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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전통과 만나다] 청도 소싸움대회 준비 현장 격돌 기축년 소들의 찐~한 한판 싸움이 시작된다
[전통과 만나다] 청도 소싸움대회 준비 현장 격돌 기축년 소들의 찐~한 한판 싸움이 시작된다
  • 손수원 기자
  • 승인 2009.0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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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9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청도에서 열린 소싸움. 2009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여행스케치=청도] ‘소의 해’다. 예부터 주로 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렸던 우리 민족에게 소는 없어서는 안 될 동물이었고, 그만큼 친숙했다. 또한 소는 힘을 상징하며, 우리의 민속놀이인 소싸움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3월 대회를 앞두고 열심히 훈련 중인 청도의 명물 싸움소들을 찾아봤다.

소싸움의 고장 청도군은 올해 상설소싸움경기장을 건설하고 소싸움의 부흥기를 준비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싸움소관리센터’를 마련해 소싸움 경기에 나갈 소들을 맹훈련시키고 있다.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는 관리센터에는 80여 두의 소가 관리를 받고 있다. 센터에 들어서자 소들의 울음소리 때문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다. 떼로 우는 것도 아니고 고작 서너 마리가 울어제치는 것인데도 그 울림이 엄청나다. 이건 그냥 ‘음메’ 수준이 아니다. ‘끄억’거리며 뒷발로 모래를 차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돌진할 기세다. 

2009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현역 최고의 싸움소 칠성이. 2009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싸움소들의 소리는 이른바 ‘고래빼기’라고 불리는 울음으로 자기 힘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힘을 주체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지 사람을 향한 위협행동은 아니다. 싸움소는 보기와는 다르게 절대로 사람에게 위험하지 않다. 오히려 사람을 무서워하고 순둥이처럼 따르는 게 싸움소다. 

이곳에 있는 소들은 전국의 소들 중 싸움소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고 들여온 것들이다. 이중에서는 현재 최고의 싸움소로 성장한 ‘칠성이’도 있고, ‘한국 싸움소의 무적함대’로 불리며 오늘날 청도에 소싸움이 있게 한 ‘번개’도 ‘관리 1호’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번개는 그야말로 한국 소싸움의 상징이다. 1990년대 후반은 번개의 전성기였다. 체중 700kg으로 싸움소로서는 왜소한 체격이었던 번개가 자신보다 100~200kg나 더 나가는 소를 이기는 광경에 관중들은 열광했다. 전국대회에서 다섯 차례나 우승을 차지한 것은 물론, 일본과의 소싸움 대결에선 자기보다 300kg이나 더 나가는 일본 소를 이겨냈다. 그런 번개가 지금은 환갑을 훨씬 넘겨 현역에서 은퇴하고 청도 싸움소의 상징으로 남은 생을 이곳 관리센터에서 보내고 있는 것이다. 

2009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무섭게 타이어 기둥을 노려보는 소. 2009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현역 최고의 싸움소라고 불리는 칠성이 또한 범상치 않은 사연을 가지고 있다. 칠성이는 온몸이 알록달록한 우리나라 토종 소인 칡소이다. 체중이 1200kg에 이르는 7살 칠성이는 관리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변승연 반장이 발굴했다. 아니 살려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한 5년 전에 경북 고령의 공판장에서 칠성이를 처음 봤습니다. 곧 도축장으로 끌려갈 녀석이었지요. 혹시나 해서 공판장을 돌아보고 있는데 칠성이가 눈에 딱 들어오더라고요. 검은 털에 당당한 체구와 굵은 목덜미, 특히 휜 뿔은 ‘옥뿔’이라고 해서 싸움소에게는 최고로 쳐주는 뿔이거든요.”

2009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청도소싸움대회에서의 치열한 한판. 2009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그렇게 도축장에 끌려가기 직전 변 반장에 의해 칠성이는 싸움소로 발탁됐다. 인생역전이 아니라 우생역전(牛生逆轉)의 순간이었다. 관리센터에서 코를 뚫은 칠성이는 3년간의 훈련 끝에 2007년 경남 창원대회에 첫 출전을 한 후 작년엔 3관왕을 차지하며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했다. 

“싸움소는 병종(600~660kg), 을종(661~750kg), 갑종(751kg 이상)으로 나뉘는데 병종은 4~5살, 을종이나 병종 소는 6~8살을 전성기로 보니 칠성이는 체력으로 보나 기술로 보나 가장 정점에 올라 있는 셈이지요.”

하지만 요즘은 관리센터도 예전처럼 활발하게 소 훈련을 시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불경기 탓이다. 소를 훈련시키는 인원이 대폭 줄어들어 80여 마리나 되는 소를 훈련시키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4마리의 소가 원형 기구를 돌리며 다리 근력과 목 근력을 키우기 위한 ‘연자방아 돌리기’ 정도만 시키고 있다. 

2009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싸움에서 진 소는 꽁무니를 빼며 도망간다. 2009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속상하지요. 청도대회도 코앞인데, 지금부터는 집중적으로 훈련을 시켜야 몸이 만들어지거든요. 그런데 센터 사정이 이러하니….”

원래 관리센터에서는 연자방아 돌리기 이외에도 타이어 끌기, 타이어 박기 등과 실전 싸움훈련도 행해졌다. 그렇게 집중적으로 훈련을 해야 싸움소로서 체력도 유지할 수 있고 감도 유지할 수 있다. 원체 싸움소로서 기질이 뛰어난 소들이지만 변 반장은 아무래도 이번 청도대회는 걱정이 앞서는 모양이다. 
   
