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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농촌체험] 약재향에 취하고 봄내음에 쓰러지는 제천 산야초 마을 이야기
[농촌체험] 약재향에 취하고 봄내음에 쓰러지는 제천 산야초 마을 이야기
  • 박지영 기자
  • 승인 2005.06.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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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제천 산야초 마을 풍경. 2005년 6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제천 산야초 마을 풍경. 2005년 6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여행스케치=제천] 순수하다. 정이 많다. 깨끗하다. 모 CF 얘기가 아니다. 산야초 마을 사람과 마을 전경이 그러하다. 때 묻지 않아 청초한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어, 할머니 저도 비지장 사고 싶은데 다 떨어졌어요.” “거 있어봐, 우리집거 갖다 줄게.” 다음 카페 ‘일상탈출’회원 여덟가족 30여 명과 함께 산야초 체험여행을 떠났다.

산나물 너 잘 걸렸다!
서울, 대구, 금산과 함께 4대 약령시로 자리 잡은 제천은 약초가 자라기에 유리한 조건을 가졌다. 함께 간 엄마 회원들은 약초 캐는 이 시간을 가장 기다렸다. 마을 뒷산으로 가는 미니 트럭에 냉큼 올라탄 가족들은 잔뜩 신이 났다. 하지만, 아직 약재 수확철이 아니어서 아쉬운 대로 산나물을 캐기로 한다.

청풍호가 내려다보이는 넓디 넓은 언덕에는 인진쑥, 더덕, 참나물, 고사리, 나물치, 산머루, 돗나물, 청출, 백출 등 많은 종류의 야생초가 자생한다. 박재원 할아버지는 마을에서 약재에 대해 가장 잘 아신다. “청출과 백출은 잎사귀만 먹고 패랑초는 오래둬도 썩지 않아요”

할아버지의 설명에 다들 눈을 반짝거리며 듣는다. 산야초 마을의 주요 약재인 당귀와 황기는 4월에 파종하여 11월에 수확을 한다. 송이는 9~10월 경에 채취하니 가을께나 약초체험은 본격화된다. 아이들도 여기저기 흩어져 호미로 나물을 캐는 폼이 제법 자연스럽다.

‘방가방가’님이 지영이와 현채, 현수가 캔 나물 한아름을 단돈 9백 원에 냉큼 사더니 뭔가 찝찝했는지 먹고 탈이 생기면 연락하겠다며 으름장까지 놓는다. “9백원이면 애들 인건비도 안 떨어질텐데, 좀 더 쓰시지….” 땡볕에서 약초를 캔 가족들은 땀도 식힐 겸 마을 뒤로 난 길을 따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용담폭포에 올랐다.

기암괴석 가운데 용담폭포가 자리하고 있다. 2005년 6월. 사진 / 박지영 기자
기암괴석 가운데 용담폭포가 자리하고 있다. 2005년 6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용이 밟고 지나간 자리
30여m의 높이에서 시원하게 떨어지는 용담폭포는 상단부터 하단까지 삼단에 걸쳐 내려온다. 예전에는 이곳에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즐겼다는 설이 전해진다. 기암절벽 사이에서 힘찬 물줄기가 쏟아져 약초 캐며 흘렸던 땀을 얼얼하게 말려 주었다.

물보라를 일으키는 모습이 용이 승천하는 모습같아 ‘용담폭포’라 부르는며, 발로 밟고 올라간 자국이 삼단을 이루어 ‘용담폭로’라고 부르기도 한다. 금수산 등반은 바위가 다소 많아 걱정했는데, 여행을 많이 다니는 팀들의 진가는 이럴 때 발휘된다.

‘일탈가족’은 한 명의 낙오자 없이 어느새 꼭대기까지 올라 여유롭게 땀을 식힌다. 90도의 가파른 절벽을 올라 폭포 꼭대기의 바위에서 내려다본 절경은 알파벳 U가 왼쪽으로 넘어진 ⊃모양으로 산이 폭포를 부드럽게 감싸는 형상이다. 언뜻 여성의 자궁이 생각났다고나 할까? 폭포가 산에게 안긴 건지 산이 폭포를 보듬은 건지는 이 둘 외엔 모를 일이다.

