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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오름이 있는 제주 여행] 시작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다, 두산봉
[오름이 있는 제주 여행] 시작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다, 두산봉
  • 정은주 여행작가
  • 승인 2023.12.14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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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첫 달에 제주 올레의 출발점인 두산봉에서 시작하는 여행 코스를 추천한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새해의 첫 달에 제주 올레의 출발점인 두산봉에서 시작하는 여행 코스를 추천한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여행스케치=제주] 새해, 새 출발, 새 마음... 이맘때면 로 시작되는 단어만 들어도 괜스레 마음이 설렌다. 2024년을 시작하는 새로운 달, 그 첫걸음을 떼기에 두산봉만 한 곳이 없다. 제주 올레의 출발점인 두산봉에선 찬란한 일출과 환상적인 일몰, 새하얀 설경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다.

최근 몇 년 새 오름 여행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두산봉도 꽤 사람들이 많이 찾아들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이곳을 가장 많이 오르락내리락 한 이들은 아마도 올레꾼일 것이다. 제주 올레가 처음 이어진 길, 이런 까닭에 두산봉에는 항상 올레길을 열어 나가는 오름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올레길과 함께 한나절 도보 여행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코스다.

두산봉을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두산봉을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소나무 그늘 아래 운동 기구들이 놓여 있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소나무 그늘 아래 운동 기구들이 놓여 있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두산봉과 말미오름, 결국 길은 하나
멀리서 볼 땐 야트막한 야산 같던 오름이 가까이 갈수록 울창한 산림과 절벽 지대가 이어져 있다. 그래서일까. 두산봉은 높지는 않지만 주변을 아우르는 위풍당당한 기세에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끌리게 된다.

올레 1코스 시작점인 시흥리 정류장에서 마을 안길을 따라 약 150m 정도 올라가면 오름 아랫자락에 자리한 제주올레 공식안내소가 보인다. 두산봉에 이어 올레길까지 걸을 계획이라면 잠시 들러 필요한 정보를 얻거나 올레 굿즈들을 둘러봐도 좋을 법하다. 안내소에서 몇 발자국 더 오르면 오름 입구다. 바로 옆에 세워진 정자에 빼곡하게 매달려 있는 표식들이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음을 짐작케 한다.

성산일출봉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탁 트인 전경.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성산일출봉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탁 트인 전경.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제주올레1코스 공식 안내소.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제주올레1코스 공식 안내소.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탐방길에 오르기 전 작은 안내판에 시선이 꽂힌 건 말미오름이란 이름 때문이었다. 물론 오름을 잘못 찾은 건 아니다. 잠시 두산봉의 어원을 짚고 가자면, 두산봉(斗山峰)이란 이름은 옛 문헌인 <탐라지> <탐라순력도>, <제주삼읍도총지도>에 기록되어 있으며 오름 형태가 마치 됫박을 닮아 붙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설로 호랑이 머리와 같다는 뜻에서 두산봉(頭山峰)이라 불렸다고도 하나 이는 확실치 않다. 재밌는 건 같은 오름을 두고 여러 개의 이름이 쓰였다는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말산(末山)이라 적고 있으며, <제주군읍지>에서는 마악(馬岳)이라 부른 기록이 남아 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인지 지금도 두산봉은 말미오름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지칭하는 단어만 다를 뿐 사실 올라야 하는 길은 결국 하나인 셈이다.

INFO 두산봉(말미오름)
주소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산1-5

제주올레1코스 공식 안내소
주소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상동로53번길 88-46
문의 070-4152-1750
운영시간 08:00~17:00

해뜰 무렵 두산봉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해뜰 무렵 두산봉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두산봉 아래 들녘이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모습.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두산봉 아래 들녘이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모습.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사계절을 건너 자연의 대서사시 앞에 서다
두산봉은 실제 높이가 120m 남짓한 그리 높지 않은 오름이다. 정상부까지 세 번 정도 경사진 탐방길을 올라야 하는데 나무 계단과 야자 매트가 번갈아 설치되어 있어 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다닐 수 있는 길이다. 초입에는 하늘 위로 뻗은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어 산책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오를 수 있다.

짙은 초록색 외투를 걸친 울창한 숲에선 지금 어느 계절에 서 있는 건지 그저 헷갈릴 따름이다. 투명한 하늘을 올려다보면 봄 같기도 하고 여전히 푸른 잎들이 여름을 상상하게 만들며 길에 수북이 쌓인 낙엽들은 지나가 버린 가을을 떠올리게 한다. 겨울을 느끼게 하는 건 뚝 떨어진 기온과 찬바람을 막아주는 두꺼운 옷차림일 뿐이다. 탐방길에 줄 지어선 수선화들조차 조만간 꽃망울을 맺을 기세로 쑥쑥 자라고 있으니 제주의 겨울은 뭍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소와 말의 출입을 막기 위해 설치한 구조물.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소와 말의 출입을 막기 위해 설치한 구조물.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오름 비탈면에 울창하게 자라난 나무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오름 비탈면에 울창하게 자라난 나무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숲 속에 놓인 운동 기구들은 가끔씩이라도 누군가 다녀가는 듯 비교적 말끔한 모습이다. 잘 쓰지 않는 기구들은 주변에 풀이 무성하다. 언제든 오름을 찾아 청량한 공기를 마시며 몸을 돌보는 기분은 어떨까. 자연의 품 안에선 무엇이든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보이는 가 보다.

