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자연과 안보 관광의 정중앙, 양구에서 더딘 하루를 보내다
자연과 안보 관광의 정중앙, 양구에서 더딘 하루를 보내다
  • 김상미 객원기자
  • 승인 2006.01.0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양구시와 조화를 이루는 박수근 미술관. 2006년 1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양구시와 조화를 이루는 박수근 미술관. 2006년 1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여행스케치=양구] 포성이 사라진 지 반세기가 흘렀건만 양구는 아직도 그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우리의 국토 정중앙 양구. 전쟁의 기억과 함께 사람들 뇌리 속에서 사라져간 그 땅이 새롭게 다가온다.

반세기 동안 간직해온 천혜의 자연을 담고. 44번국도를 타고 가다 신남에서 31번국도로 갈아타면 길이 소양호와 함께 흐른다. 물가에 집을 짓고 사는 나무들은 타고난 열정을 숨기지 못하고 그대로 드러내나 보다.

그 길에 들어선 나그네가 풍경의 덫에 걸려 흐르다 정신을 차리고 양구와 인연을 맺은 것은 정오. 정오에 국토의 정중앙에서 육신의 정중앙 배꼽시계를 점검하다니, 우연 치고는 기막히게 들어맞은 타이밍이다.

중심점에 서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작용한 탓인지 언제나 밥집에 들르면 서두르는 조급함이 사라졌다. 제법 한가해 보이는 햇살에 긴 막국수를 말아 먹으며 여유를 얻는다. 시간은 공이 되어 둥그렇게 식당집 마당을 구르다 내 발부리에 채였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금강산에 닿는다고 한다. 2006년 1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금강산에 닿는다고 한다. 2006년 1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두타연은 북쪽 철원군 수입면에서 발원한 수입천 물이 DMZ를 지나 남쪽으로 흘러들어 대우산에서 흘러내리는 물과 어우러져 하나가 된다. 그 동안 군사지역이라 50여 년간 출입이 금지되다가 최근에 개방되었는데 민통선내의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마음에 담을 수 있는 곳이다.

물소리가 계곡을 쥐었다가 돌돌 말려 공중으로 올라가 구름과 구름사이에 낀다. 깨끗한 물을 좋아하는 열목어들이 남과 북이 한데 만나 화합수를 떨어뜨리는 곳에서 살고 있다. 어떤 흐름도 수용하는 열목어가 통일의 꿈만 가지고 사는 우리의 희망을 절묘하게 표현하는 듯하다.

50년 만에 열린 비경 두타연. 2006년 1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50년 만에 열린 비경 두타연. 2006년 1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산들이 굽은 허리를 펴며 길을 내어준 곳에는 오이풀과 큰방울새난이 군락을 이루며 살고 있다. 두타연 앞에서 금강산으로 향하는 길은 심하게 휘어져 금세 모습을 감춰버린다. 자연처럼 어우러져 살 수 있는 행복한 자유시대는 언제쯤 올까.

질긴 뿌리하나 마음 중심에 새겨 넣고 박수근 미술관으로 향했다. 때로 여행은 소리 없이 마음을 묵적해지게 만들기도 한다. 가라앉은 마음을 키 작은 코스모스가 화사한 미소로 보듬는다. 양구에 뿌리내린 코스모스의 흔들리는 미소에는 사연이 있다.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한 사내가 양구를 떠난 코스모스를 닮은 여인을 생각하며 봄마다 씨를 뿌리기 때문이란다.

박수근 미술관. 화가의 생애가 전시되어 있다. 2006년 1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박수근 미술관. 화가의 생애가 전시되어 있다. 2006년 1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정림리 박수근 미술관에 닿았다. 화가의 체취가 담겨있는 유품과 스케치 습작 판화 삽화들은 볼 수 있다. 안타까운 점은 박수근 화가의 작품이 몇 점 되지 않는 것이다.

전시관의 빈자리를 채워줄 작품들이 제자리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미술관 뒤뜰로 나왔을 때 잔디에 앉아 있는 화가의 동상에서 들판의 고독을 읽었다.

오후의 햇살이 등을 떠밀 때 돌산령으로 오르는 길은 계절의 메아리가 되어 먼 곳으로 퍼져나갔다. 초겨울 나뭇잎들은 영원한 절망으로 혼자 물들어가는 것 아닐까 싶다. 같은 색 이라도 나무마다 농담이 다르다.

대암산 구름 속의 길. 2006년 1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대암산 구름 속의 길. 2006년 1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날마다 기온에 사육되고 길들어가다 기온의 속도가 나무의 체온을 앞질러 갈 때 스스로 결의를 다져야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령을 넘은 자동차도 쉬어갈 겸 대암산 샘터 거북이 입에서 나오는 약수로 기를 충전 받고 내려다 본 분지는 화채를 담은 그릇 같다.

어떻게 첩첩산중에 넓은 분지가 형성 되었을까. 자연의 섭리는 돌에 스미는 가을만큼이나 신비롭다. 펀치볼은 옛날에 호수였다는 설이 있어서 그런지 지금도 산중턱에서 조개껍질이 발견된다.

도솔산 지구 전적비. 양구는 전쟁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2006년 1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도솔산 지구 전적비. 양구는 전쟁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2006년 1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양구 전쟁기념관. 2006년 1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양구 전쟁기념관. 2006년 1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펀치볼 입구에 세워진 전쟁기념관에 들러 도솔산 전투와 펀치볼 전투등 양구지역에서 치열했던 전쟁의 참혹함을 피부로 느껴본다. 건물 입구에 기둥같이 세워진 탑은 9개의 전투를 의미하고 탑 전,후면에는 고지의 높이와 참전부대 전투기간이 씌어 있다.

전시장 입구로 들어서면 눈물바다 위에 앉아 평화롭게 편지를 읽고 있는 병사의 조각상이 인상적이다. 체온이 느껴지는 조각품을 보며 나라를 위해 이름 없이 죽어간 병사들의 명복을 빌어 본다.

양구에 통일된 우리나라 지도가 있다. 2006녀 1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양구에 통일된 우리나라 지도가 있다. 2006녀 1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분단의 아픔을 일깨우는 제4땅굴 앞. 2006년 1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분단의 아픔을 일깨우는 제4땅굴 앞. 2006년 1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전시관을 나와 다시 정상에서 굴러 내려오는 햇살을 받으며 제4땅굴 쪽으로 올랐다. 땅굴 입구에 4땅굴을 발견하는데 공이 컸다는 충견의 비석이 서 있다. 땅굴 속으로 300M쯤 걸어 들어가자 북한에서 파고 들어온 땅굴에 레일이 깔려 있다.

금단의 담을 넘으려는 속셈이 돌 벽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북한을 바라보기 위해 1,049m 고지에 자리한 을지전망대 쪽으로 길을 냈다. 구름도 쉬어가는 가칠봉에는 바람의 검문이 심했다. 가칠봉에서 북한관까지는 7.2km에 불과하다.

녹슬지 않는 무명용사들의 이름. 2006년 1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녹슬지 않는 무명용사들의 이름. 2006년 1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양구통일관. 통일을 빌어본다. 2006년 1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양구통일관. 통일을 빌어본다. 2006년 1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날씨가 맑은 날은 육안으로 금강산까지 보인다는 양구 통일관 관장의 손길에 초점을 맞추고 보니 비로봉의 뾰족한 봉우리가 운해 속에 잠들어 있다.

멀고도 가까운 길이다. 능선을 따라 지는 해의 기운에 나그네의 마음속에도 붉은 빛이 고여 있는 듯 하다. 하늘을 덮은 노을빛과 한통속이 되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