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마을따라 마음따라] 향긋한 봄미나리의 유혹, 청도군 한재
[마을따라 마음따라] 향긋한 봄미나리의 유혹, 청도군 한재
  • 김수남 여행작가
  • 승인 2023.03.14 09: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향긋한 미나리 따라 가는 청도.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여행스케치=청도] 꽃바람의 유혹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벚꽃, 매화꽃, 진달래꽃들이 만발하는 본격적인 상춘의 계절이 왔다. 봄 여행에 꽃놀이만 있는 건 아니다. 산과 들, 바다에서 따스한 기운이 날아드니 그 생동하는 기운에 몸을 맡기는 것만으로도 힐링이다. 겨우내 위축되었던 몸과 마음이 새롭게 태어나는 봄 여행은 요샛말로 치유여행이다. 향긋한 미나리를 따라 청도로 봄맞이 여행을 떠났다.

흔히 청도를 일러 산도 물도 사람도 맑은 ‘3청의 고장’이라고 한다. 맑은 산과 물은 반시, 복숭아, 미나리로 대표되는 청도의 농특산물을 만들었다. 제아무리 품질 좋은 농산물일지라도 농부의 노력이 더해져야 빛을 보는 법. 부지런한 청도사람들은 이들 농산물을 일등 브랜드로 성장시켰다. 청도에서 새마을운동이 처음 시작된 것도 청도사람들의 타고난 부지런함 때문일 것이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미나리는 2월에서 5월이 제철이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한재 미나리.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청도 특산물로는 미나리 외에 반시도 빼놓을 수 없다. 반시 모습의 한재 버스 정거장.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봄날, 그 계곡에선 무슨 일이?
청도군의 한재는 화악산(932.1m)과 남산(851.7m), 오산(514.6m) 등에 둘러싸인 계곡 일대를 이른다. 화악산과 남산의 지맥이 만든 좁은 계곡이 마치 큰 고개와 같다고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마을로는 초현리, 평양1리, 평양2리, 음지리, 상리가 해당한다. 902번 지방도로가 계곡 따라 마을을 이어주며 굽이굽이 뻗어나간다. 

봄날의 한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차량의 행렬로 북새통을 이룬다. 이곳이 미나리 주산지로 입소문 났기 때문이다. V자 형 계곡인 한재 일대는 나지막한 비닐하우스로 빼곡하다. 모두 미나리 재배 하우스다. 길가 빈틈은 미나리를 취급하는 식당들이 들어섰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미나리는 작년 기준으로 연간 1,800톤 규모이다. 한재 5개 마을의 130여 농가가 참여하고 있고 재배면적은 60ha에 달한다. 청도군 전체 미나리 생산량이 2,147톤이라고 하니 청도의 미나리는 대부분 한재에서 생산되는 셈이다. 

비닐하우스로 빼곡한 한재 모습.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미나리 맛을 보러 온 고급 승용차 사이로 농부의 경운기가 지나간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현장을 가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래서?’, ‘미나리가 뭐라고?’ 하며 한재의 인기에 의아심을 갖고 반문을 할 수도 있다. 한재에 있는 식당들 대부분은 미나리와 삼겹살 또는 오리고기 등을 함께 취급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미나리가 주연이고 삼겹살이나 오리고기는 조연이다. 봄날 싱그럽고 향긋한 미나리와 함께 먹는 삼겹살이 별미이다 보니 많은 관광객들이 미나리를 먹으러 한재로 찾아드는 것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관광객들은 늘고 식당들은 대형화되었다. 오후 3시 무렵 식당의 휴식기인 브레이크타임이 되어도 넓은 홀의 절반가량이 차 있을 정도로 손님들이 많다. 식당에서만 미나리에 삼겹살을 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한재 주변 도로에는 미나리농장들이 판매장 겸 작업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테이블과 의자를 갖춘 작은 규모의 쉼터가 딸려 있다. 그래서 고기를 가져와서 미나리만 구입하면 식당처럼 미나리에 삼겹살을 즐길 수 있다. 작업장에선 실비만 받고 불판과 일회용 부탄가스를 제공해준다. 

미나리를 깨끗한 지하수로 씻어내는 과정.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잘 구워진 삼겹살에 미나리를 살짝 구워 먹는 청도식 미나리와 삼겹살.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물론 미나리만 구입할 수도 있다. 한재 미나리의 인기가 워낙 높고 수요가 많다 보니 생산량이 따라가질 못한다. 그래서 늦게 오면 미나리를 손에 쥐기가 어려운 일이 생기기도 한다. 한재 미나리의 이런 모습은 미나리 하나로 지역을 변화시킨 특이한 사례다. ‘우리 지역 농산물 하나 어떻게 제대로 키워볼 수 없을까?’ 하는 마음으로 벤치마킹 나온 타 지역의 공무원들, 농업인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미나리 계곡을 지키는 사람들
청도 한재에서 미나리를 처음 재배한 건 1985년 무렵이다. 일부 농가가 소규모로 재배하여 청도시장에 내다 판 것이 최초인데 1992년에 이르러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본격적인 시설농업이 시작되었다. 이듬해부터는 작목반을 조성하고 본격적인 홍보에 나섰다. 그리고 2010년에는 마침내 지리적표시제 제 69호로 ‘청도 한재 미나리’가 등록되었다. 나라 안에서 널리 유명해진 것이다.

