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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전라북도 최대 규모의 5일장 익산 북부시장
전라북도 최대 규모의 5일장 익산 북부시장
  • 김수남 여행작가
  • 승인 2022.06.1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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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노신사가 왕사탕을 보더니 '오다마'라고 외친다.
지나가는 노신사가 왕사탕을 보더니 '오다마'라고 외친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여행스케치=익산]호남평야와 금강을 품고 있는 익산은 예부터 곡창지대로 이름이 높았던 곳이다. 거기에 호남선·전라선·장항선 등 세 개의 철도가 지나면서 익산의 북부시장은 전라북도 안에서 규모가 가장 큰 5일장으로 성장했다.

북부시장은 상설시장과 정기시장을 겸하고 있다.
북부시장은 상설시장과 정기시장을 겸하고 있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옛 왕도의 영화를 꿈꾸는 익산

익산은 왕궁리유적과 미륵사지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백제 고도이다. 백제 무왕(?~641)의 왕궁이 있었으며 당시 고대 동아시아 문화 교류의 중심을 차지할 정도로 번영을 누렸다. 세계유산의 도시로서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익산이지만 상처가 없었던 건 아니다. 특히, 1977년에 있었던 ‘이리역 폭발사건’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리(솜리)는 익산의 옛 이름인데 이리역 앞에서 화약을 가득 실은 화물기차가 폭발하여 약 1,400여 명의 사상자를 냈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급박한 상황아래, 당시 근처에서 공연을 하던 인기 절정의 가수 하춘화 씨를 무명의 코미디언이었던 고(故) 이주일 씨가 업고 뛰었다는 일화는 두고두고 후세에 회자되기도 하였다. 여파는 오래가서 한동안 ‘이리’하면 ‘폭발사고’가 자동으로 따라붙을 정도로 부정적인 느낌이 컸었다.

북부시장 상설시장 모습.
북부시장 상설시장 모습.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결국 이리시는 1995년에 익산군과의 통합을 계기로 ‘익산시’라는 새로운 이름을 달았다. 세월이 약이라고, 개명 후에도 꽤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달라붙던 이리는 점차 잊혀졌다. 이리 북부시장이라고 불렸던 북부시장도 이젠 익산 북부시장으로 정착이 되었다. 북부시장은 상설시장이면서 매 4일과 9일에 열리는 정기시장을 겸하고 있다. 언제, 누가, 어떻게 정했는지 모르겠지만 북부시장 5일장을두고 성남 모란장, 동해 북평장과 함께 우리나라 3대 5일장이라고 한다. 북부시장 상인들은 우리나라에서 성남 모란장 다음으로 크다는자부심도 갖고 있다. 옛날에는 어떠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 규모가 많이 줄어들었다. 줄줄이 들어온 대형마트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라남도가 순천 아랫장이라면 전라북도는 익산 북부시장이라고 단언할 만큼 전라북도 안에서는 제일 규모가 큰 5일장인 건 틀림없다.

장터 꽃 가게도 인기다.
장터 꽃 가게도 인기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북부시장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역사적, 지리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익산은 위로는 금강, 아래로는 만경강이 지나가는 호남평야를 품고 있어 예로부터 곡창지대로 이름 높았고, 또 그만큼 산물도 풍부하였다. 거기에 호남선·전라선·장항선이 지나가는 등 교통의 요지인 것도 한 몫을 하였다. 사람이 모여들고 물자가 풍족하면 시장은 흥하기 마련이다.

40년 되었다는 광주호떡.
40년 되었다는 광주호떡.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12년 만에 다시 만난, 불난 호떡집

싱싱한 채소나 제철 과일, 옷이나 신발 같은 공산품들까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5일장이지만 그중에서도 오랫동안 인기를 끌던 북부시장 명물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짜장면과 호떡이다. 장날에만 노점영업을 하며 서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짜장면 가게는 몇 해 전 익산의 고향마을로 들어가 번듯한 식당을 개장하며 정착하였다. ‘호떡집에 불났다’라는 말을 장날마다 증명해 주었던 호떡집 역시 노점이나 다를 바 없던 가건물을 벗어나 십여 년 전 ‘광주호떡’이란 큰간판과 함께 시장 안 번듯한 건물로 자리를 옮겼다. 돈 세어볼 정신도 없이 무조건 팔기만 했다며 “무조건, 무조건이야~”하는 트로트 노래로 덩실덩실 흥을 냈던 문오순(82) 씨는 다시 만난 십 년 남짓 사이에 경영권을 딸에게 물려주고 2선으로 물러나 있었다.

