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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기차타고 세계여행] 스웨덴 대자연이 숨쉬는 기찻길 그 황홀한 시간 위를 달리다
[기차타고 세계여행] 스웨덴 대자연이 숨쉬는 기찻길 그 황홀한 시간 위를 달리다
  • 최지웅 기자
  • 승인 2008.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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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8년 12월. 사진 / 최지웅 기자
소박한 시골집의 풍취가 흐르는 인란즈바난의 정차역. 2008년 12월. 사진 / 최지웅 기자

[여행스케치=스웨덴] 기차는 이동수단이기 이전에 그 자체로 ‘즐거운 여행’이다. 유레일패스 하나 믿고 시작한 100일간의 유럽여행도 기차와 함께 색다른 추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그 중에서 스웨덴은 순도 100%의 소박한 풍경으로 여행자를 강하게 잡아끄는 묘한 매력이 있는 나라다. 

2008년 12월. 사진 / 최지웅 기자
열차가 교행되는 인란즈바난 북쪽 구간, 승무원도 여기서 바뀐다. 2008년 12월. 사진 / 최지웅 기자

기차로 유럽 20개국을 넘나들 수 있는 ‘유레일패스’는 유럽을 여행하는 이들에게 큰 매력이다(이곳에서 국경을 넘는 것은 우리나라의 경상도에서 전라도를 가는 것쯤으로 여길 만큼 자유롭다). 아일랜드에서 유레일패스를 개시해 프랑스, 독일, 덴마크, 노르웨이를 거쳐 핀란드에 도착했고, 이제 스웨덴을 가기 위해 국경을 넘어야 한다. 

그런데 핀란드와 스웨덴 사이의 국경은 여객열차가 없어 버스를 타야 한다. 물론 유레일패스가 있으면 국경 연결 구간의 버스는 무료다. 역시 유레일패스 하나면 유럽의 굵직한 교통수단은 ‘패스’되는 셈. 기차역에서 버스터미널까지 멀지 않은데다가 곳곳에 이정표가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운 좋게도 버스의 2층, 그것도 앞쪽에 자리를 잡고는 국경을 넘어 정갈하고 고요한 스웨덴의 첫인상과 마주한다.

2008년 12월. 사진 / 최지웅 기자
침목을 따라 스웨덴 대자연의 속살을 파고든다. 2008년 12월. 사진 / 최지웅 기자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열차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동쪽에 자리한 스웨덴. 국토가 우리나라보다 4.5배 정도 넓은데 서울보다 조금 적은 90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스웨덴은 어딜 가도 깨끗한 자연을 볼 수 있는데, 특히 인구가 적은 북부지역은 때묻지 않은 순도 100%의 청정자연을 자랑한다. 스웨덴 자연의 속살을 보기 위해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열차 ‘인란즈바난(Inlandsbanan)’을 타기로 했다. 

인란즈바난은 수요가 많지 않아 폐선이 된 열차인데, 관광 활성화를 고려해 여름에만 운행한다. 남쪽의 무라(Mora)에서 북극권의 갤리바레(Gallivare)까지 운행하는 1067km의 긴 노선이다. 노선 중앙에 자리한 외스터순(Ostersund) 도시를 중심으로 무라에서 갤리바레까지 하루 한 번씩 열차가 운행된다. 인란즈바난을 타기 위해 외스터순으로 향했다. 

다행히 외스터순의 유스호스텔 주인은 친절했다. 북유럽인들은 남의 일에 관심이 없고 무뚝뚝한 편인데, 조리기구 사용법을 자세히 알려주며 세심하게 배려해주니 고맙다. 

2008년 12월. 사진 / 최지웅 기자
철길과 인도가 함께 쓰이는 생경한 풍경. 2008년 12월. 사진 / 최지웅 기자

밖에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데다 제법 쌀쌀해 따끈한 국물이 떠오르는 차에 다른 재료도 마땅찮아 한국서 가져간 라면을 끓였다. 숙소에 퍼진 얼큰한 라면 냄새가 호기심을 자극했는지, 다른 투숙객들의 관심이 냄비 속으로 모아졌다. 한 젓가락 맛보여줬더니 모두 ‘Good’을 연발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역시 한국의 라면은 세계 어딜 가도 인기다. 

다음날 아침, 숲 사이를 가르는 철길을 따라 남쪽 무라로 향했다. 철길 주변으로 숲과 호수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런데 갑자기 ‘끽’하는 소리와 함께 열차가 급정거한다. 놀란 마음으로 앞 칸으로 가보니, 철길에 서 있는 사슴 두 마리 때문이란다. 어미와 새끼로 추정되는 한 쌍의 사슴은 기적을 울려도 도도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도통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천천히 열차를 움직이며 겁을 주니 그제야 철길 밖으로 팔딱팔딱 뛰어나간다. 기차는 다시 속도를 낸다. 

2008년 12월. 사진 / 최지웅 기자
스웨덴에서 개발한 초고속 틸팅 열차 X2000. 2008년 12월. 사진 / 최지웅 기자

인란즈바난 선로 중앙의 ‘시간 정거장’
정오가 되어 종착역인 무라에 도착했다. 종착역은 승강장 하나가 있는 것이 전부일 만큼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머무는 것보다 달리는 열차가 체질인지라, 잠시 시내를 구경하고 다시 외스터순으로 가는 열차에 오른다. 돌아가는 열차에서는 마음이 한결 느긋하다.

그런데 뜻밖의 여정이 더해졌다. 기차가 선로 중앙에서 멈추기에 또 사슴이 나타났나 싶었는데, 노선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지점이라 잠시 산책을 해도 된단다. ‘산책’을 이유로 기차가 지정된 역이 아닌 곳에서 정차한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스웨덴 사람들의 살가운 여유가 이를 테면 ‘시간 정거장’에 기차를 정차하게 한 셈이다. 승객 모두가 기분 좋은 산책길을 따라 나선다. 역시나 안 보고 지나쳤으면 후회할 법한 청정자연의 풍경이 살아 숨쉰다. ‘쨍’하게 맑은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쉰다. 

2008년 12월. 사진 / 최지웅 기자
노선의 가장 고도가 높은 곳을 산책하다 만난 과일 빌베리. 2008년 12월. 사진 / 최지웅 기자

그런데 몇몇이 발밑의 보랏빛 열매를 따서 먹는다. 허리를 굽혀 잎 사이에 오롯이 올라온 작은 열매를 살핀다. 빌베리(Bilberry)다. 시력 개선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연구를 할 때 관심을 가졌던 과일이다. 맛을 보니 시큼하면서도 달달하다. 유럽에서 잼과 주스로 만들어 먹는데, 열매가 작아 비싼 편이란다. 우리나라에서는 빌베리는 보기 힘든 편이고, 빌베리의 사촌 격인 블루베리가 북미에서 수입된다. 

다음 날은 외스터순에서 출발하여 북쪽 종점인 갤리바레로 갔다. 기차는 호수와 숲을 끼고 달리며 광활한 대자연의 서사시를 펼쳐낸다. 갈수록 나무의 키가 점점 낮아지고, 급기야 땅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북극권에 들어섰다. 14시간 만에 북쪽 종점인 갤리바레에 도착했다. 

어둑해질 시간인데 이곳은 해가 길어 한낮처럼 밝다. 적응이 되지 않건만 숙소에서 잠을 청해본다. 내일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Stockholm)으로 향하는 열차를 타려면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갤리바레의 ‘환한 밤’이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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