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전설따라 삼천리] 하늘아래 첫 동네 지리산 심원마을 사라지다 아니, 돌아가다
[전설따라 삼천리] 하늘아래 첫 동네 지리산 심원마을 사라지다 아니, 돌아가다
  • 전설 기자
  • 승인 2014.11.2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4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2014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여행스케치=구례] 심산유곡에 시름을 씻던 지리산의 낙원이 사라진다. 아니, 돌아간다고 해야 맞겠지. 집 짓는다, 길 넓힌다, 수만 가지 이유로 빼앗았던 땅을 반달곰, 담비, 수달에게 돌려주어야 할 때. 섭섭하다 탓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어찌한단 말이냐.

정오가 다 돼서야 전남 구례군 심원마을에 도착했다. 시골의 밥때가 원래 한가롭긴 하지만, 초입을 지나도록 인기척 하나 없는 것이 이상하리만치 고요하다. 동네에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심원첫집’은 굳게 닫혀 있고 토종닭 백숙으로 소문난 ‘청기와집’의 불도 꺼져 있다. 고즈넉한 산촌 풍경에서 사람만을 지우개로 쓱 쓱 지워놓은 것 같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윤상현 계장이 텅 빈 마을을 가로지른다. 그 뒤를 좇으며 두리번두리번 사람 그림자를 찾는다.

2014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2014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빈집이 많죠. 마을의 20가구 중 절반은 이미 이사를 갔으니까요. 마을에 남아 있는 분들도  이주에 필요한 보상금과 산정을 위한 감정평가가 마무리 되는대로 마을을 떠날 예정입니다. 아마 내후년 즈음엔 본격적인 복원공사가 시작될 테고 사람의 접근도 전면 통제되겠지요.”


지리산의 반야봉, 만복대, 노고단 사이에 자리 잡은 심원마을 일대를 핵심 생태계 보호지역으로 만들기 위한 <심원마을 이주사업 및 생태복원 사업>이 첫 삽을 뜬지도 어언 8년. ‘하늘아래 첫 동네’에는 이미 사람 냄새나는 살림집 보다 빈집이 더 많다.

2014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1987년 지리산 관광도로가 뚫리고 관광객 홍수가 나기 전, 옛 심원마을 풍경. 2014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지리산 반찬삼아 끝없는 ‘밥상 협상’
“조상님들 모신 선산이며 집, 밭, 땅이 여기 있는데, 다 두고 떠나라고 하면 누군들 좋다고 하겠습니다. 여기서만 5대째 살았다, 나갈래야 갈 곳도 없다, 반대도 거셌죠. 지금도 이주를 반대하는 4가구가 마을에 남아있습니다. 그분들 한 분 한 분 만나 뵙고 화난 속 풀어 드리고 천천히 설득하는 게 제 일이예요. 사실 제가 담당자가 된 것도 맷집이 좋아서거든요”

마을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는데, 그 곳에 살고 있던 주민들과 그런 주민들을 이주시켜야 하는 담당자 간에 진통이 어찌 없었겠는가. 담담하게 상황을 설명하던 윤 계장이 언덕바지에 자리 잡은 ‘구초가집’으로 향하며 “사실 지금 가는 집도 강경 반대파예요”하고 귀띔한다. 이거 얘기도 들어보기 전에 물벼락부터 맞는 건 아닌지.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식당 앞을 서성거리는데, 볕 좋은 평상에 널어놓은 능이버섯 한줌이 눈에 보인다. 욕심껏 따 온 것이라기엔 양이 적다. 아마 산길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을 먹을 만치 뜯어왔으리라. 식당 안쪽에서 풍기는 고소한 냄새에 홀려 안으로 들어서니 빨감 젠피 열매가 한 바구니, 봄 한철 뜯어다 말린 묵나물이 한 보따리다. 물벼락이고 뭐고. 아따 이 집 밥맛 한번 끝내주겠구나.

2014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구초가집'의 백효준 사장은 지금까지도 찾아오는 손님을 위해 밥을 짓는다. 2014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2014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2014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이거 내가 밭에서 키운 삼채로 부친 건데 한번 맛 보셔요. 양념장 고로쇠로 담근 장하고 배추 효소로 만들었어요. 밥은 산에서 능이버섯을 좀 캐서 같이 지었는데 향이 아주 좋아요. 나물은 다 지리산 만복대, 노고단에서 캐다가 무치고 장아찌 담그고 한 거예요.”

땅두릅, 선비나물, 신선초, 먹우대, 자리곰, 어린 젠피 잎…. 나물반찬만 스무 가지가 넘는데 그것도 구경하기 어려운 귀한 것들뿐이다. 나물에 능이밥에 곤드레국에 정신팔려 있는 사이, 밥상을 사이에 두고 반가운 듯 반갑지 않은 듯 안부 인사가 오고 간다.

“난 오늘 계장님 전화 받고 나 쫒아낼라고 오나 싶어서 가슴이 막 뛰었어. 나는 우리 아들한티도 엄마 죽으면 노고단 반야봉에 뿌려라 하는 사람인데 가긴 어딜 간대요. 여기 호롱불 키고 살던 시절에 시집와 이때까지 지리산에서 나물 뜯어다 밥하면서 평생을 살았는데.”

