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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기차 타고 세계여행] 영국 철도 종주국, 영국 Britain Rail Pass 역사가 굽이치는 기찻길
[기차 타고 세계여행] 영국 철도 종주국, 영국 Britain Rail Pass 역사가 굽이치는 기찻길
  • 최지웅 기자
  • 승인 2009.0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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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라이드 피어 헤드역(Ryde Pier Head Station)에서 섬으로 연결되는 바다 위의 철길.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여행스케치=영국]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러시아를 가로질러 유럽에서 종지부를 찍었다. 유럽의 첫 여행지로 영국을 택했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아일랜드와 더불어 영어권 국가라는 점, 그리고 철도로 부흥한 ‘기차 종주국’이라는 점!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런던교통박물관 앞 광장에 아프리카인들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철도로 부흥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수도 런던에 도착해 한인 민박에 여장을 풀었다. 러시아에서부터 줄곧 빵으로 끼니를 해결한지라 오매불망 그리던 밥과 김치를 보자마자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오랜만에 포식하고 우리나라 여행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니 향수병이 조금은 가라앉는 듯하다. 

철도의 발상지인 영국에는 전국 곳곳에 철도박물관이 있다. 그중에서 요크에 있는 국립철도박물관(National Railway Museum)과 런던에 있는 런던교통박물관(London Transport Museum)이 유명하다. 런던지하철을 타고 코번트 가든역에서 내려 가까운 런던교통박물관으로 갔다.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런던의 명물인 2층 버스.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대중교통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교통박물관. 한때 런던의 교통수단이었던 2층 마차는 기차처럼 궤도를 따라 달렸다.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런던이 세계적인 대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한 19세기부터 지금까지의 교통수단을 일목요연하게 전시해놓았다. 말이 끄는 전차에서부터 증기기관차, 지하철, 그리고 지금도 시내를 누비고 있는 2층 버스와 전차까지, 더 효율적이고 편리한 수송을 위한 인간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한때 전차 노선이 꽤 많았던 런던은 승차감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전차를 2층 버스로 모두 대체했다. 그런데 요사이 소음이 적은 레일을 개발하면서 다시 전차가 부활하고 있단다. 특히나 신도시에는 경전철이 들어서면서 ‘제2의 철도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철도를 저탄소 고효율의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변모시켜나가는 지혜가 놀랍다.

영국은 유럽의 다른 나라와 달리 유레일패스를 사용할 수 없기에 영국철도패스(Britain Rail Pass)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를 둘러보기로 했다. 우선 페리를 타고 잉글랜드 남부의 와이트섬(Isle of Wight)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와이트섬 승강장은 어찌나 오래되었는지, 갯벌 위에 버티고 선 모양새가 신기할 정도다. 철도와 도로 역시 나무 바닥으로 되었는데 꽤나 낡았다.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바다 옆의 언덕으로 이어지는 세인트아이브스선(St. Ives Line).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바다 위에 철길과 도로가 놓인 생경한 풍경.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잠시 후 열차가 들어왔다. 차량 안을 샅샅이 살펴서 ‘열차의 탄생’ 시기를 찾아냈다. 1938년이다. 차량은 물론 철길도 여간 오래된 것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기차는 철커덕 철커덕 요란한 소음을 내며 주변 풍광을 느릿느릿 담아낸다. 창 밖으로 넓은 바다가 펼쳐지고, 짭짤한 바다의 향기가 창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슬로 기차’는 20분 만에 생클린(Shanklin)역에 여행객을 내려놓는다. 

역 주변 마을에서 어슬렁거리는데, 영국답게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한다. 가는 빗줄기에 싸인 마을은 오랜 역사를 품은 듯한데, 하나같이 정갈해 보여 마음에 든다. 드문드문 마을주민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가 먼저 “Hello” 하며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한국사람이라 답하니 “한국전쟁 때 잿더미가 된 대한민국이 빠르게 발전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관심을 표한다. 영국인들은 아는 이의 소개가 아니면 먼저 인사하지 않는다고 했던 어릴 적 책에서 본 내용은 사실이 아닌가보다. 모두 친절하고 살가웠다. 

