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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전통을 찾아서] 여기는 '무형문화재 특구' 부천 공방거리
[전통을 찾아서] 여기는 '무형문화재 특구' 부천 공방거리
  • 최혜진 기자
  • 승인 2009.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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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 사진 / 최혜진 기자

[여행스케치 = 부천] 유형문화재와 달리 무형문화재는 전시할 수도 없고, 마땅히 만날 방법도 없었던 것이 현실. 하지만 이제 누구라도 박물관을 관람하듯 무형문화재를 만나고 체험할 수 있다. 지난 5월 무형문화재들이 모여 작품 활동을 벌이는 ‘공방거리’가 부천에 문을 열었다. 

문화인류학자 애머두 햄퍼트는 “구전 문화가 발달된 아프리카에서 노인이 한 명 죽으면 그 마을의 도서관이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고 했다.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무형문화유산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역시 유형문화재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이 다루어져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지난 5월,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무형문화재들이 한데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는 공방거리가 조성되었다는 것. 종종 민속 관련 박물관은 보았지만 이처럼 중요 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들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직접 관람할 수 있는 곳은 드물다. 더구나 무형문화재를 전시하는 차원을 넘어 관람객과 함께 호흡하고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 새롭다. 

경기무형문화재 제24호 배금용 씨의 나전경함. 가격이 무려 4350만원이다. 사진 / 최혜진 기자

송내역에서 버스를 타고 공방거리가 위치한 부천영상문화단지에서 내렸다. 부천영상문화단지는 문화산업의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지정된 33만㎡ 규모의 문화산업진흥지구다. 여기에는 드라마 <야인시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등을 촬영했던 세트장 ‘판타스틱 스튜디오’와 세계의 주요 건축물을 축소해 전시해놓은 ‘아인스월드’, 그리고 최근 새 문을 연 만화박물관 ‘뮤지엄만화규장각’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무형문화재의 작품 활동을 돕는 ‘공방거리’까지 더해져, 말하자면 각종 문화 공간이 집적된 ‘문화특구’인 셈이다. 

그런데 영상문화단지 내에서 공방거리 입구를 찾기가 쉽지 않다. 단지 내 어디쯤을 어슬렁거리다 보니 야무지게 짜인 철문  너머로 정갈한 한옥단지가 보인다. 분명 저곳이 공방거리가 맞는 것 같은데, 담을 따라 계속 걸어도 도무지 입구를 찾을 수 없다. 지나가는 이들에게 물어보니 판타스틱 스튜디오 입구로 가서 표를 끊어야 한단다. 공방거리를 찾아온 이들을 위해 안내판을 곳곳에 배치해 두었으면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판타스틱 스튜디오로 들어가니 70, 80년대 서울의 거리를 재현해놓은 세트장에서 영화를 촬영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 촬영 중이니까 좀 비켜주세요” 하는 소리에 놀라 화신백화점에서 왼쪽으로 자리를 피했는데, 다행히 그쪽이 공방거리 입구로 가는 길이다. 

궁시장, 악기장, 조각장 등 무형문화재의 한옥들이 모여 있는 공방거리. 사진 / 최혜진 기자

아직 ‘새집 냄새’가 가시지 않은 반듯한 한옥이 홀연히 모습을 드러낸, 여기서부터가 공방거리다. 몇 발자국 더 걸음을 재촉하니 600여㎡의 공간 안에 궁시장, 서각장, 악기장 등이 거주하는 한옥단지가 보인다. 먼저 입구에서 가까운 명품관에 발길이 닿았다. 

궁궐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명품관은 다른 한옥 동에 비해 규모가 크고, 지붕의 곡선도 유려하다. 명품관 안은 무형문화재들의 작품들이 빼곡하게 전시되어 조용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한춘섭 화각장이 만든 화각모란문 이층장이며 김문익 유기장이 만든 7첩 반상기와 수저 세트 등 각종 진귀한 전통 문화재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중에서 자개의 오묘한 색과 섬세한 무늬가 돋보이는 나전경함은 가격이 무려 4350만원! 마음속으로 ‘일, 십, 백, 천, 만’을 세다가 입이 떡 벌어졌다. 가격만큼이나 고급스럽고 세련된 자태에 눈을 떼지 못하겠다. 