이번엔 전국에서 소싸움을 하는 사람들 중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최재관 씨의 농장을 가보기로 한다. 소 주인인 최재관 씨는 병원에 입원한 상태여서 농장에 없었지만 그의 소들은 한창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청도 소싸움관리센터의 소들이 ‘프로선수’라면 전국에서 개인적으로 키우는 소들은 ‘아마추어 선수’인 셈. 하지만 적은 수를 집중적으로 키우는 개인 소유의 싸움소가 대회에서 성적은 나은 편이다. 특히 최재관 씨는 7여 년의 짧은 시간 동안 전국의 모래판을 돌며 우승만 수십 차례 차지한 명실공히 청도를 대표하는 우주(牛主)이다. 

2009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지화자 우리 소가 이겼네.” 소가 이기면 절로 덩실덩실 춤이 나온다. 2009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그가 키우는 소들 중 가장 유명한 소는 ‘태풍’이다. 뿔 사이가 벌어져 불리한 조건임에도 작년에 세 차례나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렇게 전국 대회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는 싸움소는 몸값이 1억원을 호가하기도 한단다. 

이곳 농장에서도 관리센터에서 들었던 ‘고래빼기’ 울음이 울려 퍼진다. 땅에 박아놓은 말뚝에 10여 개의 고무 타이어를 걸어놓은 것은 소에게 뿔치기 훈련을 시키는 기구이다. ‘끄억끄억’ 소리를 내며 타이어를 무섭게 노려보더니 이내 창과 같은 뿔을 타이어에 걸어 하늘로 젖혀 올린다. 멀쩡하던 타이어의 모서리가 소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찢어져 버린다. 타이어가 그러나마나 소는 뒷다리로 땅을 차면서 연신 뿔을 타이어에 건다. 

“싸움소로 길들인 것들은 그냥 놔둬도 알아서 훈련하지예. 저런 소는 한 여섯 살 된 긴데, 타이어 앞에 놔두면 딱 지가 훈련할 만큼만 뿔질을 하고 고만하지예. 보기엔 별거 아닌 거 같아도 실전에선 목치기(상대의 목을 노리고 뿔로 들이받음), 뿔걸이(상대의 뿔을 걸어 목을 꺾음) 같은 기술로 대번 나와예.”

2009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훈련하러 가는 길, 뒷발로 땅을 차며 힘을 과시하는 소. 2009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그저 밀기만 하는 게 소싸움인 줄 알았더니 의외로 기술도 다양하다. 목치기와 뿔걸이 이외에도 뿔로 힘자랑을 하는 밀치기, 상대의 머리를 쳐서 기를 죽이는 머리치기, 크게 옆으로 돌아 배를 공격하는 옆치기 등 화려한 기술들이 많단다. 이런 기술들은 훈련을 통해 습득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소마다 천성적으로 타고나고, 좋아하는 기술이 있단다. 

하지만 훈련을 하고 타고난 기량이 좋다고 늘 시합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다. 소싸움 승부는 기량이 50%이고 나머지 50%는 운이 좌우한다. 

“소싸움은 예측을 못하지예. 이놈은 저놈을 이겼는데 저놈은 이놈을 이긴 딴 놈을 이겨요. 물고 물리는 관계지예. 현역 최고라는 칠성이도 우리 농장에서는 약한 편에 속하는 소한테 지기도 했어예. 그래서 대진표 뽑는 운이 있어야 하는 기고, 경기가 2시간 이상 길어지면 주인이 심지를 뽑아서 승부를 내기도 하니까 운이 더 좋아아지예.”

운이 있어야 한다지만 그래도 기량이 50%이기에 평소에 뿔 관리도 철저하게 한다. 날카롭게 다듬은 소끼리 제대로 뿔을 걸면 온 동네가 떠들썩할 정도로 격렬한 소리가 난다고 한다. 때문에 연습 경기를 펼칠 때면 주민들의 항의도 가끔 받는단다. 

2009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청도 소싸움관리센터의 소가 이제껏 탄 트로피. 2009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2009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모래밭에 있는 소. 2009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하지만 그보다 더 서운한 것은 씨름, 그네, 널뛰기와 함께 대표적인 전통민속놀이로 손꼽히며 신라시대부터 국민의 관심을 받아온 소싸움을 ‘동물학대’로 보는 시선들이다. 실제로 어느 단체에선 소싸움을 중지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작년 1월, 농림부는 소싸움을 민속놀이로 최종 확정하고 대회를 존속시키기로 결정했다. 아직도 동물보호단체 등에선 소싸움을 중지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어떤 것이 맞는 소리인가에 대해선 뭐라 할 말이 없지만 싸움소를 키우는 이들에게 소는 자식과 다름없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경기에서 소가 뒷걸음을 치며 달아나면 주인의 마음은 ‘에이, 졌다’가 아니라 ‘우리 소 괜찮나’이다. 소가 경기에서 이겼을 때, 누구보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소를 쓰다듬어주는 이도 바로 주인이다.

농장을 나오려니 훈련을 마친 소들이 아직도 힘이 남아도는 듯 씩씩거린다. 마치 3월 말, 청도에서 울려 퍼질 싸움소들의 ‘고래빼기’ 함성이 벌써부터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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