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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황소영 작가가 본 드라마 '지리산' ②]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되다. 요구르트 범인을 찾아라!
[황소영 작가가 본 드라마 '지리산' ②]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되다. 요구르트 범인을 찾아라!
  • 황소영 여행작가
  • 승인 2021.11.04 02: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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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주민과 국립공원 직원과의 갈등 그려
드라마 촬영지, 무재치기 폭포와 남원 흥부골자연휴양림, 구례 상위마을 등
천왕봉에서 바라본 아침 운해. 사진 / 황소영 작가
천왕봉에서 바라본 아침 운해.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여행스케치=지리산] 지리산을 대표하는 단풍명소는 뱀사골과 피아골이다. 뱀사골은 드라마 ‘지리산’ 속 해동마을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곳이다. 이번엔 남원 뱀사골 대신 구례 피아골을 다녀왔다. 

단풍을 만나러 온 사람들도 ‘지리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귀를 쫑긋 세운다. “전 보다 말았어요. 무슨 전설의 고향도 아니고….” “그래? 난 재밌던데….” 산꾼들의 의견은 반으로 나뉘었다. 어쩌다 보니 11월 현재 tvN, OCN, JTBC 3사의 주말 드라마는 모두 추리극이다. 시청률만 놓고 보면 ‘지리산’은 타사의 경쟁작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높다.

지리산, 무고한 양민들이 학살되다
본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1화와 2화가 레인저와 그들의 임무인 조난자 구조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화부턴 살인사건, 그것도 연쇄살인의 서막이다. 

노고단 일출. 드라마에선 일몰 장면을 일출로 쓰기도 했다.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촛대봉의 일출.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천왕봉에서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금례 할머니(예수정 분)는 어렸을 적 어머니를 잃고 수시로 백토골에 올라 추모를 한다. 나무 둥치에 기대어 잠깐 잠들었다 깬 할머니는 음식 사이에 놓인 요구르트를 마시고 환각에 빠진다. 활활 타오르는 화염과 그 속에서 손을 내민 어머니, 지금의 자신보다 훨씬 젊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할머니는 그대로 계곡가에서 삶을 마감한다.

실제 6.25 전쟁 당시 지리산에선 수많은 양민학살이 자행됐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은 사람이 많았던 시기였다. 군인은 지켜야 할 제 나라 국민을 총으로 쏴 죽였다.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참 억울하게 죽었제. 밥해줬다고, 도와줬다고. 총 갖고 들이대면서 지고 가라 하면 지고 가야지, 안 죽을랑께. 그래 갖고 싹다 죽어부렸어.” 구례 원좌마을 이야기다. 80여 호가 살았지만 한 집도 남지 않고 전부 불에 탔다. 얼굴로는 시체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다. 구덩이 안의 시체는 입은 옷으로 찾아야 했다. 비단 이 마을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산청‧함양사건이 가장 대표적이다. 1951년 2월 7일, 지리산 고동재를 넘어 가현마을로 들어온 국군 병력은 주민과 가축을 강제로 내몰고 가옥을 불사른 것도 모자라 무차별적인 총살을 가했다. 인근 마을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체 위에다 불을 지르고 총검으로 확인 사살까지 했다. 

‘견벽청야’라는 작전명 하에 이뤄진 이 사건으로 빨치산의 끄나풀로 몰린 주민 4백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산청군 금서면엔 억울하게 희생된 주민들의 영령을 모신 합동 묘역 ‘산청‧함양사건추모공원’이 있다.

지리산의 겨울은 여느 계절의 꽃보다도 아름답다.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지리산의 겨울은 여느 계절의 꽃보다도 아름답다.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눈꽃 화려한 노고단의 겨울.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눈꽃 화려한 노고단의 겨울.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송진현의 책 《돌개바람》을 그대로 인용하면 “군인들이 아낙네들 보는 앞에서 남자들을 먼저 직이십니더. 그다음 여자들 있는 데로 와 앞산을 보고 앉으라고 했습니더. 인자 다 죽었구나 싶었지요. 총소리가 나더니 딸애를 감싸고 있는 내 손가락이 잘려나가고, 총알이 내 딸아이의 머리를 관통하고 말았습니더.” 당시 스물두 살이었던 이 여인은 그 자리에서 시부모와 다섯 살짜리 딸아이를 잃었다. 그렇게 민초 수백 명이 죽었고,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가족을 잃었다.

드라마에 나온 ‘총알나무’는 어쩌면 정령치 인근의 노거송에서 따온 건지도 모르겠다. 고기댐 앞에 상처 입은 늙은 소나무가 있는데 6.25 당시 주민들을 묶어두고 무차별 총격이 자행된 나무란다. 그렇게 생을 마감한 이들은 조금씩 잊히겠지만 아직도 탄환 자국에 시름하는 노거수는 묵묵히 그때의 참상을 대변하고 있다.

지리산 주민과 국립공원 직원
피아골은 지난해 여름에도 다녀온 곳이다. 그 이전에도 몇 번을 오간 곳이었다. ‘계곡출입금지’라는 안내판이 곳곳에 붙었다. 작년에도 이랬나? 정확히 기억할 순 없지만 아마 올해처럼 단호하진 않았을 것이다. 마치 울타리 안에 가축을 몰아넣듯 계곡마다 금줄을 치고 한쪽으로 몰아세운 것 같아 여간 아쉬운 게 아니었다. 