지도와 책이 탁자 위에… ‘치밀한 여행습관’
다시 포츠머스로 돌아가서 야간열차를 타고 잉글랜드 남서부의 펜잰스(Pen zance)로 향했다. 영국 브리튼섬을 토끼에 비유하자면 펜잰스는 토끼의 발바닥쯤 된다. 펜잰스역에서 세인트아이브스(St. Ives)로 가는 디젤동차를 탔다.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세인트아이브스의 좁은 골목길.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와이트섬에서 생클린역까지 느릿느릿 달린 ‘슬로기차’.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이른 아침이라서 승객이 얼마 없어 차내가 한산하다. 세인트어스(St.  Erth)에서 분기되어 지선으로 들어가니 차창 밖으로 넓은 갯벌이 펼쳐지고, 갯벌을 따라 철길이 굽이친다. 종점인 세인트아이브스 항구가 시야에 들어올 때쯤 갯벌에서 넓은 바다로 풍경이 바뀐다. 

세인트아이브스역은 승강장이 하나만 있는 간이역이다. 우리나라 정동진역처럼 백사장이 가깝지는 않지만 조금만 내려오면 넓은 백사장이 펼쳐진다. 끼룩끼룩 갈매기 우는 소리만 한산한 백사장에 울린다. 

이곳에서 곧바로 스코틀랜드로 향한다. 글래스고(Glasgow)에서 포트윌리엄(Fort William)을 거쳐서 말레이그(Mallaig)로 향하는 웨스트하이랜드선(West Highland Line) 기차에 올랐다. 기차 안은 대부분이 관광객이다. 그런데 승객들의 테이블 위에는 노선이 그려진 지도와 함께 지역을 설명하는 책자가 함께 놓여 있다. 

기차를 타면서 지도에 있는 위치를 찾아 비교하며 차장 밖을 보고, 다시 책자의 설명을 읽어보며 확인하는 치밀한 여행습관이 놀랍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하면 간첩이라 의심받을 것 같다. 작은 것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글렌피넌 고가교(Glen finnan Viaduct)에서 내려다본 스코틀랜드의 자연이 한적하고 평화롭다. 2009년 1월. 사진 / 최지웅 기자

그런데 이들도 꼼꼼히 메모하는 나를 보고 놀랐단다. 특히 메모장에 쓰인 한글을 보고 어느 나라 글이냐고 묻더니 한글을 쓰는 장면을 유심히 본다. 그리고 한국에서 이리도 먼 곳까지 왔냐며 음료수와 과자를 안겨준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관심이 많은데, 거리가 멀고 음식이 많이 달라서 그간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긴 내가 밥이 그립듯, 그들도 우리나라에선 빵이 그리울 게다. 

어느덧 열차는 스코틀랜드의 언덕을 오르기 시작한다. 부드러운 초록의 물결을 따라 열차가 오르고 그 옆으로 하얀 양들이 노니는 모습이 평화롭다. 그런데 열차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고, 승객들은 기다렸다는 듯 창문을 열고 일제히 셔터를 누른다. 무슨 영문인지 연방 두리번거리는데, 이곳이 오로지 콘크리트로만 지은 글렌피넌 고가교(Glenfinnan Viaduct)라 승객들이 말해준다. 영화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의 배경이자, 스코틀랜드의 £10 지폐에도 나오는 유명한 곳이란다. 고가교 아래로 산책하기 좋은 길이 나 있고, 멀리 호수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계속해서 호수가 이어지다가 복잡한 해안선의 바닷가를 지나 종점인 말레이그(Mallaig)에 도착했다. 야속하게 태양은 벌써 서쪽 바다로 뉘엿뉘엿 넘어간다. 내일 다시 기차에 오를 생각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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