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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역사기행] 마침내 신이 되어버린 산, 경주 남산
[역사기행] 마침내 신이 되어버린 산, 경주 남산
  • 여행스케치
  • 승인 2003.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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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보리사 석불좌상. 남산에는 불상이 많기로 유명하다.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보리사 석불좌상. 남산에는 불상이 많기로 유명하다.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여행스케치=경주] 경주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느지막이 일어나 남산으로 향했다. 10년 전, 처음 남산을 찾았을 때 번갯불에 콩 구어 먹 듯 여기저기를 훑고 지났는데 ‘다음번에 오면 꼭 남산을 종주하리라’라는 다짐을 했었다. 우선 아침나절엔 남산 동쪽 면에서 만날 수 있는 두 분 부처님을 알현하기로 했다.                        

동남산에서 만난 두 분 부처님
나는 보리사 부처님을 좋아한다. 탁 트인 경주의 들판을 내려다보며, 살랑거리는 바람을 맞으면서 가부좌를 틀고 계신 모습을 바라보면 유리벽에 갇히고 보호각에 시야를 빼앗긴 석굴암 본존불이 생각난다.

이리저리 보리사 부처님을 뜯어보고 마지막으로 부처님이 바라보고 계신 경주들판으로 시선을 돌리면 ‘보리사 부처님은 정말 좋으시겠다!’ 석굴암 본존불을 대신해 질투마저 일 정도다.

부처골 감실여래좌상 찾아가는 길은 설렘의 길이었다. 그리 험하지 않은 산길을 올라 산죽이 핀 길로 접어 들 무렵 길에서 잠시 비껴 바위를 깎아 놓은 감실 속에 부처님이 앉아 계셨다. 부처님이라기보다는 나이를 지긋이 잡순 동네 아주머니같은 모습이다. 불상이 만들어진 때가 선덕여왕 무렵이라던데 여왕의 모습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라는 주장에 일리가 있어 보인다.  

이렇게 동남산의 두 개 유적을 돌아보는데 넉넉잡아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정상 오르는 길에 내려다본 상선암 마애석가여래대불여래좌상.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정상 오르는 길에 내려다본 상선암 마애석가여래대불여래좌상.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삼릉계곡을 따라 정상 가는 길
남산의 종주를 위해 삼릉으로 가는 길에 점심을 해결하고 1시쯤까지 남산의 서쪽으로 이동했다. 삼릉은 말 그대로 아달라왕, 신덕왕, 경명왕의 능으로 추정되는 세 개의 능을 말한다.

삼릉을 뒤로 하고 계곡에 들어서는 순간, 커다란 바위 위에 목 없이 앉아계신 부처님을 만났다. 목도 없이 손목마저 잘린 부처님의 옷주름과 곱게 새겨진 매듭이 이렇듯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삼릉. 세 분의 신라왕을 모신 왕릉으로 추정된다.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삼릉. 세 분의 신라왕을 모신 왕릉으로 추정된다.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이곳에서 잠시 등산로 왼쪽옆길로 40미터쯤 오르면 마애관음보살상이, 등산길로 돌아와 다시 산을 오르다보면 널찍한 바위를 화판삼아 붓으로 그린 듯 부처님을 그려 넣은 마애선각육존불상을 만난다. 산을 오르면서 숨이 차오를 무렵에 나타나 숨도 고르게 하고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시는 부처님들이 너무 고맙다. 여기서부터는 좀 가파른 산길을 올라야한다.

언뜻언뜻 보이는 남산의 봉우리들과 산 정상부근에 자리 잡은 암자, 상선암에서 들려오는 염불 소리가 발길을 재촉한다. 상선암에서 마른 목을 축이고 잠시 계단을 오르다보면 삼릉 계곡 꼭대기에서 경주의 들판을 바라보고 앉아계신 불좌상을 만난다. 이 부처님의 시선을 잠시 빌려 바라보는 산 아래 세상이 아득하게 느껴지기만 하는데… 이 경치에 반해 다시 산을 오르면서도 자꾸 고개가 뒤로 돌아간다.

용장사 터 삼층석탑. 보물 186호.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용장사 터 삼층석탑. 보물 186호.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용장골로 내려오는 길
산의 능선을 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편안한 흙길이다. 이 흙길을 따라 남산의 두 개 정상 가운데 하나인 금오봉(468미터)에 다다르기까지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정상에서 밑으로 몇 걸음 내려오면 일제시대 때 닦아놓았다는 횡단도로를 만나게 된다.

이 비포장도로를 따라 1킬로미터쯤 내려가다 보면 용장사 터로 가는 알림판을 볼 수 있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험해진다. 등산객을 위해 설치해놓은 로프까지 타고 가파른 산길을 내려가니 커다란 바위를 기단 삼아 늠름하게 서 있는 삼층석탑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여기가 바로 용장사 터다.

용장사 터 마애여래좌상. 보물 913호.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용장사 터 마애여래좌상. 보물 913호.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용장사 터 목 없는 부처상.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용장사 터 목 없는 부처상. 2003년 10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용장사 터는 남산에 남아 있는 절 터 중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하는데 생육신 가운데 한 분이신 김시습이 머물며 ‘금오신화’를 집필했다고도 한다. 사실 남산을 다시 찾고 싶었던 것은 이 용장사 터에 다시 오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이곳에 와서 느꼈던 알 수 없는 경외감을 가족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옛 신라인들은 남산을 신으로 여겼다. 그리고 이 산의 계곡과 능선 곳곳에 정성껏 부처님을 새겨 놓았다. 그로부터 천 년의 세월이 흘러 이 산을 찾은 우리는 그들이 남겨 놓은 부처들을 만난다.

그리고 이 산이 내게도 마침내 신이 되어 다가옴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가을에 경주를 찾을 일이 있는 분이라면 꼭 경주 남산을 오르라고 권한다. 남산을 보지 않고서는 신라를 만났다고 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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