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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가평 명지산, 들꽃 따라 가는 가족 산행에 딱 좋은 산
가평 명지산, 들꽃 따라 가는 가족 산행에 딱 좋은 산
  • 김선호 객원기자
  • 승인 2005.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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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명지산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2005년 11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명지산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2005년 11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여행스케치=가평] 명지산은 해발 1,267m로 화악산(1,456m) 다음으로 경기도 최고봉이다. 레이더기지가 설치되어 있는 화악산은 정상으로의 접근이 불가능하니 정상까지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는 명지산 정상인 셈이다.

올 봄부터 꾸준히 시간이 나는 대로 가족과 함께 산을 올랐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산행이었으니 너무 높지 않고 지나치게 가파르지 않은 산을 선택해야 했지만 그렇게라도 산봉우리를 하나씩 직접 밟아가며 산의 매력을 알아가는 일이 좋았다.

올해처럼 계절의 변화가 갑작스러울까? 유난스럽던 무더위도 물러간 자리에 거짓말처럼 서늘한 바람으로 가을이 왔다. 하늘이 파랗게 열려 있었고 시계(示界)는 또렷하여 멀리까지 조망할 수 있던 날.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는 들을 지나 명지산으로 향했다.  

그동안 쉬엄쉬엄 산을 오르곤 했던 초보수준으로 해발 1,000m가 넘는 산을 오를 수 있을지 사실 오르기 전엔 무척이나 염려스러웠다. 아이들 역시 걱정스럽긴 마찬가지. 명지산이 마치 속담속의 태산(太山)처럼 느껴졌을 지도 모르겠다.

입구에 물레방아가 있어 눈길을 끈다. 2005년 11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입구에 물레방아가 있어 눈길을 끈다. 2005년 11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명지산은 ‘생태보전 관리구역’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매표소와 별개로 명지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가 입구 쪽에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6시간 정도 걸릴 겁니다.’ 산을 오르기 전에 관리인에게 물어보니 돌아온 대답이었다.

산의 높이를 어림해 보고 아이들을 대동한 초보인 점을 감안하면 넉넉잡고 7시간 정도를 예상하고 산을 오른다. 입구 쪽에서 산세를 바라다본다. 맑고 파란 전형적인 가을 하늘 아래 시계가 한껏 멀리까지 보이는 명지산의 산세가 우람하다.

‘물레방아다리’ 입구 오른편에 설치된 물레방아를 보고 아이들이 신기해한다. 하긴 산 입구에 물레방아가 설치된 곳은 명지산에서 처음 본다. 조종천 물길로 흘러드는 명지계곡은 넓은 폭 가득 거친 물살을 쏟아 내리고 있었다.

승천사까지는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2005년 11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승천사까지는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2005년 11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등산로와 나란히 이어진 명지계곡으로부터 찬 기운이 서늘하게 전해져 오니 땀이 흐를 새가 없다. 길은 평탄한 흙길로 이어졌다. 산 입구부터 1km 남짓 걸어 승천사라는 절을 만날 때까지 줄곧 오르막 없는 산길을 걸었다.

산길 아래 웅장한 규모의 명지계곡이 없었던들, 규모가 크지 않지만 승천사라는 절이 없었던들 그 길이 참 단조롭다 생각될 정도로 평탄한 길이었다. 승천사 천왕문 앞뜰에 제법 너른 콩밭이 펼쳐져 있었다.

스님이 가꾸었을까, 푸르게 잘 자란 콩포기들이 바람초록물결을 일으키고 있는 끝에 승천사 절 문이 절묘하게 들어서 있다. 절집이 푸른 물결을 이룬 듯한 콩밭을 배경으로 서 있으니 천왕문을 지키고 있는 사천왕상도 어쩐지 이웃집 아저씨 같은 느낌이 든다.

절집 돌담을 돌아 비슷하게 이어진 길을 다시 오른다. 가파르지 않아서 참 좋다. 산길이란 언제 가파른 벼랑길이 나타날지 모르지만 당장은 평탄하게 이어진 흙길을 걸어가며 편안한 산행을 즐겨 본다. 계곡의 흐름 위로 놓인 구름다리를 건넌다.

가파름이 절제된 산길을 걷다 계곡 위로 놓인 세 번째 구름다리를 건너니 그곳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조금씩 오르막길이다. 그래도 대체로  오르막이 그리 가파르지 않은 등산로가 이어진다.

그제서야 비로소 명지산을 소개하는 글 중, 초보자도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라는 문구에 고개를 끄덕인다.

명지산은 1,267m의 높은 산이면서도 오르막이 그리 가파르지 않아 초보자도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다. 흙길과 암벽도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맑은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폭포도 있는 명산. 명지 폭포는 깊이를 재기 위해 명주실 한타래를 썼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깊다. 2005년 11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명지산은 1,267m의 높은 산이면서도 오르막이 그리 가파르지 않아 초보자도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다. 흙길과 암벽도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맑은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폭포도 있는 명산. 명지 폭포는 깊이를 재기 위해 명주실 한타래를 썼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깊다. 2005년 11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높은 대신 가파르지 않은 산, 계곡의 풍부한 물길을 보며 걸으니 한여름 무더위도 저만치 물리칠 수 있는 산, 단풍나무와 신갈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가을이면 단풍이 고색창연하다는 산, 고산성식물과 환경부지정 희귀식물군이 다양하게 자라고 있고, 900여종이 넘는 곤충들이 서식하며 수달 오소리, 고슴도치 등 보호동물군이 울창한 수림속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너른 품을 가진 산.

명지산의 품이 한없이 넓고 안온하게 느껴진다. 명지산을 오르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경북 예천에서 오셨다는 산악회 회원 분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산길에 긴 줄을 잇는다. 그분들의 한결같은 칭찬에 어깨가 으쓱해진 아이들은 저만치 앞장을 선다.

