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영동] 듣자하니 옥계폭포는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소개되고 최남선의 저서에도 언급되었다고 한다. 본디 박연이 이곳에서 음악을 즐기고 갔다고 해서 지역 사람들에게는 박연폭포라고도 불린다는데…. 고래로 많은 시인과 묵객이 찾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 직접 한번 내 눈으로 확인해봐야겠다.
여행도 영화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좋다는 말을 듣고 가보면 잔뜩 기대를 해서인지 실망만 안고 돌아오는 일이 있는가 하면 별 기대도 안 하고 갔는데 의외로 만족도가 높은 곳이 있다.
충북 영동의 옥계폭포는 다행히 후자 쪽이다. 후배로부터 좋다는 말은 들었지만, 폭포라면 그 높이나 수량만 다를 뿐 풍경이 뭐 그리 다르겠냐 하며 나선 길이다.
게다가 근사한 폭포에 대한 나의 선입견은 구절양장 깊은 산속에 속세와 단절되어 있어야 하고, 여기에 한쪽에 무지개가 필 정도로 주먹만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그런 모양새다. 실제 그런 곳이 우리나라에 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옥계폭포는 비가 많이 내리지 않은 탓인지 수량도 그리 많지 않고, 자동차가 폭포 앞까지 들어갈 수 있어 신비감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두절미하고 옥계폭포 앞에 선 순간 마음이 확 달라졌다. 수량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180도로 둘러쳐진 절벽이 엄청난 위세로 시야를 압박한다. 선비의 기개처럼 예리함을 잃지 않고 깎아지른 듯 서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겸제의 화폭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 느낌이랄까, 한순간에 시공간을 잊게 만드는 특별함이 있다. 폭포의 진가는 꼭 물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오늘에야 비로소 알았다.
운치가 그다지 없는 나도 탄성이 절로 터질 정도이니 예전 멋과 풍류를 알았던 우리 조상들은 얼마나 더했으랴. 실제로 옥계폭포는 국악계 거성 난계 박연을 비롯해 많은 묵객들에게 소문난 여행지였다고 한다. 폭포 아래서 시도 짓고 그림도 그렸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20m 높이에서 떨어지는 가는 물줄기의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한참을 그렇게 꼼짝않고 서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눈엣가시가 있다. 폭포 앞을 가로지는 돌다리이다. 만들어놓은 지 얼마 안 되어 인조 티가 팍팍 나는 것이 영 폭포와 어우러지지 않는다. 폭포 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 프레임에 들어오면 흥취가 깨진다. 돌다리 아래 역시 물길을 막은 돌도 보기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 무슨 연유로 폭포 물을 막아놨을까?
아쉬운 발길을 돌려 옥계폭포를 등지고 나오는데 심천면에 산다는 지역분과 말을 나누게 되었다. 처음 서로 나눈 인사가 “폭포가 참 좋죠?” “진짜 그렇네요”이다.
“오늘은 평일이라 사람이 없지 한창때는 차들이 빽빽이 들어와요. 영동 사람들만 오는 게 아니고 대전이랑 서울에서도 어떻게 알고 매년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니깐. 그늘만 있으면 거기에 자리 깔아놓고 하루 종일 놀다 가는 거지.”
폭포 아래로 계곡물이 흐르니 여행지로 빠지지 않겠다.
그는 어릴 적부터 이곳을 자주 찾아 매년 여름을 더운 줄 모르고 났단다. 그때는 폭포 물이 훨씬 많았는데 지금은 수량이 줄었다는 얘기도 덧붙인다. 그 말끝에 그분이 지나가는 듯 툭 한마디 한다.
“그런데 말야, 도에서 여기 관광지로 육성하겠다고 지난해에 공사했는데 그러면서 싹 버렸어. 물막이 공사를 하기 전에는 물도 깨끗해서 저 안에서 할아버지들이 떨어지는 물도 맞고 그랬다니깐. 이제는 더러워져서 다 틀렸지 뭐.”
멋없게 콘크리트로 폭포를 막아놓은 둑이 물길을 자르는 바람에 바닥이 더러워졌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저렇게 앞을 막아놓고 인조 느낌이 물씬 나는 다리를 놓은 뒤부터 처음 오는 관광객들 중에 폭포도 가짜 아니냐는 소리를 진담처럼 한다는 것.
그 소리를 듣고 나중에 영동군청 관계자에게 그 둑의 용도에 대해 문의를 해보았다. 사람들이 폭포에 들어가는 것을 막고, 물을 막아서 거기에 고기도 놓아 키우려고 한 것이란다. 그러나 물도 깊지 않은데 들어가는 사람을 굳이 막을 이유가 있을까(아래 계곡에는 실제 다 들어가게 하면서). 또한 고기는 흐르는 물에 키우는 것이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뿐일는지.
그러고 보니 옥계폭포를 다녀온 많은 블로거들의 후기에 공사로 인해 분위기를 해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심지어 폭포 앞의 돌다리에 대해서 한 블로거는 “이곳의 분위기와는 동떨어져 있는 게 아쉽다. 오래된 소나무로 관람대를 만들었으면 더 운치 있어 좋았을 텐데”라고 지적하고 있다.
어쨌든 모두들 옥계폭포를 아끼는 마음에서 나온 진심 어린 충고일 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