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인천] 당신이 무인도에 홀로 남아야 한다면 가져가고 싶은 3가지 물건은? 무선인터넷 되는 노트북? 만화책? 멋진 남자나 여자? 그것은 팔자 좋을 때나 할 수 있는 얘기다. 현실 속의 무인도는 결코 ‘환상 속의 그대’가 아니었다.
배는 몇 뼘 안 되는 듯한 작은 사승봉도 모래밭에 사람들을 내려놓더니 금세 사라져버렸다. 80명의 ‘아빠와 추억 만들기’ 회원들과 떠난 무인도 탐험. 숨을 가다듬는 틈을 타서 단장님은 섬에 관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해류가 몇 겹이나 겹치는 이쪽 바다는 절대 들어가지 말고, 살모사가 많이 있는 산에 갈 때는 조심하고, 뱀에게 물렸을 때는 구멍이 2개 나있을 테니 바로 알리고…. 뱀?
아, 갑자기 무인도 생활에 먹구름이 드리워지는 듯 했다. 무인도, 척박한 삶…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끝없이 넓은 백사장이 펼쳐졌다. 너무나 아름다운 무인도다!! 무인도!
첫 번째 특명, 무인도를 샅샅히 뒤져라
사승봉도는 아름다운 섬이다. 맨 발바닥에 느껴지는 가는 모래의 감촉과 감질나게 발가락에 감겨드는 파도를 느끼며 멀리 떨어지는 수평선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밀려온다. 아름다운 기암괴석은 섬의 어깨를 세워주고 원시림처럼 시퍼렇게 살아있는 숲은 풍성한 머리카락이 되어 한 폭의 풍경을 만든다.
그 해변 위를 꼬물꼬물 기어 다니는 갯달팽이와 작은 조막게, 그리고 수많은 고동들까지 더하면 평화롭기 그지없는 풍경이다. 풍경도 볼 새 없이 텐트를 설치하던 가족들. “아빠. 텐트가 너무 조그맣잖아. 이런 데서 둘이 어떻게 자. 어휴.” 2인용 텐트를 제공받고 투덜대는 딸내미에게 아빠는 이렇게 답한다. “너는 텐트에서 자. 아빠는 밖에서 자면 되니까.” 갑자기 눈물이 핑 도는 아빠의 사랑. 이 집 뿐만이 아니다.
텐트도 못 쳐서 아들에게 타박 받던 아빠. “아빠가 텐트는 못쳐도 밥은 잘해. 자취생활 10년 경력 아니냐.” 아들과 오랜만에 남자 대 남자로 여행을 와봤다는 아빠는 그런 아들의 타박에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이곳에 오면 엄마가 일하는 것은 금지. 발각되는 가족은 벌금이 10만원이다. 모처럼 만에 엄마들이 완전한 휴가를 얻었다.
전원에게 대나무가 주어졌다. 대나무를 쪼개서 수저를 대신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어디 가서 하겠는가. 모두들 열심히 숟가락 젓가락을 만들었다. 그렇게 대나무로 떠먹는 맛! 정말 꿀맛이란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우선 섬 탐험부터 해야 합니다.”
무인도에 처음 도착하면 우선 섬의 지형지물을 파악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섬은 정말 열악했다. 쓰러져갈 듯한 몰골에 민망하게도 문조차 닫히지 않는 푸세식 화장실, 모래와 나뭇잎이 수영을 하고 있는 작은 우물, 그 우물물을 작은 대야에 퍼서 씻어야 하는 불안한 샤워실이 딸랑 있을 뿐이다. 작은 일은 인적 드문 곳에서 해결하고 큰 일은 꾹 참고, 3일 동안 샤워는 포기해야 한다. 갑자기 온 몸이 간지럽다.
섬을 알기위해 수많은 살모사가 스물스물 기어 다니는 사승봉도 모래산에 올라갔다. “고지가 보이는가?” “나무뿐이다. 오버!!” 태양도 푹푹 찌는데다 땀도 많이 흘려 목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아. 제발. 나에게 물을 다오. 산에서 돌아오자마자 너도나도 우물가로 모여들었다. 제발 물 한 모금 얻어먹었으면…. 그 때, 단장님이 건넨 물 한 바가지. 꿀떡꿀떡. 평생 이렇게 달디 단 물은 처음 봤다.
먹거리는 이렇게 해결해요
물도 구하기 힘든데 다른 먹거리 사정은 어떻겠는가. 우리는 먹을거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우선 어살을 만들었다. 민물 때 고기들이 밀려왔다가 썰물 때는 어살에 걸려 못나가는 이치를 이용하는 것. 어살을 한참 만들고 있는데 바다가 부끄럽게 부드러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썰물? 그렇다면 지금은 조개잡이를 가야지? 아니 근데 이게 웬 떡이냐? 모래 속에 조개가 묻혀있는지 조개 속에 모래가 묻혀있는지 모르겠다.
