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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겨울산] 보령과 홍성의 경계, 오서산 '은빛이 황토빛 되고 다시 금빛되는 서해의 등대'
[겨울산] 보령과 홍성의 경계, 오서산 '은빛이 황토빛 되고 다시 금빛되는 서해의 등대'
  • 김진용 기자
  • 승인 2006.01.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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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오서산 정상에 피어있는 억새. 2006년 1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오서산 정상에 피어있는 억새. 2006년 1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여행스케치=충남] 가을산을 초겨울에 올랐습니다. 그것도 오후 늦게 말입니다. 황혼이 깔리기 직전의 오서산은 ‘삽시간의 황홀’을 펼쳐보이곤 떠나버리기 때문입니다. 서둘러 내려오세요. 그 황홀함에 빨려 들면 겨울산의 어둠에 갇혀버리니까요.

구릉지인 충남의 산자락에 기댄 마을은 한결 느긋해 보인다. 가을걷이가 끝나 거뭇거뭇해진 풍경이 오후의 햇살 아래 포근하다. 눈 닿는 곳 끝까지 하늘을 찌르는 산맥과 고랭지 밭뿐인 강원도와 경북의 산촌과는 많이 다르다.

동네 마실 나가듯 타박타박 완만한 산행을 시작한다. 이즈음의 등산은 이런 한가한 맛이 있다. 오서산(해발 791m) 등산로가 시작되는 홍성군 광천읍의 상담 마을에 도착한 것은 오후 1시가 훨씬 넘은 시각.

오서산 정암사는 적멸보궁으로 유명한 태백산 기슭의 정암사와는 달리, 극락전과 요사채, 그리고 산신각과 종각 네 건물로 이뤄진 조촐한 사찰이다. 2006년 1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오서산 정암사는 적멸보궁으로 유명한 태백산 기슭의 정암사와는 달리, 극락전과 요사채, 그리고 산신각과 종각 네 건물로 이뤄진 조촐한 사찰이다. 2006년 1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숲길을 따라 오른 지 30분 지나 정암사 삼거리가 나오고, 시멘트길을 따라 5분 정도 오르면 정암사에 도착한다. 오서산 기슭의 정암사는 고려 때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무왕 때 창건했다는 두가지 설이 있다.

절 주위에 창건 당시부터 있었다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숲과 맑은 계류가 흐르고 산중다원도 있으니, 여름철엔 더위를 피하며 쉬어 갈 만하다. 우뚝 솟은 종각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서면 절담 너머 아래로 광천의 너른 들을 내려다보는 맛이 시원하다.

정암사에서부터 많이 가파르다. 급한 비탈에 하늘마저 보이지 않는다. 이런 구간에선 언제나 ‘왜 또 산에 왔지?’ 푸념하게 된다. 낙엽마저 걷어내고 맨살을 드러낸 초겨울 산길은 미끄러운 게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능선까지 급히 오를 이는 30분, 쉬엄쉬엄 오를 이는 1시간 걸릴 법한 비탈이다. 능선까지 오르는 동안 두세 군데가 쉬어갈 만하다. 질펀한 해안평야가 열리고 바다가 보이기 때문이다.

산맥보단 지맥이라고 부르는 게 적합할 구릉과 ‘물돌이’ 치는 물길이 이곳저곳에서 바다를 향해 낮게 꿈틀댄다. 헉헉거림이 잦아드니 갯내음이 불어오는 듯도 하다. 오를수록 시야는 좋다.

길은 여전히 가파르다. 능선에서 하늘을 만난다. 하늘은 차갑게 푸르고 나무는 낮고 바위는 많다. 잎이 덮인 계절엔 나뭇가지가 이렇게 빽빽한지 모른다. 산자락은 모두 회색 솜털 같은 나뭇가지 옷으로 갈아입었다.

억새가 투명하게 반짝이기 시작하면 바다도 따라서 물든다. 2006년 1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억새가 투명하게 반짝이기 시작하면 바다도 따라서 물든다. 2006년 1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시야가 완전히 열리니 천수만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틈만 나면 뒤돌아보는 탓에 길은 쉬워도 오히려 더디다. 능선의 쉼터인 오서정과 정상을 향해 바위 몇을 넘다보니 문득 억새풀 몇 그루가 소리 소문 없이 다가와 있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 2km. 눈부신 오후의 역광에 걸려 투명하게 빛나는 억새가 그 길을 이끈다. 오서산 억새 능선의 시작이다.

오서산(烏捿山)은 까마귀 보금자리라는 뜻이다. 정상을 500m 정도 남겨둔 쉼터 오서정 주위를 거니는데 까마귀 한 마리가 까악까악 소리를 내며 난다. 산객이 드문 때가 되니 보금자리를 찾아들었나 보다.

