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강진] 강진군 성전면 월출산 자락에 관광상품이 여럿 있다. 백운동 별서 정원, 무위사, 월남사지, 강진다원. 다산 정약용이 극찬한 백운동에 하얀 눈이 쌓였다.
다산이 극찬한 백운동에 눈이 쌓이다
전남 강진에 백운동 원림(白雲洞 園林)이 있다. 남도 여행 좀 해본 사람은 백운동 별서 정원이라 불리는 이곳을 이미 다녀왔을 수 있다.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에 있는 이 원림은 조선시대 이담로가 조성한 별서 정원이다. 그의 본가는 성전면 금당리에 있는 백련당(白蓮堂)이다. 백련당은 군청에서 멀지 않은 농촌마을에 있고, 백운동 원림은 11km 북쪽 월출산 자락 작은 계곡에 있다.
관광상품이 풍부한 강진에서 월출산 남쪽 자락에 자리한 백운동은 주변에 월남사지, 금릉 경포대, 강진다원, 천년고찰 무위사 등을 품고 있는 마을이다. 고려 때 백운암이라는 암자가 있었으며, 이 계곡 바위에 백운동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어 백운동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안운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왕대나무 숲으로 난 길을 걷는다. 봄에는 대숲에서 비둘기들이 사랑놀이하는 소리가 꾸욱꾸욱 들리고, 여름에는 대나무 이파리들이 서로 살을 비벼대는 소리가 여행객의 가슴을 흔들어대는 길이다. 그 대나무 숲길과 동백나무 숲에 눈발이 날린다. 참으로 귀한 풍경이다.
중국 구양수나 왕희지가 부럽지 않은 명소
백운동 원림은 그동안 훼손되어 있었는데 정약용의 <백운첩(白雲帖)>이 발견된 후, 2004년 강진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2006년부터 복원작업을 시작했다. 정약용의 백운첩과 이시헌의 <백운세수첩(白雲世守帖)>을 근거로 복원하였다.
백운동 원림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문화를 교류하며 풍류를 즐기던 공간이다. 이담로는 <백운동유서기(白雲洞幽棲記)>란 글을 써서 백운동을 자랑했다.
「월출산 남쪽, 천불동 기슭에 골짜기가 있다. 땅이 후미지고 그윽하며, 물은 맑고도 얕다. 층암이 절벽처럼 서서 우뚝하고, 흰 구름이 골짝을 메워 영롱하니, 또한 아름다운 곳이다. 구양수의 저주(滁州)와 유종원의 우계(愚溪)를 이곳에서 볼 수 있다. 내가 이곳에 자리 잡은 것은 그윽한 운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여울물을 끌어서 술잔을 띄움은 왕희지의 난정(蘭亭)을 본받고자 함이요, 바람의 가락에 맞춰 종소리가 들림은 임포(林逋)의 고산(孤山)을 본받기 위함이다. 대저 한가로이 지내며 뜻을 기르고, 문묵(文墨)으로 즐거움을 부치는 것은 또한 이것들로 인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물에는 연꽃을 심어 천연스러운 자태를 아끼고, 동산에는 매화로 해맑은 품격을 숭상하며, 국화는 절개를 취해 서리에도 끄떡 않는 자태를 돌아본다.」
이 아름다운 정원에 이담로의 문우들이 출입한 것은 물론 후대에 정약용, 초의선사, 진도 운림산방의 주인 소치 허련도 자주 다녀갔다고 한다. 당대 석학인 김창집, 이하곤, 임영 등이 찾아 시를 짓고, 백운동에 관한 다양한 산문들을 남겼다.
INFO 백운동 별서 정원
주소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안운길 100-63
초의선사가 그림을 그리고 다산이 시를 짓다
정약용은 백운동에 묵으며 그 경치에 반해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고 <백운첩(白雲帖)>에 이 정원을 칭송하는 글을 남겼다. 「임신년(1812) 가을, 다산에서 백운동으로 놀러 갔다가 하룻밤을 자고 돌아왔다. 남은 미련이 오래 지나도 가시지 않기에 승려 의순(초의선사)을 시켜 백운도를 그리게 하고 이를 이어 12승사(勝事)의 시를 지어서 주었다. 끝에 ‘다산도’를 붙여서 우열을 보인다. 9월 22일」
다산이 꼽은 12승사는 옥판봉(玉版峯)·산다경(山茶徑)·백매오(百梅塢)·취미선방(翠微禪房)·모란체(牧丹砌)·정선대(停仙臺)·홍옥폭(紅玉瀑)·유상곡수(流觴曲水) 등이다.
