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군산] 일제강점기 시절 대표적인 수탈의 근거지였던 군산엔 아직도 수많은 근대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경암동의 철길마을은 아날로그 시대의 촌스러움이 흠씬 묻어나는 추억의 장소이다.
“어디 가서 그런 소리 마소.”
경암동 철길마을에서 빨래를 널고 있던 할머니에게 “기차가 다니지 않으니 섭섭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했더니 불호령이 떨어진다.
“집을 두 동강을 내서 사는 거이 뭣이 좋데? 남들은 신기하다고 할지 몰러도 여기 사는 사람들은 아녀. 정신 사나워서 생활이 되간? 쇳길 이것도 다 뜯어 분져야 뎌.”
우리가 ‘기찻길 옆 오막살이’라며 노래해왔던 삶이 실제는 녹록지 않았던 모양이다. 무슨 관광지라도 온 양 카메라를 챙겨 들고 있는 모습이 괜히 민망스러워져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뒤로 숨기고 만다.
“할머니 사진 한 장….”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지발 좀 사진 좀 찍지 마쇼잉”이란 말을 남긴 채 할머니는 빨래 담긴 대야를 들고 집으로 들어가 버리신다. 살짝 민망하다. 하지만 어쩌랴, 이곳은 관광지가 아닌 삶의 현장인 것을…. 저들에겐 여유롭게 사진 한 장 찍는 것조차 사치로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하는 수 없이 철길을 따라 계속 걷는다. 뉘 집 개인지 모를 견공 한 마리가 뚫어지게 한가로운 이방인을 쳐다본다. 순하게 보이기에 사진 한 장 찍으려 카메라를 들이댄다. 순간, 순하던 개가 잽싸게 집으로 달려 들어가더니 맹렬하게 짖어댄다. 이 동네는 사람뿐만 아니라 개도 사진 찍기를 싫어하는 모양이다. 카메라를 치울 때까지 동네가 다 울리게 짖어댄다. 어쩔 수 없이 카메라를 치우고 ‘이 동네 개가 너뿐인 줄 알아? 흥’ 콧방귀를 뀌어주고 자리를 뜬다.
‘페이퍼코리아선’이라고 불리는 이 철길은 1944년 4월에 놓였다. 조촌동에 위치한 신문용지 제조업체 ‘페이퍼코리아’의 생산품 및 원료를 실어 나르기 위해 군산역과 공장 사이에 약 2.5km의 철길이 놓인 것이다. 이중 건물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기차가 달리는 사진으로 유명해진 풍경은 경암사거리에서 주유소에 이르는 1.1km 구간이다.
하지만 기차는 작년 6월 26일, 65년간의 고단한 운행을 마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군산선이 운행을 중단하고 군산역이 새로운 건물로 이사를 하면서 페이퍼코리아선도 운행을 멈춘 것이다. 기차가 다시 달릴 일은 없다. 올해 안으로 철로마저 철거되고 나면 경암동은 더 이상 ‘철길마을’로 불리지 않게 될 것이다.
사람도 개도 반겨주지 않으니 하릴없이 철길에 오른다. 철로 사이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철로 옆으로는 마을 주민들의 고단한 삶이 쌓여 있다.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마을이 형성되었다. 철길 옆이라 마음대로 건물을 세울 수도, 고칠 수도 없는 사정 때문에 21세기가 한참 지난 지금에도 이곳의 풍경은 1970년대의 모습 그대로인 것이다.
하지만 말이 좋아 추억의 풍경이지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궁핍한 현실의 공간이다. 기찻길 주변 곳곳에 널려진 연탄재와 나무판자, 술병들은 도시 속의 외딴 섬처럼 개발에 외면받고 있는 주민들의 쓰린 속을 말해주는 듯하다.
짧은 구간에 건널목만 11개. 건널목이 나타날 때마다 판잣집 사이로 도시의 풍경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큰길 너머 대형할인마트의 모습과 판잣집 뒤로 서 있는 고층 아파트의 모습이 쉽사리 연결되지 않는다. 같은 동네지만 오로지 이곳, 철길 주위로만 시간이 멈춘 듯하다.
얼마 전까지 기차가 오가던 모습은 태국의 매끌롱(Maeklong) 철길 시장의 풍경을 연상시켰었다. 기차가 오면 팔던 물건을 옆으로 치워 마치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듯 철길이 드러나 아슬아슬하게 기차가 시장을 가로질러 가던 모습이다. 비슷한 풍경이지만 경암동은 그보다는 한결 고즈넉했다. 건물에 닿을세라, 철길을 지나가는 사람이 있을세라 시속 10km 남짓 슬금슬금 건물 사이를 빠져나가는 모습이 신기했다.
“집 앞은 도로변이고 집 뒤는 철길이니 어디다 빨래를 널어? 기차 안 다니는 시간에 철길에 빨래를 널었다가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뛰어나와 빨래를 치웠지.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워낙 커? 골칫덩이였어.”
이제는 기차 걱정 안 하고 철길에 빨래며, 고추를 널 수 있어 좋다는 김경분 할머니는 기차도 기차였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카메라를 들고 오는 외지인들 역시 반갑지만은 않다.
“테레비에 여그가 나오고 난 뒤엔 난리도 아니었어. 기차가 지나가는 걸 본다고 사람들이 엄청 많이 왔어. 근디 그 사람들이 우리 세간까정 찍어대니 우리가 살 수가 있어? 널어논 빤스까정 찍어 가. 그게 뭣하는 짓이랴?”
기차는 멈추었지만 지금도 경암동은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꾸준히 다녀가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제 그런 모습에 이골이 났다. 낮에는 아예 문을 열어두지 않는 집이 늘었다.
마침 카메라를 든 한 무리가 철길로 들어선다. 오늘도 어느 사진동호회에서 출사를 온 모양이다. 집을 지키는 개며, 사다리, 철길 따위를 카메라에 담는 이들의 모습이 진지하다.
“기차가 없다고 추억이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조만간 이 철길마저 걷어 가면 어디서 또 이런 풍경을 찾아내겠어요. 그전에 한 폭이라도 더 사진에 담아내야죠. 언젠가는 지금 이 풍경을 그리워할 때가 있을 거예요.”
경기도 안산에서 일부러 군산까지 왔다는 조현지 씨는 마을주민들이 외지인들을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도 미안스럽단다. 그래서 발걸음도 조심스럽게 옮기고 철길에 들어서면 회원끼리도 되도록 말을 자제하는 등 나름의 규칙을 정했단다. 모두가 이렇다면 추억의 풍경에 따뜻한 정도 조금씩 담아낼 수 있으련만….
짧은 기찻길을 벌써 왔다갔다 하기를 벌써 세 번째다. 서울로 갈 길이 멀지만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늘 이곳을 떠나면 다음번엔 기차마을이 아닌 경암동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앞으로 사라질 채비를 하고 있는 이 풍경을 ‘추억’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