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포천] 옛날 옛적에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고 약초가 좋아 아픈 사람들이 치유된다는 곳이 있었다. 그래서 한번 이곳을 다녀간 사람은 언젠가 꼭 다시 오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도리돌마을’이다. 효능 좋은 약초와 즐거운 한방 체험, 그리고 최고의 한방음식이 있는 포천 도리돌한방마을을 찾았다.
도리돌한방마을로 가는 길은 너무나 한가롭다. 다니는 차가 거의 없다시피 한 도로와 주변의 나지막한 산들은 여유롭기 그지없다. 유독 눈에 많이 뜨이는 군인들로 인해 갈수록 북쪽과 더 가까워진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렇게 포천에서 철원으로 이어지는 47번 국도를 계속 달려 도착한 도리돌한방마을은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인 자등현 고개 바로 아래에 앉아 있다. 행정구역으로 따지자면 포천시 이동면 도평3리. 이동면은 이동갈비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동네이고, 도평3리는 약사골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계곡의 이름이 약사동 계곡이어서 그렇다.
그 옛날, 장준하 선생이 의문사한 장소로도 유명한 이 계곡은 사람들의 발길이 적은 덕분인지 여느 ‘방방 뛰는 시설’이 들어선 유원지 계곡과는 확연히 다르다. 2.5㎞가량 이어진 계곡은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진 수려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약사’라는 이름만 듣고는 언뜻 그 의미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때 문득 생각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약사여래’이다. ‘약사여래는 중생을 모든 병고에서 구해 깨달음으로 인도한다는 부처’를 의미하는데, 지금 찾아가는 도리돌마을도 한방마을이 아니던가. 분명 어떤 연관이 있을 거라 추측한다.
마을로 들어서자 마을회관이 눈에 들어오고 길은 앞으로 쭉 뻗어 있다. 마을 입구여서 그런지 농가는 볼 수 없다. 회관 바로 뒤에는 슬로푸드마을 체험관이 들어서 있다. 마침 이날은 한 단체에서 체험행사를 하는 날이었다.
체험관 앞에서는 짚신 만들기가 한창이다. 짚신은커녕, 지푸라기도 만져보기 어려운 요즘 아이들에게 짚신 만들기는 장난감보다 더 재미있는 놀이인가 보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소싯적에 새끼 꼬던 솜씨 운운하며 짚신을 만들어본다. 하지만 그 실력은 애나 어른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농촌 사람들에게는 노동인 저 일이 도시 사람들에게는 즐거운 체험이다. 체험객들을 바라보던 김기선 이장이 한마디 한다.
“한때는 포천에서도 가장 외지고 못사는 동네였지요. 그런데 슬로푸드마을로 지정되고 많은 것이 바뀌었어요. 마을에 활기가 넘치고 협동심도 많이 좋아졌지요. 앞으로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야지요.” 이 말을 듣자 문득 아까의 의문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 마을이 약사골로 불리는 이유가 뭔가요?” “지금은 흔적만 있지만 고려시대 이전부터 약사여래를 모신 절이 있었지요. 또 옛날부터 이곳 약수와 약초가 유명했다고 해요. 저 길 따라서 가면 약수터가 있으니 한번 다녀오세요. ”
몸에 좋은 거라니 지체할 이유가 없다. 금방 다녀오겠노라며 길을 나선다. 약사계곡의 경치는 가히 절경이다.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아서인지 나무들이 빽빽하다. 그 밑을 유유히 흐르는 계곡물은 유리처럼 맑아 속이 훤히 비친다. 혹시 이 물 그대로가 약수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다만 계곡의 길 치고는 아스팔트 도로가 너무 잘 깔려 있어-그것도 계곡을 반으로 쫙 나눠서-뭔가 모를 어색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근처에 군부대가 있어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해도 조금은 아쉽다.
한 5분쯤 들어가니 ‘약사골 약수터’라는 팻말이 길가에 서 있다. ‘약수’란 말만 들어도 괜히 몸에 힘이 들어가는데, ‘약사골’이라는 말까지 붙어 있으니 괜히 무슨 만병통치약을 발견한 것처럼 나도 모르게 불끈불끈 힘이 솟는다.
