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특집 한옥여행] 전통문화 공간 가평 취옹예술관 푸근한 한옥과 전통문화예술의 혼이 있는 곳
[특집 한옥여행] 전통문화 공간 가평 취옹예술관 푸근한 한옥과 전통문화예술의 혼이 있는 곳
  • 손수원 기자
  • 승인 2008.06.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8년 6월. 사진 / 손수원 기자
가평 취옹예술관 모습. 2008년 6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여행스케치=가평]한적한 한옥에서의 하루는 여유롭기 그지없다. 전화기를 꺼놓고 전통문화의 숨결이 느껴지는 공간에서 산책을 하고 한가로이 노니는 닭과 고양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무엇 때문에 그리 바쁘게 살았나를 되돌아보기도 한다. 축령산 자락에 살포시 내려앉아 있는 취옹예술관에서 느낄 수 있는 감상이다.  

가평 축령산 자락에 고즈넉이 들어서 멋스런 자태를 뽐내고 있는 취옹예술관.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지켜나가고 예술인과 지역 주민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자는 취지로 김호 관장이 이곳에 터를 잡은 지 6년째다.

2008년 6월. 사진 / 손수원 기자
구들방 객사인 수향헌. 2008년 6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취옹예술관은 ‘불 때는 사람’이란 의미의 취옹(炊翁)에서 따온 이름으로, 김호 관장의 호이기도 하다. 원래 취옹예술관은 포천에서 시작했지만 1998년 여름 물난리를 겪으면서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김 관장은 새로운 터를 찾아 예술관을 짓기 시작했고, 지금의 축령산 자락에 4년간 건물을 지으며 무너진 꿈을 다시 쌓아 올렸다. 그는 사람들이 예술관에 머물면서 자연이 주는 풍취를 마음껏 즐기고 가길 바란단다. 

“그저 하룻밤 묵어 가기보다 나무와 흙, 물이 주는 우리 문화를 체험해보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나라에 살면서 자기들의 전통을 모르고 살아가는 모습이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라 안타깝기만 합니다.”

잊혀져가는 전통문화에 대한 김 관장의 아쉬움으로 탄생한 곳인지라, 전통문화의 흔적은 전시실의 그림이나 도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가 직접 담은 장과 장을 담은 옹기, 머물다 가는 손님들에게 밥을 담아 주는 유기그릇, 소박한 도기 술잔 등 생활하는 공간 자체에 그의 전통문화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다. 또한 예술관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도기나 탈 등의 전통 미술품을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그야말로 전통문화 체험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셈이다. 

2008년 6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장독대가 풍취를 더하는 취옹예술관. 2008년 6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사찰의 일주문과 비슷하게 생긴 정문을 지나자 문명의 것은 이제까지 달려왔던 아스팔트의 흔적과 함께 사라진다. 푸른 나무들과 발밑으로 흐르는 작은 개울의 물소리가 ‘이곳부터는 세상의 잡념을 모두 잊어라’하고 말하는 듯하다. 

돌계단을 올라 예술관 마당에 들어서니 멋들어진 호수와 어우러진 정자 한 채가 서 있다. 경회루나 죽서루의 그것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그 아름다움이란 규모에 비례하는 것은 아닐 터, 순식간에 시선을 뺏기고야 만다. 

호수 주위에 아기자기하게 꾸민 공간은 조각공원이다. 철재로 만든 작품과 돌로 만든 조각 등이 여백의 미를 뽐내며 서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조각은 자연이 만들어놓은 야생화며 나무들이리라. 그것만으로 그림이다. 

돌계단을 한 번 더 오르면 넓은 마당 주위로 길게 지어진 한옥 객사가 있다. 취옹예술관 안의 어느 곳 하나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있으랴마는, 객사는 김 관장이 특히 신경 써서 지은 곳이다. 

숙소는 크게 백송재와 수향헌 두 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백송재의 숙소는 온돌 황토방으로, 수향헌의 숙소는 아궁이에 나무를 때는 구들방으로 만들어졌다. 도시에서 스위치 하나로 방이 뜨끈해지는 것이 익숙하다면 오랜 기다림으로 바닥을 데우는 전통방식이 오히려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느낌이 어디 같을까. 나무를 해서 불을 때는 그 과정부터가 휴식인 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까.  

2008년 6월. 사진 / 손수원 기자
객사에서 전시실로 가는 문과 계단. 2008년 6월. 사진 / 손수원 기자

한옥의 장점과 더불어 현대 사람들이 무척 꺼리는 한 가지 문제,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공간은 철저히 현대식으로 꾸며놓았다. 전통문화를 지키는 것도 좋지만 타협할 것은 적당히 타협하는 모습이 돋보인다.  

백송재의 방에 들어가 창을 열고 마당을 바라본다. 텅 빈 공간, 하지만 이제까지 비어 있는 자리엔 무엇을 채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살아온 도시민의 눈엔 그 공간이 아주 특별하게만 보인다. 소리라고는 뒷산에서 울어젖히는 소쩍새 소리가 전부이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 어떠한 행동을 해도 뭐라 하는 이가 없다. 취옹예술관에서는 마냥 시간을 비워두고 즐기면 되는 것이다. 

방 내부는 꼭 있어야 할 것 이외엔 갖추어놓은 것이 없다. TV가 없다고 불평할 것 없다. 창을 열면 시시각각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자연의 모습이 있지 않은가. 전통의 미를 뽐내는 자개농과 문갑은 아늑한 사랑방을 연상시킨다. 시멘트 하나 바르지 않고 황토로 지은 집은 그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아련히 코끝을 자극하는 흙의 냄새, 고향의 냄새다. 

대청마루에 앉으면 여름 더위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거기에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준다면 허연 배를 드러내고 낮잠을 청해도 좋겠다.   

2008년 6월. 사진 / 손수원 기자
호수와 정자가 어우러진 조각공원. 2008년 6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수향헌을 지나 개울가 쪽으로 가면 한 무리의 닭들이 한가롭게 모이를 쪼고 있다. 마침 이날은 암탉 쟁탈전이 있어 수탉 두 마리가 벌써 30분째 날개를 파닥이며 싸우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고양이 한 마리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앉아 있다. 저 모습을 화선지에 담으면 그것이 바로 한 폭의 한국화가 될 터이다.  

취옹예술관의 길은 인공적이라기보다는 그 옛날 돌아다니던 고향 동네 앞길 같은 느낌이다. 그저 흙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호강하고 있다’라는 느낌이 든다. 언제 또다시 이런 길을 걸을 것이며 이런 여유를 즐길 수 있을까 싶어 벌써부터 아쉬운 마음이 들어 한 걸음 한 걸음이 소중하다.  

하루 종일 우는 소쩍새 소리가 그 어느 곳보다 멋들어지게 어우러지는 취옹예술관. 너무도 고즈넉하고 조용해서 오히려 적응이 안 될지도 모르나 시간이 지날수록 몸과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