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고성]동해안 7번 국도의 중심에 있는 고성을 바다 하나로만 기억하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7번 국도변이 아름다운 거야 진작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한 번에 둘러보기보다는 야금야금 아껴가며 보고 싶은, 그런 곳이다. 청정 바다와 산, 호수가 어우러진 고성에서 일찌감치 여름휴가 워밍업을 했다.
자연 그대로의 콘텐츠가 가득
역시 서해보다는 동해가 좋다는 말에 은근히 편을 드는 이가 많다. 물론 여름에 한해서 하는 말이다. 갯벌이 없다는 사실이 조금 아쉽지만 시원한 파도와 고운 모래밭이 있으니 바캉스족들에게는 이보다 더한 보물이 없다.
고성을 한 번이라도 찾은 사람이라면 고성 땅이 참으로 축복 받은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천혜의 풍광을 있는 듯 없는 듯 무덤덤하게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다른 지자체가 앞 다투어 관광명소를 만드는 데 비해 고성엔 자연 관광 콘텐츠가 수두룩하다. 고속국도는 아니지만 고성군을 에워싼 46번과 255번 국도 덕에 접근성도 좋은 편이어서 알차게 1박 2일 일정을 꾸릴 수 있다.
첫날은 수바위로 유명한 천년고찰 화암사를 시작으로 천학정과 청간정 그리고 송지호와 근방의 왕곡마을을 둘러보는 일정인데, 이렇게 되면 고성을 통과하는 7번 국도의 절반을 둘러보는 셈이다. 특히 고즈넉한 숲길이 일품인 화암사와, 고성팔경을 정할 당시 주민들로부터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는 천학정은 놓치면 아쉬운 포인트다.
대부분이 청간정만 들르고 천학정은 지나치지만 두 곳이 차로 5분 거리도 되지 않으므로 함께 둘러보며 비교를 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고성에 있는 유일한 전통마을을 빼놓을 수 없다. 강릉 함씨와 최씨 집성촌인 왕곡마을로 50~180년 된 가옥들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실제 거주하는 집들이 대부분이고 30가구 중 10가구는 군청에서 사들여 관람, 민박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이튿날은 화진포 주변의 화진포의 성, 이기붕 별장, 이승만 별장 등을 둘러보고 해안도로를 따라 거진항 진부령미술관을 지나 46번 국도로 다시 돌아 나오는 동선이다.
왕곡마을에서 7번 국도를 따라 계속 올라가면 어느 순간 갈대에 둘러싸인 넓은 호수와 만나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많은 이들이 욕심을 냈던 휴양지, 화진포다. 이름은 역사안보전시관이지만 생각과는 달리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돌아볼 수 있다. 별장을 중심으로 돌아보면 화진포호수는 물론 화진포해수욕장까지 파노라마로 관람이 가능하다.
화진포에서 거진항까지는 바다와 함께 달리는 기분이 그만이다. 도로 끝에 자리한 거진항은 동해에서도 손꼽히는 큰 규모의 항으로, 항구 전체를 제대로 보려면 맞은편 거진등대체육공원으로 올라가면 된다. 바닷가가 아닌 산 정상에 등대가 자리한 것도 특이한데 옛 등대는 너무 낡아 얼마 전에 철거되었고 현재 새로운 등대가 건설 중이다. 등대가 없어진 점이 아쉽지만 운동시설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으므로 삼림욕을 겸해 찾아도 좋겠다.
고성 여행은 7번 국도를 따라 달리는 여정이지만 단순한 해안 드라이브가 아니다. 지루할 틈 없이 나타나는 명소와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풍광까지, 동해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나니 올여름 진짜 휴가는 왠지 고성으로 다시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1st day 숲과 바다와 호수를 품은 넉넉한 땅
화암사
신라 후기(769년) 진표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고찰이다. 원래는 화엄사라고 불렸는데 1912년부터 화암사로 고쳐 부르기 시작했다. 설악한화콘도에서 화암사 표지를 따라가다보면 왼편으로 예사롭지 않은 모양의 바위가 보이는데 바로 수(秀)바위다. 여러 스님들이 수바위에서 좌선수도를 하기도 했으며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설악한화콘도, 세계잼버리대회장과 가깝다. 수바위를 바라보며 차를 마실 수 있는 전통찻집 란야원을 운영하고 있다. 일주문에서부터 경내에 이르는 숲길이 일품이다.
