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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황소영 작가가 본 드라마 지리산④] 불불, 불조심, 11월은 불조심 강조의 달
[황소영 작가가 본 드라마 지리산④] 불불, 불조심, 11월은 불조심 강조의 달
  • 황소영 여행작가
  • 승인 2021.11.16 1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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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나무 바위, 산에서 나는 것만 만질 수 있는, 현조
산불 장면만 30분 가량, 불조심 공익광고 캠페인
이강이 드론 날린 곳은 바래봉 입구, 산불 하산 권유한 곳은 노고단 대피소
바래봉은 지리산 내에서도 설경이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바래봉은 지리산 내에서도 설경이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여행스케치=지리산] 드라마 ‘지리산’의 딱 절반이 끝났다. 양선과 현조를 상대로 한 살인 시도는 있었지만 4화 감자폭탄 이후 계획적 살인은 더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계절은 겨울에서 봄이 되었고, 봄에서 순식간에 가을이 되었다. 현조가 신입으로 들어온 2018년은 끝났다. 2019년 2월과 2020년 봄을 오가며 7화가 시작된다.

현조, 지리산의 생령이 되다

이강(전지현 분)과 다원(고민시 분)은 레인저 중 한 명이 연쇄살인범일 수도 있다는 정보를 공유한다. 이강의 부탁으로 비번에도 지리산 곳곳을 누비던 다원은 현조(주지훈 분)의 생령과 마주하고 혼비백산해 뛰어온다. “혹시 이 사람이었어?” 다원이 본 사람이 현조임을 안 이강은 그녀를 데리고 현조가 입원한 병원으로 간다. 산에서 본 귀신이 병실에 누워 있는 선배라는 사실에 다원은 혼란스러워 한다.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애였어.” 이강의 말이 끝나면서 시간은 2019년 겨울, 두 사람의 부상 장면으로 돌아간다.

흰눈을 뒤집어 쓴 노고단 정상석.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흰눈을 뒤집어 쓴 노고단 정상석.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바래봉에서 주능선 일대를 바라보는 등산객.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바래봉에서 주능선 일대를 바라보는 등산객.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설산이 얼마나 위험한지 누구보다 잘 아는 애가 그날 왜 산에 오른 거니?”라는 2화 속 대진(성동일 분)의 물음과 “우린 그저 산을 지키려고 했어요. 그게 우리 일이었으니까요.” 이강의 대답처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진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하얀 설산에 부상을 당한 현조가 누웠다. 피투성이 현조는 자리에서 일어나 비담대피소로 가지만 선배 일해(조한철 분)는 현조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심지어 안개처럼 현조를 통과해 지난다. 현조가 선배를 따라 출렁다리를 건너려 할 땐 보이지 않는 막에 갇혀 더이상 진행하지 못한다. 또 다른 현조는 지리산에 갇혀버렸다. 지리산을 떠나지 못하고 헤맬 운명 말이다.

안개 같은 현조의 손이 사물을 잡기 위해 힘쓸 때마다 병원의 현조는 출혈로 상태가 악화됐다. 그렇게 둘은 같은 몸이면서도 다른 세상에서 어긋난 삶을 살고 있었다. 다만 “풀 나무 바위, 산에서 나는 거는 만질 수 있”는 현조는 막대기를 주워 실종자 위치를 알리고, 이는 휠체어를 탄 이강이 다시 레인저로 복귀하는 계기가 된다.

한때 양을 방목했던 바래봉 일대.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한때 양을 방목했던 바래봉 일대.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천왕봉을 오르는 사람들 뒤로 노고단과 반야봉이 보인다.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천왕봉을 오르는 사람들 뒤로 노고단과 반야봉이 보인다.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이번 화는 유난히 과거와 현재, 시간 변화가 많은 편이었다. 2018년에서 2020년을 오간 적도 있으니 2019년에서 이듬해인 2020년은 그나마 나은 건지도 모른다. 단지 동시간대에 봄꽃인 진달래가 피었다가 단풍이 들고, 단풍이 들었다가 봄이 되는 등 편집에 일관성은 없어 보였다. 자막은 2020년 여름으로 나오지만 배우들은 춘추복을 입었고 산도 아직 헐벗은 상태였다. 촬영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자연이 주요 배경인 만큼 아쉬운 대목이기도 하다.

7화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산불이다. 발화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지리산 일대에 큰불이 나 레인저들과 인근 주민들이 위험에 빠진다. 무엇보다 “초기 진화도 중요하지만 뒷불 감시도 중요해요.”라는 대사를 비롯 진화선, 화두, 수관화, 기계화장비 등 전문용어가 작정한 듯 쏟아졌다. 마치 불불 불조심, 11월은 불조심 강조의 달, 캠페인이나 공익광고를 보는 것처럼.