오서정에서 소방도로를 타고 홍성 장곡면 광성리 방향으로 15분 정도 내려오면 일출로 유명한 내원사에 들를 수 있다. 보령시에서 오르면 오서산 자연휴양림과 명대계곡이 좋다. 계곡 상류의 월정사 근처에는 신경통과 위장병에 좋다는 구래약수가 있다.

주능선의 억새 오솔길. 2006년 1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주능선의 억새 오솔길. 2006년 1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오서산에서 바라본 바다. 안면도를 비롯해 천수만의 무수한 섬들이 엎디어 있다. 오서산의 까마귀 소리는 서해바다로 퍼져간다. 2006년 1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오서산에서 바라본 바다. 안면도를 비롯해 천수만의 무수한 섬들이 엎디어 있다. 오서산의 까마귀 소리는 서해바다로 퍼져간다. 2006년 1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억새가 뉘엿뉘엿 황토빛으로 바뀔 무렵 정상에 다다른다. 바람에 억새밭이 쓸려 온다. 은빛 가을을 다 털어낸 억새가 쏴아아 마지막 노래를 부른다. 서해 바다를 등지고 고개를 숙여 바다를 열어 보인다.

꿈틀대는 산자락이 땅으로 꺼졌다 다시 솟구쳐 섬자락으로 이어져 있다. 천수만과 안면도 주위의 크고 작은 섬이 아스라이 주황빛에 물든다. 오서산엔 정상 표지석이 두 개다. 하나는 ‘오서산’이라고 돼 있지만, 또 하나는 ‘보령 오서산’이라고 써있다.

정상 근처에서부터는 행정구역상 보령에 속하지만, 홍성에서 정상 등반을 시작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일종의 영역 표시를 한 셈이다. 산행 시작 전이나 산행 도중 만나는 등산 안내 지도판은 어느 지방자치단체가 그렸냐에 따라 위아래가 뒤바뀌어 있다.

오서산에 어둠이 내린다. 오서산 억새에는 장쾌함과 시원함이 있다. 능선에서 바라본 억새와 광천의 해안 평야와 서해바다. 2006년 1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오서산에 어둠이 내린다. 오서산 억새에는 장쾌함과 시원함이 있다. 능선에서 바라본 억새와 광천의 해안 평야와 서해바다. 2006년 1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정상 부근에는 식수와 편의시설이 없다. 미리 준비한 요기꺼리로 간단한 요기를 하고 억새밭에서 바람을 막으며 지는 해를 기다렸다. 2시간이면 오르는 산이지만 서해바다까지 거칠 것이 없는지라 바람이 심하다.

방한장비를 챙겨야 할 듯하다. 지친 해가 서해에 잠겨 쉼을 얻기 직전 온 몸을 불살라 마지막으로 뿜어내는 빛은 금빛이다. 그 빛이 처음으로 뿌려지는 캔버스가 오서산이다. 능선 전체가 황토빛에서 순식간에 금빛 등대로 변한다. 환상인가.

달리기 시작한다. 한시도 지체했다간 어두워진다. 능선을 한달음에 내려온다. 주황빛 바다와 섬들이, 금빛 억새물결 사이로 어질어질 흔들린다. 꿈꾸듯 달렸다. 오서산의 영혼 속을 내달렸다.

Info 오서산 등산코스
1. 홍성 쪽 코스
광천면 담산리 상담마을 → 정암사 → 오서정 → 정상(왕복 4시간)
장곡면 광성리 → 공덕고개 → 정상(왕복 4시간)

2. 보령 쪽 코스  
청라면 장현리 명대 주차장 → 명대계곡(오서산 휴양림) → 월정사 → 정상(왕복 3시간)
청소면 성연리 주차장 → 성골 → 시루봉 → 정상(왕복 3시간)

하루 동안 쌓였던 햇살이 금빛으로 젖는다. 손도 얼굴도 마음도. 2006년 1월. 사진 / 김진용 기자
하루 동안 쌓였던 햇살이 금빛으로 젖는다. 손도 얼굴도 마음도. 2006년 1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가는 길
홍성 쪽으로 오를 경우 광천역이나 터미널에서 하루 5회 운행하는 상담행 버스를 타거나, 10번 정도 운행하는 장곡 화계행 버스를 타면 되지만, 택시를 타는 게 좋을 듯.

식사&숙박
오서산 아래 상담 마을에는 식당이 없어 광천시장에서 식사를 하는 게 좋다. 국밥집인 계림 식육점 식당. 상담마을 주차장에는 부녀회의 간이매점이 있고, 마을 안에 국수나 파전, 구기자술과 광천 막걸리를 파는 간이식당이 있지만, 비수기에는 주인이 없는 경우가 많다. 상담마을에서 운영하는 억새풀 상담마을 펜션이 주차장 부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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