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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해안누리길 여행]차가운 역사 넘어 봄날을 걷다
[해안누리길 여행]차가운 역사 넘어 봄날을 걷다
  • 김소연 기자
  • 승인 2022.04.13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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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해안선을 따라 있는 성곽.
강화도 해안선을 따라 있는 성곽. 사진/ 여행스케치 

[여행스케치=강화]강화도 해안선을 따라 기다란 성곽이 있고, 군데군데 돈대가 있다. 그 돈대와 성곽을 따라 강화나들이를 나섰다. 한강 하구에서 조선의 관문을 지킨 강화도, 슬프디슬픈 역사와 찬란한 고려문화를 창조한 곳에서 봄길을 걷는다. 

강화나들길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구경할 수 있다.
강화나들길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구경할 수 있다. 사진/ 여행스케치

슬픈 역사 속에 꽃핀 찬란한 문화유산 

강화도는 몽골의 침략을 피해 39년간 고려의 왕궁이 있던 곳이며, 서구 열강의 집요한 공격을 최전방에서 막아냈던 섬이다. 당시 강대 국의 침략을 피해 궁궐을 옮긴 슬픈 역사를 간직한 땅이지만 우리 민족의 빛나는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 목판본을 만든 곳이다. 강화도에는 우리가 아는 아픈 역사와 자랑스러운 문화가 깃들어 있 고, 아름다운 해안선과 뭇 생명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강화도에는 섬의 다양한 풍경을 담은 걷기 좋은 길 ‘강화나들길’이 있다. 모두 19개 코스가 개발되어 있는데 이는 인천의 둘레길 가운 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그중 대표적인 코스가 ‘호국돈대길’이 다. 섬 동쪽 해안을 따라 갑곶돈대~용진진~용당돈대~화도돈대~ 오두돈대~광성보~용두돈대~덕진진~초지진까지 15.4km를 잇고 있다. 시작지점부터 끝지점까지 경사가 완만하여 걷기에 편하고, 구 비마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쌓여 있다. 

조선시대 총포가 돈대마다 전시되어 있다.
조선시대 총포가 돈대마다 전시되어 있다. 사진/ 여행스케치

100년 전 한 선비가 앞장 서 걸은 ‘강화나들길’ 

‘강화나들길’이란 이름이 생기기도 한참 전 이 길을 먼저 걸었던 선 비가 있다. 강화도에서 나고 자란 선비 화남 고재형은 환갑 나이에 나귀를 타고 고향 강화를 둘러보았고 그때 느낀 감상을 256편의 시 와 산문으로 남겼다. 요즘 유행한 강화도 나들이길 가이드북인 셈이 다. 이것이 <심도기행>이다. 심도는 강화도의 옛 이름. 외래 문명이 홍수처럼 밀려들던 시기, 당장 내일의 운명을 알 수 없는 시기에 강 화도가 이렇게 아름다웠노라고 글로서 후세에 전하고자 했다. 

“이름은 건평이지만 물 많은 수평인가 

둑에 가득 봄물 차니 논에 물을 대기 좋다. 

밭 갈면서 책 읽는 이 모두가 군자이니 

그러한 가운데서 맑은 기운을 얻는구나.” 

- 화남 고재형 <심도기행> 中 ‘건평동’ - 

1906년 화남이 집필한 <심도기행>은 100년이 지난 2008년 전체가 완전하게 번역됐다. 그 안에는 강화의 역사뿐 아니라 산천과 풍류가 오롯이 남아 있어 글 몇 줄 읽는 것만으로도 눈앞에 생생한 그림이 그려진다. 이를 기초로 조성된 것이 강화나들길이다. 그중 2코스인 호국돈대길은 강화대교 부근 갑곶돈대에서 초지대교 부근 초지진까지 이어진다. 갑곶돈대는 고려가 강화도로 천도한 뒤 몽골군대로부터 왕궁을 방 어한 요새였으며, 훗날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을 물리친 방어진지로 서 강화도에서 첫손에 꼽히는 성지다. 돈대에서 조선시대 대포 2문 을 구경하고 길을 걷는다. 갑곶돈대에서 발걸음을 옮기자 왼쪽으로 강화해협의 갯벌이 펼쳐진 다. 밀물일 때는 갯벌이 잠길 것이다. 운이 좋으면 갯벌에서 천연기 념물 저어새들이 먹이사냥을 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고 한다. 

호국돈대길을 걷다보면 여러 성곽을 마주할 수 있다.
호국돈대길을 걷다보면 여러 성곽을 마주할 수 있다. 사진/ 여행스케치

얼마나 많은 군인과 백성들이 목숨을 바쳤을까? 