현조는 환영으로 봤던 산불조심 현수막을 찾기 위해 건강원 창고로 가지만 누군가 창고의 문을 자물쇠로 잠그고 불을 지른다. 세욱은 죽고 없어도 현조의 사무실과 방을 뒤진 사람도 있다. 두 사건의 범인은 같은 사람일까. 다행히 창고 안의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현조 자신도 탈출하지만 경찰이 왔을 땐 출입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화마가 만들어준 극적 화해
7화의 마지막 산불 장면을 이어 8화가 시작한다. 불 난 창고에서 탈출한 아이들은 산으로 피신하고, 소방인력이 갈 수 없는 산은 레인저들이 맡는다. 특히 이강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건강원 아이들을 무사히 구조해 내려온다. 뱀 불법포획으로 벌금까지 물게 된 건강원 남편이 감자폭탄으로 죽고, 남은 아내는 레인저와 각을 세우는 중이었다. 드라마의 흐름상 화해가 반드시 필요한데 화재와 구조로 두 갈등 세력은 화해에 이른다. 대신 ‘뱀아줌마’는 시청자들의 ‘밉상’ 캐릭터가 되었다.

지리산 계곡물에 반영된 늦가을 숲.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지리산 계곡물에 반영된 늦가을 숲.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가을과 겨울이 공존하는 11월. 지리산도 이제 겨울로 접어들었다.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가을과 겨울이 공존하는 11월. 지리산도 이제 겨울로 접어들었다.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이번 화에선 산불 장면이 30분가량 나온다. 초반 질타 일색이었던 CG는 산불 장면을 성공적으로 묘사하며 호평을 받았다. 커지는 산불과 저지하는 레인저들의 모습도 긴박감 있게 연출됐다. 활활 타오르는 장면에선 다들 가슴을 졸였다. 산불은 드라마 속 문제만이 아니다. 매년 이맘때면 전국의 산을 할퀴고 지나는 그야말로 화마다.

하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제대로 된 신발도 없이, 또 랜턴도 없이 한밤중에 산으로 오른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지리산자락에서 태어났으니 그럴 수도 있지만 일반화 할 순 없다. 사실 땅꾼도 없어진 직업 중 하나다. 어쨌든 드라마의 시간적 배경은 2019년, 2019년의 지리산 아이들은 도시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이들이 평소에도 자주 가는 곳, 이라고 설정했지만 요즘의 지리산 아이들은 산 깊은 곳으로 올라가 놀기보단 학원이나 방과후 프로그램, 집에서 컴퓨터를 하거나 TV를 보는 경우가 더 많다. 설령 산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해도 말이다.

아이들을 산으로 올려보낸 이유는 미국 재난영화 속 주인공처럼 산불 속을 뛰어다니며 구조하는 레인저의 활약상, 또 국민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희생정신을 부각하기 위한 장치였을까. 그밖에도 지역주민과의 대화, 구체적인 무장애 탐방 코스 설명 등 마치 국립공원공단의 대국민 브리핑처럼 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노고단이나 대원사 등 지리산 탐방센터마다 드라마 포스터를 붙이고 이벤트를 하는 등 대대적 홍보에 나선 건지도 모르겠다.

성삼재주차장에서 1시간이면 충분히 닿는 노고단대피소.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성삼재주차장에서 1시간이면 충분히 닿는 노고단대피소.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8화는 다원이 누군가에게 쫓기다 넘어지는 장면에서 끝난다. 범인은 누구일까. 공범이 더 있을까. 특별한 예지 능력을 가진 현조? 혹시 현조는 예지 능력 때문에 실종자를 본 게 아니라 본인이 범인이라 알았을까. “막아줘, 제발 막아줘”라는 애원은 자신의 살인을 멈춰 달라는 부탁일까. 아니면 제 곁에 귀신을 두고 싶은 김솔(이가섭 분), 그것도 아니면 초반부터 대놓고 노란 리본을 갖고 다닌 대진? 혹자는 경찰이다, 또다른 이는 구영(오정세 분)이다, 시청자 의견도 분분하다. 어쩌면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던 이강이 벌떡 일어나 사건을 해결할지도….

이제 드라마의 절반이 끝났다. 민족의 영산,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 지리산을 단순히 공단직원들의 산, 또는 살인사건의 현장으로 묘사한 건 제작진의 지리산 낭비다. 지리산은 매년 백만여 명이 찾는 산이고, 계절별로 다양한 풍경과 삶의 모습, 역사와 전설, (드라마 속엔 과태료 대상인 불법 산행팀뿐이지만) 산꾼들의 사연과 추억이 깃든 산이다. 남은 절반을 어떻게 풀어낼지가 드라마 성공의 관건이 될 것 같다.


TIP. 오늘 나온 장소는 어디?

지리산의 대표 철쭉군락지 바래봉.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지리산의 대표 철쭉군락지 바래봉.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7화 초반부, 이강이 휠체어에 앉아 드론을 날리며 다원을 걱정하던 장소는 바래봉 입구다. 화면에 잠시 운지사 이정표가 보인다. 바래봉은 5월 철쭉과 겨울 설경으로 유명한 봉우리다. 정상부는 스님의 밥그릇인 바리때를 덮어놓은 것처럼 둥글다. 예전엔 양을 방사해 키우기도 했었다. 산불 발생으로 등산객들에게 하산을 권유했던 곳은 노고단대피소이다.

INFO 대진의 시낭송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7화 단합대회와 8화 주민들과의 대화에서 대진이 연속으로 언급했던 시는 이원규 시인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이다. 가수 안치환이 곡을 붙여 노래로 만들기도 했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 아무나 오지 마시고 (중략)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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