본격적인 비탈길, 게다가 계단이 이어져 뒤에 처진 나는 혼자 가쁜 숨을 들이키는데…. 꼭 계단을 설치할 만큼 위험한 길도 아닌데 어쩌자고 그리 긴 나무계단을 박아 두었는지 계단 앞에서 보이지 않은 누군가를 향해 불만을 쏟아 붓는다.

그렇게 산에서 만나는 계단은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일방적으로 보폭을 계단에 맞춰야 하는 일이 오히려 산을 오르는 일을 힘겹게 하는 것 같다. ‘명지산 정상 1.3km’라는 팻말을 발견하고 다시 힘을 낸다. 다행히 그곳에서 얼마 오르지 않아 가파른 비탈길이 끝이다.

사람 사는 일도 어쩌면 산을 오르는 일과 같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들었다. 힘겹게 비탈길을 오르다 어느 순간 평탄한 길로 들어서는 등산과도 같이. 정상을 앞에 둔 등성이로 오르기까지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명지산에서 만난 등산객. 쉬엄쉬엄 산을 오르고 있다. 2005년 11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명지산에서 만난 등산객. 쉬엄쉬엄 산을 오르고 있다. 2005년 11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그 등성이서부터 정상까지 가는 길은 대체로 완만한 산길로 이어진다. 산등성이에서 정상까지 가는 길을 언제부턴가 좋아하게 되었다. 그 길들은 의외로 보드라운 흙길로 평탄했으며 높고 청정한 지역에서만 사는 희귀식물과 꽃들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명지산 정상을 앞둔 길도 그랬다. 한창 꽃을 피우기 시작한 연보라색 족두리 꽃이 여기저기 산길에 꽃밭을 만들었다. 어쩌면 이름도 그리 예쁜지. 족두리 꽃 사이사이에 며느리밥풀 꽃이 하나둘 숨어서 피어 있다.

분홍빛꽃송이에 하얀 밥알 하나를 물고 있는 듯한 애잔한 꽃이다. 산 정상이다. 날이 맑고 화창하니 시계가 멀리까지 뚜렷하여 주변에 물결치듯 이어진 산능선들이 모두 들어온다. 파랗게 펼쳐진 하늘 아래 초록빛 바다를 이룬 산새가 장관이다.

등산객들 사이에 잠깐 설전이 벌어졌다. 경기도 최고봉인 화악산의 위치 때문이었다. 화악산이 앞에 보이는 저곳이라고 확신을 한 그 등산객이 말한 곳은 명지 제2봉.

명지산 정상. 2005년 11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명지산 정상. 2005년 11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레이더기지가 설치된 화악산 정상은 바로 눈앞에 우뚝 솟은 산봉우리였으니 명지2봉이 화악산 이라고 주장했던 아저씨는 머쓱했는지 금세 정상에서 내려가 버리고 만다.

내친김에 명지 제2봉을 향한다. 순전히 남편의 강력한 주장에 이끌리듯 따라갔지만 한편으론 궁금한 마음도 있었다. 명지2봉은 1,250m의 봉우리니 정상에서 거의 일직선상에 있는 또 다른 정상이다.

명지산 정상에서 1.2km 남짓의 거리인데 올라왔던 길에 비하면 그곳은 바위와 큰 돌들로 이루어진 험준한 길이었다. 그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덜 탔는지 올라오면서 보았던 꽃들과 더불어 금강초롱이 훨씬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피어 있었다.

바위틈새에 길 한 켠에 보라색 등불로 산길을 아름답게 밝혀주고 있던 금강초롱의 어여쁜 모습이 지금도 눈에 아른거린다. 명지산 가장 높은 지대에서 이슬을 먹고 자라는 맑고 순수한 우리 꽃 금강초롱을 마음에 담아 왔다.

명지계곡의 맑은 물줄기는 조종천으로 흘러들어 한강을 이룬다. 2005년 11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명지계곡의 맑은 물줄기는 조종천으로 흘러들어 한강을 이룬다. 2005년 11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명지2봉에서 내려오는 길은 무척이나 가파르고 험난했다. 오르막길 보다 훨씬 어려웠던 내리막길이었다. 때론 돌덩이와 함께 구르며 때론 흙길을 미끄러지기도 하고 계곡의 징검돌을 건너기도 하며….

올랐던 길로 되짚어 오며 내려 올 때 구경하마고 남겨놓았던 명지폭포를 보러 갔다. 아득한 벼랑 같은 길로 100여개의 계단길이 이어진다. 그 끝에 7m나 되는 길이로 웅장한 폭포수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폭포수가 내려와 만든 커다란 소에서 푸르고 청정한 기운이 확 끼쳐온다. 명지폭포는 한마디로 웅장하고 거대한 물줄기였다.

천천히 산을 오르고 꽃과 나무를 감상하고 물길에 눈을 주고 산을 내려오니 어느덧 오후해가 기울어 가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논두렁에 코스모스가 바람에 한들거리고 있었다.

Info 가는 길
대중교통 _ 가평역 -> 가평버스터미널에서 적목방향 버스를 타고 익근리 논남 종점 하차 또는 백둔리행 버스 타고 죽터 종점.
청평역 -> 현리  -> 장재울행 시내버스 타고 상판리 종점하차.

명지산 산행코스
익근리 -> 승천사 -> 화채바위 -> 명지산 정상 -> 명지 제2봉(남봉) -> 명지폭포 -> 익근리(6시30분)

기타 산행코스
백둔리종점 -> 명지산2봉 -> 정상 -> 승천사 -> 익근리 하산
상판리종점 -> 아재비고개 -> 명지산3, 2봉 -> 정상 -> 승천사 -> 익근리 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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