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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도깨비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군산 새벽시장
도깨비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군산 새벽시장
  • 김수남 여행작가
  • 승인 2022.07.11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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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새벽시장의 모습.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군산 새벽시장의 모습.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여행스케치=군산]군산선은 군산역이 군산화물역으로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그러다가 2010년에 이르러 내흥동에 새 역사가 들어서면서 장항선에 편입되었고 급기야 옛 역사는 철거되었다. 철마는 멈췄지만 삶은 계속된다. 도깨비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새벽시장은 노점 중심의 시장임에도 오랜 세월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다.

새벽 첫 손님은 상인에게도 손님에게도 조심스럽다.
새벽 첫 손님은 상인에게도 손님에게도 조심스럽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철마는 멈췄어도 삶은 이어지니

군산선. 호남선이나 장항선은 익숙해도 군산선은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지금은 사라진 군산선은 일제강점기 뼈아픈 역사의 산물이다. 일제는 임피평야와 옥구평야에서 생산되는 양곡들을 수탈하여 본토로 가져가기 위해 전주에서 군산까지 길을 크게 넓히고 포장하였다. 오늘날 벚꽃길로 유명한 전군가도는 그때 그렇게 태어난 우리나라 최초의 아스팔트 포장도로다. 넓은 포장도로로도 부족해 일제는 이리(현, 익산)에서 군산까지 철도도 새로 놓았는데 이것이 1912년에 개통된 군산선이다. 군산선은 한 해 약 60만 명이 이용할 정도로 번성한 적도 있었으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역사가 소실되었고 1960년에서야 다시 복구되었다. 기차역이 들어서고 사람이 몰리면 그 앞에 덩달아 흥하는 것이 있으니 홍등가와 시장이다. 군산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회가 발달하고 도시 정비가 되면서 홍등가는 사라졌지만, 시장은 계속 성황을 이루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공설시장이 있었고 해방 후에는 역전시장이 생겨났다. 지금도 옛 군산역 일대에는 역전종합시장, 공설시장, 신영시장, 양키시장 등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군산공설시장의 젓갈 상점.
군산공설시장의 젓갈 상점.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10년 전 폐업했다는 톱 전문점 간판 서체가 톱을 연상시킨다.
10년 전 폐업했다는 톱 전문점 간판 서체가 톱을 연상시킨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이들 상설시장과는 별개로 새벽시장도 있다. 새벽시장은 새벽에 반짝하고 열렸다가 아침에는 사라진다고 하여 ‘도깨비시장’이라고도 불리는데 일제강점기에도 있었을 정도로 역사가 오래되었다. 인근 익산이나 전주 등에서 보따리장수들이 기차를 타고 군산역 앞으로 모여들어 새벽시장을 만들었다. 쌀농사를 짓는 사람은 쌀을 가지고 와서 팔고 생선 같은 어물을 사서 돌아갔고, 생선 장수는 쌀이나 채소 등을 사서 돌아갔다. 모든 것들이 새벽 잠깐의 일이었다. 군산 새벽시장은 언제부터 열렸을까? 1930년대 군산을 배경으로 한 채만식의 장편소설 <탁류>에 새벽 정거장 앞에서 촌사람들이 지고 오는 채소를 사는 대목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는 적어도 90년 이상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어둠이 가시기 전인 새벽 4시부터 장이 열린다.
어둠이 가시기 전인 새벽 4시부터 장이 열린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새벽 4시, 하루를 여는 사람들

군산 새벽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 좌판을 펼치는 시간은 보통 새벽 4시 전후다. 6시에서 7시 무렵이면 절정을 이루다가 8시에서 9시면 파장한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같은 휴일에는 장 보러 나오는 사람들이 훨씬 많지만, 평일의 새벽시장 인파도 웬만한 도시의 대표 오일장보다 규모가 크다. 시장이 형성되는 곳은 옛 군산역이 있었던 광장부터 그 앞 골목들을 포함하여 군산화물역 사거리 농협 맞은편 일대이다. 농협 맞은편 첫 번째 골목은 군산 앞바다에서 올라온 싱싱한 해물이 많이 등장하는 어물전이다. 제철인지 갑오징어도 많이 나오고 다른 곳에서 보기 쉽지 않은 까치복이나 노랑가오리 등도 보인다. 그다음 골목은 채소와 과일 등이 많이 나오는 채소전이다. 고창은 수박이 유명한데 현지에서도 3만 원 가까이하는 고창 수박이 이곳에선 1만 원, 1만 5000원 가격표를 달고 있다. 새벽시장 특성상 신선도를 다투는 싱싱한 농수산물이 많이 나오고 있어 일반 잡화전은 거의 없다는 것이 보통의 오일장과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날이 밝아오면서 손님들이 많이 늘었다.
날이 밝아오면서 손님들이 많이 늘었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오일장도 아니고 매일매일 열리는 장인데도 사람이 그리 많을까 싶은데 새벽같이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6시가 되니 채소전 골목 사이로 시내버스 첫차가 지나간다. 옛날에는 기차를 타고 왔겠지만, 지금은 대부분 시내버스와 자가용 손님들이다. 또 의외로 많은 시민이 운동 삼아 걸어 나온다. “아침에 뭐 물어보기도 그런데 새우 얼마요?” 첫 손님이 하루 재수를 좌지우지한다는 속설 탓인지 어둠이 가시기 전에 나온 손님들은 유난히 조심스럽다. 채소전 골목의 ‘새서울미용실’ 간판이 내걸린 상가 앞에다 좌판을 펼친 전선주 씨는 어엿한 미용실 원장님이다. 미용실 문을 열기 전인 새벽 시간을 활용해 가게 앞에서 감자, 오이, 토마토, 깻잎 등의 농산물을 팔고 있다.

