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영양] 안동에서도 자동차로 1시간 남짓. 그것도 구불구불한 2차선을 따라가는 만만치 않은 길이지만 최근 참살이여행지로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는 곳이 바로 영양이다. 또 두메산골이라는 이름 너머 당대 문학가들을 속속 배출한 문화의 기운이 어린 곳이기도 하다. 잠시 머물다보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는, 산 좋고 물 좋은 영양에서의 1박 2일 여정.
봉화와 함께 경북을 대표하는 오지로 알려진 영양. 영양이라는 곳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있는데다 영양 주민들도 인정하니 진짜 오지는 오지인가 보다. 서안동IC에서도 긴가민가한 길을 1시간 넘게 달리자니 정말 여기가 맞나 싶다. 같은 길도 초행자들에게는 더욱 멀게 느껴지는 법이니 이래가지고 사람들이 찾아올까 싶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점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은근한 매력이 되는 것 같다. ‘무늬만 농촌체험’에 식상한 여행객들에게 영양은 진짜 산골체험을 가능케 해주는 곳이라는 얘기. 접근성이 떨어져 개발은 늦어졌지만 결과적으론 자연을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된 셈이다.
여기에 시대를 대표하는 걸출한 문학가와 학자들을 배출한 곳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조지훈과 오일도, 이문열 등이 영양 출신이고, 이들이 나고 자란 마을은 영양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안동에 국한되어 있던,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영남 유교문화의 또 다른 모습을 영양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때문에 이번 1박 2일 여행은 영양을 대표하는 마을과 옛 정원 그리고 청정자연이 오롯이 보존된 생태특구를 찾는 것으로 동선을 짜보았다.
1st day 영남 유교문화의 또 다른 얼굴, 두들마을
영양읍 반대 방향인 석보면에 있는 전통마을이다. 이문열 작가의 고향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마을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들어보면 그 오래되고도 독특한 이력이 인상적이다. 우선 한글로 된 최초의 조리서인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이 탄생된 곳이고 항일시인이었던 이병각과 이병철 그리고 문화재로 지정된 석천서당과 석계고택 등이 남아 있는 전통 있는 마을이다.
또 얼마 전에는 한옥체험관과 정부인 장씨 예절관 등이 문을 열면서 지자체 차원에서 활발한 연구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안동의 하회마을이야 워낙 유명하지만 영양에도 이에 버금가는 유서 깊은 마을이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사람들이 많지만 교통만 다소 불편할 뿐 문화나 전통 면에서는 오히려 앞선 점도 많다고 전한다. 입향선조인 석계 이시명 선생 이후로 현재까지 재령 이씨 집성촌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마을 이름인 두들은 ‘언덕’이라는 뜻으로 실제 마을 내 집들은 이 언덕 저 언덕 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어 보기에도 재미있고 어디에서나 마을 앞 들판이 훤히 보여 한눈에도 마을의 입지가 꽤나 좋다. 마을 내에 해설사가 상주하지는 않지만 입향선조 12대손인 이병태 어르신이 간단한 안내를 해주고 있어 마을 유래나 디미방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가 살고 있는 집을 비롯해 여러 집들이 전형적인 영남의 반가 형태인 ㅁ자형 뜰집으로 지어진 것이 특징. 수백 년 된 집들이 보수를 거쳐 지금도 거뜬하게 서 있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자손들이 외지에 생활하며 불천위와 같은 큰 제사 때에만 모인다고.
어르신을 따라 정부인 장씨 예절관을 가보았다. 때마침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음식디미방 보존회 모임이 있는 날이라 유물전시관 관람과 함께 흥미로운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보존회는 영양군민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연구단체로 *<음식디미방>에 소개된 음식을 시현하는 일을 하고 있다.
두들마을을 문향마을 반열에 올려놓은 인물로 이문열을 들 수 있다. 그는 <그해 겨울>,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등의 소설 속에 그의 고향을 등장시켜 두들마을을 유명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이문열이 태어난 곳은 서울이지만 어릴 적부터 살던 곳이라 두들마을이 사실상의 고향인 셈. 마을 내에 현대문학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와 문학 관련 행사를 여는 광산문학연구소가 있다.
영양읍 쪽으로 가다보면 서석지에 이르게 되는데 서석지는 영양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곳이다. 이름에서 연못이라는 사실은 알 수 있지만 민가 연못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보길도 부용정, 담양 소쇄원과 함께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3대 민간 정원으로 아담하지만 단아한 정취가 그만이다. 광해군 때 낙향한 정영방 선생이 조성한 곳으로 연못을 만들 때도 원래 있던 잡석을 그대로 이용했다고 한다. 연못 안에는 색깔이 허연 크고 작은 바위가 약 60여 개 있는데 수위에 따라 모습이 드러났다 사라지는 등 자연과의 조화를 따른 점이 돋보인다.