명품관에서 몇 발자국 위로 궁시장 한옥동이 자리한다. 기둥이며 서까래며 촘촘한 문살까지 반듯한 한옥이 ㄱ자를 그리며 서 있다. 그 담대한 한옥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리니 그의 아들이 손님을 맞는다.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김박영 씨는 안채에서 남색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채 활을 다듬는 중이다. 

궁시장 김박영 씨의 한옥 공방. 사진 / 최혜진 기자

활을 만드는 사람을 궁장, 화살을 만드는 사람을 시장이라 한다면 궁시장은 활과 화살을 모두 만드는 장인을 일컫는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활 제작에 있어서만큼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 탁월한 솜씨를 가지고 있어서, 중국에서도 우리 민족을 활을 잘 만들고 잘 쏘는 동쪽의 민족이라는 뜻의 ‘동이(東夷)’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 오랜 전통이 전수에 전수를 거듭한 끝에 그의 야무진 손끝에서 다시 온전한 활의 모습으로 탄생한다. 

우리 민족이 활을 만든 역사가 이미 삼국시대부터 기록으로 남았다고 하니, 문득 한 가지 물음이 머릿속을 스친다. 얼마 전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덕만을 향해 겨누었던 그 활도 이와 같은 종류였을까.  
“그때는 신라시대였으니까 지금 내가 만드는 각궁(角弓)을 썼던 게 맞을 겁니다. 삼한시대의 맥궁이 삼국시대에 각궁으로 발전했거든요.” 

쇠뿔과 쇠심줄로 만든 각궁은 탄력이 좋아 화살이 멀리 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활의 손잡이 부분에 참나무를, 양끝은 뽕나무를 대고 중간에 죽심을 넣어 탄력을 유지한다. 또 그 안팎에 질긴 쇠심줄을 민어부레풀로 접착시켜 더욱 견고하고 탄탄하게 만든다. 재료의 종류부터가 만만치 않은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도 상상을 초월한다. 
“활 하나를 만드는 데 3000~4000번은 손이 가야 해요. 대나무 하나, 뿔 하나 다듬는 것도 15번씩 하고 풀을 바르고 또 말리고 다시 바르는 것만 해도 일주일이 걸리니까요. 아들이랑 나랑 둘이 부지런히 해도 만든 활이 1년에 100개를 넘지 못합니다.” 

활을 다듬는 장인의 손길. 3000~4000번 정도 그의 손길을 거쳐야 각궁이 탄생한다. 사진 / 최혜진 기자

끝이 날카로운 망치로 활을 깎아나가는 그의 옆에서 아들도 활을 다듬는다. 이렇게 둘이 열중하면 올봄부터 시작한 100개의 활이 내년 봄, 미끈하고 아름다운 곡선미를 자랑하는 무형문화재의 ‘각궁’으로 태어날 것이다. 더불어 활 만드는 기술은 자연스럽게 아버지에서 아들로 대를 이어 계승될 것이다. 

궁시장 한옥 건너편에는 서각장의 한옥이 자리한다. 덥수룩한 수염이 인상적인 경기무형문화재 제40호 이규남 씨가 벽에 걸린 자신의 작품을 배경으로 또 다른 서각 작품에 전념하고 있다. 

서각은 나무판에 글자나 그림을 새기는 서예와 조각을 결합한 전통 공예의 한 장르이다. 그가 이처럼 생소한 분야에 정진하게 된 이유는 뭘까. 
“고등학교 시절에 어느 절에 갔는데 스님이 목판을 뜬 작품을 보고 무슨 영문인지  기절을 했어요. 스님이 놀라서 물을 떠 먹여주어 정신이 들었는데, 그게 운명적인 인연인지 계속 그 작품이 눈앞에 아른거립디다.”

