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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해외 리포트] 무작정 떠난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순례자의 길 ‘카미노 데 산티아고’
[해외 리포트] 무작정 떠난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순례자의 길 ‘카미노 데 산티아고’
  • 서태경 기자
  • 승인 2009.04.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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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9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순례자의 길을 걸으며 찍은 도장. 2009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여행스케치=프랑스] 카미노사무국의 발표에 의하면 지난해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찾은 한국인의 수는 915명으로, 아시아 국가 중에서 1위를 기록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던 그곳이 이제는 도보여행자들의 로망이 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여행지, 카미노 데 산티아고. 그곳이 궁금하다.  

매년 10만 명 이상이 찾는 도보여행의 성지
프랑스 남부~스페인 북부~포르투갈 서부에 이르는 774km 길을 향한 관심이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아니 수그러들기는커녕 열광에 가까울 정도로 뜨거워지고 있다. 그저 무거운 짐을 지고 묵묵히 걷는 것 외에는 달리 자극적인 즐거움도 없는 여정이건만 오히려 이런 점들이 현대인들을 열광하게 하는 듯하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 ago)라고 불리는 이 길은 가톨릭의 성인 야고보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걸었던 길로, 매년 전 세계에만 10만 명 이상이 찾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만 해도 관련 서적 출시는 물론, 실제 다녀온 사람들을 주축으로 인터넷 카페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카미노사무국의 통계에 따르면 2007년 이 길을 찾은 한국인이 449명에서 2008년 915명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 

2009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어둑해질 무렵의 산티아고 시내.2009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산티아고 가는 길’이라는 뜻.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유럽의 3대 성지로 꼽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으로 이어지는 길을 말한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이었던 야고보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스페인 북부까지 걸어왔는데, 결국 예루살렘에서 헤로데 왕에게 죽임을 당하고 시신이 돌로 만든 배에 옮겨졌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바다에 띄운 배가 스페인 산티아고 근처에 도착했고 야고보를 따르던 사람들은 그의 시신을 거둬 묻었다. 800년이 지난 뒤, 바로 그 자리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이 세워졌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최종 목적지다. 

‘산티아고 가는 길’을 이야기하면서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를 빼놓을 수 없다. <연금술사>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그의 첫 작품이자 자전적 소설인 <순례자>에 산티아고 가는 길이 등장하면서 유럽인들이 주축을 이루던 순례객의 범위가 전 세계로 확대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도보여행자 김남희 씨를 시작으로 2007년과 2008년에 관련 에세이와 여행기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2009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운무에 싸인 순례길. 2009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종교, 나이, 직업도 가지가지
본래 이 길은 가톨릭 신자들의 성지 순례지였으나 요즘은 종교와 나이, 직업을 불문하고 연간 10만 명 이상이 찾고 있다. 사무국 통계를 보면 순례자 중에서 학생과 직장인 다음으로 가장 많이 참여한 사람은 은퇴자들이었다. 

목적도 가지가지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용기를 얻고자 왔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병마와의 싸움에서 이긴 뒤 꼭 걸어보고 싶었다는 사람, 호기심에서 왔다는 사람, 순전히 스포츠 때문이라는 사람 등이다. 네이버 카페 카미노에서 활동하는 외서댁(yok 7836)은 지난해 7월~8월 한 달간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다. 

2009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순례길의 종착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2009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욕심 부려서 하루에 40km 정도를 걸으면 완주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단다. “그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경직되었던 마음이 무장해제되고 이미 한없는 위안과 평온을 선물 받는다. 숨 가쁘게 달려온 고단한 일상과 여정은 모두 잊고 한발 한발 천천히 걸으며 한가하고 게으를 수 있는 여유와 호사를 마음껏 누린다”는 얘기에서 그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어떤 마음으로 걸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자칭 마음여행자 김진아 씨는 얼마 전 펴낸 여행서 <바람이 되어도 좋아>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두고 “이제껏 내가 다녀온 그 어떤 여행보다도 철저하게 고독했다”고 말한다. 행복하면서도 힘들고 즐거우면서도 아프고 아득한 길이 바로 카미노 데 산티아고다.

