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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숨은 여행지] 파로호, 눈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산다
[숨은 여행지] 파로호, 눈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산다
  • 권선근 객원기자
  • 승인 2022.12.13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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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염원을 담은 평화의 물그릇, 파로호.. 사진/ 권선근 기자
통일의 염원을 담은 평화의 물그릇, 파로호. 사진/ 권선근 기자

[여행스케치=화천] 우리나라 어느 강보다 수량이 풍부하고 주변 경관이 빼어난 북한강. 금강산에서 발원해 첩첩산중을 굽이굽이 돌아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파로호라는 거대한 호수에 잠깐 쉬었다 다시 흐른다. 숱한 사연을 담고 있는 파로호에서 보낸 하루. 양구와 화천에 걸쳐 있는 파로호는 일제강점기 때 건설한 화천댐으로 만들어진 인공호다.

‘파로호’란 이름은 1951년 화천댐 공방전에서 국군이 중공군 3개 사단을 물리치고 대승을 거두자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라는 뜻으로 붙였다. 한국전쟁 당시 파로호에는 수만 명의 목숨이 수장되었다고 한다. 잔잔한 물결 속에 숨은 역사가 파란만장하다. 파라호 선착장에서 유람선으로 평화의 댐까지 운행하는 평화누리호와 함께 이용하면 아름다운 주변 경치를 속속들이 만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바보댐’이라고도 불린 평화의 댐
파로호는 지난 2003년 북한 임남면에 준공한 임남댐(금강산댐) 때문에 물길이 가로막히며 분단의 아픔을 담은 호수가 되었다. 물길에 무슨 분단이 있을까마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쓰라린 분단의 고통을 안고 흐른 지 어언 70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안았다. 

기네스북에도 오른 ‘통일로 나가는 문’이라는 이름의 초대형 트릭 아트. 사진/ 권선근 기자
기네스북에도 오른 ‘통일로 나가는 문’이라는 이름의 초대형 트릭 아트. 사진/ 권선근 기자

전두환 정부 때 임남댐이 서울을 물바다로 만들기 위해 조성된 대규모 ‘수공(水攻)’ 댐이라는 주장과 함께 댐 높이 80m에 이르는 평화의 댐이 지어졌다. 평화의 댐은 북한의 수공 위협과 피해 예측이 크게 부풀려졌다는 논란을 불렀고 댐에서 가장 중요한 발전소가 없어 발전과 수자원을 이용 못하는 바보댐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1995년과 1996년 집중호우 때 홍수조절 기능이 입증되면서 댐의 진가가 발휘되었다. 요즘은 갈등과 분단의 상징에서 화합과 평화의 상징을 담은 댐으로 변신해 파로호를 찾는 관광객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평화의 댐을 관리하는 K-water는 평화의 댐 주변에 50개 캠핑 덱을 갖춘 오토캠핑장을 비롯해 하늘오름길, 스카이워크, 트릭 아트 벽화 등 관광시설을 조성했다. 특히 ‘통일로 나가는 문’이라는 이름의 초대형 트릭 아트 벽화는 <기네스북> 세계 기록에 등재됐을 정도로 평화의 댐은 화합과 평화의 상징, 지역의 상징으로 거듭나고 있다. 세계 각지의 분쟁 지역에서 보내온 탄피와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지역에서 출토된 탄피 37.5톤을 녹여 만든 세계 평화의 종 공원에서는 새삼 평화를 되새기게 된다. 공원 개장식 때는 고르바초프 구 소련 대통령이 참여해 의미를 더하기도 했다. 

통일의 날이 오면 장식 비둘기의 잘린 날개 한쪽을 붙여 완성할 ‘평화의 종’. 사진/ 권선근 기자
통일의 날이 오면 장식 비둘기의 잘린 날개 한쪽을 붙여 완성할 ‘평화의 종’. 사진/ 권선근 기자

평화의 종 위에는 네 마리의 비둘기 장식이 있다. 그중 북쪽을 바라보는 비둘기는 날개 한쪽이 없다. 통일의 날이 오면 잘린 날개 한쪽을 붙여 평화의 종을 완성할 예정이다. 체험료 500원을 내면 타종할 수 있다. 체험료는 한국전쟁 참전국인 에티오피아에 장학금으로 보낸다고. 

이름없는 병사의 철모가 전쟁 당시의 숨가쁜 상황을 느끼게 하는 비목. 사진/ 권선근 기자
이름없는 병사의 철모가 전쟁 당시의 숨가쁜 상황을 느끼게 하는 비목. 사진/ 권선근 기자

평화의 종에서 조금 내려가면 비목공원이 나온다. “초연히 쓸고 간 깊은 계곡~”으로 시작하는 국민 가곡 ‘비목’의 탄생지다. 평화의 댐 북방 14km 백암산계곡 비무장지대에 배속된 한 청년 장교 한명희 씨는 잡초가 우거진 곳에서 이끼 낀 무명 용사의 돌무덤 하나를 만난다.

녹슨 철모, 이끼 덮인 돌무덤, 그 옆을 지키고 있는 새하얀 산목련, 화약 냄새가 쓸고 간 깊은 계곡을 붉게 물들이는 석양 …. 그는 조국을 위해 산화한 젊은 넋을 기리기 위해 ‘비목’이라는 시를 썼고, 1970년대 중반부터 가곡으로 널리 애창되기 시작했다. 현재 비목공원에는 기념탑 외에 철조망을 두른 언덕 안에 녹슨 철모를 얹은 나무 십자가 10여 개가 서 있어 한국전쟁이라는 민족 비극의 아픔을 되새기게 해준다. 

