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청주] 국내에서 세 번째로 큰 인공호수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달고 있는 대청호. 이 거대한 호수로 인해 사람들은 보다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되었지만 자연은 뜻하지 않은 변화를 맞이해야 했다. 하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최근 들어 환경을 돌아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공간이 바로 대청호자연생태관이다.
보고 만지고 느끼는 초록 여행
“나 좀 도와줘! 숨을 쉴 수가 없어.” 어디선가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 발길을 옮겨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 물고기와 어린이들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는 디오라마를 발견한다. “더러운 물을 마신다고 생각해봐.” “난 싫어!” “물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시원한 음료수도 못 마시고, 수영장에도 못 가고….” “우리나라도 물 부족 국가야. 그렇기 때문에 물을 오염시키지 않는 것이 중요해. 숲을 잘 가꿔도 물이 맑아진단다.” 10분가량 이어진 영상이지만 물의 소중함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는 디오라마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이미 아이들 몇 명은 화면에 바싹 달라붙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이곳은 대전광역시 동구에 자리한 대청호자연생태관이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주말을 맞아 찾아온 가족방문객들이 많다. 대청호자연생태관은 대전, 청주 등과 가까운데다 수려한 경치와 교육 프로그램 그리고 무료 관람이라는 이점 덕에 아이를 동반한 가족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편이다.
“겨울보다는 여름과 가을에 볼거리가 훨씬 풍성하다”는 것이 생태관 지영선 씨의 설명. 하지만 실내전시공간은 연중 운영되고 겨울철에 오히려 덜 붐벼 여유로운 관람이 가능하다. 녹음이 없어 삭막해 보인다는 사람도 있지만 신비스러운 분위기의 대청호 덕분에 겨울철도 생태관을 찾기엔 괜찮다.
지난 2005년 10월 25일 문을 연 대청호자연생태관은 추동 동사무소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대청호 어류·동식물의 보물창고나 다름없다. 약간 지대가 높아 대청호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대전광역시 동구청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대청호가 생겨난 지 25년이 지나서야 생겨 아쉬운 감이 들지만, 단체나 개인들이 입소문을 듣고 꾸준히 찾고 있어 대청호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방문객 중 상당수가 한 번 이상 찾았던 사람들로, 주로 인근 도시 거주자들이다. 이날 생태관에서 만난 이민주 양의 어머니는 “하도 많이 놀러 와서 몇 번 왔었는지 셀 수가 없다”며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평화로운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틈날 때마다 찾고 있다”고 한다.
생태관이라는 말 그대로 이곳에는 대청호에 관한 모든 동식물이 망라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주요 전시관은 2, 3층인데 층간 통로가 계단이 아닌 경사로로 되어 있어 아이들이 뛰어다녀도 안전하다. 생태관이 자리한 2층은 대청호와 그 주변에서 서식하는 어류와 곤충, 식물에 관한 표본과 입체 영상물이 마련되어 있다. 비록 영상을 통해서이지만 대청호에 서식하는 어류와 양서류, 조류 등이 생각보다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중에는 살아 있는 곤충을 만지거나 살펴볼 수 있는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서울에서 찾아왔다는 최지영 양은 “벌레가 움직여서 깜짝 놀랐는데, 책에서 봤던 걸 실제로 보니까 신기했다”고 말하면서 호수에 이렇게나 많은 생물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호기심을 감추지 못한다.
한편 생태관 바로 옆에는 향토관이라 하여 수몰민들이 기증한 여러 물품과 사진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다. 개관 당시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고 수몰민들이 물품과 사진 등을 가지고 오는 바람에 나중에 따로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꿈에도 그리운 내탑수영장’, ‘주원천 장터골목’, ‘금강을 건너던 나룻배’ 사진 등을 보며 고향을 물속에 묻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려볼 수 있는 시간이다.
동선은 자연스럽게 환경관이 자리한 3층으로 이어진다. 3층은 쓰레기 재활용에 관한 영상과 수질오염의 원인과 대책 그리고 그림자놀이를 통해 재활용의 중요성을 배우는 작은 ‘환경교실’이다. 자원으로서의 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수질보전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공간이다. 환경관 바로 옆에는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는데, 대청호와 함께 평화로운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놓쳐서는 안 될 명소다.
내륙의 다도해를 찾아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그런지 전시물이나 내용이 풍부하지 않은 점이 아쉽지만 대청호, 대청댐 등과 연계하면 생태관광으로 괜찮을 듯 싶다. 예정에는 없었지만 생태관측의 추천으로 대청댐엘 가보기로 했다. 겨울철 드라이브는 왠지 쓸쓸하기도 하고 인공호에 대한 막연한 반감으로 망설이던 참이었는데, 가보면 안다며 강력 추천해 그곳으로 운전대를 돌렸다.
대청호는 대전광역시 동구와 대덕구, 청원 등 충청북도 4개 군과 접해 있는 4134㎢의 호수로, 저수용량이 약 14억9000만t에 달하는 우리나라에선 세 번째로 큰 규모의 인공호수다(소양호와 충주호가 각각 첫 번째와 두 번째).
1980년 12월 착공해 5년여 만에 수문을 열면서 대전, 청주, 전주, 익산 등에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용수공급은 물론 중부권을 대표하는 여행지로도 이름을 날리고 있다. 거느리고 있는 명소만 해도 대청댐과 청남대, 문의문화재단지 등이 있다.
하루 동안 대청호반을 다 돌기에는 빠듯한 것이 사실이지만 생태관을 기점으로 한다면 맛은 보는 셈이다. 생태관을 돌아 나와 호수길을 40분 정도 달리면 댐에 이를 수 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앞만 보고 달릴 때 걸리는 시간이고 아름다운 풍광과 숨바꼭질을 하다보면 1시간도 부족하지 싶다(다만 왕복 2차선 도로라서 중간에 차량을 세울 만한 곳이 마땅치 않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생태관이 아닌 신탄진에서 금강을 따라 이어지는 길도 있지만 이왕이면 분위기 있는 호수길을 달려보길 권한다.
갈대가 일렁이는 대청호변은 대전팔경 중 하나로 소양호나 충주호와 비교해 드라이브하는 재미도 빠지지 않는다. 호수길은 대청댐 주차장까지 이어지는데, 호수가 다 그렇지 하며 심드렁해하지 말고 전망대까지 꼭 가보도록 하자. 산책로는 물론 대청댐 위까지 걸을 수 있게끔 정비가 잘 되어 있다.
이렇게 앞뒤로 뻥뻥 뚫린 경치는 좀처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도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곳에 온 탓인지 폴짝폴짝 뛰고 신이 났다. 기분이 좋은 건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나 역시 잔잔한 호수에 오리 배라도 한 척 띄워서 놀고 싶을 정도로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으니 말이다.
뜻하지 않은 드라이브에, 큰 기대 없이 찾은 곳이었지만 망망한 호수와 올망졸망한 봉우리를 마주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상쾌해졌다. 가보면 안다는 그 말이 그제야 이해가 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