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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7월호
서울 하루 산책, ‘한옥 섬’ 익선동 여행
서울 하루 산책, ‘한옥 섬’ 익선동 여행
  • 김샛별 기자
  • 승인 2018.04.11 1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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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에도, 100년 후에도 가장 새로운 동네
이비스 앰버서더 인사동 루프탑에서 내려다본 익선동 한옥마을. 사진 / 김샛별 기자
서울 최초의 근대식 한옥 주거단지인 익선동 한옥마을의 모습. 사진 / 김샛별 기자

[여행스케치=서울] 북촌 한옥마을의 유명세에 비해 익선동이 알려진 것은 불과 2~3년. 하지만 익선동 한옥마을은 북촌보다 앞서 만들어진,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마을이다.

이곳에서 만난 김선진 종로구 골목길 해설사는 “한옥을 규격화하고, 표준화해서 단지화한 한옥마을은 익선동이 최초”라며 “개량 한옥 단지를 만든 이가 정세권 선생”이라고 설명한다.

익선동 골목길에서 만난 정세권 선생의 일러스트. 사진 / 김샛별 기자
골목 담장 너머로 보이는 한옥이 운치를 자아낸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우리 사는 한옥이 곧 독립운동
익선동 한옥마을을 만든 정세권 선생은 조선의 ‘건축왕’이자 최초의 디벨로퍼라고 불린다. 정세권 선생은 낙원동에 상점을 만들어 물산장려운동을 활성화시켰고, 조선어학회 후원을 한 독립운동가 중 한 사람으로 1920년, 익선동 한옥마을을 조성하게 된 것 역시 독립운동의 일환이었다.

남산한옥마을에 일본인들이 거주를 시작하며 점점 일본식 주택이 늘 것을 고민한 정세권 선생은 익선동 일대의 부지를 사서 근대식 한옥을 짓고, 서민들에게 연부, 월부처럼 할부의 형태로 집을 보급한다.

김 해설사는 “익선동을 시작으로 성북동, 혜화동, 창신동, 서대문, 행당동 등 근대식 한옥마을을 지었다”며 “그렇지 않으면 일본 사람들의 주거 문화가 들어오고, 문화가 들어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중 익선동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북촌 한옥마을 역시 정세권 선생이 서민형 개량한옥을 지었지만, 지금까지 남은 근대식 한옥은 없고, 익선동에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세권 선생은 부동산개발회사인 ‘건양사’를 만들고, 개량 한옥인 건양사 모델을 선보였다. 수도와 전기를 밑으로 모으고, 유리․타일․함석을 건축 재료로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지붕에 함석 챙을 달아 빗물 배수를 할 수 있도록 해두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한 집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각 유리창마다 무늬가 다르다. 사진 / 김샛별 기자

아는 만큼 보이는 익선동 근대식 한옥 구경
잘 깎인 곡선의 댓돌, 오랜 세월 버티고 있는 문고리, 시멘트를 덧바른 화방벽… 집집마다 디테일을 보라며 가리키던 김 해설사가 유리창을 가리킨다. 한 집의 유리창인데, 유리무늬가 다 다르다. 대나무 모양의 무늬, 꽃 모양 무늬, 기하학적 무늬….

그는 “우리나라는 참 신기하다”고 운을 띄우며 “유행할 땐 그것만 나오고, 유행이 지나면 나오질 않는다”고 말한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유리무늬에도 유행이 있어 언제 유리를 갈았느냐, 창을 바꿔 끼웠느냐에 따라 저렇게 유리무늬도 다르단다.

10년, 10년 그 후 또 10년… 조금씩 손보며 살아온 흔적이 여전히 진행 중인 동네. 과거에 머무른 한옥이 아닌 우리가 ‘사는 모습’에 따라 함께 가는 동네인 익선동은 골목 구석구석 새로운 상점들이 문을 열며 또 다른 풍경으로 우리를 반긴다.

두 명의 프랑스인 오너 쉐프가 선보이는 프렌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빠리가옥. 사진 / 김샛별 기자
생활한복을 판매하는 때때롯 살롱. 사진 / 김샛별 기자

수줍은 듯 유니크한 매력 뿜는 그 동네, 익선동
낡은 한옥을 허무는 대신 현대적 감각으로 개조해 문을 연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즐비한 익선동의 첫인상은 ‘수줍음’이다.

