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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탐방! 어촌체험마을] 도루묵 먹고 해돋이 보자, 강원도 양양 남애항
[탐방! 어촌체험마을] 도루묵 먹고 해돋이 보자, 강원도 양양 남애항
  • 최혜진 기자
  • 승인 2009.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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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도루묵 구이. 사진 / 최혜진 기자

[여행스케치 = 양양] 주문진과 하조대 사이에 강원도의 3대 미항 중 하나로 꼽히는 남애항이 있다. 한적해서 더욱 아름다운 항구는 지금 도루묵이 제철이다. 파도가 철썩이는 동해를 배경으로 알이 꽉 찬 도루묵 구이를 한 점 맛보면, ‘말짱 도루묵’의 어원마저 의심하게 될 것이다.

겨울이라 더 아름다운 ‘미항 중의 미항’
1984년 개봉한 영화 <고래사냥>은 386세대에게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대학생 병태(김수철)와 거렁뱅이(안성기)는 실어증에 걸린 창녀인 춘자(이미숙)의 고향을 찾아주기 위해 동해로 떠난다. 이들은 추위에 떨며 시골길을 걷다가 경운기를 얻어 타고 마침내 소박한 항구에 닿는다. 여기에서 검게 그을린 얼굴을 씻고 일출로 붉게 물든 아름다운 해변을 시원하게 내달린다. 이들의 젊은 열정만큼이나 아름다운 파도가 살아 숨 쉬는 해변, 그곳이 바로 남애항이다. 

남애항을 지키는 사이좋은 등대 형제. 사진 / 최혜진 기자
강원도의 3대 미항으로 꼽히는 남애항. 사진 / 최혜진 기자

하조대와 주문진 사이에 자리한 남애항은 물치항, 전진항, 수산항 등 양양의 수많은 항구를 제치고, 삼척의 초고항, 강릉의 심곡항과 함께 강원도의 3대 미항으로 꼽힌다. 그만큼 항구의 풍광이 아름다운 데다가 그 옆으로 크고 작은 갯바위가 어우러진 바다가, 또 그 옆으로 황금빛 백사장과 갈매기가 어우러진 해변이 있어 동해의 갖가지 아름다움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것들이 전국 각지로 뻗어나갈 알이 꽉 찬 도루묵. 사진 / 최혜진 기자

나른한 오후 햇살이 비치는 남애항의 바다엔 오고 가는 작은 배들로 분주하다. 눈에 띄는 것은 바다를 향해 양쪽으로 쭉 뻗어나간 방파제. 특이하게도 이 두 방파제는 뱃길만 남겨두고 둥글게 항구를 감싸고 있는 모양이다. 거친 파도로부터 항구에 정박한 배를 보호하기 위해 그리 만든 듯하다. 두 방파제 끝에는 쌍둥이 형제처럼 보이는 빨간 등대, 하얀 등대가 서 있는데, 보는 각도에 따라 떨어져 보이기도 하고 겹쳐 보이기도 해서 항구를 둘러보는 묘미를 더한다. 

포구에서 한참을 서성이는데 차디찬 겨울 바닷바람이 온몸을 때린다. 이럴 때에는 왠지 허기가 더 빨리 찾아오는 것 같다. 무슨 기대감인지 터벅터벅 걸음이 저절로 그물을 손질하는 아낙들의 곁으로 향했다. 뱃일을 마치고 들어온 어선 옆에 오늘 잡힌 고기들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굵은소금 팍팍 뿌려서 바삭하게 구운 도루묵, “한번 자셔보래요!” 사진 / 최혜진 기자

도루묵이 대풍이래요~
“이게 요즘 최고로 많이 잡히는 도루묵이래요. 옛날 이맘때쯤엔 명태가 수북했는데, 지금은 명태가 하나도 안 나고 대신에 도루묵이 많이 난데요. 여기 이만큼 줄 테니 저기 숯불에서 구워 묵어봐요. 입에 살살 녹을 끼래요.”
항구에 가득 쌓인 저 생선들이 모두 도루묵이란다. 옛날에는 이리 차이고 저리 차였다는 그 도루묵이 아니던가. 그런데 요즘엔 확실히 대접이 달라졌다. 명태가 사라진 틈을 타고 겨울철 동해안의 ‘황제’ 자리를 꿰찬 모양이다. 사람들도 겨울만 되면 도루묵을 찾아 동해로 몰려든다.

성황당 산책로에서 남애항이 한눈에 굽어보인다. 사진 / 최혜진 기자

일설에 의하면 임진왜란 피난길에 선조 임금이 이 도루묵을 맛보았다고 한다. 먹을 것이 귀한 피난길이어서인지 몰라도 선조는 그 맛을 극찬하며, 생선의 이름을 ‘흔한 생선’을 의미하는 ‘목어’ 대신에 ‘귀한 생선’을 뜻하는 ‘은어’로 바꾸라 명했다. 환란 후에도 그 생선의 맛을 잊지 못해 다시 찾았는데 아뿔싸, 그때 그 맛이 아니었다. 변덕스런 선조의 입맛 탓에 생선은 도로 ‘목어’라 불리게 되었고, 이런 연유로 현재 ‘도루묵’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애써 일을 끝냈는데 망조가 들어 그르친 상황’을 ‘말짱 도루묵’이라고 표현한다. 

