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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추억 여행] 진주역의 추억 눈이 펑펑 오는 날, 진주역에서 부대원들 만난 사연
[추억 여행] 진주역의 추억 눈이 펑펑 오는 날, 진주역에서 부대원들 만난 사연
  • 손수원 기자
  • 승인 2009.11.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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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진주역 전경. 사진 / 손수원 기자

[여행스케치=진주] 개인적인 추억이기는 하나 내가 가장 애틋하게 생각하는 기차역이 세 군데 있다. 하나는 훈련소를 마치고 경찰학교 입소를 위해 들렀던 충주역, 대학 시절 MT를 다녔던 삼탄역, 그리고 어린 시절 기차를 처음으로 타본 곳이면서 ‘탈영의 추억’을 만들 뻔했던 진주역이 바로 그곳이다. 

“지금 눈이 많이 와서 부대 복귀 시간을 못 맞추겠는데 말입니다.”
“그건 니 사정이고, 1분이라도 늦으면 탈영으로 간주할 끼니까 알아서 정시에 딱 와라!”
9년 전 겨울, 나의 군대 첫 휴가는 폭설로 탈영이 될 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차가 다니지 않는데 날더러 어쩌란 말인가? 하지만 이등병 신분에 잔뜩 기가 죽어서 탈영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이 날 거라는 두려움에 뭔가 해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선 아는 분을 통해 지프를 얻어 타고 큰길로 나왔다. 아무래도 큰길엔 뭐가 지나가도 지나갈 거란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발목이 푹푹 빠질 만큼 눈이 온 상황에서 그 ‘뭐도’ 지나다니지 않았다. 찬 바람이 쌩쌩 부는데도 온몸은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첫 휴가를 나온 이등병 심장이 오그라들 판이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진주역 대합실. 사진 / 손수원 기자
사진 / 손수원 기자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진주역차량정비고. 사진 / 손수원 기자

“저 제가 군인인데, 가시는 데까지라도 태워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제가 영창 가게 생겼습니다.”
“진주까지는 갈 낀데, 어서 타쇼.”

정말 운이 좋게도 한 시간 만에 큰 화물트럭을 얻어 탈 수 있었다. 첫 휴가라는 말에 기사 아저씨는 ‘그럼 1분만 늦어도 영창 가게 생겼네’라며 한껏 겁을 주었다. 하지만 초조한 이등병에게는 그것이 도저히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눈길이라 위험한데도, 택시를 탄 것이 아닌데도 기사 아저씨에게 무리한 요구를 해댄다. “아저씨, 빨리 좀….”

친절하게도 아저씨는 나를 진주역 바로 앞에 내려주었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역으로 달려가니, 이게 웬일? 낯익은 얼굴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사진 / 손수원 기자
작은 식당이며 다방, 여인숙, 이발소 등 옛 풍경이 남아 있는 진주역 광장. 사진 / 손수원 기자

“최 상경님, 기차 있습니까? 늦게 가면 탈영이지 말입니다.”
“야, 기차는 한 시간 뒤에 있고, 이리 눈이 마이 오믄 해 떨어지고 들어가도 점호 시간만 맞추면 암말 안 하는데, 몰랐나? 행정반이 니 신뱅이라꼬 뻥칫는갑다. 가서 표나 끊어 온나. 아직 자리 마이 남았다카더라. 어리버리한….”

아, 그랬던 거다. 천재지변이었던 것이다. 복귀 시간을 늦출 수 있는 천재지변에 의한 상황…. 표를 끊고 역전 광장에서 하릴없이 기차 시간을 기다리고 있자니 눈에 익은 얼굴이 점점 늘어난다. 그렇게 기차 출발 시각이 가까워졌을 땐 부대원의 3분의 2가 진주역 광장에 모여 있는 듯했다. 진주에서 마산까지 가는 동안 밖에선 다시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두려움과 안도감이 교차해 잠도 오지 않았다. 그저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그리고 고참의 말대로 부대 복귀 후엔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9년 만에 진주역을 다시 찾았다. 이제는 예비군 훈련도 나가지 않는 예비역 7년차가 되었다. 눈이 와도 비바람이 불어도, 어떤 천재지변이 생겨도 ‘꿀릴 것 없는’ 민간인인 것이다.