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진 탐방길은 정상부에 닿기 전까진 딱히 전망이랄 것이 없다. 묵묵히 비탈진 길을 오르다 보니 오솔길을 따라 마른 억새꽃들이 서걱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두산봉이 숨겨 놓은 비경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저들끼리 속닥거린다. 탐방길에 오른 지 15분가량 되었을까, 조금씩 시야가 트이면서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발걸음이 바빠진다. 너른 대지에 구불구불 곡선을 그린 밭들과 옹기종기 모여 있는 농가들, 곳곳에 자라난 작은 숲들이 바다까지 이어진 자연의 대서사시에 앞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온 탄성이 쉽사리 멈추지 않는다.

전망대에서 우도와 성산일출봉이 한눈에 잡힌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전망대에서 우도와 성산일출봉이 한눈에 잡힌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두산봉은 숨은 일출 포인트이기도 하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두산봉은 숨은 일출 포인트이기도 하다.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두산봉이 품은 최고의 장면은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나란히 마주한 풍경이다. 하나씩 떼어놓고 봐도 으뜸인 명소들을 둘씩이나, 그것도 한눈에 오롯하게 담을 수 있으니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사진 찍는 이들 사이에선 숨은 일출 포인트로 알려진 곳이다. 전망대에 서면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서로에게 닿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왠지 모를 애틋함이 느껴지는 건 오히려 너무 아름답기 때문인 걸까. 무언가에 홀린 것 마냥 한참을 그 자리에서 떠나지 못했다.

깃털 구름 아래선 감동이 두 배
새알을 닮았다는 알오름은 두산봉과 이어진 작은 오름이다. 한 번에 두 개 오름을 맛볼 수 있으니 안 가볼 이유가 없다. 두산봉 정상부에서 비탈진 언덕을 내려와 올레 표식을 따라 5분 정도 가면 사방이 트인 들판과 맞닥뜨리게 되는데 이리저리 바람에 쓸려 헝클어진 억새 군락이 쓸쓸하면서도 평온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오름을 걷다 올려다본 하늘에는 우연찮게도 새하얀 깃털 구름이 깔려 있었다. 분화구 안에 웅크리고 있던 새가 언젠가 껍질을 깨고 나올 것이라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흔한 전설의 한 토막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올레1코스를 걷다 바라본 두산봉의 일몰.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올레1코스를 걷다 바라본 두산봉의 일몰.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두산봉에서 알오름으로 향하는 길.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두산봉에서 알오름으로 향하는 길.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두산봉과 붙어 있기에 정상에서 보는 풍경도 비슷하겠거니 싶었는데 막상 올라서보니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생각이었다. 성산일출봉과 우도에 더해 지미오름까지 한눈에 담기는 데다 뒤돌아서면 오름의 여왕으로 군림하는 다랑쉬오름과 그 너머로 아스라이 보이는 한라산이 완벽한 파노라마를 보여준다. 두산봉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라 감동이 두 배로 컸다. 이런저런 추측만으로 오르지 않았다면 영영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 아닌가. 역시 오름을 올라봐야 그 가치를 제대로 알 수 있다는 말은 진리였다.

알오름에선 플라스틱 병뚜껑을 활용해 만든 벤치에 앉아보자.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알오름에선 플라스틱 병뚜껑을 활용해 만든 벤치에 앉아보자.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깃털 구름이 펼쳐진 알오름의 하늘.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깃털 구름이 펼쳐진 알오름의 하늘. 사진 / 김도형 사진작가

정상부에서 조금만 내려서면 멋들어진 소나무 아래 작은 벤치가 있는데 꼭 한 번 앉아 보기를 권한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벤치이지만 도민들이 직접 모은 플라스틱 병뚜껑을 재활용해 만들었기에 의미가 남다르다. 벤치에 앉아 알오름이 품은 절경을 홀로 독차지하고 있자니 등 뒤로 해가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일몰을 준비한다. 겨울엔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면 금세 컴컴해지니 아쉬운 마음을 접고 발걸음을 다시 되돌린다. 올레길을 걷고자 한다면 표식을 따라 가던 길을 계속 가면 된다. 오름을 올랐던 반대 방향으로 내려와 종달리 마을과 성산일출봉을 거쳐 광치기 해변에 닿으면 완주한 것이다. 두산봉과 알오름을 포함해 약 4~5시간이 걸리며 난이도는 높지 않지만 트레킹화나 운동화를 신고 나서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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