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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작고 아름다운 것들에 반하다. 천리포수목원의 봄
작고 아름다운 것들에 반하다. 천리포수목원의 봄
  • 민다엽 기자
  • 승인 2022.03.10 1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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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시 동백나무. 자세히 보면 같은 동백이라도 그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사진/ 민다엽 기자

[여행스케치=태안] 정원에서 필요한 것은 느린 걸음이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작고 아름다운 것들에 한참 동안 시선을 빼앗겼다. ‘자세히 보아야 더 예쁜’ 태안의 천리포수목원으로 봄맞이 산책을 나섰다. 여기저기 꽃망울을 터뜨리며 봄의 시작을 알린다.

천리포수목 원의 봄은 조금 특별한 매력을 뽐낸다. 수백 수천 개의 꽃송이가 군락을 이루는 장관은 볼 수 없지만, 정원 곳곳에서 숨죽인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꽃송이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느껴볼 수 있다. 같은 꽃이라도 그 종류만 수십에서 수백. 찬찬히 살펴보면 그 모양이나 향, 색깔이 전부 제각각인 점을 알 수 있다. 가까이서 보아야 그 매력을 오롯이 느껴볼 수 있다.

천리포수목원의 호숫가 전경. 사진/ 민다엽 기자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
충남 태안에 위치한 천리포수목원은 대한민국 최초로 민간이 설립한 수목원이자, 국제수목학회(IDS: International Dendrology Society) 가 인증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에 이름을 올린 명품 수목원이다. 무엇보다 천리포수목원이 특별한 이유는 인위적으로 가공하지 않은 생육환경을 꼽을 수 있다. 사람을 위한 수목원이 아닌, ‘나무들의 피난처’가 되길 원했던 설립자의 바람에서다. 바다를 낀 포근한 해양성 기후로 인해, 다양한 환경에서 서식하는 식물이 자생하고, 다른 지역에 비해 꽃도 빨리 피는 것이 특징이다. 게다가 여타 수목원과 달리 도입하는 식물의 이력을 철저히 관리하는 점도 돋보인다.

저세히 보아야 예쁘다. 사진/ 민다엽 기자
작고 아름다운 설강화의 모습. 꽃말은 '희망'이다. 사진/ 민다엽 기자
수줍게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는 복수초. 사진/ 민다엽 기자

천리포수목원에는 자생식물을 포함해 전 세계 36개국 327개국 기관 에서 들여온 1만5600여 종의 다양한 식생이 살아간다. 특히 목련과 호랑가시나무 개체는 세계 식물학계에서도 인정받은 천리포수목원의 대표 나무다. 그중 목련류는 세계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많은 개체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곳에 있는 목련의 품종만 무려 600종이나 된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특히 설립자인 민병갈 선생이 파종 실험중 얻은 변종 목련인 ‘라스베리 펀’은 그의 이름과 함께 세계 목련 도감에 올라 있기도 하다. 매년 4월 목련 축제가 열릴 때면, 수백 종의 목련이 만개한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조금씩 푸릇하게 변해간다. 사진/ 민다엽 기자
마스크를 쓴 방문객들이 꽃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 민다엽 기자

나무들을 위한 피난처
눈길이 닿는 곳마다 소박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유럽식 정원처럼한 곳에 꽃이 잔뜩 몰려 있는 것이 아닌, 저마다 편한 자리에서 수줍게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러한 수목원의 배치는 어떤 형식에 얽매이기보다 자연 그대로의 상생을 좋아하던 민병갈 선생의 의도가 반영된 부분이다.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이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재미가 있다. 꽃도 좋지만 조금씩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나무들의 모습도 이 시기에 놓쳐선 안 될 관전 포인트다. 생기를 머금은 나무의 순수함이 마음속 깊게 와 닿는다. 본래의 모습대로 자라길 바라는 차원에서 ‘가지치기’ 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 서해 바다를 낀 천리포수목원은 다른 수목원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썰물때 길이 들어난 낭새섬.
멸종위기 식물을 볼 수 있는 전시 온실. 사진/ 민다엽 기자
동백나무 ‘시곤 와비수케’. 사진/ 민다엽 기자

숲과 바다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것. 나무 데크를 따라 탁 트인 바다를 감상하며 걷다 보면 꽃과 나무, 바다의 향기가 한데 뒤엉켜 독특한 향취를 낸다. 해안 산책로를 따라 조성된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 묵어가는 것도 좋은 여행 방법. 정면에 보이는 작은 섬은 ‘낭새섬’이란 이름을 가진 무인도로, 시시각각 변하는 섬의 모습을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밀물 때는 보이지 않다가 썰물 때는 섬으로 향하는 길이 난다.