국제평화아트파크에 전시된 전쟁의 상징인 폐무기를 활용한 평화 에술품. 사진/ 권선근 기자
국제평화아트파크에 전시된 전쟁의 상징인 폐무기를 활용한 평화 에술품. 사진/ 권선근 기자
평화의댐에 눈이 내려 멋진 설경을 연출했다. 사진/ 권선근 기자
평화의 댐에 눈이 내려 멋진 설경을 연출했다. 사진/ 권선근 기자

신비로운 물이 빚은 아름다운 경치 아홉 가지
평화의 댐에서 역사의 의미를 새겼다면 겨울이 선사하는 화천의 아름다운 설경을 감상하며 몸과 마음을 힐링할 수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파로호에 자리 잡은 오지 마을 비수구미. 한국전쟁 때 피란 온 화전민들이 정착한 비수구미는 화천댐이 들어서면서 육로가 막히는 바람에 육지 속의 섬이 됐다. 평화의 댐이 준공되기 전까지는 배를 이용해 세상과 소통했지만, 이제는 비포장도로와 산길이 생겨 등산객이 수시로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고. 그래도 접근성은 여전히 떨어지는 편이라 청정 자연을 자랑한다. 

육지 속 섬이었던 비수구미 마을로 들어가는 출렁다리. 사진/ 권선근 기자
육지 속 섬이었던 비수구미 마을로 들어가는 출렁다리. 사진/ 권선근 기자
맛있는 장이 익어가는 비수구미 민박의 장독대가 있는 풍경. 사진/ 권선근 기자
맛있는 장이 익어가는 비수구미 민박의 장독대가 있는 풍경. 사진/ 권선근 기자

겨우내 꽁꽁 언 빙판을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비수구미 마을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있는 그냥 ‘멍’ 때리기에 좋은 곳이다. 비수구미에 온 사람들은 두 번 놀라는데 경치에 한 번, 음식에 한 번 더 놀란다. 광릉요강꽃 재배에 성공해 유명해진 장동윤 할아버지 가족이 오순도순 사는 집에서 차려주는 시래기, 취나물, 곤드레, 메밀 싹 등 아홉가지 산나물을 넣은 비수구미 나물 밥상에는 어머니의 사계절이 담겨 있다.

예전에는 호수 양쪽에 낚시꾼이 많아 그 사람들 상대로 장사를 했단다. 민박도 하고 식당도 하고… 그렇게 40년을 넘게 살다가 도시에서 편하게 살려고 했는데, 큰아들이 가업을 잇겠다고 떡하니 들어와 아직도 비수구미에서 나물을 갈무리하고 장을 담으며 고향의 밥상을 차리신다는 김영순 할머니. 혹독한 계절이 선사하는 파로호의 풍경은 아름답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그리고 그 속에는 눈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다.


화천 북한강 명품 산소길
강원도에는 시군마다 잘 조성된 산소길이 있다. 그중에서도 화천의 산소길은 도보와 자전거 모두 갈 수 있는 길이다.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숲속길, 부교인 수상길, 연꽃마을로 가는 수변길 등 다양한 길목을 만날 수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북한강 명품 산소길(살랑골~하남면 위라리 2.3km)’은 화천댐 인근 간동면 구만리에서 하남면 서오지리에 이르는 레저 도로 100리 길(42.2km) 조성 사업의 하나로 만들어진 길이다. 북한강의 수려한 풍광을 끼고 가는 강변길과 전국 유일의 수상길과 숲속길로 구성돼 있다. 용화산의 원시림을 지나는 터널 방식 흙길과 부교 형식의 강상 도로가 압권이다. 

명품 산소길의 명물로 손꼽히는 ‘숲으로다리’. 사진/ 권선근 기자
명품 산소길의 명물로 손꼽히는 ‘숲으로다리’. 사진/ 권선근 기자
한겨울에 꽁꽁 어는 딴산 인공폭포는 겨울철 빙벽 오르기 매니아들이 즐겨 찾는다. 사진/ 권선근 기자
‘숲으로 다리’는 소설 <칼의 노래>를 지은 김훈 작가가 이름을 붙였다. 사진/ 권선근 기자

수상길인 강상 도로 입구에 다리 이름을 명명한 ‘숲으로 다리’ 표지판이 눈에 띈다. 〈칼의 노래〉 김훈 작가가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밑이 평평한 작은 배인 폰툰(pontoon) 위에 나무를 깔아 물 위에 띄운 강상 도로 위를 걸어가면 원시림에 가까운 용화산 자락 숲길로 이어진다. 김훈 작가가 수상길을 숲으로 다리라고 부른 이유를 알 수 있는 길목이다. 흙길은 원시림들이 뒤엉켜 있어 마치 터널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한겨울에 꽁꽁 어는 딴산 인공폭포는 겨울철 빙벽 매니아들이 즐겨 찾는다. 사진/ 권선근 기자

이곳을 조성할 때 자연 그대로를 보존하기 위해 중장비를 동원하지 않고 오로지 삽과 곡괭이로만 흙길을 냈다고 한다. 산소길을 지나면 만날 수 있는 원시림 곳곳에 산재한 희귀목엔 이름표가 붙어 있어 낯선 나무도 친근감이 느껴진다. 각종 음지식물을 비롯해 미치광이풀·박새·당귀·산머루·가래 등이 지천으로 널려 있어 생동감을 더하고, 간혹 야생동물이 지나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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