손수건의 불순물을 없애기 위해 콩즙에 손수건을 주무른다. 2005년 6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손수건의 불순물을 없애기 위해 콩즙에 손수건을 주무른다. 2005년 6월. 사진 / 박지영 기자

“꼭 X묻은 거 같네”
염색할 황토는 산에서 흙을 퍼서 손으로 풀어 1시간 동안 주물러서 정제시킨다. 염색하기 전 콩을 간 즙에 원단을 미리 넣고 주무른다. 불순물도 제거하고 염색이 더 잘되게 하기 위함인데 이것을 ‘정면’이라 한다.

콩즙에 주무른 원단을 황톳물에 넣어 3시간여를 더 정성스럽게 주무른 다음 햇볕에 말린다. 꼬박 이틀이 소요된다. 조물딱 조물딱 혼자 남아 정성스럽게 원단을 주무르는 ‘우리’ 앞에서 차마 “너 이거 못 가져가”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황토흙을 곱게 푼 물에 정면된 손수건을 넣고 3시간 정도 주무른다. 2005년 6월. 사진 / 박지영 기자
황토흙을 곱게 푼 물에 정면된 손수건을 넣고 3시간 정도 주무른다. 2005년 6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씨익’님은 목에는 황토 손수건을 매고 바지를 걷어 부치고 황톳물에 뛰어들었다. 발로 꾹꾹 밟으며 전화까지 받는 포즈를 선보이며 스스로 황토 모델이 되어 주었다. 너무 열심이셨나. 결국 아이보리색 바지 엉덩이 부분에 황톳물이 튀어 투덜거리는 그의모습을 본 ‘방가방가’님이 한소리 하신다.

“꼭 X묻은거 같네.” 여기저기 웃음보가 터진다. 체험장 한쪽에는 엄마와 함께 구경 온 예쁜 외모의 화용 씨가 앞치마를 매고 직접 쑥 염색 체험을 선보인다.

10분 안에 두 지역을 누비어라
청풍호를 타고 장회가는 길에 옥순대교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기 전까지는 충북 청주시지만, 다리를 건너면 단양이다. 단양팔경에 속해 있는 옥순봉에는 ‘단구동문’이란 네 글자가 새겨져 있다. 퇴계 이황 선생이 단양군수로 재직할 당시 단양과 제천의 경계를 나타내기 위해 넣은 것이다.

유람선에서 보이는 단양팔경과 옥순봉을 보고 절경이네 비경이네 얘기하지만 그 뜻을 알고 말하는 이는 드물다. 절경과 비경은 둘 다 경치가 좋다는 뜻을 갖고 있지만, 절경은 드러나 있어 어느 방향에서 보던 경치가 좋음을 얘기하고, 비경은 숨겨져 있는 멋스러움을 말한다.

옥순대교를 건너 청주에서 단양으로 넘어간다. 2005년 6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옥순대교를 건너 청주에서 단양으로 넘어간다. 2005년 6월. 사진 / 박지영 기자

단양팔경과 옥순봉이 절경에 속하고, 수직으로 장쾌하게 떨어지는 내변산의 직소폭포가 비경에 속한다. 시원한 호수바람을 맞으며 기분이 들뜬 관광객들은 선상 내에서 봄바람에 몸을 싣고 분위기에 취한다.

체험관으로 돌아와 노릇하게 구운 생선구이와 각종 웰빙 식단을 겸비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향긋한 약재차 한 잔을 여유있게 마신 뒤 지루할 틈도 없이 ‘도전 골든벨 한약사 퀴즈’에 몰입한다. 재미나게 약초의 상식을 전달해 주어 말썽꾸러기 현수도 제법 진지하게 답을 적는다. 침 튀기는 혈전 끝에 ‘우리’와 ‘봄비’님이 한방비누를 상품으로 받았다.

정방사에 뜬 오동통한 달. 2005년 6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정방사에 뜬 오동통한 달. 2005년 6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여러가지 체험을 하고나니 어느덧 해가 졌다. 산야초 마을의 금수산에는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정방사가 있다. 일몰 감상 후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하던 중 마음에 꼭 들어오는 글귀가 있다. 법당과 유운당의 주련에 있는 글이다.

山中何所有(산중하소유) - 산중에 무엇이 있을까
嶺上多白雲(영상다백운) - 산마루에 흰 구름 많이 머물러 있구나
只可自治悅(지가자치열) - 다만 나 홀로 즐길 수 있을 뿐
不堪持贈君(불감지증군) - 그대에게까지 바칠 수가 없구나

서울의 달보다 세 배나 큰 제천의 달에는 넉넉한 몸매만큼 산야초 마을사람들의 푸근한 인정이 녹아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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