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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흰 토끼를 따라 단풍숲에 들었네, 경상남도수목원
흰 토끼를 따라 단풍숲에 들었네, 경상남도수목원
  • 권영란 객원기자
  • 승인 2022.09.13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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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수목원. 사진/ Ⓒ 경남산림환경연구원
경상남도수목원. 사진/ 경남산림환경연구원

[여행스케치=진주]2번 국도를 타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달리고 있다. 도심을 빠져나오자 금세 눈앞에 산과 들이 펼쳐진다. 처서 지난 여름의 끝자락, 벼꽃은 지고 나락이 여물어지는 시간이다. 이미 가을로 들어선 계절은 바람의 결이 달라졌고, 나무의 냄새가 달라졌다. 가을의 향기를 따라 경상남도수목원으로 나섰다. 계절이 바뀔 때 그 변화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은 어딜까. 번잡하게 부대끼지 않고 숲에서 천천히 걷기를 할 수 있는 곳, 그러다가 잠시 멈추고 멍하니 쉴 수 있는 곳. 나 홀로 가더라도 타인을 전혀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곳…. 두말 할 것도 없이 경상남도수목원을 꼽을 수 있겠다.

추분 무렵일까, 가을로 접어드는 경남수목원 전경.
추분 무렵일까, 가을로 접어드는 경남수목원 전경. 사진/ 경남산림환경연구원

주민들은 ‘진주수목원’, ‘반성수목원’이라 부른다

경상남도수목원은 도가 조성·관리하는 수목원으로 진주시 이반성면 수목원로 386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남강이 흐르는 진주 도심에서 자동차로 30여 분, 옛 마산(현재 창원시)에서도 자동차로 30여 분 걸리는 2번 국도 경계쯤이다. 지명을 따서 주민들은 대부분 ‘진주수목원’, ‘반성수목원’으로 부른다. 1989년 양산에 있던 경상남도 임업시험장이 이곳으로 이전했다. 1993년 산림환경연구소로 개칭하면서 도립반성수목원으로 개방했다. 이후 2000년 2월에 명칭을 ‘경상남도수목원’으로 변경하였다. 수목원을 둘러보다가 맨 처음 임업시험장이 들어설 때를 기억하는 한 주민을 만났다.

“아이고, 요기 입구는 전부 논밭이었지만 저게 위로는 전부 산이라서 맨 처음에 임업시험장 들어설 때 우리 동네 아재들이 온 산에 풀 베느라 얼매나 힘들었는데. 내도 새참 나르고 그랬제.” 짐작컨대, 수목원 조성 당시 인근 주민들이 삯을 받고 일꾼으로 동원됐나보다. 아마 부지로 확정된 임야와 논밭의 땅주인들은 보상을 받고 그 돈으로 농사지을 대토를 구해야 했을 게다. 현재 수목원 주차장은 대천리 인근 주민들이 버스를 타던 정거장이었다. 이반성 장날이야 1~2km 되는 장터까지 차비를 아끼기 위해 걸어갔겠지만, 진주 장날이나 마산 장날이면 돈 살 봇짐을 싸서 완행 버스를 타려고 옹기종기 모여들었을 게다. 지금은 왕복 4차선으로 확장된 2번 국도가 수목원 앞을 지나고 있다.

이반성 장터에서 경상남도수목원으로 가는 길목 ‘수목원국숫집’. 그 앞 기찻길은 자전거도로가 됐다.
이반성 장터에서 경상남도수목원으로 가는 길목 ‘수목원국숫집’. 그 앞 기찻길은 자전거도로가 됐다. 사진/ 권영란 객원기자

‘수목원역’은 사라지고 추억만 남아

한때는 경전선 상·하행선이 수목원 앞을 지나기도 했다. 간이역 ‘수목원역’. 2007년 10월 이곳 수목원에서 산림박람회가 열리던 해, 경전선 반성역과 평촌역의 중간쯤인 이곳 수목원 앞에 임시승강장으로 개통했다가 2012년 10월 경전선 복선전철화에 따른 이설로 사라졌다. 당시 이용되던 기찻길은 침목과 철로를 걷어내고 아스콘을 깔아 감쪽같이 자전거길이 되었다. ‘수목원역’ 간이역은 깨끗이 단장해서 무인매점 ‘수목원역’으로 이용되다가 이것마저도 지금은 문을 닫고 있다.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경전선 기찻길 근처에는 <수목원역 국수>라는 빛바랜 간판을 단 국숫집이 남아있을 뿐이다. 일부러 기차를 타고 수목원으로 오던 설렘과 여유는 추억이 되었다. 연인들끼리, 아이 손을 잡은 가족끼리 자동차를 두고 일부러 기차를 타고 수목원역에 내려 다시 10분쯤 걸어 수목원으로 가는…. 속도와 편리함을 두고 하루쯤은 느리게, 불편하지만 여유와 감성을 안겨줬던 그 풍경은 이제 사라졌다. 아련한 기억들만 미루나무 이파리처럼 파닥거린다.