호국돈대길을 따라 3km를 가자 동그란 성곽으로 조성된 용진진이 나온다. 조선시대 군인 100여 명이 지킨 곳이다. 다시 3km를 가자 화도돈대가 나온다. 이 길에는 진과 돈대와 보가 반복해서 자리하고 있다. 그 시대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고생한 군인과 백성들의 흔적이 몇 백 미터 간격으로 옛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역경에 굴하지 않았 던 선조들의 투혼을 짚어보는 17km의 여정은 누구라도 각별하지 않 을 수 없다. 

포탄을 맞은 소나무.
포탄을 맞은 소나무. 사진/ 여행스케치

1866년 초, 흥선대원군은 천주교 금압령을 내려 프랑스 신부와 천 주교 신자 수천 명을 학살했다. 이때 프랑스 선교사 열두 명 중 아 홉 명이 처형되었는데 그해 10월 “선교사 아홉 명을 살해했으니 조 선인 9,000명을 죽이겠다”는 포고문을 발표하며 프랑스의 대함대가 쳐들어왔다. 현대식 무기로 중무장한 프랑스군은 김포의 문수성을 먼저 점령하고 강화도마저 함락한 후 전등사 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고서적을 강탈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 때 양헌수 장군이 갑곶돈대를 통과해 프랑스군을 기습 공격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재래식 무기를 가진 조선군이 현대식 무기를 가진 서양 침략자들을 격퇴한 것이다. 결국 프랑스군은 이미 탈취해놓았 던 고서적 345권을 약탈해서 물러갔다. 

초지진항은 어촌뉴딜사업으로 새롭게 변신할 예정이다.
초지진항은 어촌뉴딜사업으로 새롭게 변신할 예정이다. 사진/ 여행스케치

외국 군함이 맘대로 다닐 수 없게 한 광성보와 초지진 

광성보는 강화의 해안 경계 부대인 12진보 가운데 하나다. 1658년(효 종 9년)에 처음 설치되었고 1871년(고종 8년)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 한 격전지였다. 초지진과 덕진진을 거쳐 광성보에 이른 미군은 상륙 전 포격으로 광성보를 초토화시켰다. 이미 병인양요 때 광성보에 근 무한 바 있던 어재연 장군은 포격을 피할 안전한 장소에 군사들을 숨겼다가 상륙하는 미군에 맞섰는데, 그만 무기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하고 만다. 그러나 미국이 전투에서 승리하고도 전쟁에 서는 패배한 사건이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장어구이.
장어구이. 사진/ 여행스케치

초지진은 광성보와 마찬가지로 신미양요 때 미군과 격렬한 전투를 치른 곳이자 1875년 일본이 인천항의 개항을 요구하며 쳐들어온 운 양호 사건 때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다. 당시 초지진을 지키던 조 선군이 일본군을 물리쳤다. 강화도 해협을 통과하지 못한 일본군은 철수하면서 영종도에 화마를 퍼붓고 물러갔다. 호국돈대길의 종착 지인 초지진은 장자평돈대, 섬암돈대를 포함한 구역을 일컫는 말이 다. 초지돈대 안에는 외국 군대와 싸울 때 사용하던 실물 대포가 전 시돼 있으며 노송과 성벽 어귀에 당시의 포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어촌뉴딜사업으로 초지진항 일대가 크게 정비되고 있다. 주변에 고급 펜션도 많이 있고, 아름다운 조망권을 확보한 카페나 음식점도 여러 군데 자리잡고 있다. 김포 대명포구와 마주하고 있는 초지진에 회센터가 있다. 

 


강화도 주변 추천여행지 

  • 옥토끼우주센터 

우주과학을 테마로 한 국내 최초의 항공우주과학 테마파크. 어린이와 부 모가 함께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우주 체험, 야외 공원에서의 휴 식, 공릉의 숲 산책, 사계절 썰매 등으로 다양한 추억을 쌓아보자. 

위치 인천 강화군 불은면 강화동로 403 문의 032-937-6917~9 

  • 성공회강화성당 

‘절간 같은 교회’로 불리는 이색적인 성당. 1900년 대한성공회의 초대 주 교인 코프(C. J. Corfe)가 세웠다. 현존하는 한옥 교회 건물로 가장 오래된 이곳의 외관은 불교 사찰의 형태를 띠고 내부는 서유럽의 바실리카 양식 이 쓰였다. 

위치 인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336 문의 032-934-6171 

  • 동막해변 

활처럼 휘어진 동막해변은 길이 200m의 해변으로 소나무에 둘러싸인 천 혜의 경관을 자랑한다. 물이 빠지면 4km까지 갯벌이 드러난다. 멀리 인 천국제공항까지 조망할 수 있으며 일몰 시간 전후로 아름다운 낙조를 감 상할 수 있다. 

위치 인천 강화군 화도면 동막리 문의 032-937-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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