늦가을 정취 가득한 지리산의 둘레길들.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지리산의 대표적 산행 명소 피아골.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뱀사골은 해동마을의 공간적 배경이 된 곳이다.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뱀사골은 해동마을의 공간적 배경이 된 곳이다.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반달가슴곰 복원 명목으로 북한과 러시아 등에서 곰을 수입해 지리산에 풀었고, 영역 다툼에서 쫓겨난 곰들은 남쪽의 백운산과 북쪽의 가야산 등지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등산객의 안전과 환경보호, 성공적인 반달곰 복원을 위해 감시와 처벌이 많아진 건 사실이다.

“산이 지들 것인 것처럼 그렇게 잘난 척 하더니!” 건강원을 함께 운영하는 부부는 국립공원 내 불법 포획 현장이 이강(전지현 분)과 현조(주지훈 분)에게 적발돼 벌금 처분을 받는다. 벌금 낼 돈을 위해 다시 몰래 산으로 든 남자는 누군가 두고 간 감자폭탄에 의해 죽고, 온전히 어린 세 아이를 책임져야 할 아내는 해동분소 직원들에게 원망의 말을 쏟아낸다.

불법 포획은 엄연히 잘못 된 일이고, 건강원 남자의 적반하장도 합리화 될 순 없지만 적어도 나이가 10년 이상은 많아 보이는 마을주민에게 “왔다, 왔어. 어쩔 건데!” 혹은 “너 같은 게” 등으로 맞선 이강의 발언도 적절치 않다. 일부 국립공원 직원은 이른바 공원 내 절대 권력자의 ‘완장’을 차고 등산객을 하대하기도 한다. 

따라서 건강원 여주인의 대사 “산이 지들 것인 것처럼 그렇게 잘난 척 하더니!”는 결코 허투루 나온 말이 아닐 것이다. 무조건 막는 게 능사는 아니다. 부러 비법정탐방로를 다닐 ‘불법 산행팀’은 많이 줄었다. 지금의 마니아는 30여 년 전부터 다녔던 이들이고, 그들은 이제 등을 떠밀어도 깊고 외진 길을 선뜻 나서지 못할 나이가 되었다. 막지 않아도 길은 저절로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중산리에서 천왕봉 가는 길.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중산리에서 천왕봉 가는 길.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섬진강과 구례읍 조망이 좋은 노고단.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섬진강과 구례읍 조망이 좋은 노고단.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남원추어탕. 드라마는 주로 남원에서 촬영됐다.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남원추어탕. 드라마는 주로 남원에서 촬영됐다.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드라마 ‘지리산’ 속 현조는 2019년 사고 이후 1년째 병실에 누웠지만 마치 영혼 이탈자처럼 지리산을 헤매고 있다. “죽어서도 산에서 헤매다닐 팔자”라고 신내림을 받으러 왔던 아이는 현조에게 말한다. 행군 중 부하를 잃고 (요구르트 살해로 추정) 환영을 보게 된 현조, 그는 왜 피 묻은 설상복을 입고 지리산에 왔을까. 현조와 이강이 해결해야 할 연쇄살인범은 누구일까. 조난이 발생할 때마다 비번이었던 조대진(성동일 분) 혹은 손등에 다섯 개의 할퀸 흉터가 있는 세욱? 그것도 아니면 두 남자를 통해 작가는 지금 시청자를 현혹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TIP. 오늘 나온 장소는 어디?

드라마 속에서 사진으로 등장한 무재치기폭포. 수량이 적을 때라 아쉽다.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건강원 남자의 사망사고 후 국립공원의 책임이 커지면서 회의를 하는 장면이 있다. 그때 밖에서 회의가 끝나길 기다리는 정구영(오정세 분) 뒤로 폭포 사진이 보이는데, 대원사에서 치밭목 사이에 있는 무재치기폭포다. ‘무지개를 치는 폭포’라는 뜻으로 약 30여 미터다. 세트인 해동분소와 비담대피소는 남원 흥부골자연휴양림에 있다. 또 산수유로 유명한 구례 상위마을 등에서 촬영했다. 윤수진(김국희 분) 박사의 종복원센터는 구례에 있다. 드라마에서처럼 반달곰도 볼 수 있다.

INFO 용어 해설
환상방황(링반데룽)은 안개가 심한 숲이나 산에서 길을 잃어 같은 장소를 맴도는 현상이다. 똑바로 걷는다고 걷지만 계속 제자리로 돌아와 조난을 당한다. 드라마에선 3회, 행군 중인 군인이 실종되자 이강의 대사로 언급된다. “한낮에 들어가도 환상방황을 겪는 사람들이 많아요.” “한쪽 방향으로 돌면 환상방황이 시작된 겁니다.”라고.

산행 시엔 등산화와 스틱 등 안전장비를 갖추어야 한다. 사진 / 황소영 여행작가

해리포터로 유명한 다니엘 래드클리프 주연의 영화 ‘정글’에서 주인공은 남미 오지여행 중 길을 잃고 헤매다 누군가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안심한다. 하지만 그 발자국이 결국 같은 자리로 돌아온 자신의 흔적임을 알고 상심하기도 한다. 제3회 한국산악문학상 중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배두일의 ‘환상방황’은 지리산을 주무대로 하고 있다. “정말 이상하다. 귀신에 홀린 것 같애.” 소설 속 무진과 선혁은 노고단 돌탑을 2시간 반 동안이나 맴돌다가 산장지기의 도움으로 구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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