약수터는 바위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다. 천연 동굴이라는데 좁은 입구를 지나니 거짓말처럼 2평 남짓한 공간이 나오고 그곳에 맑은 석간수가 흐르고 있다. 전설에는 사냥꾼에 쫓기던 꿩이 상처를 입고 이곳에 날아들어 이 물에 상처를 씻어 나았다는 것도 있고, 벙어리가 이 물을 마시고 말을 하게 되었다는 것도 있으나 그런 것은 중요치 않고(하도 이런 전설은 많기에)…. 피부병과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는 것은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흙에 녹아 있는 약초의 성분이 이 물에도 자연히 녹아 있을 것이니 말이다. 물을 떠 마시니 이가 시릴 정도로 차다. 바깥 공기도 차지만 동굴 안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냉기가 돈다.
“마을 주변이 전부 다 산이에요. 각흘산, 광덕산, 명성산 등 다 1000m가 넘는 산들이니 약초가 많기도 할 뿐더러 종류가 다양하지요. 햇볕이 쬐는 시간이 적고 일교차가 커 약초가 자라기에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이 없어요. 시중에서 파는 약초들보다 향과 약효가 월등히 좋다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캐서 일주일을 두어도 상품이 영 나빠지질 않아요. 그만큼 이곳 약초들이 신선하고 좋다는 거 아니겠어요?”
도리돌한방마을에서 자랑하는 것이 또 있다. 바로 김치다. 하지만 고랭지 김치, 엄마손 김치 뭐 이런 게 아니다. 한방마을답게 약초를 넣은 ‘한방’김치다. 한방김치는 겨울 체험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보기도 하고 매년 겨울 자그마하게 한방김치축제를 열기도 한다. 대체로 이런 건 며느리한테도 안 가르쳐준다는데 어떨까나 하면서 슬쩍 김치에 들어가는 재료를 물어본다.
“어디 보자…, 가시오가피, 상황버섯, 당귀, 엄나무, 화살나무…. 뭐 이거 말고도 여러 가지가 들어가지요. 저런 한방재료는 인근에 있는 광덕산하고 각흘산에서 캐오는 것들이고 나머지 재료들도 좋은 것만 쓰지요. 한 스무 가지 재료가 들어간다고 보면 돼요.”
물론 처음엔 시행착오도 있었다. 처음 한방김치를 개발했을 때는 약초 냄새가 심해 거부감이 많았단다.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그리고 발견한 해법은 약초 진액을 넣는 것. 당귀, 오가피, 삼지구엽초를 달여 그 농축액을 뽑아낸 뒤 김치를 버무릴 때 섞는 것이다. 이렇게 하자 약초 특유의 냄새는 줄어들고 김치의 매콤함은 그대로 살아났다. 한방을 이용한 음식은 김치뿐만이 아니다. 약사골 약수에 12가지의 한약재를 넣고 우려낸 물에 인근 야산에서 야생으로 키운 토종닭을 넣어 푹 끓은 한방백숙은 맛도 맛이지만 그 자체가 약이다.
“인공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아 더 깔끔하지요. 거기에 우리가 직접 재배하거나 캔 약초와 산나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믿고 드셔도 됩니다. 웰빙이 따로 있습니까? 우리 마을에 와서 체험하고 먹고 숨 쉬는 자체가 웰빙이지요.”
체험장에서는 한방대나무통밥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대나무에 찹쌀과 밤, 대추, 은행 등을 넣고 상황버섯 우린 물을 붓는다. 그리고 그 위를 덮을 한지에 각자의 이름을 적는다. 이제 가마솥에 대나무 통을 넣고 쪄내기만 하면 끝! 곧 있으면 자기가 만든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에 사람들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여름에 낚싯대 들고 한번 오세요. 계곡도 시원하지만 송어하고 산메기가 천지거든요. 밤에 손전등 하나 들고 산메기 잡으러 가면 정말 재미있어요.”
깨끗한 자연이 있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 여기에 몸에 좋은 약초와 산나물까지 가득하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