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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초보 터키댁의 터키 즐기기] 이스탄불의 크리스마스 풍경 “터키의 성탄절은 휴일이다? 아니다?”
[초보 터키댁의 터키 즐기기] 이스탄불의 크리스마스 풍경 “터키의 성탄절은 휴일이다? 아니다?”
  • 김현숙 기자
  • 승인 2008.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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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8년 12월. 사진 / 김현숙 기자
사마티아에 있는 아르메니아 가톨릭 교회. 2008년 12월. 사진 / 김현숙 기자

[여행스케치=터키] 이슬람 국가인 터키에도 교회가 있고 성탄절은 있다. 하지만 전 국민이 떠들썩하게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나 성당에서 조촐하게 캐럴을 부르며 예수의 탄생을 기린다.  

이슬람 기도 시간을 알리는 코란 암송, 에잔  
우리 집의 아침은 에잔과 함께 시작된다. 새벽 5시 반, 해가 뜨기 전 동네 모스크에서 하루의 첫 기도시간을 알리는 ‘코란 낭송 소리’인 에잔이 울려 퍼진다. 해 뜨기 전, 오전, 정오 무렵, 저녁 무렵, 취침 전 이렇게 다섯 번의 에잔이 울리는데, 금요일 정오가 아니면 시간 맞춰 모스크를 찾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모스크가 있는 곳은 어디나 에잔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처음 우리 민박집을 방문한 한국 손님들은 “누군가 공식적인 노래를 부르는데 이게 뭔 소리냐?” “어떤 남자가 중얼중얼 노래 같은 것을 부르는데 무서워서 잠이 깼다” “불경 소리 같은데 이스탄불에도 절 같은 게 있냐”고 묻는다. 

에잔은 아랍어로 낭송하는 코란의 경구이다. 옛날에는 성직자가 직접 코란을 낭송했다고 한다. 들어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독특한 음색과 성량은 유명 오페라 가수 뺨친다. 이후 도시화되고 인구가 많아지면서 모스크 첨탑에 확성기를 달아, 이맘이 마이크 앞에서 육성으로 하기도 하고, 녹음된 에잔을 틀어주기도 한다. 

2008년 12월. 사진 / 김현숙 기자
성가대와 신자들이 미사를 드리고 있다. 2008년 12월. 사진 / 김현숙 기자

‘땡! 땡! 땡!’ 이 소리는 혹시 교회 종소리?!
인구의 95%가 이슬람 신자라는 터키이니 에잔 소리가 들리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오전 8시와 오후 4시쯤 들리는 땡! 땡! 땡! 종소리는 또 뭘까? 믿기 힘들겠지만 교회 종소리다. 남편 이스마일이 태어나고 자란 우리 동네 사마티아는 술탄 아흐멧에서 4km 떨어진 곳인데, 비잔틴 항구였던 예니카프의 이웃 동네다.

오래전부터 여러 민족들이 사이좋게 지내던 마을이라 사마티아엔 교회가 많다. 토요시장이 열리는 마마라 잣데시에 있는 아르메니아 교회, 우리 집 앞 여대생 기숙사 옆의 아르메니아 가톨릭 교회를 비롯해 주변에 10여 개의 교회가 있다. 

다시 한 번 고개를 드는 의문! “터키는 95%가 이슬람 신자라는데 웬 교회가 다 있지?”
그래 맞다, 터키는 이슬람 국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오스만제국의 술탄은 이교도에게 관용적이었다. 영토를 정복하고도 세금만 꼬박꼬박 내면 종교와 신앙을 지킬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기독교도들은 하나 둘 사마티아와 발랏, 베이욜루에 모여들어 교회를 짓고 신앙생활을 하며 각자의 삶에 충실했다. 특히 발랏 지역에 있는 그리스 정교회의 총 본산 교회인 룸 파트릭 하네(Rum Patrikhane)에는 지금도 전 세계에서 신자들이 성지 순례를 오기도 한다. 

2008년 12월. 사진 / 김현숙 기자
탁심 이스틱랄 거리의 성 안톤 교회에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 2008년 12월. 사진 / 김현숙 기자

오스만제국이 퇴하고 현대적인 터키공화국이 시작된 20세기 초에도 아타투르크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했다. 지금이야 여러 가지 이유로 그리스인, 유태인, 아르메니아인들이 터키를 떠났지만, 아직도 많은 아르메니아인들은 사마티아에 살고 있다. 

이스탄불은 지역마다 조금씩 특색이 있다. 독실한 이슬람 신자들이 사는 발랏 지역은 히잡 쓴 여인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맥주 파는 가게가 없다. 온건한 이슬람이자 사회주의적 색채가 있는, 중산층이 주로 모여 사는 가지 마할레시에는 라마단 기간에도 맥주를 눈치 안 보고 마실 수 있는 분위기다. 

사마티아는 이웃 동네인 코자 무스타파와 달리 슬리브리스 티셔츠를 입은 여자도 보이고 한 집 걸러 맥주 파는 가게가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다. 사마티아 광장의 피시 레스토랑은 이스탄불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드는 라크 전문점 메이하네로도 유명하다. 배경은 뿌리 깊은 크리스찬 주민들일 것이다. 어쨌든 이스탄불에서도 크리스마스를 축하한다. 하지만 공식적인 휴일은 아니다.

2008년 12월. 사진 / 김현숙 기자
촛불을 켜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신자의 모습. 2008년 12월. 사진 / 김현숙 기자

이스탄불의 명동, 탁심의 성탄절
크리스마스에 터키 사람들은 어떻게 지낼까? 한마디로 무심하다. 우리나라처럼 한 달 전부터 거리에 캐럴이 울리고 대형 건물 앞의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짝반짝하고, 백화점에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호객 행위를 하지 않는다. 정말 조용하다. 하지만 교회만은 활기를 띤다. 터키말로는 ‘노엘 바이라므’라고 하면서 미사도 드리고 예배도 본다. 

이스탄불의 명동이라 할 수 있는 이스틱랄 거리의 성 안톤 교회는 가톨릭 교회로, 성탄절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하루 다섯 번 에잔 소리가 울리는 이스탄불의 심장에 의젓이 자리잡은 이 성당은 크리스마스이브에 관광객과 가톨릭 신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성당 한켠에선 경건하게 초를 꽂으며 기도하는 이의 모습도 보이고 제단 앞에서는 성가대를 이뤄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른다. 터키어, 영어, 스페인어로 진행되는 미사가 있어 원한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대다수의 국민인 이슬람 신자인 터키의 크리스마스는 전통 명절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경건하고 소박한 기념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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