천학정 vs 청간정
고성팔경 중 2경은 천학정이고 4경은 청간정인데 둘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 함께 둘러보기 좋다. 두 정자에서 보는 동해의 풍광이 그만인데 청간정이 관광객들에게 유명하다면 천학정은 고성 사람들의 쉼터 같은 곳이다. 천학정 뒤로는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고 바로 앞으로 작고 한적한 교암리해수욕장이 있다.
송림에 둘러싸인 청간정이 여성미를 풍긴다면 기암괴석 위에 자리한 천학정은 남성미가 느껴진다. 청간정에 있는 현판은 최규하 전 대통령이 쓴 친필 휘호다.
송지호
욕심 많은 시아버지와 착한 며느리의 전설이 서린 곳으로 둘레 6.5km의 자연호수다. 겨울철에는 기러기와 고니가 많이 찾아들어 볼거리가 많지만 여름엔 주변 산책을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철새관망타워에 올라가면 송지호 전체 풍광을 볼 수 있다.
왕곡마을
죽왕면 오봉1리의 옛 명칭으로 지금도 왕곡마을로 통하고 있다. 14세기경 강릉 함씨와 강릉 최씨 등이 함께 들어와 집성촌을 이루었으며 북방식 ㄱ자형 전통가옥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마을이다. 한국전쟁 당시 신기하게도 한 번도 폭격을 당하지 않아 지금까지 마을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마을 주민 중 한 명이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으므로 원할 경우 사전에 신청하면 된다.
2nd day 누구나 탐낼 만한 비경이 곳곳에
화진포 호수
주변 경관이 뛰어나 드라이브나 산책로로 유명하다. 이런 점이 일찌감치 외국인 선교사나 유명 인사들의 눈에 띄어 휴양지로 각광을 받았다. 이승만 대통령 별장 앞쪽으로는 당시 이 대통령이 낚시를 즐기던 자리가 복원되어 있다. 호수를 따라 오른쪽 화진포 콘도 쪽으로 가면 화진포해수욕장과 해양박물관이 자리한다.
화진포역사안보전시관
김일성 일가가 한때 머문 적이 있어 김일성 별장으로 불리는 화진포 성과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가 머물렀던 별장, 선교사에 이어 이기붕의 처가 개인 별장으로 사용했다는 이기붕 별장이 자리한다. 입장권을 구입하면 세 군데 모두 관람할 수 있다. 주차장 내에 관광안내소가 있으므로 해설을 원할 경우 사전에 연락하면 된다(이승만 대통령 별장에만 안내원이 따로 상주).
이승만 대통령 별장 뒤편에 화진포기념관이 새롭게 문을 열어 독립운동가로서의 이승만의 발자취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거진항 &거진등대체육공원
화진포에서 거진해안관광순환도로를 이용하면 거진항에 이를 수 있다. 거진항은 최북단에 있는 항 중에서 가장 큰 만큼 수협공판장과 건어물 판매상, 식당 등이 많이 자리하고 있으므로 이 근방에서 식사를 해결하면 된다. 한편 체육공원까지는 마을을 통과해 가는 것이 좋다. 알록달록한 집들 사이로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길을 걷다보면 바닷가 마을 특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진부령미술관
진부령 고개 정상에 자리한 미술관으로 <돌아오지 않는 해병>, <꼬마신랑> 등을 제작했던 전석진 씨가 설립한 곳이다. 개인미술관이지만 연중 비중 있는 작가들의 전시회가 꾸준히 열리고 있다. 10년 전 개관 때부터 지금까지 <이중섭 상설전>을 열고 있으며 오는 7월 3일부터는 이규화 화백의 <목련전>이 계획되어 있다. 또한 수십 년 동안 고려불화 재현에 힘을 쏟은 강록사 화백의 전시회도 진행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