도루묵은 휴가철이 끝나는 9∼10월부터 떼를 지어 나타나기 시작해서 11∼12월이면 본격적인 산란기로 접어든다. 알이 막 들어차기 시작하는 지금이 가장 맛이 좋을 때다. 

겨울 포구의 풍경을 담기 위해 남해항을 찾은 ‘출사족’. 사진 / 최혜진 기자

제철 도루묵을 한 바가지 얻어서 장작불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신선한 도루묵 위에 굵은소금을 팍팍 뿌려서 기름칠을 한 석쇠 위에 올려놓았다. 숯 향이 솔솔 퍼지면서 도루묵이 타닥타닥 먹음직스럽게 익어간다. 살이 연한 탓에 구울 때 계속 신경을 쓰지 않으면 석쇠에 들러붙어 살이 터지기 십상. 노릇해지기 시작할 때쯤에 조심스레 뒤집는데, 배 밖으로 툭 튀어나온 알집을 보니 침이 꼴딱 넘어간다. 어찌나 알이 실한지 만삭의 임산부처럼 배를 불룩하게 내밀고 있는 모양새가 재미있다. 

갈비를 뜯듯 도루묵의 머리와 꼬리를 잡고는 바삭한 껍질과 보드라운 살, 그리고 알까지 한입에 뜯어 그 ‘꽉 찬’ 맛을 오물오물 음미한다. 생선살이 연하고 부드러워 살짝 혀만 대어도 입 안에서 흔적도 없이 녹는 것 같다. 꿀처럼 끈끈한 점액질이 발린 알은 미끌미끌 입 안에서 돌다가 조근조근 씹으면 톡톡 터진다. 비리지 않고 담백한 맛이다. 

이른 새벽에 바다로 향하는 어선. 사진 / 최혜진 기자

이처럼 통째로 숯불에 구운 도루묵도 별미 중의 별미지만, 찬 바람에 꾸덕꾸덕 말렸다가 고추장 양념을 쓱쓱 발라서 노릇하게 구워도 맛있다. ‘알도루묵 찌개’는 또 어떤가. 마늘, 쑥갓, 고춧가루를 듬뿍 넣고 자작자작 매콤하게 끓여내도 그만이다. 겨울철 산란 직전의 도루묵은 어떻게 조리하든 ‘최고의 맛’이다. 하지만 때를 놓치면 ‘말짱 도루묵’이니 명심할것. 2~3월까지 나긴 하지만 1월까지가 맛의 절정이다.

추측하건대, 선조는 겨울에 먹었던 도루묵을 봄이나 여름에 다시 먹고는 “옛날 그 맛이 아니라” 불평한 것이 아닐까. 맛이 좋다고 이름까지 바꾸었던 생선을 단숨에 맛 없다 잘라버린 이유가 그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역시 장엄하고 아름다운 동해의 일출이다. 사진 / 최혜진 기자

화려하고 장엄한 동해의 일출
남애항은 새벽 풍경이 더 좋다는 주민들의 말에 이튿날은 일찍부터 항구로 나갔다. 새벽마다 양양에서 가장 큰 경매장으로 변신하는 항구는 이미 생선을 넘기려는 어민들과 사려는 상인들로 장사진이다. 이른 새벽, 경매장의 풍경은 언제 봐도 활기가 넘친다. 팔딱이는 방어며, 광어며, 쥐치들을 보니 저것들이 다 싱싱한 횟감인데 싶어 경매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다. 꼬들꼬들 신선한 육질을 자랑하는 자연산 횟감들이 눈앞에서 왔다갔다 하니 식욕을 참기 힘들다. 

부산한 경매장의 풍경 너머로 차츰 붉은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안타깝게도 수평선에 구름이 깔려 있어서 기다렸던 ‘오메가 일출(Ω)’은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구름 사이로 빼꼼히 고개를 내민 일출은 역시 화려하고 장엄한 동해의 그것이다. 역시 추암 일출과 함께 동해안 일출 명소로 꼽을 만하다. 

귀항한 어선에는 각종 물고기들이 가득! 모두 경매를 통해 주인을 찾을 것이다. 사진 / 최혜진 기자

남해항은 올해도 12월 31일 오후 6시부터 1월 1일 오전 10시까지 해맞이 행사를 연다. 이때는 마을 어민들이 모두 손님들을 배에 태우고 바다 한가운데로 나아가 새해 일출을 함께 본다. 또한 어촌계에서 새해 떡국을 비롯해 양미리, 도루묵, 꽁치 등 생선구이를 맛보이는 등 풍성한 행사를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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