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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특집②] 지리산 자락 운조루가 있는 한옥촌, 구례 오미마을
[특집②] 지리산 자락 운조루가 있는 한옥촌, 구례 오미마을
  • 박상대 기자
  • 승인 2022.12.13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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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구례]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한옥촌. 200년 넘게 나눔을 실천해온 운조루가 자리잡고 있는 마을답게 오미마을 한옥촌은 품격과 넉넉함이 풍겨난다. 지리산 둘레길 17코스와 18코스를 이어주는 마을에 다녀왔다.

전라남도의 지원으로 조성한 한옥마을
조선시대 명품 고택 운조루가 있는 구례 오미마을. 풍수지리가들은 이곳을 남한의 3대 길지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금환낙지(金環洛地).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듯 오랜 샘물처럼 마르지 않고 풍요로운 땅이라고 한다. 구례군청에서는 이 마을을 오미은하수마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지리산 아랫마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은하수인데 이 마을에 들어서면 아직 땅거미가 깔리지 않았는데도 은하수를 떠올리게 한다.

마을 앞 들녘 너머로 섬진강이 흐르고, 강 건너에 다섯 봉우리가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오봉산이 앉아 있고, 마을 뒤쪽은 지리산 노고단에서 흘러내린 형제봉 자락과 왕시루봉 자락의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다. 오미는 마을 앞 기묘한 오봉산, 사방으로 둘러싸인 산들, 풍족한 샘물, 질박한 풍토(風土), 양지바른 집터를 가리킨다. 오봉산 서북쪽 절벽에 유명한 사성암이 있다.

한옥촌에서 본 마을 전경. 사진/ 박상대 기자
운조루 막둥이집 한옥에서 본 풍경. 사진/ 박상대 기자

오미마을에 한옥촌이 조성된 것은 2010년 전라남도에서 대대적인 한옥마을 지원사업을 할 때다. 우리 전통가옥인 한옥을 복원하고, 관광객에게 민박집을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조성됐다. 오미리에도 17세대가 새로 한옥집을 지었다. 지금도 10집 이상이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다. 민박집 대신 음식점과 카페를 운영하는 집도 있고, 한의원으로 변신한 집도 있다. 

생명수한의원은 도시에서 살던 한의사가 동네에 들어와서 시골 환자들을 치료하며 시골 노인들의 훌륭한 말벗이 되었다. 꾸지뽕을 판매하는 집도 있고, 봄이면 산나물이나 고구마 등 특산품을 판매하는 집도 있다. 골목을 기웃거리는데 강아지 한 마리가 따라온다. 손님들을 자주 보아온 탓인지 낯선 나그네를 보고 짓지도 않고 바짓가랑이에 고개를 들이민다.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오미마을 앞 개울에는 사계절 맑은 물이 흐른다. 사진/ 박상대 기자
한옥촌에 있는 생명수한의원. 음식점과 카페도 있다. 사진/ 박상대 기자

뜨근뜨근한 온돌방이 한옥의 백미
한옥민박촌에는 수백 년 된 민속마을처럼 옛향수나 옛사람들의 그림자가 아른거리지는 않는다. 기와지붕에 자연석과 황토를 버무려서 담장을 쳐 놓았지만 집집마다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담장은 이웃과 이웃을 차단할 만큼 높지 않다. 솟을대문이나 둔탁한 철재 대문도 보이지 않는다. 운조루 주인댁의 막내아들이 운영하는 민박집에 들었다. 한옥 두 채와 미니 한옥을 지어서 살림집과 민박집으로 운영하고 있다. 편백나무와 장미꽃이 울타리를 이루고 마당에는 잔디와 자갈이 깔려 있다.

성질 급한 동백꽃이 방긋 피어 있고, 겨울에 피는 빨간 장미와 노랑장미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야산을 개간해서 집을 지었는데 바닥이 황토여서 조금만 비가 와도 질척거렸어요. 돌이랑 자갈을 깔고 잔디를 키우는데 10년 정도 걸렸습니다.”

박영숙 주인장은 진주에서 살다가 남편(류정수)의 고향 동네로 귀향했다. 2003년 진주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남편이 운조루에 사는 ‘큰 형님과 어머니를 거들어드리고, 운조루도 관리할 겸 오미리로 돌아가자’고 했다. 4형제 중 막내인 류정수 씨와 함께 마을에 들어왔다. 류정수·박영숙 부부는 2011년 새로 한옥을 지어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다. 운조루와 민박촌을 오가며 두 집 살림을 하는 일은 녹녹치 않았다.

오미마을한옥촌 마루풍경. 사진/ 박상대 기자

농사도 짓고, 고택도 관리하고, 아이들 키우면서 민박집도 운영하고, 틈틈이 동네 이벤트도 하고…. ‘운조루막내아들네’라는 작은 이름표를 달고 있는 민박집은 자연석을 그대로 앉혀 놓은 주춧돌과 원통형 소나무 기둥, 자연석을 그대로 놓고 올라다니는 댓돌, 적당히 틈새가 벌어진 대청마루의 널빤지, 그리고 전통한옥에 달린 창문과 창호지가 정겨운 집이다. 처마 밑에 곶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도시에 사는 기자는 오래전에 떠나온 고향집이 떠올랐다. 툇마루에 앉아 먹먹한 가슴을 다독였다.