조각칼과 망치만으로 힘이 넘치는 필치를 살리는 서각장의 솜씨. 사진 / 최혜진 기자

서예의 평면적 예술과 조각의 입체적 예술이 절묘한 조화. 그 매력에 매료되어 서각을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단다. 하지만 혼자 문패를 새기며 터득한 기술로는 쉽지가 않았다. 방법이 틀린 탓인지 손이 자주 베이고 피가 맺히기를 수차례. 그러다 스승님을 만나고 한결 배움이 수월해졌다. 그렇게 서각에 ‘미친’ 30년의 세월이 지나고 나니 무형문화재의 자리가 주어졌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작품을 하고 나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어요. 주말에 어디라도 다녀오면 하루를 허투루 쓴 것 아닌가 싶어서 가슴 한구석이 영 허전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그는 칼과 망치를 놓지 않는다. 그의 칼이 지나간 자리에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힘이 느껴지는 글자가 남는다. 

서각에 사용되는 목판은 대추나무, 배나무, 가래나무, 박달나무, 자작나무 등이다. 대추나무는 단단하고 벌레가 잘 먹지 않고, 배나무는 연하고 칼질하기가 쉬워 각자를 하기 좋다. 그런데 좋은 나무를 골랐어도 바로 각자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닷물에 수년 동안 담가 진을 뺀 다음에 음지에서 서서히 말리면서 나무의 결을 삭히는, 이른바 연판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제야 비로소 글이나 그림을 새길 수 있는 ‘제대로 된’ 나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미세한 정으로 금속에 아름다운 무늬를 불어넣는 조각장 곽홍찬 씨. 사진 / 최혜진 기자

물론 그 위에 혼을 실어 조각을 하는 과정도 결코 쉬울 리 없다. 조각칼과 망치만을 이용해 선의 굵기는 물론, 힘의 강약을 섬세하게 표현해내야 한다. 그렇게 공을 들여 작품을 하나 만들고 나면 장성한 아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가슴속에 뿌듯함이 차오른다. 

“나도 외골수라는 소리를 듣는데, 여기 공방에 들어오니까 나보다 더한 선생님들이 많아요. 작품에 집중하지 않는 시간을 줄이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모릅니다.” 
무형문화재들과 한데 모여 있으니 이처럼 서로 더 나은 작품을 독려하는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터. 이러한 장점은 공방거리가 앞으로 무형문화재 부흥의 구심점이 될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서각장과 마주하는 한옥에서는 경기무형문화재 제39호 조각장 곽홍찬 씨가 미세한 정으로 금속을 조각하고 있다. 고대 금속공예를 재현하는 그의 작품실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화려한 금속공예품들로 가득하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조각을 접하게 되었다는 그는 벌써 3대째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 세월이 변하는 동안에도 변하지 않는 전통을 이어야 한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전통문화도 현대 사회에 맞추어서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문화의 형태를 굳이 고집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공방거리의 문은 항상 열려 있지만, 무형문화재들의 작품활동을 방해하지 않도록 반드시 에티켓을 지켜야 한다. 사진 / 최혜진 기자

물론 그 문화의 중심에서 무형문화재들이 제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국가가 기능자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은 홀로 묵묵히 작품 활동을 하라는 뜻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문화재를 전수하란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공방거리에서 열리는 ‘부천세계무형문화재엑스포’는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 일이다. 올해는 아쉽게도 신종플루 탓에 취소되었지만, 작년 한국, 중국, 일본, 터키, 러시아 등  국내외 팀이 참가해 전통문화의 전시와 시연, 체험 등 각종 문화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이같은 무형문화재 교류의 장은 전에 시도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인 만큼 앞으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도 도전장을 내밀 계획이다. 

조각장의 한옥동 너머로 악기장, 초고장, 나전칠기장, 자수장 등 문화재 기능전수자들의 작품 활동도 한창이다. 그들의 작품들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것은 물론, 단체 예약자에 한해서 각 무형문화재의 강습을 듣고, 직접 체험해볼 수도 있다. 

이렇게 무형문화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만난 작품들은 박물관 속에 박제되어 있는 문화재와는 엄연히 다른 ‘살아 있는 문화재’였다. 이처럼 공방거리의 문화재가 누군가의 가슴을 울리고 더 나아가 잠재력을 일깨운다면, 무형문화재들이 그토록 바라는 전수자를 찾을 날도 머지않은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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