멸종위기 식물전시원에서는 가까운 장래에 절멸될 위기에 처해 있는 귀중한 야생식물을 만날 수 있다. 천리포수목원은 환경부가 지정한 ‘서식지 외 보전기구’로서 2006년부터 멸종위기야생식물종을 증식하고 보전하는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 위기종(*2017년 기준. 5년 마다 갱신)은 267종이며 식물은 88종이다. 이 중 희귀 특산식물 29과 56속 65종을 전시·보전하고 있다.

설립자 민병갈의 생애를 엿볼 수 있는 전시관. 사진/ 민다엽 기자

 

나는 3백 년 뒤를 보고 수목원 사업을 시작했다. 나의 미완성 사업이 내가 죽은 뒤에도 계속 이어져 내가 제2조국으로 삼은 우리나라에 값진 선물로 남기를 바란다.

푸른 눈의 한국인 민병갈

연못 너머 초가 형태의 건물은 이곳의 설립자인 민병갈 선생을 기리는 공간이다. 푸른 눈의 한국인이 한 평생 쏟아온 나무에 대한 열정과 업적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관으로, 그의 이력과 생전 그가 사용 했던 가구나 집기류 등이 전시되어 있다. 민병갈 선생은 광복 직후 미군 장교로 우리나라에 첫발을 디딘 뒤, 57년을 한국인으로 살아왔다. 한국의 자연과 전통에 심취되어 1979 년 우리나라에 귀화해 본격적으로 수목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사재를 털어 태안 바다 앞 18만 평 규모의 부지를 매입하고 해외와 전국 각지에서 꽃과 나무를 공수해 정원을 가꿨다.

민병갈 흉상
노랗게 핀 납매. 사진/ 민다엽 기자
풍년화 ‘루비 글로우’는 충남에서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야생화다. 사진/ 민다엽 기자

그는 단순히 나무 심기에만 열중한 것이 아니라, 한국의 나무와 식물을 세계에 전파하는 학술적인 노력과 한국의 식물학 발전을 위한 연구에도 열성을 다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02년 3월 정부 로부터 금탑 산업훈장을 수여 받았으며 2005년에는 국립수목원 ‘숲의 명예 전당’에 헌정되기도 했다. 그는 2002년 4월 평생을 연구하고 수집한 학술자료와 소장품을 ‘우리나라’에 기증하고, 81세의 나이로 이곳 천리포수목원에 잠들었다.

유려한 해안선을 가진 만리포 해변. 사진/ 민다엽 기자

 

'만리포니아'로 불리는 만리포 해변
천리포수목원에서 만리포 해변까지 해안길이 이어진다. 유려한 해안 선과 서해같지 않은 고운 모래, 붉게 타오르는 석양까지, 이곳이 ‘만리포니아’란 별칭이 붙은 까닭이다. 마치 캘리포니아의 해변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경치와 서핑을 즐기기 좋은 환경 때문에 늘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커다란 양푼에 조개가 가득 들어간 해물칼국수. 사진/ 민다엽 기자

해안가를 따라 다양한 식당이 늘어서 있는데, 그중 해변가 가장 안쪽에 홀로 자리 잡은 너울횟집은 현지인들도 인정하는 ‘진짜 맛집’으로 꼽힌다. 지난해에는 TV 프로그램 <식객 허영만의 백반 기행>에 소개 되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곳의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커다란 양푼에 해물이 듬뿍 들어간 해물칼국수와 진한 고소함이 일품인 전복죽. 두 눈을 의심케 하는 엄청난 비주얼에 입보다 눈이 더 즐겁다. 바다를 향해 열려있는 실내에서 탁 트인 바다를 배경 삼아 식사를 즐길 수 있다는 점도 낭만적이다.

 

천리포수목원은 대한민국 최초로 민간이 설립한 수목원이다. 사진/ 민다엽 기자

INFO

천리포수목원
운영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오후 5시 라스트 오더) 주소 충남 태안군 소원면 천리포1길 187 천리포수목원 문의 041-672-9982

만리포 해변
주소 충남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

만리포 해변 가장 안쪽에 있는 너울횟집. 사진/ 민다엽 기자

너울횟집
영업시간 오전 7시~오후 10시 메뉴 해물칼국수 1만원, 전복죽 1만 5000원 주소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만리포2길 2 문의 041-674-7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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