방 안에 들어가니 온돌방이다. 침대가 아니어서 퍽 다행이다. 싱크대나 세면장과 화장실은 현대식이다. 매트리스와 가벼운 이부자리가 놓여 있다. 온돌방에는 장작나무로 불을 지펴준다. 남자 손님들보다 여성 손님들이 온돌방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중년 여성들은 따끈따끈한 온돌방에 허리를 지지고 나면 ‘하루만 더 지지다 가고 싶다’는 말을 쏟아놓는다고 한다. 남자도 마찬가지다.

한옥촌 민박집 굴뚝과 야외 테이블. 사진/ 박상대 기자
한옥민박촌은 대부분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사진/ 박상대 기자
한옥민박촌은 대부분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사진/ 박상대 기자

 

손님들 접대하고 운조루 식구들 굶은 날도 있었다네
오미마을은 지리산 둘레길 17코스의 종점이며, 18코스의 시작점이다. 지리산 둘레길 이정표 앞에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전형을 보여주는 운조루(雲鳥樓) 고택이 있다. 대문 앞 작은 연못에서 뒤를 돌아보니 안개 너머로 솟아 오른 마을 앞 오봉산 마루금이 마치 거대한 봉황이 날아가는 듯 보인다. 평화롭다.

운조루는 1776년(영조 52년) 차관급 벼슬을 그만두고 귀촌한 류이주선생이 터를 잡은 고택이다. 이웃 마을 재령 이씨댁 규수와 결혼한 인연으로 노후를 보내기 위해 이곳에 터를 잡았다. 워낙 청렴하게 살던 사람이라 살림이 넉넉하지 못했는데 처갓집에서 집을 짓고, 전답을 제공한 것이다.

유물전시관에 전시중인 뒤주. 타인능해 글씨가 시선을 당긴다. 주민들은 곡식을 가져간 후 소먹일 꼴을 한 짐 갖다 놓기도 했다고 한다. 사진/ 박상대 기자
유물전시관에 전시중인 뒤주. 타인능해 글씨가 시선을 당긴다. 주민들은 곡식을 가져간 후 소먹일 꼴을 한 짐 갖다 놓기도 했다고 한다. 사진/ 박상대 기자

훗날 집안 사랑채 앞에 놓여 있던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쌀 뒤주 덕분에 이 집이 천석궁이니 만석궁이니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뒤주에 쌀을 채워두고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가져다가 밥을 해결하라고 하였으니 3 어마어마한 부잣집으로 짐작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실상은 그렇게 어마어마한 부잣집은 아니었다고 한다. 전체 소출의 30% 정도를 틈틈이 이 뒤주에 채워놓았다고 한다.

“천석궁은 아니고 200석 정도 되었나봐요. 어머니 증언을 빌자면, 부잣집이라는 소문 듣고 시집 왔는디 땟거리도 부족하더라고 하세요. 선대 어른들 일기장을 보면 손님들 밥을 해서 먹이고 나서 돌아보니 식솔들 먹일 밥이 없더라, 향교에서 쌀을 빌려다가 소나무껍질과 섞어서 죽을 쒀서 동네 사람들이랑 며칠간 나눠 먹었다는 이야기도 일기장에 있어요.”

오미마을 한옥촌과 운조루 해설을 맡고 있는 곽영숙 문화관광해설사. 사진/ 박상대 기자
구름 위를 나는 새도 돌아온다는 뜻을 지닌 누각 운조루. 사진/ 박상대 기자
운조루 본채 모습. 사진/ 박상대 기자

운조루 류정수 관리인의 설명이다. 류이주 선생의 10대 손이자 막내 아들인 류씨는 선대 어른들이 재산이 넉넉해서 이웃 사람들과 나눔을 실천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어느 날은 붓장수가 와서 며칠 먹여서 돌려보냈는데 ‘집안에 붓 살 돈이 없어서 한 자루도 사지 못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면서 허허 웃는다.

그런데도 사랑채에는 손님들이 묵었다 가는 방이 예닐곱이나 있다. 지금 운조루에는 어머니가 살고, 아들은 이웃 한옥촌에 살면서 왔다 갔다 한다. 조상님들이 농사짓던 전답은 좀 있지만대농소리를 들을 만큼 많지는 않다.

운조루 고택 대문과 연못. 사진/ 박상대 기자

운조루는 국가지정문화재다. 사유재산이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지금은 문화재청에서 본채를 새로 손질하고 있다. “내후년에 준공한다니까 기다리고 있어요. 마당에 있는 조경수도, 낡은 널빤지도 제맘대로 못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손님들한테 차 대접하는 일이지요.” 

류정수 씨는 팽주(烹主, 물 끓이는 사람) 역할에 충실하고, 틈틈이 청소하는 일이라며 웃는다. 운조루에 앉아 차를 마시며 마루와 기둥과 처마를 휘둘러보는데 250년 세월을 지탱해온 목재의 문양과 이 집에 살다간 사람들의 정신이 감정 이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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