가지인데 여느 밥집보다 인심이 좋다. 둥그런 쟁반에 겟국지를 비롯해 호박지, 된장찌개, 달걀찜 등 찌개 투가리만 4개이고 반찬은 10여 가지다. 이맘때 가면 어리굴젓까지 내줘 어느 때보다도 밥상이 푸짐하다.  

겟국지 담그는 법을 물어보자 대답이 별로 신통치 않다. 정말 별거 없단다. 그래도 설명을 해달라니 고춧가루보다는 생고추를 갈아서 넣는 게 더 맛있고, 게는 꽃게든 능쟁이든 가리지 않고 날것이나 게장으로 담근 놈 어느 것을 넣어도 된단다. 다만 민물새우나 보리새우를 함께 넣고 버무리면 더 맛있다고 한다.

오랫동안 발효시키지 않아도 나름의 맛이 있고, 또 푹 익혀도 그 나름의 맛이 있지만 겟국지는 겨울철에 먹어야 제 맛이다. 여기에 갓 구운 김이랑 어리굴젓 같은 제철 반찬 서너 가지만 얹으면 수라상이 부럽지 않다. 진국집은 겟국지도 유명하지만 백반과 함께 나오는 호박지도 빼놓을 수 없다. “진국집 와서 호박지 안 먹으면 서운하다”며 권하는 통에 몇 개 집어 먹기 시작했는데 그 독특한 맛에 뚝배기 하나를 거의 다 비우다시피 했다. 원래 호박지는 황해도 지방에서 많이 해 먹는 음식인데 그쪽과 환경이 비슷한 태안에서도 각종 해물을 넣고 호박으로 김치를 담가 먹곤 한다. 

겟국지는 보기에 먹음직스럽다거나 기가 막히게 맛있는 음식은 절대 아니다. 요리라고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분명 흥미로운 음식이다.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절, 그나마 쉽게 구할 수 있었던 해물을 이용해 서민들의 밥상을 풍요롭게 해주었던 겟국지. 세상이 살기 좋아지고 먹는 게 풍부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겟국지는 이 일대에서만큼은 빼놓을 수 없는 겨울철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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