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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제주 오름과 숲] 반짝이는 옛 시절을 추억하며 걷는 길, 추억의 숲길
[제주 오름과 숲] 반짝이는 옛 시절을 추억하며 걷는 길, 추억의 숲길
  • 정은주 여행작가
  • 승인 2021.12.17 0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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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450~800m 지역에 이어진 숲길
제주의 옛 집과 생활 문화, 풍속을 엿보다
서귀포 치유의 숲 힐링 센터에서 족욕 체험
선조들이 오가던 옛길, 추억의 숲길의 모습.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여행스케치= 제주] 한라산 자락과 맞닿아 있는 추억의 숲길은 선조들이 지나온 삶의 궤적을 따라 걷는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숲속을 걷다 보면 저마다의 마음에 새긴 기억, 혹은 추억들이 새록새록 피어오른다.

추억의 숲길이라니. 누가 이리도 어여쁜 이름을 지었을까. 한없이 흘러가는 시간 앞에 영원한 것이 있다면 추억이라 불리는 삶의 조각들일 것이다. 추억의 숲길은 한라산을 배경처럼 두른 서귀포시 산간 지역에 자리한다.

해발 450~800m 지역에 이어진 숲길은 옛적 우리 선조들이 삶의 터전을 가꾸고 살아왔던 곳이다. 지금은 집터나 목축지, 통시 등이 미미하게 흔적만 남아 있다. 선조들이 오가던 옛길을 보존하고 역사 문화 학습장으로 조성하기 위해 2012년도에 이 숲길이 만들어졌다.

추억의 숲길 입구.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용암이 흘렀던 흔적이 계곡으로 남았다.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비밀스러운 입구를 지나 숲 속으로

추억의 숲길은 차들이 오가는 산록도로에서 바로 이어진다. 이정표가 있기는 하나 자칫하면 그대로 지나칠 수 있어 근방에 접어들면 서행하며 주위를 살피는 것이 좋다. 주차 공간이 협소하기 때문에 갓길에 세워두고 가야 한다. 숲길 입구는 누군가 숨겨 놓은 비밀 공간처럼 보인다.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자니 나무들이 빈틈없이 우거져 있는 한 귀퉁이에 추억의 숲길이라 쓰인 글귀 아래로 사람들이 나오고 들어간다.

신기하게도 입구를 지나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풍경들이 펼쳐진다. 작은 구멍을 하나 지나왔을 뿐인데 다른 세계로 건너온 듯 기분마저 새로워진다. 데크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작은 쉼터가 나타난다. 주민들이 쓴 시를 감상하며 몸을 풀기 좋다. 쉼터 입구에 노약자들을 위한 나무 지팡이가 준비되어 있는데 걷기에 다소 험한 구간들도 있어 꽤나 유용하게 쓰인다. 이용한 후에 다시 이곳에 놓고 가면 된다.

숲길 초입에는 겨울딸기 군락지가 있다.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암반으로 이루어진 계곡.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야자매트가 깔린 작은 오솔길이 추억의 숲길이란 이름처럼 정겹게 느껴진다. 빼빼하게 마른 키 작은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뤄 이색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숲길 초입 구간은 겨울딸기 군락이 자라나 있다. 땅에 붙어있는 겨울딸기를 보려면 허리를 굽혀 앉는 수밖에 없다.

여름에 꽃을 피우고 가을, 겨울에 열매를 맺는 겨울딸기는 옛 시절 이곳에 삶터를 일군 사람들에게 중요한 양식이 되었을 것이다. 한겨울 추위를 견디며 노상에서 자란 딸기 맛이 궁금했지만 열매를 맺은 것들이 없어 아쉬운 마음만 안고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연자골

야자매트가 깔린 구간은 전체 숲길 구간에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30분 정도 올라오면 옛 집터에 닿는다. 어린아이들과는 이곳까진 코스로 잡는 것이 무리가 없다. 여기까지는 걷기 어렵지 않으며 제주의 옛 집과 생활 문화, 풍속을 엿볼 수 있다.

하늘 높이 뻗은 삼나무.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옛날 이곳에 마을이 있었다.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이리저리 뻗어 난 나뭇가지들이 하늘을 덮어버릴 정도로 무성한 숲 속에 오래전 이곳에 정착했던 사람들의 흔적들이 보존되어 있다. 연자골이라 불리던 산골 마을에 4가구 정도가 모여 살았으며 화전과 목축, 사냥을 하며 생활한 것으로 추정된다. 네모난 형태로 남은 집터에는 이들의 고단했던 삶이 녹아들어 있다. 비록 터만 남아 실제 어떤 모습이었을지 떠올리는 것이 쉽지 않지만 척박한 환경을 헤쳐 나가며 살았던 사람들을 생각 하니 마음이 아련해진다.

통시는 제주의 옛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거 문화로 변소와 돼지막을 함께 조성한 제주의 전통적인 가옥 구조다. 통시는 보통 뒷마당 같은 잘 보이지 않는 야외에 두었으며 마당보다 깊게 바닥을 판 뒤 두 세단 정도 높게 긴 돌을 놓아 변소 공간을 만들었다. 통시에는 따로 지붕을 두지 않는데 이곳에 남아 있는 통시 흔적을 보니 반짝이는 별빛 아래서 볼일을 보는 기분은 어떨지 호기심이 들었다. 이외에도 말 방아와 밭담 등 여러 가지 흔적들이 남아 있다.