산티아고 순례길 상품을 판매하는 신발끈여행사의 이재승 씨는 “요즘 산티아고 순례길에 관심을 갖는 연령대가 무척이나 다양해져 이 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실감한다”면서 “젊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계획해 긴 구간을 걸을 수 있지만, 혼자 여행을 하는 게 부담스럽거나 무거운 배낭을 메고 긴 여정을 소화할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여행사 상품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한다. 

여행사 상품을 이용하면 걸을 수 있는 코스가 100km 남짓이지만 순례자들의 숙소인 알베르게 대신 근처의 호텔을 이용하고 짐 운반 서비스도 해주므로 부담을 덜 수 있다. 

2009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해야 하는 친구, 배낭. 2009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일정, 비용, 체력에 따라 코스 선택
산티아고 가는 길은 여러 경로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길은 ‘카미노 데 프란세스’로 프랑스의 생 장 피드포르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까지 이어지는 774㎞의 길이다. 하지만 전 여정을 모두 걸을 수 없는 순례자들은 각자의 일정과 체력에 따라 출발지를 정한다. 

산티아고를 기준으로 사리아(Sarria)는 100km, 폰페라다(Ponferrada)는 200km, 레온(Leon)은 300km, 로그로뇨(Logrono)는 612km이다. 하루에 약 20~25km를 걷는다고 하면 사리아에서 시작하는 경우 약 4일, 폰페라다에서 시작하면 6~7일 정도 소요된다. 열흘 정도의 여유가 있다면 출발지와 도착지에서 보내게 될 2~3일을 제외하고 걸을 수 있는 날이 약 7일로 폰페라다 정도에서 시작하는 것이 알맞다.

짧은 구간은 사람이 많아 동료 순례자를 사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식당이나 숙소 등이 다소 상업화된 측면이 있고, 반대로 긴 구간은 순례객이 적고 상업화도 덜 되어 있지만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2009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다국적 친구들과의 만남도 순례길 도보여행의 매력. 2009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최소 출발 2~3개월 전부터 준비해야 일반적인 여행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부터 준비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순례도 여행은 여행이니 기본 준비사항은 비슷하다. 인터넷 카페나 협회 등에서 자료를 모으는 것은 기본, 미리 다녀온 사람들의 여행기도 도움이 된다. 

한편 도보여행이니 만큼 출발 전에 미리 체력을 다져두는 것이 중요하다. 체력은 필수이자 최소한의 준비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하루에 20~25km를 걷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 특히 평소 많이 걷지 않는다면 최소한 출발 2~3개월 전부터 연습에 들어가야 하며 2주일 정도를 앞두고선 비슷한 무게의 배낭을 짊어지고 걷는 연습을 하는 게 좋다. 관련 카페에는 출발을 앞둔 사람들끼리 코스를 정해 함께 걷는 모임도 있으니 이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카페 카미노(cafe.naver.com/cami no) 운영자에 따르면 “처음에 5km 정도로 시작해 서서히 거리를 늘려나가는 것이 좋으며 20~25km 정도의 거리를 몇 번 걸어보면 본인의 체력이 순례를 감당할 수 있을지를 알게 된다”며 “서울에서 순례 코스를 체험할 만한 곳으로는 한강시민공원, 원효대교~천호대교에 이르는 20km 정도의 길이 적당하다”고 덧붙였다. 

2009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하루의 순례를 마치고 맛보는 꿀맛 같은 맥주 한 잔. 2009년 4월. 사진 / 서태경 기자

경비는 얼마나 들까
대략적인 일정이 정해졌다면 가장 걱정되는 게 경비다. 어차피 보고 먹고 놀 요량으로 가는 여행이 아니니 자신만 잘 다독이면 최소 경비로 여행을 마칠 수 있다. 항공과 순례 출발지점까지 가는 교통비를 제외하면 숙박과 식사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숙박이 5유로, 아침식사 4~5유로, 점심과 저녁식사가 10~15유로, 하루에 대략 25~30유로 정도의 비용이 소요된다고 보면 된다. 물론 직접 조리해 먹으면 이보다 적은 비용이 든다. 

좀 더 간단한 방법은 순례길 1km당 1유로씩 계산하는 것이다. 생 장 피드포르에서 산티아고까지 약 800km를 32일 동안 걷는다고 하면, 하루 평균 약 25km를 걷게 되고, 비용은 25유로가 된다. 이렇게 계산하면 현지에서 드는 총비용은 800유로, 여유로 200유로 정도를 더 준비하면 큰 무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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