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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소문난 먹거리촌 ①]달콤한 맛으로 유명세 떨친 양념 소갈비 포천 이동갈비촌
[소문난 먹거리촌 ①]달콤한 맛으로 유명세 떨친 양념 소갈비 포천 이동갈비촌
  • 박상대 기자
  • 승인 2022.04.13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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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갈비는 포천을 대표하는 먹거리다.
이동갈비는 포천을 대표하는 먹거리다. 사진/ 여행스케치

[여행스케치=포천]이동갈비는 포천을 대표하는 먹거리다. 포천에서 군대생활을 했건 여행을 하건 포천 이동갈빗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이동면 장암리에 형성돼 있는 ‘이동갈비촌’. 달달한 양념에 숙성시킨 두툼한 소갈비를 맛보고 왔다. 

포천 이동갈비촌 주변에는 산정호수, 허브아일랜드, 백운계곡 등 여행지가 많다. 사진은 백운계곡.
포천 이동갈비촌 주변에는 산정호수, 허브아일랜드, 백운계곡 등 여행지가 많다. 사진은 백운계곡. 사진/ 여행스케치

군인과 면회객을 통해 입소문 난 달달한 맛 

‘물을 안은 고장’ 포천(抱川) 북부 지역에는 수려한 계곡 을 품은 높고 낮은 산줄기가 끝없이 이어진다. 그중 백운 산과 광덕산 사이로 흘러내리는 백운계곡으로 이어지는 47번 국도를 따라가면 이동면사무소를 지나자마자 이동 갈비촌에 닿는다. 지역의 이름을 붙여 전국으로 명성을 떨친 포천 이동갈비가 시작된 이동면 장암리다. 포천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이동갈비가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 데는 군부대가 밀집한 지역적인 특성이 크게 작용했다.

1960년대 초 이동면에 ‘이동갈비’집이 문 을 열어 군인들에게 싼값에 맛있는 갈비를 넉넉히 판매 한 것이 시초다. 당시 포천일대 육가공업체에서 군부대에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납품 했는데, 값이 비싸서 잘 팔리지 않았다. 육가공업자들은 음식솜씨가 좋은 마을사람에게 갈비를 싼값에 넘길 테니 요리를 해서 팔아보라 고 권했다. 이때 양념한 갈빗살을 굽기 좋게 포를 떠서 꼬치로 만들 어 판매한 것이 포천 이동갈비의 시초다. 당시 포천일대에는 참나무숯을 만들어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이 많 이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숯불갈비가 탄생한 것이다. 숯불에 갈비를 구워 먹을 때 나는 냄새는 유난히 강렬하다. 그 냄새는 주변 사람들 까지 갈빗집으로 불러들였다. 결국 휴가나 외박 나온 군인들은 너나없이 갈비구이를 먹었고, 면회 온 가족들이 군인들에게 사주면서 전국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포천시 이동면에 있는 포천 이동갈비촌 거리풍경.
포천시 이동면에 있는 포천 이동갈비촌 거리풍경. 사진/ 여행스케치

수십 년 명성을 지키고 있는 이동갈비 

1970년대까지 주로 돼지갈비를 팔았는데 1980년대 들어 사회·경제 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한우갈비가 등장했다. 그래도 당시 소고기 를 풍족히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래서 갈빗대를 반으로 쪼개 갈비와 살을 붙여 푸짐하게 참숯에 구워내는 이동갈비가 전국 적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만 해도 소갈비를 쉽게 먹는 집이 거의 없었죠. 양념 맛도 특이 하고 양도 많은 이동갈비를 못 잊어 제대 후에도 찾아오는 군인들이 많았대요. 그런데 이곳 군부대의 상징적인 존재였던 8사단이 다른 곳 으로 이전해버린 뒤로 동네가 텅 빈 느낌입니다.” 한웅 포천시 문화관광해설사는 군부대의 이전으로 지역경제가 위축 된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게다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여행객이 줄면서 이동갈비촌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그래도 47번 국도 주변에 약 100곳, 이동갈비촌에 15곳 남짓 이동갈비가 성업중이다. 