연자골은 1948년에 제주 4.3 사건 이후 사라져 버렸다. 당시 산간 마을 사람들은 토벌대를 피해 모두 해안 쪽에 있는 아랫마을로 피신을 갔는데 대부분 다시 돌아오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연자골 또한 사람들이 떠나버리고 난 뒤 폐허가 되어 이처럼 돌담들만 지키는 추억 속의 마을로 남았다.

사농바치 터.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숲 속 등대 같은 사농바치 터

마을 터를 지나면 나무뿌리가 뒤엉킨 돌멩이 투성이 길이 계속된다. 추억의 숲길은 경사가 완만한 까닭에 헉헉대며 오를 정도는 아니지만 발걸음이 편하려면 밑창이 단단한 트레킹화를 착용하는 것이 좋다. 가벼운 산행을 나선다는 마음으로 준비하면 된다. 추억의 숲길은 온전히 완주하려면 약 3시간 정도 걸린다.

걸음을 뗄 때마다 숲은 점점 더 울창해진다. 도로에서 불과 30~40분 정도 걸어 왔을 뿐인데 어느새 사위가 깊은 산중이 되었다. 숲길 초입에서 봤던 키 작은 나무들이 어느새 하늘 높이 쭉쭉 자란 굵은 아름드리 삼나무들로 바뀌어 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나무 둥치마다 이끼들이 두껍게 뒤 덮고 있어 마치 태곳적 원시림을 연상케 한다.

사농바치(사냥꾼)들이 쉬어가던 곳.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숲길과 나란히 이어진 계곡은 물이 흐르지 않아 바윗길을 이룬다. 암반이 갈라져 틈을 이룬 곳마다 작은 물웅덩이가 형성되어 있는데 물에 비친 풍경이 신비해 한참을 그 앞에서 떠나지 못했다. 아득히 먼 옛적에 용암이 흘러갔던 길을 두 발로 굳건히 서서 한 발 한 발 올라본다. 검은 실루엣을 남기며 멀어져가는 바위들이 켜켜이 쌓아 올린 기억의 창고 속에 살포시 자리를 잡는다.

계곡을 벗어나 조금 더 올라가면 사농바치(사냥 꾼) 터가 나타난다. 세월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되었지만 이곳에 남은 터는 앞이 트인 둥근 형태로 돌담을 쌓아 올렸다. 사람이 두서넛이 들어가면 꽉 차는 작은 공간이지만 비바람이 몰아치는 숲 속을 헤매던 사농바치들에게는 구명줄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언뜻 지나치기엔 얼기설기 보이지만 강한 태풍에도 쓰러지지 않도록 모양과 크기가 다른 돌들을 차례차례 얹어 가면 쌓은 지혜가 엿보인다.

거대한 삼나무와 대비되는 관광객.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편백나무 숲에서 추억에 잠기다

사농바치 터를 지나면 추억의 숲길은 한라산 둘레길과 겹쳐진다. 무오 법정사에서 출발한 한라산 둘레길은 편백나무 숲을 거쳐 돈내코까지 이어진다. 추억의 숲길은 편백나무 숲을 편도로 다녀온 뒤 온 길을 따라 내려가는 코스다. 편백나무 숲에 닿으면 두 갈래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한데 섞여 쉬고 있다.

쉼 없이 걸어온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맑고 청량한 공기를 온몸으로 느껴보자. 바람에 실려 온 향긋한 편백 향이 마음을 차분하고 편안하게 이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며 자연이 주는 선물을 맘껏 만끽하다 보면 복잡하던 머릿속이 말끔히 정리된다.

숲에서는 건강해지는 비결이 따로 없다.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평상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도 가져보자. 눈높이에만 맞춰져 있던 풍경들이 시야가 바뀌면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몸이 노곤해지며 옛 추억에 잠겨 꿈결을 헤매고 있을 때 팔랑거리며 떨어져 내린 이파리가 이마에 닿았다. 이제 되돌아가야 할 시간, 한결 가뿐해진 발걸음으로 올랐던 길을 따라 내려온다. 그 뒤로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내리며 반짝이던 옛 시절이 희미하게 흩어져간다.

 

서귀포 치유의 숲 힐링 센터.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족욕 체험을 할 수 있다. 사진/ 김도형 사진작가

TIP 서귀포 치유의 숲에서 힐링 타임

추억의 숲길 바로 옆에는 서귀포 자연 치유의 숲이 자리해 있다. 추억의 숲길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오래된 편백나무와 삼나무들이 가득한 이곳은 무장애 데크 길이 마련되어 있어 누구나 부담 없이 숲길을 걷거나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이 무척 넓고 탐방 코스도 많아 처음 방문 하다면 해설사와 동행해야 한다. 산림 치유 지도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좋다. 산림 치유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숲 속에 있는 힐링 센터에서 차를 마시거나 따끈한 물에 발을 담그고 쉬어가는 족욕 체험을 할 수 있다. 미리 신청하면 마을 주민들이 직접 만드는 차롱 치유 밥상도 맛볼 수 있다.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산록남로 2271

문의 064-760-3067

개관시간 4~808:00~18:00, 11~309:00~17:00

입장료 어른 1000, 청소년 600

* 산림 치유 프로그램이나 차롱 치유 밥상 등은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유동적 운영 중임.

 

INFO 추억의 숲길

주소 서귀포 치유의 숲 진입로 옆 동쪽 3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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