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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따라, 소박한 군위 여행 시나리오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따라, 소박한 군위 여행 시나리오
  • 조아영 기자
  • 승인 2018.08.23 1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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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을 품은 간이역과 작은 마을 한 바퀴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타면 화본역에 닿게 된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여행스케치=군위] 일상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를수록 도시를 벗어나 작은 시골마을로 떠나고 싶다. 삭막한 빌딩 숲 대신 빽빽하게 자란 나무들이 반겨주고, 오랜 친구가 지친 등을 다독여줄 것만 같은 경북 군위에서 영화 <리틀 포레스트> 속 장면을 따라 작은 쉼표를 그리고 왔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임용고시 준비, 아르바이트, 뜻대로 되지 않는 연애 등 팍팍한 서울살이를 뒤로한 채 고향에 내려온 주인공 ‘혜원(김태리 분)’이 집에서 제철 요리를 해 먹고, 오랜 친구 ‘은숙(진기주 분)’, ‘재하(류준열 분)’와 복작대며 보내는 사계절을 담은 작품이다. 

주요 촬영지인 군위군 일대는 영화 속 인물들의 자취를 그려보며 느린 하루를 보내기 제격이다.

S#1. 세월을 끌어안은 간이역
영화에서 혜원이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향하는 여정은 드러나지 않지만, 군위로 가는 방법은 시외버스나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타는 것, 두 가지가 있다. 그중 영화 속에 등장했던 간이역을 둘러보려면 하루에 딱 한 번 운행하는 무궁화호를 이용하는 편이 좋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속에 등장했던 화본역 플랫폼. 사진 / 조아영 기자
중앙선이 정차하는 화본역에서는 화물열차가 오가는 풍경도 쉽게 볼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출발한 지 4시간 30분가량 지나면 다음 정차역이 ‘화본’임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스크린을 스쳤던 풍경은 열차에서 내리면서부터 시작된다. 

바로 재하가 옛 여자친구와 어색하게 마주 서 있던 플랫폼이다. 혜원의 오랜 친구인 재하는 도시에서 회사를 다니다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짓고 있는 인물이다. 이전에 교제했던 옛 여자친구가 그를 잊지 못해 ‘지나가다 들렀다’는 핑계로 시골마을까지 찾아오는데, 그곳이 바로 ‘여기’였다.

영화 속에서 화본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그러나 역사 내부에 볼거리가 쏠쏠해 함께 둘러보기를 권한다. 삐거덕 소리가 나는 미닫이문을 열고 역 안에 들어서면 증기기관차와 새마을호, 열차승차권 변천 과정 등 옛 시절을 담은 사진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창가 벽면은 옛 기차 사진 등으로 채워져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화본역의 역사를 담은 패널. 사진 / 조아영 기자

화본역 관련 패널에는 오래전 흑백사진과 비교적 최근에 촬영한 컬러사진이 번갈아 붙어있어 흘러간 세월을 느끼게 한다. 방문객들은 패널 아래에 마련된 역무원 모자를 직접 써 보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역을 나서면 정면에 ‘역전상회’라는 상호를 단 작은 가게가 자리한다.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라 쓰인 작은 현수막 아래 놓인 녹색 플라스틱 의자 두 개. 영화 속 혜원과 은숙이 앉아 간식을 먹으며 재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던 곳이다. 

영화 속 혜원과 은숙이 간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던 역전상회. 사진 / 조아영 기자
가게 앞에는 '리틀 포레스트 영화 촬영지'라는 소박한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추억의 간식을 판매하는 역전상회. 사진 / 조아영 기자

50여 년간 한자리를 지켜온 가게는 지금도 ‘뽀빠이’, ‘옥수수콘’등 추억의 과자를 판매하고 있어 두 친구처럼 주전부리를 오물거리며 한가로이 쉬어가기 좋다. 

Info 화본역
입장시간
오전 9시 30분~오후 5시 30분
입장료 1000원(당일 열차 승차권 소지 고객은 무료입장)
주소 경북 군위군 산성면 산성가음로 711-9

S#2. 작은 숲이 자라나는 곳, 미성리
화본역에서 차를 타고 약 15분쯤 이동하면 산을 등지고 있는 한 마을에 닿는다. 푸르게 펼쳐진 논밭 위로 구름이 유유히 흘러가고, 듬성듬성 느슨하게 자리한 주택 사이로 컹컹 충견들이 짖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 여느 시골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 이어진다. 

마을 길가에는 영화 속 주 무대인 ‘혜원의 집’이 있는 곳을 알려주는 파란 표지판이 서 있다.

혜원이 자전거를 타고 달렸던 풍경 속을 걸어 도착한 곳은 낮은 담장이 둘러져있는 대문 없는 집이다. 원래부터 비어 있던 이 집은 1년간 영화 속 혜원의 집으로 쓰였다가 현재는 이곳을 찾는 이들을 위해 전면 개방되어 있다.

시골 풍경을 벗 삼아 걷다 보면 영화 속 배경지로 쓰인 집을 발견할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집에 들어서기 전, 낮은 담장 곁에 자리한 텃밭으로 눈길이 향한다. 고향집에 돌아온 혜원이 가장 먼저 향한 장소이자 계절마다 다른 작물을 심어 길러내던 곳이다. 

여전히 생명을 품고 있는 포슬포슬한 밭을 맨손으로 만져본다. 고향으로 돌아왔던 겨울밤 눈 아래 묻혀 있던 배추를 칼로 베어내던 혜원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혜원은 그 배추로 국을 끓여 먹고 나서야 비로소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단잠에 빠졌다.

혜원이 계절마다 작물을 심고 가꿨던 텃밭. 사진 / 조아영 기자

걸음마다 흙냄새가 폴폴 달려오는 마당을 지나면 널찍하게 트인 대청마루가 보인다. 혜원이 편하게 걸터앉거나 누워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직접 빚은 막걸리를 친구들과 나눠 먹기도 했던 공간이다. 

군위군 우보면 미성리에 자리한 '혜원의 집'. 사진 / 조아영 기자
널찍하게 트인 대청마루. 사진 / 조아영 기자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던 곶감 막대가 보인다. 사진 / 조아영 기자

혜원이 그랬듯 마루 끝에 털썩 걸터앉아 본다. 시선이 닿은 처마 아래에는 혜원이 감을 깎아 주렁주렁 매달아 두던 곶감 막대가 그대로 남아있다.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들이쉰다. 어디선가 피어오른 풀냄새와 흙냄새가 코끝을 맴돌고, 선선한 바람에 나뭇잎이 부딪히는 싸락싸락 소리가 들려온다.

Info 영화 <리틀 포레스트> 속 혜원의 집
주소
경북 군위군 우보면 미성5길 60(미성1리 마을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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