한편 영양군에서 계획적으로 조성하고 있는 선바위관광단지에는 고추홍보전시관을 비롯해 분재수석전시관, 민물고기전시관 등이 들어서 있는데 현재 40%의 완성률로 아직은 미흡한 점이 많다. 그래도 놓칠 수 없는 곳이 바로 산촌생활박물관. 영양의 생활환경을 잘 보여주는 곳이라 들러볼 만하다. 농촌이나 어촌과는 또 다른 생활방식을 지닌 산촌의 살림살이를 엿볼 수 있는 곳으로 전시물 대부분이 실제로 집안에서 사용되던 것들이다. 산업화로 인해 더 이상은 볼 수 없어 더욱 소중하다. 현재는 상설전시관만 운영 중이고 오는 12월 야외전시장을 개장할 예정이다.
숙박은 수비면에 있는 반딧불이생태체험마을로 정하기로 했다. 영양읍에도 여관이 몇 군데 있지만 천문대 관람과 이튿날 생태학교 등을 둘러보려면 이곳에 여장을 푸는 것이 좋다. 이 일대는 자연생태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어 숙박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다만 찾아가는 길이 초행자에겐 어려울 수 있으므로 어두워지기 전에 출발하는 것이 좋다.
2nd day 별과 자연, 예술과 함께
이튿날은 반딧불이생태체험마을의 전시관과 산책로 등을 둘러보기로 했다. 한여름에 반딧불이가 자연 서식할 정도로 청정한 지역이므로 조금 일찍 일어나 산책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영양에도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시설이 잘 되어 있는 편으로 학교나 회사 단체 행사를 하기에도 적합하다.
또 바로 앞에 수하계곡이 흐르고 있어 여름에는 일찌감치 숙소예약이 마감될 정도다. 낮에 둘러볼 수 있는 곳은 반딧불이생태학교와 생태공원 그리고 천문대이다. 이중 생태공원은 겨울을 제외한 모든 계절에 운영된다. 늦반딧불이, 애반딧불이, 운문산반딧불이 등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반딧불이를 비롯해 국내에 처음 보고되는 영양사슴하늘소와 같은 희귀종도 볼 수 있다.
반딧불이와 함께 생태체험마을을 대표하는 곳이 천문대다. 갑자기 웬 천문대인가 싶겠지만 청정지역이다보니 어떤 지역보다도 하늘이 맑아 다양한 천체 관측이 가능한 곳이 바로 일월산 일대다. 매일 밤 10시까지 운영되므로 낮에는 물론 밤에도 관측이 가능하다.
천문대는 연중 수시로, 그중에서도 겨울철에 맑은 날이 가장 많아 별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이 생태공원 최지현 씨의 설명이다.
한편 생태체험마을에서 읍쪽으로 되돌아오면 시인 조지훈의 흔적이 있는 주실마을에 다다르는데 지훈문학관을 비롯해 시공원 등이 조성되어 있고 마을 내에도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 쉬엄쉬엄 걸어서 둘러볼 수 있다. 설명이 필요할 경우 문화관광해설을 맡고 있는 조석걸(호은 조전의 12대손)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조지훈이라는 시인으로 마을이 유명해지기 이전부터 주실마을은 갖가지 화제를 뿌렸던 곳이라고 한다. 1928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양력설을 쇠는 곳이자 가정의례준칙의 기본이 된 향약을 만드는 등 시대를 앞섰던 동시에 조지훈이 몸소 보여줬던 ‘지조론’이 깊숙이 배어 있었다 한다.
“사람들은 양력설을 쇠기 시작했다고 뭐라고들 하지만 그게 아니에요. 다른 곳보다 신문학을 빨리 받아들여 자식들을 일본에 유학 보낸 집들이 많았어요. 그러니 아이들이 방학을 맞아 집에 와 있을 때 명절을 보내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양력설을 쇠게 된 것이지요.” 조석걸 씨의 설명이다. 그 어떤 지역보다 보수적이었던 영남지방에서 빨리 개화를 해 말들이 많았지만 얘기를 듣고 보니 이해가 간다.
그와 함께 주실마을을 둘러보았다. 현재 호은종택과 옥천종택, 만곡정사 그리고 월록서당이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월록서당이 갖는 의미가 각별하다. “주실의 모든 문화는 월록서당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정도로 그곳에서 공부는 물론 갖가지 일들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시인이 태어났다는 호은종택은 현재 종손이 외지에 살며 간간이 들러 관리만 하고 있는 상태라 내부까지 볼 수는 없다. 6·25전쟁 때 정부요직을 두루 한 집안이라는 이유로 공비들의 집중 공격을 받아 일부 소실되었던 것을 1963년에 보수한 것이다. 사랑채에 유리창이 끼워지는 등 모습이 변한 것도 그 이후다. 그런데 호은종택이 조지훈의 생가가 된 이야기가 재미있다. 사실 그의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라 살림을 다른 곳으로 난 상태였지만 호은종택의 정기를 받으라는 뜻에서 며느리를 불러들여 이곳에서 해산을 하게 한 것. 그래서 이곳이 그의 생가가 된 것이다.
지난해 5월 개관한 지훈문학관에도 잠시 들러봤다. 이곳 역시 뜰집 형태로 소년 시절부터 가족, 활동기에 이르는 이야기와 그의 육성으로 들어보는 시, 생전에 사용하던 유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또 문학관과 함께 뒤편으로 조성되어 있는 시공원은 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놓치지 말아야 할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