모두 힘을 합해 한 양동이를 주웠건만 단장님은 자원을 고갈해서는 안 된다며 반이나 바다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래도 좋은 모양. 이리보고 저리보고. 그리고 자랑한다. “이거, 제가 잡은 거예요.” 이 날의 저녁식사는 딸랑 감자 2개와 사과 반 조각. 단장님이 챙겨준 감자 한 알을 허겁지겁 먹었다. 아이들은 밥맛이 없다며 그것마저 남겼는데…. 피자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맨 감자가 맛있을 턱이 없지.
감자 들통을 아쉬운 듯 바라보는데 조교들이 옷자락을 잡아당긴다. “저기 기자님. 그만 드세요. 우리는 고기 먹을 거예요.” 순간 너무 좋아서 표정관리가 잘 안됐다. 일하는 사람들은 실하게 먹어야 한다는 단장님의 배려 덕에 그 날 스태프와 기자들은 감자 2알 대신 맛있는 밥과 불고기 반찬을 먹었다.
밤 사냥에 나섰다. 바로 조막게 잡이. 인적이 드문 밤이면 해변가로 게들이 새까맣게 나타나는데 랜턴으로 놈의 시선을 교란시킨 후 날카로운 집게발을 피해 순식간에 팍하고 덮쳐야 한다. “야. 빨리 덮치지 않고 뭐해.” 집게발을 들고 공격 자세를 취하는 게 때문에 아들이 망설이는 걸 본 아버지. “그럼 아빠가 해봐.” 아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나선 아버지는 게에게 물려 금세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으~으, 으악!! 어우, 야. 무섭다.” 아들 타박하던 아버지는 머쓱해지기만 하고….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쏟아져 내릴 듯이 환하게 빛난다. 이런 보석들을 보신 적이 있나요? 사승봉도의 첫날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신나는 무인도 탐험 으랏차차차!
아침 새벽, 휘몰아치는 바람에 일어났다. 튀김재료에 빵가루를 묻힌듯 온몸이 모래투성이가 됐다. 텐트바닥에 그냥 잤더니 온몸이 결려온다. 에구구구. 불현듯 어제 잡아둔 게들이 생각났다. 에구머니나. 이게 뭐야? 사승봉도 게들은 모두 쌈닭들만 모였는지 밤새도록 싸우느라 서로의 다리를 모두 잘라버렸다. 무서운 놈들. 생긴 것들도 포악한데….
그 와중에도 살겠다고 도망치는 놈도 있고. 아이들은 패잔병 같은 게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한다. ‘곧 기름에 튀겨질 텐데. 너무 사랑하지 말아라. 얘들아’하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무인도에 오면 배도 고파봐야 한다며 단장님은 아침부터 죽을 준비했다. 1백인 분의 들통에 전복 몇 마리가 몸만 담구었다 나온 듯한 전복죽. 이 쌀죽에도 눈물이 나는 것은 왜일까? 설거지를 도와야지 하며 일어났는데 조교들이 만류를 한다.
“설거지 하는 거 보면 밥 못 드실 텐데…. 밥 먹을 때 마다 모래가 씹히는 이유가….”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깨끗한 우물물은 식수로만 사용했었다. 때문에 설거지는 바닷가에서 해결. 잔반은 미리 파둔 구덩이에 버리고 나머지 음식때는 모래로 깨끗이 씻어냈다. 그릇을 헹구어내고 다시 한 번 ‘퐁퐁’으로 세척하면 설거지는 끝! 이걸 말하고 싶었나? 아니, 그런데 이게 뭐다냐? 바닷가 주위를 둥둥거리는 고춧가루와 밥풀떼기….
갑자기 바다에게 너무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미안함 때문인지 찝찝함 때문인지 그 날 이후로 감히 그곳에서는 해수욕을 할 수가 없었다. 한 쪽에서 아빠들의 나무집 짓기가 시작되고 한쪽에서는 아이들의 모래성 쌓기가 시작됐다. 모래성 쌓기에서 이기면 과자 6봉지를 준다는 말에 아이들이 눈빛이 새치름해졌다. 그 와중에 어제 잡은 조개는 장작불에 노릇노릇 구워지고…. 짭조름한 구운 조갯살과 마시는 소주 한 잔.
캬~! 이거 생각 보다 맛나네? 하면서 기자의 신분을 이용해 두둑하게 배를 채웠다. 어른들이 갯바위로 ‘못 잡아도 5마리’라는 우럭낚시를 간 사이. 아이들은 조교들과 모래 바닥에서 뛰어 놀았다. 피구, 축구, 편짜서 빨리 달리기. 뛰다가 넘어지는데도 부드러운 바닥이라 우는 아이 하나 없다. 우럭낚시를 갔던 팀이 승전보를 울리며 돌아왔다. 모두 기대에 부풀어 상자를 열어보았는데 애에? 겨우 3마리?