미용실 원장님도 새벽시장 셀러로 나섰다.
미용실 원장님도 새벽시장 셀러로 나섰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이거 뭐 빠끔살이죠. 10년은 조금 못 되고. 장사도 공부처럼 배워지는 것 같아요. 실컷 배워서 그만 놓기가 아까워 계속하게 되네요. 돈을 벌고 안 벌고를 떠나서.” 부업으로 농산물 파는 것을 ‘빠끔살이’에 비유한 전 원장은 가족들이 말린다면서, 그런데도 큰 욕심 안 내고 ‘우리 먹는 거 떨어진다(남는다).’라는 마음으로 좌판을 펼치고 있다. “미용실은 참 오래 했죠. 고등학교 졸업하고 이것만 했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공부에는 취미가 없고 멋 내는데 취미가 있어서...” 이야기가 인생 역전으로 흐르고 있는데 옆에서 좌판을 펼친 상인이 한마디 거든다. “여기 돈 없어서 장사하는 할머니들 하나도 없어. 다 많아. 오히려 돈 없는 사람들이 이런 거 안 해.”

견공도 손을 거들고 있다.
견공도 손을 거들고 있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역전시장에서 양키시장까지

옛 군산역 앞의 역전시장과 군산공설시장, 신영시장, 양키시장은 간판만 다를 뿐이지 모두 한곳에 몰려있어 하나의 시장이라 봐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그중 가장 오래된 공설시장은 일반 재래시장과 달리 3층과 옥상에 주차장까지 완비한 현대식 마트형 건물을 가진 게 특징이다. 미군의 주둔으로 활성화된 도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양키시장은 어떤가. 미군 부대에서 어찌어찌 흘러나온 미제 상품들을 주로 거래했었는데 그중에서도 군복은 단연 인기 품목이었다. 과거 성황을 이룰 때는 100여 개 점포까지 있었으나 지금은 많이 쇠락하여 10여 개 점포에서 빅사이즈나 밀리터리패션의 의류제품 등을 취급하고 있다.

홈메이드라 더 정감이 간다.
홈메이드라 더 정감이 간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많은 사람이 새벽시장에서 새벽장을 보기 때문에 아쉽게도 다른 상설시장들은 손님이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그곳 시장의 상인들까지 새벽시장에 나와 물건을 팔고 들어가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한 컷 사진을 좇는 여행이 요즘 트렌드라지만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듣는 여행이야말로 고금을 관통하는 여행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그 지역민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시장으로 달려갈 일이다. 군산에서는 새벽시장이다.

<여행쪽지>

군산 순대국밥 거리

공설시장 옆에는 순대국밥 거리가 조성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모두 12곳이 영업 중인데 규모와 간판이 일괄적으로 정비된 모습이 이색적이다. 더 특이한 것은 고기를 집집마다 각각 삶는 것이 아니고 협동조합을 결성하여 설립시킨 전문업체로부터 고기를 공급받는다는 점이다. 주방이 단순해지니, 식당들이 깔끔해졌다. 고기와 육수가 같다고 해서 맛까지 같은 건 아니다. 양념도 다르고 손맛도 다르다. 호주머니가 가벼운 서민들을 위해 소주 한 병에도 서비스 안주까지 챙겨주는 정이 있는 국밥집들이다. 그중에서도 잠깐만집은 분위기와 맛이 깔끔하여 손님이 많은 편이다.

군산 순대국밥 거리.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군산 순대국밥 거리.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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