여러 갈래길에서 표지판을 잘 봐야 한다. 계단 아래는 야생동물원이다.
여러 갈래길에서 표지판을 잘 봐야 한다. 계단 아래는 야생동물원이다. 사진/ 권영란 객원기자
야생동물원 사슴우리.
야생동물원 사슴우리. 사진/ 권영란 객원기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다

경상남도수목원에는 도내 산림을 보존·관리·연구하는 경남산림환경연구원이 있는데 사실상 이곳 수목원을 관리하는 곳이다. 또 일반인이 산림의 역사와 체험을 할 수 있는 경남산림박물관이 있으며 열대수목원, 선인장원, 화목원 등 다양한 주제의 전시관 38동이 있다. 수목원 전체 규모를 살펴보면 182필지, 117ha이다. 이 중에 수목원 126필지 74ha, 시험림 47필지 52ha, 생산포지 24필지 4ha, 기타 16필지 2ha이다. 수치로는 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우니 어림잡아 여의도(88만 평) 반쯤 되려니 짐작하면 된다. 국내를 포함해 전 세계 식물 3,500여 종과 10만여 본을 수집, 식재하고 있다. 다양한 주제관이 있어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때고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한마디로 아이들과 안전하게, 때로는 거동이 불편해진 부모님을 모시고 편안하게 숲과 나무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마치 토끼를 따라 들어간 ‘이상한나라의 앨리스’처럼 발길 닿는 대로 헤매면서 다양한 주제의 정원과 낯설고 신기한 식물을 볼 수 있는 곳.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 손을 잡고 멍하니 걸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수생식물원이라 불리는 연못. 곧 물그림자마저 가을빛으로 물들겠다.
수생식물원이라 불리는 연못. 곧 물그림자마저 가을빛으로 물들겠다. 사진/ 권영란 객원기자

산림박물관, 숲의 기원을 더듬다

매표소를 지나 수목원 입구에서 제일 처음 만나는 건물이 산림박물관이다. 2001년 150억 원을 들여 건축했는데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5,500여㎡ 규모의 주제별 자연표본실, 생태체험실 등 4개 전시실이 있으며, 총 67개 항목별로 모두 5,800점이 전시돼 있다. 4개 전시실은 산림의 기원과 분포, 생태와 기원, 혜택과 이용, 훼손과 보존을 주제로 각각 동영상과 함께 산림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 놨다. 자연표본실에는 각종 산짐승과 새 박제, 광물, 곤충과 식물 표본 등이 방 안에 가득하다. 생태체험실에서는 초저녁과 한밤중, 새벽 등 시간대에 따라 숲과 그 속의 짐승들이 어떻게 변하고 움직이는지 보여 주는데 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 향과 산속을 거닐 때 우리 주변을 감싸는 안개를 직접 느낄 수도 있다. 입구부터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수종별 각종 조각과 목재 민속품이다. 800년생 소나무 고사목은 함양군 안의면에서 고사까지 지내고 옮겨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년 된 소나무는 거창 휴양림에서 뿌리째 가져왔다. 500년생 팽나무, 80년 된 아카시아 등 나무의 역사를 더듬어 숲의 기원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여름의 끝과 가을의 시작,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은 천천히 물들고 있다.
여름의 끝과 가을의 시작,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은 천천히 물들고 있다. 사진/ 경남산림환경연구원

잠시 삶이 빛나는…메타세콰이어길과 미국풍나무길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 /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 아낌없이 버리기를 결심하면서 /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햇살 투명한 가을날이면 도종환 시인의 ‘단풍 드는 날’이 떠오른다. 수목원 방문자센터 앞에서 서쪽으로 쭉 뻗은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은 임업림이 들어설 당시부터 있었으니 이제 수십 년이 됐다. 봄이면 눈앞에 연둣빛 찬란한 길을 펼쳐놓는다. 가운데 잔디원을 두고 건너편에는 환한 벚꽃길이 이어져 춘분 지나 수목원은 봄의 향연 그 자체이다. 그래서일까. 어디서 매화꽃이 폈다더라, 어디서 새 잎이 났다더라 소식 들리면 사람들이 수목원에서 가장 먼저 찾는 곳으로 꼽힌다. 하지만 10월이면 더욱 매혹적인 가로수길이 된다. 밤새 바람이 일 때마다 켜켜이 쌓이는 잎들, 그 위를 밟고 걷노라면 푹신한 구름을 걷는 것 같다. 그러다가 마냥 아이처럼 놀고 싶기도 하다. 두 손 가득 잎을 담아 공중으로 뿌리거나 입으로 날려 보내며 가을과 인사를 나누고 싶다. 이곳 수목원의 ‘첫 인상’ 같은 곳이다.

10월 지나면 어느 길로 접어들어도온통 붉은 가을빛이다.
10월 지나면 어느 길로 접어들어도 온통 붉은 가을빛이다. 사진/ 경남공감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언덕으로 오르는 길 좌우는 온통 미국풍나무이다. 산정연못으로 가는 길이다. 구름 한점없는 파아란 하늘을 배경으로 노랗고 빨간, 때로는 주황빛의 미국풍나무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가을 나들이 나온 연인과 가족 방문객이 절대 놓칠 수 없는 미국풍나무길이다. 가을이 깊어지는 거기, 아이의 손을 잡은 아빠의 눈빛이 깊어지고 손을 맞잡은 연인들의 발걸음은 더욱 다정해진다. 잠시 삶이 빛나는 시간이다.

INFO 경상남도수목원

운영시간 하절기 (3~10월) 09:00~18:00, 동절기 (11~2월) 09:00~17:00, 월요일 휴무 *입장시간은 관람종료 1시간 전까지

주소 경남 진주시 이반성면 수목원로 386 경상남도수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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