다산의 제자이자 이담로의 5대손인 이시헌은 선대의 문집과 행록(行錄), 필묵을 <백운세수첩>으로 묶어 놓았다. 이시헌은 다산의 제자인데 학문은 물론 녹차 덕는 법을 배워서 훗날 다산이 해배되어 고향으로 돌아간 뒤에 차를 만들어 다산에게 보내준 인물이다. 그리고 그 후손 이한영은 우리나라 최초로 녹차에 ‘백운옥판차’라는 상표를 붙여 판매하였다.
사계절 꽃이 피는 무릉도원 같은 곳
백운동은 사계절 언제나 아름답다. 봄에는 동백나무에 빨간 동백꽃이 피고, 벌과 동박새가 날아와 꿀을 빨아 먹는다. 이웃에 있는 강진다원에서 연두색 녹찻잎이 자라고, 정원에선 감나무에 새순이 나고 땅속에서 모란, 작약, 수선화 등 각종 꽃들이 올라온다.
여름이면 계곡에서 흘러든 시냇물이 마당을 돌아나가는 유상곡수가 장관을 이루고, 졸졸졸 흐르는 청아한 물소리가 여행객의 귀를 씻어준다. 조금 지나면 대나무 죽순이 하나둘 머리를 내민다.
가을에는 노랑, 빨강 단풍잎이 정원을 귀티나게 꾸며준다. 초가지붕에 날아가 앉아 있는 감나무 단풍이나 마당에 뒹굴고 있는 각종 나뭇잎이 여행객을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 이번 겨울에 하얀 눈이 내렸다. 다산은 하얀 눈이 내린 겨울에는 방문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기자는 겨울 풍경을 노래한 시를 발견하지 못했다. 마당 앞 연못에도 눈이 쌓이고, 언덕 위에 있는 정자 정선대(停仙臺) 지붕에도 눈이 소복이 쌓여 있다.
정원을 이루고 있는 담장 위에도 눈이 쌓이고, 마당의 매화나무와 벚나무에도 앙상한 가지마다 눈꽃이 피어 있다.
광주와 강진을 오가며 이 정원을 관리하고 있는 이담로의 11대손 이승현 씨는 마침 집 안에 있지 않았다. 주인도 없는 빈집 자이당(自怡堂) 툇마루에 앉아 지친 다리를 쉰다. 어디선가 선비들이 시나 한 수 읊자며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다.
한국 최초 녹차 브랜드 백운옥판차의 탄생지
다산은 제3경으로 백매오(百梅塢)의 백매암향(百梅暗香, 100그루 홍매화가 풍기는 그윽한 향기)을 꼽았다. 이담로가 정원을 조성할 때 홍매화를 많이 심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본채와 취미선방 인근에 몇 그루만 남아 있다고 한다. 그나마도 지금은 눈에 덮여 있다. 며칠 후면 무위사 마당에 피는 홍매화가 이곳에서도 피어날 것이다. 지난해 무위사에서 눈 속에 핀 설중매를 보고 감탄했던 일이 생각난다.
백운동 일대에는 강진 월출산 달빛길이 조성돼 있다. 달빛마을에서 백운다실, 월남사지, 경포대, 강진다원, 백운동 정원, 무위사 등을 거쳐 가는 총 5km로 약 1시간 20분이 소요되며, 온갖 시골향기가 풍기는 길이다.
일제강점기에 백운옥판차라는 차를 일본에도 판매한 이한영의 생가 자리에는 백운다실이란 간판을 건 찻집이 서 있다. 생가는 안에 있고, 바깥에 있는 백운다실은 그의 후손인 이현정 원장이 차와 다과를 개발하여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다실에 앉아 유리창 밖으로 펼쳐진 월출산 옥판봉 능선과 강진다원을 바라보며 자연에 취하고, 귀한 우리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 있다. 이현정 원장은 바닥과 담장 밑에 허브나 청보리, 유채꽃 등을 아주 조금씩 심어서 여행객들에게 눈요기할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INFO 백운다실
주소 전남 강진군 성전면 백운로 107
문의 061-434-4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