간판은 작고, 평소 거리에서 보던 모양과도 다르다. 길모퉁이에 버려진 액자처럼 털썩 간판이 놓여 있기도 하고, 화단 같은 곳에 팻말처럼 꽂혀 있는 곳도 있다.

아예 간판이 없는 레스토랑도 있다. 좁은 주택가 골목에 길게 늘어서서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레스토랑인지 모를 법도 하다.

익선동의 매력은 유니크한 상점들에서 나온다.

비디오를 감상할 수 있는 ‘엉클비디오타운’, 연탄불에 직접 구워 주는 마른 안주에 술 한 잔을 걸칠 수 있는 ‘거북이슈퍼’, 만화 컨시어지가 있는 ‘만홧클럽’, 익선동 한옥마을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호텔 낙원장’의 6층에 자리잡은 루프탑 바 ‘도화’, 프랑스 파리 출신의 미카엘과 남부 아비뇽 출신의 펠리시안, 두 명의 프랑스인 오너 쉐프가 프랑스의 식재료를 공수해 요리하는 ‘빠리가옥’ 등을 비롯해 ‘빌라피렌체’, ‘서울커피’, ‘수집’, ‘익선디미방’, ‘경양식1920’, ‘창화당’ 등 저마다의 독특한 매력으로 오는 이들을 잡아끈다.

카페 식물 외부(좌)와 벽 내부를 드러낸 인테리어(우). 사진 / 김샛별 기자
레트로하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카페 식물. 사진 / 김샛별 기자

하지만 이러한 상점들이 생기고, 익선동 한옥마을이 떠오른 것은 카페 ‘식물’의 공이 크다. 두 명의 대표가 함께 운영하는 카페 식물은 3년 전, 익선동에 처음 생긴 카페로 모두에게 ‘모르는 동네’였던 익선동을 ‘알고 싶은 동네’로 만들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예리 주연의 영화 <최악의 하루>가 촬영된 배경이기도 한 식물은 3채의 한옥을 잇고 터서 만든 공간이다. 골목길과 마주한 벽은 기와를 쌓아 만든 담장 같은 모양이다. 대청마루를 살려 좌식 공간을 마련해 골목길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도 있다.

무심한 듯 놓인 자개장은 인테리어로 덧없이 어울리고, 그에 맞춘 자개상은 카페 테이블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70-80년대 건축 자재로 활용된 것 같은 타일을 코스터(컵받침)로 사용하는 것도 범상치 않다.

진인환 식물 대표는 “익선동은 3년 전만 해도 실제 살고 있는 이들은 많지 않고, 재개발 되는 것만 기다리며 버려진 집들이 많았던 동네였다”며 “우연히 이곳에 작업실을 얻은 친구를 보러 왔다 카페를 열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최근 카페나 펍을 찾는 손님들은 음료도 중요하지만 공간에 대한 욕구가 크다고 판단했다”며 “서촌도 그렇고 오래된 한옥을 개조해 만든 카페들이 점점 많아지고, 식물을 찾는 이들도 그래서 많은 것 같다”고 말한다.

최근 새로 확장한 공간에서는 한옥의 해체한 벽 내부를 유리로 고정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김선진 해설사는 “그냥 흙벽이 아니라 대나무로 뼈대를 엮은 것”이라며 “저 뼈대에 짚을 섞은 흙을 바르는 것이 정세권 선생이 만든 근대식 한옥의 특징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골목골목 독특한 상점을 보는 재미가 있는 익선동. 사진 / 김샛별 기자
상점뿐 아니라 실제 거주하는 주민들이 있어 조용히 둘러보아야 한다. 사진 / 김샛별 기자

골목 곳곳, 발길 닿는 곳, 마음 닿는 곳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익선동 산책은 충분히 만족스럽지만, 유리문을 단 대청마루, 빗물을 배수하기 위해 함석 챙을 단 지붕 끝, 시대별 유행한 무늬유리 등을 눈으로 어루만질 수 있을 때 익선동 여행은 더욱 특별해진다.

도시의 빌딩숲 사이 머무르는 ‘과거의 섬’처럼 느껴지는 익선동이 실은 1920년대 최초의 개량 한옥 단지인 새로운 시도였다는 걸 떠올려보자. 10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옛 주택의 외관과 특유의 분위기가 새로운 건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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