“청도 한재 미나리는 다른 지역 미나리보다 비타민 A, 비타민 C 함량이 월등히 높고 칼슘이나 철분 같은 무기질 함량도 높아요. 화악산에서 내려오는 자연수와 지하수로 재배하니 향이 좋고 줄기도 굵어요. 마디 사이가 긴데도 속이 꽉 차 있어요.”

귀농 21년차 윤수업 대표 부부.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미나리 세척작업 중인 윤수업 대표.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작업장에서 만난 윤수업(58) 대표는 연신 미나리를 씻어내면서도 미나리 자랑에 여념이 없다. 옆에서는 네댓 명의 주부들이 미나리를 다듬어 윤 대표에게 넘겨주고 있다. 점심시간 피크를 넘겼는데도 사람들이 계속 몰려드는 정신없는 상황이라 그의 빠른 손놀림은 잠시도 쉼이 없다.

 그는 올해로 귀농 21년째다. 원래는 대구에서 섬유 사업을 했었다. 그러다가 IMF 때 고향인 평양1리로 돌아왔다. 부친이 하시던 미나리 농사를 이어받아 현재 3,500평 정도 재배하고 있다. IMF 때 돌아왔다는 건 쓰라린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일 터. 수입은 사업할 때만큼 못하는지만 마음은 지금이 편하단다. 

윤 대표가 말하는 봄미나리 제철은 2월에서 5월이다. 2월부터 나오기 시작하는데 처음엔 연하지만 5월로 갈수록 자외선이 강해지면서 섬유질이 질겨진다. 그 대신 영양성분은 더 좋아진다니 일장일단이다. 

생미나리에 삼겹살 싸먹기.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한재골가든 미나리와 삼겹살 상차림.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향긋한 미나리와 삼겹살의 기막힌 조화
미나리 전문식당 한재골가든 황경미 사장이 말해주는 미나리에 삼겹살 먹는 방법은 두 가지다. 생미나리를 적당히 감싸서 삼겹살이랑 같이 먹는 방법이 있고, 삼겹살이 80% 정도 익은 불판 위에 미나리를 올려 살짝 구워서 먹는 방법이 있다. 후자는 현지민들이 주로 먹는 ‘청도 스타일’이다. 관광객들은 미나리의 상큼함을 즐길 수 있는 전자를 많이 이용하는 분위기다. 

“미나리는 해독작용이 뛰어나요. 복어국에도 미나리를 꼭 넣잖아요. 심혈관 질환에도 좋아 혈압과 혈중 콜레스테롤 완화효과가 있어요. 그리고 여성들한테도 좋다고 해요.”
과연! 미나리의 해독작용 덕인가. 반주로 마신 술이 취하진 않고 그저 달고 맛있기만 하다.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공원의 박정희 대통령 전용 열차.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새마을운동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기념하는 조형물.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한재 주변에는 미나리 세상 외엔 이렇다 할 관광지가 없는데 그 대신 청도 나들목에서 한재 찾아가는 길에 있는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공원이 가볍게 둘러볼 만하다. 청도는 새마을운동발상지로 알려졌다. 청도읍 신도마을엔 1957년부터 요즘 말로 치면 ‘마을 가꾸기’ 사업이 주민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농로를 개설하고 부엌을 개량하고 소하천을 정비하였다.

마을주민들이 돈을 모아 철도청과 함께 마을에 정차하는 경부선 신거역을 건립하기도 했다. 1969년엔 태풍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는데 이 역시 마을주민들이 단합하여 복구를 하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복구사업에 열중인 모습을 수해지역 시찰을 다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보게 되고 깊은 감명을 받은 뒤 본격적인 새마을운동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알려졌다.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관의 내부 전시물.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공원 테마파크의 그 옛날 놀이 모습.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공원은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관을 중심으로 테마파크가 자연부락 형태를 취하고 있다. 새마을운동의 변화과정을 볼 수 있는 시대촌은 유연자적 산책하기 좋다. 작은 놀이터도 있는데 어린이용으로 만든 짚라인에 한 가족이 달라붙어 노느라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새마을운동으로 개량된 1980년대의 기와집들은 숙박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여행쪽지>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윤수업 대표 미나리농장 (010-3509-2437) : 도로변에 위치한 농장 겸 작업장인데 이름 석 자가 간판처럼 달려있다. 고기를 가져오면 불판과 가스를 빌려서 구워 먹을 수 있다. 작업 중에는 전화 통화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한재골가든 (054-372-0883) : 미나리와 함께 삼겹살이나 오리고기를 한 자리에서 즐길 수 있다.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공원 (054-372-5500) 숙박문의 (054-372-5525)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