광주호떡 먹는 법.
광주호떡 먹는 법.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40년. 40년도 넘었쏘! 처음엔 1개에 50원씩 했어. 그러다 인자 100원씩 팔다, 천 원에 4개 팔다, 3개 팔다, 2개 팔다, 인자 1개 천 원 팔아요. 첨엔 밀가루 한 포에 4,000원 인가 했었어. 안 쓰고 모탰으면 빌딩도 지었겠지만. 애기들 다 키워서 시집, 장가보내고 돈에 구애 안 받고 살았지, 그럼 된 거 아니요?” 사업장을 옮기기만 한 게 아니다. 직장을 다니던 사위가 경영에 합류하여 지금은 딸과 사위가 함께 운영하고 창업주 문오순 씨는 장날에만 나와서 도와주고 있다. 청양고추를 비롯하여 여러 재료를 활용한 비법 소스가 들어간 신 메뉴 ‘매운 호떡’도 뒤늦게 경영에 합류한 사위의 작품이다. 호떡은 기름에 튀겼음에도 기름이 적어 그리 느끼하지 않고 쌓일 틈 없이 바로바로 내어주니 채소나 어물처럼 싱싱해서 맛있을 수밖에 없다. 호떡 전용 접시에 담아서 나오는 것도 특징인데 집게와 가위를 활용해 잘라서 먹는, 이 집 나름의 먹는 법도 있다.

오랫동안 인기를 끄는 비결을 물으니, 딸 염윤남(51) 대표는 특별한 맛의 비결보다도 친정어머니의 마음이 담겨있는 추억의 맛에 시장 사람들이 사랑을 주는 것 같다고 겸손해 한다. 실제로 나이 지긋한 손님들이 많다. 할머니와 함께 나온 손자, 친구들끼리 장 구경을 나온 아낙들, 시어머니와 며느리로 보이는 일행도 앉았다 일어선다. 할아버지가 호떡을 일일이 가위로 잘라서 올려놓으면 할머니는 이 호떡을 오물오물 받아먹는, 오랜 단골인 듯한 노부부도 보였다.

우리집 떡맛이 최고.
우리집 떡맛이 최고.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여유가 느껴지는 가격표.
여유가 느껴지는 가격표.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5일장에서 희망을 찾다

장날 때마다 와서 노점을 펼쳐놓고 양말을 파는 김옥철 씨도 북부시장 5일장 덕을 많이 보는 사람이다. 좌판을 펼쳐놓고 10켤레에 6,000원짜리 양말을 팔지만 그는 양말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어엿한 제조업체 사장이다. “사장은 영업을 다녀야지, 공장에 앉아 있으면 망해요!” 사장님이 왜 시장에서 노점을 하냐고 의아해하니 펄쩍 뛰며 말한다. 그의 공장은 정읍에 있지만 북부시장에 빈 가게를 하나 얻어놓고 장날마다 와서 가게 앞에다 좌판을 펼친다. 북부시장뿐 아니라 홍성장, 보령장, 군산 새벽시장 그리고 위로는 당진까지도 올라간다고 한다. 젊은 시절, 박스공장에 취직했었는데 5년 만에 그만두고 2.5톤 트럭을 장만하여 양말 사업을 시작했다는 그는 어언 30년 양말인생이라며 자랑스레 웃는다.

양말노점이라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제조업체 사장이 직접 가지고 온 물건들이다.
양말노점이라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제조업체 사장이 직접 가지고 온 물건들이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양말은 소비가 많은 대표적 소모품이죠. 죽을 때까지, 사람이 살아있는 한 양말은 계속 신어야 하잖아요!” 그가 말하는 양말의 시장성은 스마트폰이나 전기자동차 못지 않다. 대형 유통업체가 속속 들어오고 정보화시대 트렌드에 맞는 새로운 유통채널이 등장해도 시장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성실하게, 억척스러운 삶으로 맞서 싸우고 있다. 그런 열정과 희망이 북부시장을 지키는 동력일 것이다. 시장사람들이야말로 세계유산도시 익산의 또 다른 보석이다.


<여행쪽지>

시장 맛집 부광족발

북부시장에서 핫한 음식으로 돼지꼬리양념구이가 빠질 수 없다. 웬만한 족발 마니아들조차도 생소해하지만 독특한 양념과 어우러진 쫄깃하면서 부드러운 맛이 별미다. 김오영 대표는 ‘생선은 머리가 맛있고 육고기는 꼬리가 맛있다!’라고 주장한다. 북부시장에 처음 터를 잡은 게 2012년인데 지금은 체인점을 5개나 둘 정도로 성장하였다.

돼지꼬리양념구이.
돼지꼬리양념구이.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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