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아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유명한 온천이라면 단연 온양온천이다. 이미 1300년 전부터 온천수가 용출하고 조선시대에는 온천 궁궐지로 사랑받았던 곳, 온양. 그렇다면 수십 개의 온천탕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곳은 어디일까? 바로 ‘1호 원탕’이라는 간판을 당당하게 내건 신정관이다. 지금도 매일 새벽 5시면 문을 열고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는 신정관을 찾아 그 옛날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가장 오래된, 그러나 가장 저렴한 목욕탕
가만 보면 목욕탕만큼 많이 변한 곳도 없는 것 같다. 냉탕과 온탕, 그리고 몇 명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꽉 차는 비좁은 사우나가 전부이던 시절이 그리 오래전도 아니건만 찜질방은 물론 노천탕과 마사지센터, 휴식공간까지 갖춘 종합위락시설로 변한 대중탕을 보면 소리 없이 사라진 동네 목욕탕이 가끔씩 그리워진다. 그런데 얼마 전 반가운 일이 있었다. 우연히 찾은 온양온천에서 80년 가까이 된 원탕(온천수가 나오는 자체 공을 소유하고 있는 탕)을 만난 것이다. 물 좋기로 소문난 온양온천,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문을 연 신정관이다.
온양관광호텔 담과 붙어 있다시피 한 ‘신정관’은 수십 년 전 시간 속에 멈춰 있는 듯 그대로다. 단층 건물에 카운터가 아예 밖에 있는, 지금으로서는 흔치 않은 구조라 한눈에 봐도 연륜을 짐작할 수 있다. 카운터를 중심으로 남탕과 여탕 입구가 갈리는데 막상 들어가면 다시 마루로 연결되는 독특한 형태다. 예전에 바꿔 달았다는 파란색 간판이 새것처럼 보일 정도로 여기서 10~20년은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어깨를 견주던 탕정관이 오래전 문을 닫고, 신천탕이 최근 신축을 하면서 옛 모습을 간직한 목욕탕은 신정관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목욕비는 놀랍게도 2600원이다. 온양온천은 물론 전국에서도 가장 싼 요금이다. 이마저도 얼마 전 200원 인상한 거란다. 지금의 주인은 20여 년 전 이곳을 인수한 문여근(73세) 사장 내외. 처음 취재를 하고 싶다고 전화를 하니 은근히 황당해하는 눈치다. “오래되고 후진 목욕탕 뭐 찍을 게 있어? 물 좋으니까 그냥 와서 목욕이나 하고 가.” 일단 알겠다고 한 뒤 약속한 날 찾아갔더니 보자마자 목욕부터 하란다.
목욕은 당연히 하는 거고 먼저 옛날 신정관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며 소매를 잡아끄니 못 이기는 척 얘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가 이곳을 인수하기 전 이야기는 알 수가 없고 다만 온양관광호텔의 이름이 신정관이었던 시절, 그곳 어디쯤에 속해 있던 공중탕이었다는 사실만 알고 있단다. 하도 오래전 일이라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을 찾는 것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 다행히 온양문화원의 박노을 전 원장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금 있는 온양관광호텔이 일제시대에는 (주)경남철도라는 곳의 소유였어요. 광복 후에는 모두 적산가옥이라고 해서 대한민국 정부로 소유주가 이관된 것이지요. 이후에 호텔 정문 주변 땅을 민간인들한테 불하하는 통에 관광호텔 부지가 엄청나게 줄어든 거요.”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1943년부터 1964년까지 온양관광호텔에서 근무했다는 최석진 할아버지(82세)와 어렵게 통화를 할 수 있었는데 “그땐 온양온천 하면 굉장했지. 벌써 고려 때부터 알려진 곳이니 일본 사람들이 가만둘 리가 없잖아. 객실 74개에 대중탕이랑 독탕, 야구장에 골프장, 식당까지 있었으니 정말 온양온천 하면 알아줬지.” 해방 후에도 계속 (주)경남철도라는 명칭을 쓰긴 했지만 이름은 온양온천철도호텔로 바뀌었다. 그러다 6·25 전쟁으로 건물에 화재가 나 주저앉게 된 점이 지금도 무척 안타깝다고 말한다.
