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전설여행] 영원한 사랑의 전설 안동 월영교 꿈속에서라도 만나면 이 다리 꼭 함께 걸어요
[전설여행] 영원한 사랑의 전설 안동 월영교 꿈속에서라도 만나면 이 다리 꼭 함께 걸어요
  • 손수원 기자
  • 승인 2009.04.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9년 4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소원과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월영교를 걷는 연인. 2009년 4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여행스케치=안동] ‘소원이 이루어진다, 사랑이 이루어진다’란 기대로 다리를 건너는 것을 흔히 ‘다리 밟기’라고 한다. 지금 연인과 함께 안동으로 가면 영원한 사랑을 이룰 수 있는 다리를 만날 수 있다. 영원한 사랑의 전설이 전해지는 월영교가 바로 그곳이다.  

2003년 안동댐 보조 호수를 가로질러 지어진 월영교(月映橋)는 총 길이 384m로 국내에서는 가장 긴 목책교이다. 나무다리라는 희귀성과 함께 호수와 함께 고풍스런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안동의 명물이 되었다. 월영교란 명칭은 안동댐 건설로 수몰된 월영대가 이곳으로 온 인연과 월곡면, 음달골이라는 지명을 참고로 붙여졌다.  댐이 있는 지역의 주민들이 그러하듯, 이곳 역시수몰된 지역의 이름을 남겨 추억을 회상하려 한 것이리라. 

하지만 나무로 지었기 때문에 한때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기도 했다. 다리를 세운 지 3년 만에 다리 상판이 썩는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2007년 10월부터는 통행이 전면 금지되었다. 안동 시민들은 혀를 끌끌 차며 부실공사의 표본이라며 손가락질했다. 

2009년 4월. 사진 / 손수원 기자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월영교. 2009년 4월. 사진 / 손수원 기자

그러던 것을 안동시에서 새로이 단장해 올해 1월부터 다시 시민에게 개방했다. 물안개에 어우러져 절경을 자아내는, 옛 모습을 다시 찾은 월영교에 관광객들의 마음은 차츰 누그러졌다.

관광객들이 월영교를 잊지 못하고 다시 찾는 이유는 이 지역에 살았던 이응태 부부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의 전설이 전해오기 때문이다. 연인들이 손을 잡고 이 다리를 건너면 영원한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을 만든 아름다운 부부의 전설은 이러하다. 

1998년, 400년 전 안동시 정상동에서 살았던 이응태라는 사람의 무덤을 이장하던 중에 한 편의 한글 편지가 발견되었다. 구구절절 애절한 사랑의 글귀가 적혀 있던 그 편지는 저 세상으로 먼저 간 남편 이응태를 그리워하며 그의 부인이 적어 무덤에 함께 넣은 것으로 412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었다.   

2009년 4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월영교 중간에 있는 정자인 월영정. 2009년 4월. 사진 / 손수원 기자
2009년 4월. 사진 / 손수원 기자
무덤에서 함께 발견된 미투리. 2009년 4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원이 아버지에게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중략…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을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주세요. …중략… 당신은 한갓 그곳에서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병술년(1586년)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원이 엄마라고만 알려진 부인의 애달픈 ‘사부곡(思夫曲)’은 현대어로 번역되어 이 세상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국내의 한 방송사에서는 ‘조선판 <사랑과 영혼>’이란 제목으로 이 사연을 전했으며 2007년에는 ‘Locks of Love’ 란 제목으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소개되어, 전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편지와 함께 한 켤레의 미투리도 같이 묻혀 있었는데, 그 미투리는 삼(麻)과 함께 원이 엄마의 머리카락으로 엮은 것이었다. 한 올 한 올 미투리를 엮으며 남편이 하루빨리 쾌유하길 기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야속하게도 부인을 두고 하늘나라로 먼저 가게 되었고, 부인은 남편을 따라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 있고자 자신의 신체 일부로 엮은 신발을 망부를 향한 편지와 함께 무덤에 넣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월영교의 정자에는 이 미투리 모양이 형상화되어 있다.

2009년 4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월영교를 걸을 후에 먹는 비빔밥이 진수성찬이다. 2009년 4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이러한 전설 때문인지 월영교에는 유난히 연인들의 발걸음이 잦다. 가운데 정자를 두고 양쪽으로 이어지는 나무다리는 凸 모양으로 튀어나온 부분이 있어 다리의 전체 모습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게 해놓았다. 잔잔히 물안개가 피는 날, 이곳에 서서 호수와 어우러진 다리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랑이 깊어질 것 같은 느낌이다. 

주뼛주뼛 거리를 두고 다리를 건너던 연인이 다리 중간에 이르자 이내 손을 맞잡는다. 월영교의 전설을 아는 것일까, 단지 호수를 가로지르는 나무다리 위에 서 있다는 두려움 때문일까. 그 이유야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두 연인의 표정에 잔잔한 미소가 피는 걸로 보아 아마도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려나 보다. 

월영교에서의 사랑의 속삭임은 밤에 더 아름답다. ‘달이 비치는 정자’라는 뜻의 월영정에 서면 달이 두 개가 된다. 하늘에 떠 있는 달 하나와 호수에 잔잔히 드리운 또 다른 달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보이는 모습은 두 개이지만 결국엔 하나의 달인 풍경을 바라보면 어느 연인이라도 그 분위기에 녹아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