백효준 씨의 읍소에 윤 계장은 “알죠, 사장님 같은 지리산 박사가 또 어디 있겠어요. 제가 오만데를 다 다녔지만 여기만큼 밥맛 좋은 데를 못 봤다니까요” 동문서답을 한다. 양측 모두 끝나지 않는 밥상 협상에 익숙해진 모습이다. 아마도 이렇게 밥 한술 뜨며, 서로의 속엣 얘기 풀어내며 한발씩 물러섰으리라. 차마 이젠 시간이 얼마 없다고, 재촉하지 못하는 윤 계장을 향해 백 씨는 “나물 많으니까 천천히 많이 잡숫고 가요. 나는요 만약에라도 마을을 떠나는 날이 온다면, 이 집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이렇게 찾아온 분들한테 맛있는 밥하고 마음으로 보시하고 싶어. 그게 마지막 바람이라면 바람이지” 속마음을 전한다.

2014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눈물짓는 '오대산장' 이송자 할머니 앞에서는 맷집 좋은 박선홍 계장도 한없이 약한 남자. 2014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사람이 떠난 자리에 꽃이 피었습니다
앞서가던 윤 계장이 아이고, 앓는 소리를 낸다. 슬쩍 넘겨봤더니 작은 뱀이 도로 한 구석에 죽어있다. 로드킬이다. “누룩뱀이네요. 이 정도면 꽤 큰 건데….” 볕이 좋아 몸 말리러 나왔다가 길을 잃은 것일까. 여태 이 근방이 다 흙과 풀로 덮인 숲인 줄 알고 있었던 걸까.

본디 심원마을은 해발 750m 고지대에 형성된 마을이다. 약초와 토종꿀을 따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산이 내어주는 것을 먹고 살던 산촌마을은 1987년 지리산 관광도로가 뚫린 이후 서서히 옛 얼굴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밖에서 찾아 드는 외지인이 돈이 된다는 것을 깨친 주민들은 너도 나도 새집을 지어 올렸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심원계곡 상류에 송어 양식장이 생기면서 계곡물도 빠르게 탁해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뭣 모르던 시절에 벌어진 일.

“지도를 봅시다. 심원마을은 지리산의 생태계 핵심 보존지구와 반달곰 출몰지역 사이 끼어 있어요. 반달곰이며 담비며 멸종위기종 야생동물들이 오가는 첩첩산중에 음식점과 민박집이 있으니 자연은 자연대로 망가지고, 사람은 사람대로 다치는 일이 계속 반복돼 온 겁니다. 그런 이유로 2006년 첫 이주 간담회를 열고 수년간 마을 이주에 대한 논의를 이어왔죠. 주민분들의 생업이 걸려 있으니 급하지 않게 천천히 진행해야 했습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의 김병채 과장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다. 터 잡고 살던 마을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애써 만든 건물을 헐어야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사람이 멋대로 부린 자연을 갈 곳 없는 동물들에게 돌려주기 위해서였구나. 고로쇠 수액을 받기 위해 곳곳에 쳐놓은 검은 호스도 물을 대기위해 계곡에 시멘트를 부어 만든 보(洑)도 야생동물에게는 올가미이며 덫이었을 게다. 이제는 흔적만 남은 송어장과 폐건물을 거두어 간 집터를 본다. 그새 청도라지 꽃이 한 무더기 피었다. 사람이 난 자리에 자연의 것이 들기 시작한다.

2014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내년까지 주민들이 모두 떠나면 내후년부터 폐건물을 걷어내는 복원 사업이 시작된다. 2014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내년이면 사라질 마을의 모습을 가슴에 담고 마을을 나서려는데, ‘오대산장’의 이송자 할머니가 윤 계장을 알아보고는 버선발로 나오신다. “안 그래도 고것 좀 물어볼라 했는디. 여그 선산에 할아버지 할머니 모셨는디 만약에 거시기 하면 못 거시기 한가?” 알쏭달쏭한 물음에도 윤 계장은 “마을 없어져도 성묘 오시면 들어올 수 있어요. 인사드리러 오셔도 돼요” 답을 한다. 그제야 한시름을 덜었는지 이 할머니의 얼굴에 그늘이 걷힌다.

“시집온 지 한 50년 됐나. 우리 아저씨가 젊었을 때 약초를 키웠는데 ‘새마을 운동’ 책에서 보니까 약초가 아주 좋은 사업이라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시집 왔는데, 와서 보니 이건 끝도 없이 첩첩산중이라. 뭐 탈것도 없어서 어깨에 한 짐 지고 보따리 들고 걷고 또 걸었지. 그때는 여기 군인들이 많이 살았는데 지나가면서 우리 아저씨한테 한다는 말이 그래요. 색시 참 잘 얻었다고. 그 놀림도 받으면서 마을로 난 오솔길을 걸어왔던 기억이 선해.”

이송자 할머니의 눈에서 끝내 툭, 눈물이 터진다. 아는 이 하나 없는 심원마을로 시집오던 날 걸었던 오솔길을 되짚어 다시 낯선 타지로 나가야 할 때. 두고 가는 온갖 것이 눈에 밟힌다. 그 헛헛함을 달래드릴 길 없어 멀리 산 너머만 바라본다.

INFO. 심원마을
주소 전남 구례군 산동면 좌사리

Tip. 심원마을 여행
이송자 할머니의 눈에서 끝내 툭, 눈물이 터진다. 아는 이 하나 없는 심원마을로 시집오던 날 걸었던 오솔길을 되짚어 다시 낯선 타지로 나가야 할 때. 두고 가는 온갖 것이 눈에 밟힌다. 그 헛헛함을 달래드릴 길 없어 멀리 산 너머만 바라본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