그 중 가장 큰 놈은 중학교 2학년 승보가 잡았다. 아버지랑 낚시하는 묘미를 알았다면서 뿌듯해하는 승보. 이번 체험에서 자신이 잡은 우럭보다도 더 큰 값진 추억을 낚았다. 서서히 섬에 석양이 내리기 시작했다. “사승봉도의 낙조는 언제 봐도 장관 이예요.” 무인도 생활 3주차. 이제 지쳐서 이야기할 힘도 없다는 조교선생 재원 씨가 빨간 낙조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빨간 태양 속으로 아빠와 아이가 손을 잡고 걸어오는 풍경이 잡혔다.
사상 최대의 작전, 뗏목탈출 감행
모래가 가득한 텐트를 바닥삼아 잠이 든 지도 벌써 이틀. 등이 결려 오고 제때 화장실에 못간 배가 요동친다. 이 처절한 무인도의 삶. 누가 볼까 남들 잘 때 우물가에 살짝 다가가서 목욕하고 나뭇잎 둥둥 떠다니는 물도 감사하면서 먹어야 되는 생활. 아이들도 힘든 생활에 칭얼거리기 시작한다. 안되겠다. 도저히 버틸 수 없다. 탈출을 감행해야지.
드디어 아빠와 아이들은 뗏목을 만들기 시작했다. 섬 주위를 떠도는 물건들을 모아라! 우선 대나무를 가지고 돗자리처럼 서로 촘촘히 묶었다. 거기다가 버려진 스티로폼을 바퀴처럼 달고 깃발 하나를 꽂았다. 와!! 뗏목이 완성되었다. 아빠와 아이들 할 것 없이 승리의 함성을 내질렀다. 이 섬에서 탈출할 수 있다! 모두들 합세해서 뗏목을 바다에 띄웠다. 뻣뻣하기만 하던 뗏목이 물살을 타고 출렁이기 시작했다.
저기 손에 잡힐 듯이 섬이 보이는데 저 곳까지 닿을 수 있을까? 출렁출렁하면서 뗏목이 섬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파도가 속삭이는 소리가 가슴에 울려댄다. 파도의 움직임이 온몸의 전율로 다가온다. 뗏목에서 사승봉도를 바라보았다.
아빠와 함께 텐트치고 대나무로 숟가락, 젓가락 삼아 밥 먹었던 이야기. 맛있는 조개구이와 게 튀김을 먹고, 아빠와 나란히 모래성을 쌓고, 나무집을 지어 그늘을 피하고 뗏목을 만들어 탈출했던 2박 3일간의 무인도 여행. 그 추억이 너무 고와 갑자기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아빠~! 사랑해요!! 아빠와 함께 추억 만들기
‘무인도에서 살아남기’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한 곳은 바로 아빠와 추억 만들기. 우리나라의 자녀교육이 엄마에게 집중된 것을 안타깝게 여긴 권오진 단장의 아이디어로 탄생된 가족답사모임이다. 이곳에서 기획하는 프로그램에는 반드시 아버지가 참석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좋은 아빠가 되어보겠다고 결심한 분이라면 한번쯤 들러보시길. 아이와는 대화의 시간을, 아빠들과는 서로간의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장이 된다.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위한 몇 가지 팁
자연 나침반 만들기 : 무인도에 떨어졌을 때 살아남기 위해서는 동서남북을 알아두는 것이 좋다. 햇볕이 내리쬐는 정오에 시침이 도는 시계 정가운데에 막대기를 하나 세우면 알 수 있다. 이 때 생기는 그림자와 시침 사이가 가리키는 방향이 북쪽이다.
간이 정수기 만드는 법 : 깨끗한 페트병을 하나 찾아서 바닥을 잘라낸다. 병 주둥아리를 헝겊으로 막는다. 제일 아래 가는 모래 - 숯 - 가는 모래 - 가는 자갈 - 굵은 자갈 - 낙엽을 놓고 그 위에 물을 붓고 한 시간 정도 기다린다.
Info 사승봉도는요 승봉도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작은 무인도. 사유지이 때문에 이 섬을 관리하는 사람을 빼고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서해에서 흔치 않은 넓고 부드러운 백사장과 해발 74m의 앙증맞은 모래산, 섬 주위를 두르는 기암절벽들이 아름다운 절경을 그린다. 물도 맑고 백사장이 고와서 7, 8월에는 인파를 피해 다니는 피서객이 밀려든다.
생각 없는 쓰레기 투기와 환경오염에 사승봉도가 요즘 울고 있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기자를 붙잡고 ‘제발 소개하지 말아 달라고’까지 했겠는가.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싶다면 그 곳을 먼저 보호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으면 한다.
가는 길 인천연안부두 - 승봉도 - 승봉도에서 사승봉도 가는 낚시배 부르기(시즌에 따라 요금이 다르므로 사전에 문의할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