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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감성 겨울 여행] 경기도 여주 오일장  ‘엣지’ 판치는 시대에 꼭 필요한 그곳!  
[감성 겨울 여행] 경기도 여주 오일장  ‘엣지’ 판치는 시대에 꼭 필요한 그곳!  
  • 송수영 기자
  • 승인 2009.11.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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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사진 / 송수영 기자
겉보리가 푸짐하게 바닥에 쏟아진다.  사진 / 송수영 기자

[여행스케치=여주] 역시 찬 바람이 그대로 옷깃을 뚫고 들어오는 노지(露地)의 오일장은 사실 쾌적함과는 거리가 멀다. 기분 좋은 음악에 덥다 싶을 정도로 빵빵하게 난방이 되는 대형마트엔 그야말로 게임이 안 된다. 그러나 오일장엔 독특한 매력이 있다. 굳이 시외버스까지 타고 먼 타지에서 찾아오는 단골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 

서울에서 한 시간 반 거리의 여주는 좋은 쌀이 많이 나는 곡창 지대로 알려져 있다. 수량이 풍부한 남한강이 중심에 흐르고, 주변에 높은 산이 적어 일조량이 많으면서도 일교차가 큰 탓이다. 여기에 건강한 황토 덕분에 고구마, 땅콩 등 밭작물도 넉넉하다. 그런 여주의 산물들이 매 5일과 10일 오일장에 풍요롭게 펼쳐진다. 

여주읍 중앙로를 따라 약 2km 거리에 늘어선 여주 오일장은 그 역사도 꽤 깊어서 일설에 의하면 고려시대부터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남한강 물줄기를 오가는 뱃사람들이 몰려들어 일대 시장이 크게 번성하였다고 하는데, 생각해보면 할머니의 할머니, 또 그 할머니까지 대를 이어 터전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꽤나 신기한 일이다. 

사진 / 송수영 기자
올겨울엔 꽃무늬가 대세인 거다. 사진 / 송수영 기자

현재는 약 350여 명의 장꾼들이 모이고 3000~5000여 명의 사람들이 찾는, 규모면에서 보면 수도권 일대에서 성남 모란시장에 이어 두 번째로 손꼽는다. 
 
장의 존재를 가장 먼저 널리 알려주는 것은 참기름 냄새다. 여주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시장을 향해 걸어가는데 바람을 타고 깨 냄새가 솔솔 코와 위를 자극한다. 차가운 바람에 잔뜩 위축되었던 몸에 그야말로 ‘기름기’가 돈다.   

참기름 냄새에 이끌려 시장 입구에 들어서니 주인은 온데간데없이 보이지 않고 고구마 한 박스가 길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 앞에 붙여진 흰 종이엔  ‘13000원, 할인판매, 배달 없음’이란다. 어른 주먹보다 큼지막한 고구마가 제법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모처럼 고구마로 유명한 산지에 왔으니 돌아갈 때 한 봉지 사가야겠다.

고구마 뒤로는 큰 포댓자루에 겉보리 판매가 한창이다.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 안 한다’는 속담으로 유명한 그 겉보리다. 조금 연세 드신 분들이라면 어린 시절 눈물겹게 많이 드셨을 테지만 솔직히 나는 처음 본다. 아까부터 한 할머니가 정신없이 검은 봉지에 겉보리를 퍼 담고 있다. 이렇게 잔뜩 사다가 싹을 틔워 엿기름을 만드시겠지. 그 엿기름은 달달한 조청이 되고, 또 고추장이 될 것이다. 요즘 세상에 직접 조청을 고고, 고추장을 담글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겉보리를 쓸어 담는 할머니의 두툼한 손이 새삼 대단해 보인다. 

사진 / 송수영 기자
보기만 해도 발목이 후끈후끈. 사진 / 송수영 기자
사진 / 송수영 기자
땅콩으로 유명한 여주. 찐 땅콩도 별미다. 사진 / 송수영 기자

그 몇 발자국 위로 아이들 장난감 노점이 발길을 잡는다. 그리 튼튼해 보이지 않는 소방차며, 갖가지 공룡이며 소꿉놀이가 좌판에 가득하다. 그러나 아이들이 많지 않은 것이 요즘 농촌의 실정인지라 주인장만 홀로 앉아 썰렁하다. 그러나저러나 원래 오일장이라는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유독 시골장의 장난감은 세월의 진화에서 비껴나 있다. 알록달록한 드레스를 입은 저 인형을 가지고 논 아이라면 세대 차이고 뭐고 나와도 말이 통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장 안으로 점점 들어갈수록 특유의 소음은 한층 높아진다. 
“자, 지난 장이랑 값이 똑같아요. 한 묶음에 3000원, 한 묶음에 3000원” 하는 양말 장수가 있는가 하면, “엄마, 이거 안 비싸요. 한번 사다가 잡숴봐” 하며 생면부지 할머니께 다짜고짜 딸 노릇을 하는 생선장수 아줌마도 있다.  
“여서 보네. 그래 집은 평안한가?” 하고 두세 걸음 떼기가 무섭게 아는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 이들도 오일장만의 풍경이다. 

강아지와 닭, 토끼 등을 파는 가축장에선 동물들이 연신 파닥댄다. 지글지글 ‘도나쓰’ 튀기는 소리도 한몫을 거든다. 막 튀겨 나온 따끈한 놈이 1000원에 3개란다. 시골 장에선 프랑스 최고급 푸아그라 요리 부럽지 않은 맛이다. 몇 주가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도 침이 꼴깍 넘어간다. 

누군가는 삶이 시들할 때 장을 찾는다고 말한다. 화장기 없는 민낯으로 드러나는 삶의 현장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바코드로는 찍을 수 없는, 수북이 쌓인 됫박의 인심 때문일 것이다. 

사진 / 송수영 기자
고소한 냄새에 안 사고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강정집. 사진 / 송수영 기자

시장 한 모퉁이에 자신의 밭에서 키웠다는 갓을 팔고 있는 할머니가 계시기에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이렇게 40년 세월이란다. 그 손바닥이 거북 등처럼 수십 갈래로 갈라져 있다. 그 속에 할머니 인생이 다 그려져 있는 듯하다.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주전부리하고 자질구레한 것들을 사는데 대개가 2000원, 3000원이다. 시골장에선 만원 한 장이 요리조리 쓸모가 많다.

햇살이 비치는 곳에선 상인들 둘셋이 옹기종기 모여 한뎃밥을 먹고 있다.

감 한 무더기를 사면서 한 개만 더 달라는 둥 안 된다는 둥 설왕설래다. 감 하나가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말을 섞으면서 서로 얼굴을 익혀 안면이 트이고 오랜 단골이 되는 것이다.

그 모습에 자꾸만 이끌려 돌아다니다 손에는 검정 비닐봉지가 하나 둘 늘어가고, 차가운 바람에 볼이 빨갛게 얼면서도 자꾸만 시장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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