포천시 이동면과 47번 국도 주변에는 포천이동갈비 전문음식점이 100곳 이상 있다.
포천시 이동면과 47번 국도 주변에는 포천이동갈비 전문음식점이 100곳 이상 있다. 사진/ 여행스케치

 

일동면 장암삼거리에 다다르자 포천 이동갈비 간판을 단 음식점들이 보인다. 먼저 시선을 끌어간 간판은 김미자할머니·김근자할머니·송 영선할머니 등 할머니들 이름이다. 놀라운 것은 여러 음식점에서 주차 관리하는 아저씨들이 도로변에 나와서 손님들을 호객하고, 어떤 집은 갈빗집을 찾은 가족이나 친구 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다른 고장에선 거의 사 라진 호객행위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과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도 음식을 먹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광경이 놀랍다. 한 해설사는, 예전에는 진짜 손님들이 끝없이 줄을 서서 갈비를 먹었다고 한다. 면소재지를 벗어나자 다닥다닥 붙어 있던 갈빗집 대신 주차장이 넓 고 건물이 반듯한 이동갈비전문점들이 들어서 있다. 백운계곡 입구 를 지나도 몇 집이 더 이어진다. 40년, 50년 전통을 자랑하는 음식점 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변함없는 그 맛, 두 번째 는 추억을 더듬어 찾아온 손님들이다. 

군대서 막 제대한 남자들은 걸핏하면 “군대 이야기하지 마라, 군대 쪽으로 서서 오줌도 누기 싫다”고 말한다. 그런데 술만 마시면 여기저 기서 군대 이야기를 하고, 세월이 흐르면 그 시절 그 부대가 생각나 고,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이야기가 외박 나와서 먹었던 음식이나 술 이야기가 주종을 이룬다. 그 음식 중에 ‘달콤하고 고소한 포천 이동갈비’는 이 지역에서 군대생활을 한 모든 남자들의 기억 속에 강렬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포천 이동갈비촌은 정량제 판매를 한다.
포천 이동갈비촌은 정량제 판매를 한다. 사진/ 여행스케치

정량제 판매로 믿고 먹을 수 있는 이동갈비 

포천 이동갈비는 두 종류다. 1990년대 이후 거의 모든 음식점에서 돼 지갈비 대신 소고기를 판매하고 있다. 갈비는 생갈비와 양념갈비로 나뉜다. 소고기는 주로 미국산이다. 한때 한우고기를 판매하기도 했 으나 고기를 손질하는 과정에서 기름을 제거하면 절반쯤 버려야 하 고, 그러면 수익률이 맞지 않았고 수급 물량도 부족했다. 반면 미국 산 갈비는 딱 필요한 갈비 부위만 수입되는 데다 육질이 한우보다 부 드러워 구이용으로 적절했다. 게다가 원가가 저렴하니 손님에게 줄 수 있는 양도 많았다. 1인분에 500g 이상을 주는 집도 있었으니 온 가족이 모여 소갈비로 배를 채 워도 가계에 큰 부담이 없었다. 

양념맛과 기본 반찬, 서비스는 집집마다 다르다.
양념맛과 기본 반찬, 서비스는 집집마다 다르다. 사진/ 여행스케치

현재는 원료육을 비롯한 모든 식자재의 값과 인건비, 세금까지 올라 예전만큼 양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1인분에 350g. 물가 상승률에 비 하면 그래도 여전히 푸짐한 양이다. 과거에는 1인분에 갈비 10대로 가 격을 책정해 식당 주인의 상술에 따라 고기양에 차이가 있었지만, 지 금은 정량제로 판매하고 있어 믿고 먹을 수 있다. 밑반찬과 서비스, 실내장식과 주변환경만 각기 다를 뿐 면소재지 포 천이동갈비거리를 벗어나 넓은 주차장을 두고, 세련된 건물을 지어서 갈비를 판매하는 음식점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고 한다. 여행도 하고, 시들어가던 추억도 되살려보고, 맛있는 갈비도 먹고 싶 은 봄날 포천 이동면으로 가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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