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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전통시장 탐방] 경기도와 충청도가 만나서 한 판! 이천 장호원시장
[전통시장 탐방] 경기도와 충청도가 만나서 한 판! 이천 장호원시장
  • 김수남 여행작가
  • 승인 2023.03.15 0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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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로 가득한 이천 장호원시장.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여행스케치=이천] 충북 음성 가는 길에 어찌어찌 길을 잃었다. 한순간이었는데 경기도 이천 땅에 들어서고 말았다. 이천시 장호원읍이다. 어디에나 경계는 있는 법. 땅도 그렇고 길도 그렇고 우리네 삶도 그렇다. 요즘 세상에서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지만 때론 무심한 듯 꽃향기에 취해, 왁자지껄 흥겨운 소리에 이끌려, 또는 지친 몸과 마음을 핑계로 길을 잃고 싶을 때도 있다. 지치고 힘들 때 잠깐 길에서 벗어나 쉬어가는 것, 바로 ‘충전’이다.

이천만큼이나 유명한 지명이 장호원이다. ‘원’이 붙은 지명이 대개 그렇듯이 옛날 역원이 있어서 유래된 이름이다. 삼국 시대 이후 서울과 영남을 이어주는 교통로였고 지금도 서울에서 경상도로 내려가는 3번 국도가 남북으로 이어준다.

또, 경기도와 강원도를 이어주는 38번 국도 역시 동서로 뻗어나가면서 서로 만나는 교통의 요지다. 그 옛날 보부상들의 발자국을 따라가니 경기도와 충청도의 접경에 제법 큰 규모의 오일장이 기다리고 있다. 상인들도 많고 구경꾼도 많고 먹을 것도 많아 흥이 넘친다.

장호원 전통시장 입구.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돼지고기를 부위별로 판매하는 곳.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떡갈비만 전문적으로 구워내는 가게.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길거리음식 천국, 장호원 오일장
장호원 전통시장을 알리는 아치 형태 간판이 높이 솟아있다. 장이 서는 매 4일과 9일에는 그 전통시장 구역 외에도 폭 20m, 길이 약 400m의 넓은 도로 장터로가 번잡한 시장으로 둔갑한다. 장날 나오는 상인들의 모임인 장호원상우회에 따르면 상우회에 가입된 정회원만도 142명에 달한다고 한다. 일대에서 가장 큰 규모의 오일장 소리를 들을 정도인데 여기에 또 비회원인 지역에 거주하는 할머니들의 소규모 좌판들이 합세한다.

시장 구경 중에 길거리음식을 만나면 방앗간 앞을 지나가는 참새 신세가 된다. 활성화된 시장일수록 유동인구가 많아 먹거리 가게도 많이 나온다. 장호원 오일장의 특징은 유독 길거리음식점이 많다는 것이다. 어묵이나 호떡처럼 간단하게 서서 먹는 먹거리 천막이야 배추나 무만큼이나 다른 시장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이곳엔 아예 식당처럼 앉아서 먹을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까지 갖춘 포장마차 형태의 노점 음식점이 많다.

메뉴도 다양해서 맛없으면 돈 안 받는다는 왕족발 전문점, 한 그릇에 오천 원이라는 요즘 물가에 역행하는 선지국밥집, 자칭인지 타칭인지 알 수 없는 ‘소문난 맛집’이라는 전 요릿집, 원산지가 궁금해지는 ‘평양순대’도 보인다. 장날에만 나오는 가게들은 펄럭이는 현수막 한 장으로 간판을 대신하곤 하는데 상호가 제대로 없는 경우는 더 많다.

박대화씨네 도넛가게.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손님들이 알아서 계산할 수 있도록 돈통이 매대에 나와있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박대화(35) 씨의 도넛 가게 역시 현수막 간판 한 장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로 둘러싸여 고개 내밀 틈조차 없을 정도로 붐빈다. 시장 사람들조차도 그저 ‘호떡집’, ‘도너츠집’이라고 부를 정도로 이름 없는 가게지만 즉석에서 튀겨내는 도넛과 호떡 등은 나오기가 무섭게 팔려나간다.

박 씨를 도와 반죽을 빚고 도넛을 튀겨내는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부모님과 삼촌이다. 도넛 장사를 오랫동안 하시던 부모님이 힘에 부쳐 하자 부모님을 돕고자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합류한 게 벌써 7년이나 되었다. 부모님 대부터 하면 간판 없는 도넛 가게 업력이 무려 30년이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추진하는 사업 중에 ‘백년가게’ 지정 사업이 있는데 30년 역사면 점포로 따지자면 백년가게 요건을 갖춘 셈이다.