“6·25 때 한번 절단나고 나중에 관광공사진흥법이다 뭐다 해서 민자 유치하면서 싹 변해버린 거지. 지금 신정관 목욕탕은 전쟁 끝나고 얼마 있다가 옮겨 지은 거야. 원래 탕은 그 안쪽에 가 있었지.” 최석진 할아버지의 기억을 더듬거리고 있자니 그 세월을 어찌 견뎠을까 하는 생각에 오래된 목욕탕이 대견스럽다. 주인 입장에서 뒤떨어진 시설에 미안해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손님 입장에서 지금까지 남아 있음에 고마워할 일 같다.
♨ 사람 사는 이야기꽃이 활짝
내부는 전형적인 동네 목욕탕이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표를 받는 카운터가 있고 ‘┌’자 형태로 사물함이 있다. 가운데에 놓인 연탄난로가 정겨운 분위기를 더해준다. 사물함이나 장판은 가끔씩 바꾸지만 탕 안은 손댄 것이 거의 없다는 게 이곳에서 근무하는 이성복 할머니의 설명이다.
그 흔한 샤워기 하나 제대로 달려 있지 않고 냉수와 온수 수도꼭지가 각각이라 성가실 법도 한데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 자리가 20개도 채 되지 않지만 다들 그러려니 하는 모습으로 아무 데나 앉아 때 빼고 광내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온탕 모양이 특이하다. 옛날에 지었다고 해서 네모반듯한 탕을 상상했는데 웬걸, 딱히 무슨 모양이라고 설명할 수 없는 기하학적인 곡선 모양이다. 턱이 높지 앉아 물을 퍼 쓰기도 좋고 탕에 걸터앉기도 편하다. 무엇보다도 물이 정말 부드럽다.
온양온천이라고 해도 다 같은 물이 아니라는 설명이 맞긴 맞나본데 뜨겁긴 또 얼마나 뜨거운지. 기겁을 하고 다시 나오니 할머니 한 분이 웃으시며 “기냥 들어가 앉았으면 괜찮아. 난 여(여기)가 개려웠는디 계속 하니깐 거진 다 나았잖여. 약이 징그럽게도 안 들었는디 이렇게 좋은 물이 어딨간디”라며 물 하나는 그만이란다. 근처에서 일부러 차를 타고 와도 목욕값이 저렴하니 다른 데 가는 거랑 맞먹는단다.
간혹 젊은 사람도 있지만 주 고객층은 할머니들이다. 한 할머니께 얼마나 오랫동안 단골이었는지 여쭈니, “고걸 워쩌케 센댜? 내가 인자 칠십이 넘었는디 시집 와서부터 댕기기 시작 했응께 아이고~, 세지지도 않네. 지끔 천안서 오는디 거기 물은 미지근해서 못 써. 여그서 해야 한 것 같지, 다른 데서는 영 개갈 안 나(개운하지 않다는 뜻)”라며 할머니 역시 신정관 물이 좋긴 좋단다. 보니까 20~30년 단골은 기본이다. 오가는 대화를 보면 모르는 사이가 분명한데 내용은 스스럼없다. 나이부터 자식은 몇이나 뒀는지 어디 사는지는 기본, 젊어 고생한 얘기까지 별별 말이 다 오간다.
실제 온양온천수는 57℃ 전후의 약알칼리수로 중탄산나트륨, 마그네슘 등이 함유되어 있어 아토피를 비롯한 피부병, 관절염 등에 특히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간이 없는 사람은 큰 통을 가져와 물을 담아 가기도 한다. 신정관이 다소 낙후된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해온 비결이 바로 그 ‘물’이다. 수질을단골들이 입증한 셈이다. 또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물도 생수가 아닌 온천수다. 미리 받아놓고 식혔다가 자유롭게 마시게 한다. 예전엔 온양에도 온천수를 식수로 서비스하는 데가 많았는데 지금은 귀찮다는 이유로 점점 사라지고 있다.
다른 목욕탕들이 하나둘 현대적인 시설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고 “신정관만큼은 옛날 생각나게 제발 고치지 말고 그냥 놔두라”고 주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문여근 사장은 자신이 이곳을 운영하는 한 탕 모습이나 시설에는 손을 댈 생각이 없단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열심히 하다 원하는 자식에게 물려주면 좋겠다는 바람뿐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