나는 이렇게 변했는데, 진주역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부대원들이 서 있던 광장도 그대로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넓어 보였던 광장이 지금은 참 좁아 보인다. 번잡했던 풍경도 이제는 한가하기 그지없다. 어느새 주변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 진주역은 도심 속에 놓인 아담한 기차역이 되어버렸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진주역에선 화물열차가 여객열차를 대신해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역내로 들어가니 몇몇 할머니들이 기차 오는 시간을 기다리며 졸고 있다. 한때는 평상시에도 오가는 사람이 많아 앉을 자리도 없던 곳이었는데…. 굳이 세월의 무상함을 말하지 않더라도 쓸쓸한 기분이 들어 철길로 나선다. 

코스모스가 한창인 철길엔 사람 대신 꽃들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마침 하동으로 가는 기차가 들어오는데도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지 않다. 보따리를 인 할머니 세 분, 필시 섬진강 구경을 가는 듯 보이는 카메라를 든 여대생 세 명이 전부다. 기차는 약 1분간 7명의 승객을 내리고 5명의 승객을 다시 태우고 유유히 떠난다. 한가로운 분위기가 새삼 어색하다.

진주역은 공군에 입대한 사내들에게도 추억의 장소이다. 공군교육사령부가 진주에 있는 탓에 대한민국 공군이라면 한 번쯤은 진주역 광장에서 ‘더블 백’ 메고 군생활의 시작을 기다리던 추억의 장소이다. 민간 기차의 수는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공군장병들의 자대 배치 전 대기 장소는 진주역이다. 

서부 경남 교통의 중심지였던 진주역은 이제 고작 하루 상·하행 12대의 무궁화호 기차만이 서는 역이 되어버렸다. 하루에도 수차례 새마을 열차가 서울을 오가고, 목포에서 부산까지 쉴 새 없이 승객들을 실어 나르던 모습은 다시 찾아볼 수 없다.  

“서울서 통영까지 고속도로가 뚫리고 남해고속도로도 얼마나 길이 좋은교? 요즘 차 안 몰고 다니는 사람 있소? 사람 많던 진주역도 옛날이지 요즘은 진주역 앞에선 손님 한둘도 못 태운다니까. 조만간 KTX도 뚫린다 카던데, 그리 되믄 진주역도 옮기삐겄지 뭐.”

사진 / 손수원 기자
진주역 광장에 세워진 도로 연표. 사진 / 손수원 기자

역전에서 택시를 대놓고 바둑을 두던 기사들은 진주역은 이제 손님 태우러 오는 게 목적이 아니라 잠깐 쉬러 오는 곳이 되었다고 말한다.  

“추억도 좋지만 우선은 진주를 찾는 사람이 많아야 우리도 묵고 살지. ‘역전 손님, 귀한 손님’은 인자 옛말인기라. 손님이 있어야 귀한 손님인가 아닌가도 알지, 뭐.”
예나 지금이나 진주는 교통의 요지임에는 틀림없다. 대전-통영고속국도가 지나가고 남해고속국도도 지나간다. 2번, 3번, 33번 국도 등 진주를 관통하며 동서남북을 잇는 길도 여럿이다. 하지만 자동차 길이 발전하는 것에 반비례해 기찻길은 점점 쇠퇴했다. 택시기사의 말처럼 이젠 역전보다 고속터미널이 더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다시 찾은 진주역은 역의 생김생김이나 세련됨보다는 ‘역전의 추억’이 곳곳에 남아 있기에 여전히 아름다운 곳이다. 그나마 2012년경 삼랑진에서 진주까지 고속철도가 이어지고 신진주역이 들어서게 되면 이 역전의 추억은 영영 머릿속에서만 곱씹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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