장터선지국밥 한 그릇에 오천원으로 착한 가격이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음악 씨디와 USB를 판매하는 가게.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솔직히, 직장 다닐 때보다 쪼오금 난 것 같습니다!”
포부가 컸을 젊은 나이에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은데도 나지막한 귀띔에는 자족의 즐거움이 담겼다. 박 씨네 도넛의 인기 비결은 반죽을 전문업체에서 구입해 쓰는 게 아니고 직접 만드는 데 있다. 특히, 국산 찹쌀을 사용하는데 찹쌀의 비중을 많이 높였다.

호떡도 마찬가지로 찹쌀 성분을 높인 반죽에 직접 만든 소를 넣고 기름에 튀긴다. 튀기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하는 것 정도가 비법이라면 비법이다. 그렇게 재료를 아끼지 않으니 1년에 사용하는 국산 찹쌀이 80kg로 80가마 정도라고 한다.

예진이네 수제어묵.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새빨간 양념에 버무려진 콩나물이 별미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삶의 희망이 되었던 빨간 어묵
시장 위쪽에서 박 씨네 이름 없는 도넛 가게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면 시장 아래쪽에서는 ‘예진이네 수제어묵’이 단연 돋보인다. 천막 안에 걸린 현수막에 반듯하게 상호가 새겨져 있다는 점이 박 씨네 도넛집과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김철(55)·손남순(55) 부부가 딸 아이의 이름을 내걸고 운영하고 있는데 이미 지역 맘카페에서도 소문난 맛집이다.

천막 앞에 모여든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가니 대표 상품인 어묵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특이하다. 상상했던 어묵 국물은 없고 새빨간 양념이 가득하여 얼핏 보면 영락없는 떡볶이다. 거기에 콩나물까지 더해졌다. 먹는 방법이 따로 있다. 먼저 새빨간 양념에 버무려진 콩나물을 건져서 종이컵에 담고 그리고 꼬치에 꽂힌 어묵을 올린다. 그 알싸하고 칼칼한 맛에 쌓였던 스트레스가 시원스레 날아간다.

봄꽃향기에 걸음을 멈춘 오일장 구경꾼.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빗자루도 국산과 수입산이 있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일부 영남지방에서 어묵과 콩나물을 함께 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익힌 콩나물을 양념에 버무리고 어묵과 함께 내주는 데는 저희밖에 없을 겁니다.”

남편이 어묵을 워낙 좋아해서 좋은 재료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어묵집을 하자고 해서 시작한 것이 올해로 13년째다. 원래는 부부가 함께 인테리어 사업체를 운영했었으나 사업실패로 인생의 좌절을 겪었다. 그래도 중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 때문에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어서 간절한 심정으로 어렵게 시작한 것이 시장 장사였다. 그랬던 오일장 장사가 다행스럽게 지금은 찾는 손님들이 꾸준한 인기 맛집으로 자리 잡았다. 시장 어묵 장사는 부부에게 삶의 희망이었던 셈이다.

“초등학생 때 엄마 손잡고 왔던 아이가 군인이 되어 휴가 나와 어묵을 사러 온 적이 있었어요. 많이 퍼주었죠!”

핸드백 전문 매장.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시골에 흔한 벌레와 해충들을 알 수 있다.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예진이네 어묵 맛을 보기 위해 차로 1~2시간 거리는 물론이고 부산이나 대구, 여수 등지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도 내놓는다. 이제는 어려운 시기도 넘겼으니 번듯한 가게를 장만하여 터를 잡고 영업을 해도 되지 않겠냐는 물음에 장날에 맞춰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을 외면할 수 없다는 말이 되돌아왔다.

전국적으로 오일장이 위축되고 있어 언제까지 영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시장을 지키고 싶다는 포부까지 덧붙인다. 예진이네 수제어묵은 장호원장 외에도 이천장(2·7일)과 부발장(3·8일)에서도 만날 수 있다. 다양한 맛의 핫바도 어묵만큼이나 인기가 좋다. 장호원은 복숭아의 유명 산지이기도 하다. 달달한 향내가 진동하는 초가을의 장호원 오일장도 기대된다.

여행쪽지
예진이네 수제어묵 (010-3226-0481): 콩나물 특유의 아삭아삭한 식감과 시원한 맛이 빨간 소스와 잘 어우러진다. 소스가 많이 달지 않고 감칠맛과 매운맛이 적당하여 보통의 떡볶이 소스보다 깊은 맛이 난다.
박대화 씨 도넛 (010-2428-5221): 발효를 알맞게 시키고 잘 치댄 반죽을 사용한 도넛과 호떡은 딱딱하지 않고 쫄깃함이 느껴진다. 특유의 노하우로 기름이 많이 안 배게 해 느끼하지 않아서 자꾸 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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