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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기차 타고 떠나는 여행] 낭만이 깃든 경춘선의 향수 속으로 - 강원 춘천 김유정문학촌과 강촌레일바이크
[기차 타고 떠나는 여행] 낭만이 깃든 경춘선의 향수 속으로 - 강원 춘천 김유정문학촌과 강촌레일바이크
  • 박지원 기자
  • 승인 2015.02.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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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5년 3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3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여행스케치=춘천] 도대체가 한숨조차 돌릴 여유가 없는 삶인가. 팍팍한 생활에 쉼표 좀 찍자고 네 바퀴 달린 탈것을 부리자니 교통체증이 걱정인가. 콧바람 한번 쐬자고 나갔다가 금쪽같은 시간을 길바닥에 내다버리고 올 게 눈에 선한가. 그렇다면 과감하게 운전대를 놓고 기차역으로 향하자.

플랫폼에서 ITX-청춘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저마다 각기 다른 사연을 품고 있을 것이다. 2015년 3월 사진 / 박지원 기자
플랫폼에서 ITX-청춘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저마다 각기 다른 사연을 품고 있을 것이다. 2015년 3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오소리같이 살팍하게 생긴 점순이네 수탉이 주인공의 수탉을 함부로 해내고 있다. 2015년 3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오소리같이 살팍하게 생긴 점순이네 수탉이 주인공의 수탉을 함부로 해내고 있다. 2015년 3월 사진 / 박지원 기자
김유정역 지척에 자리한 강촌레일바이크 옛 경춘선의 철길을 기차를 대신해 달린다. 2015년 3월 사진 / 박지원 기자
김유정역 지척에 자리한 강촌레일바이크 옛 경춘선의 철길을 기차를 대신해 달린다. 2015년 3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설렘을 품고 플랫폼에 서다

북한강 변을 따라 이리저리 구부러진 철길 위를 쉼 없이 달린 청량리발 춘천행 무궁화호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는 뉴스를 접한 게 2010년의 끝자락이다. 서운함이 복받쳤던 기억이다. 지구 종말이나 오라며 102보충대에 입소한 까까머리 친구와 탄 그 기차, 대학 시절 뜬금없는 술자리 작당으로 진탕 마시고 놀다가 한밤 자고 오자며 탄 그 기차, 직장에 다니면서 한숨 돌릴 여유를 찾자는 합리화로 종종 탄 그 기차가 없어진다고 하니 말이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청량리역에 섰다. 평소라면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밀려드는 업무를 처리하다 MSG 덩어리를 흡입하려고 근처 식당으로 향할 시간이다. 이른 아침부터 출발할 생각은 없었다. 출근 시간대 지옥철 안에서 원치 않는 스킨십을 하며 모처럼의 기차 여행에 임하는 산뜻한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춘천행 ITX청춘을 기다리는 청량리역의 풍경은 불과 몇 년 전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나마 소주를 박스 채 들고 있는 왁자지껄한 대학생들과 알콩달콩 떨어질 줄 모르는 연인들이 띄엄띄엄 보여 반갑다.

플랫폼으로 춘천행 ITX청춘이 들어온다. 낮에는 경적 소리가 요란한, 밤에는 번쩍이는 사이키 불빛이 유흥을 즐기라는 도시를 뜰 시간이다. 출근시간 때면 잰걸음으로 일터로 향해 가는 사람들로, 퇴근시간 쯤에는 언제부턴가 ‘잠만 자는 곳’이 돼버린 집으로 가는 이들을 실어 나르는 ITX청춘이지만 시간 때가 시간 때인 만큼 기차 안은 여행객으로 북적인다.

줄곧 기차를 따라오는 정오의 햇살이 기분 좋은 찡그림을 만들어준다. 옆 좌석에 앉아 졸고 있는 승객에게는 미안하지만 커튼을 칠 생각은 없다. 기차 여행의 중요한 즐길 거리 가운데 하나를 헌납하고 싶지 않아서다. 선로의 곡선을 따라 움직이는 기차가 들려준 이음매의 삐걱거림, 객실 사이 통로에서 고개를 내밀고 바람을 맞았던 즐거움도 이제는 누릴 수 없으니 광합성(?)을 하며 차창 밖도 내다 볼 겸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내내 찡그리고 가련다.

전통 한옥으로 꾸민 김유정역. 2015년 3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전통 한옥으로 꾸민 김유정역. 2015년 3월 사진 / 박지원 기자

 

김유정의 문향을 길동무 삼다
1시간 남짓을 달려 김유정역에 닿는다. 기와를 얹은 한옥 양식의 역 앞에 서서 작은 시골마을의 신선한 공기를 작정하고 들이마시니 심신이 기지개를 켠다. 김유정역은 강촌역과 남춘천역 사이에 자리한 역으로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신남역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1930년대 한국 소설에 축복을 안겨준 소설가 김유정이 나고 자란 고향이라는 이유로 역명을 바꾼 것이다. 한국 철도 역사상 최초로 역명에 사람 이름을 사용한 곳이기도 하다. 역명의 글꼴도 김유정의 그윽한 문향을 느끼라는 듯 궁서체인데, 이 또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

김유정역을 등지고 좌측으로 난 길을 따라 김유정문학촌으로 향한다. 순박한 전원의 풍경을 만끽하고 싶다. 지나간 자리에 궤적을 남기는 달팽이라도 된 것 마냥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긴다. 그래도 10분이 채 걸리지 않아 도착한다. 김유정문학촌은 1930년대 우리나라 농촌의 실상을 독특한 해학으로 묘사한 김유정의 생가를 복원하고 전시관을 만들어 탄생한 곳이다.

입구로 들어서자 김유정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동백꽃>의 한 구절이 떠오르는 조형물이 반긴다. 점순이가 자기 집 수탉을 가져와 주인공의 수탉과 닭싸움을 붙이는 장면이다. 김유정의 생가 쪽으로 자리를 옮기니 그의 소설 <봄봄>에서 점순이의 키가 자라지 않아 답답해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재현한 조형물도 가던 길을 멈추게 한다. 소설 속의 “글쎄 이 자식아! 내가 크질 말라구 그랬니, 왜 날 보구 떼냐?”란 상황인데, 점순이와 성례는 안 시켜주고 ‘나’에게 일만 부려먹는 봉필 영감의 모습이 얄미워 따가운 눈초리로 한참을 쳐다본다. 어르신이지만 괘씸하다. 소설 속 주인공을 대신해 봉필 영감과 드잡이를 한다.

김유정문학촌을 둘러보고 ‘실레이야기길’에 들어선다. ‘실레’는 ‘시루’의 강원도 사투리다. 금병산에 둘러싸인 마을의 모습이 마치 옴폭한 떡시루 같다고 해 이름 붙여졌다. 한적한 숲길을 따라 소설 속의 이야기가 펼쳐지니 김유정의 문향을 길동무 삼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감유정의 문향이 느껴지는 실레이야기길. 2015년 3월 사진 / 박지원 기자
감유정의 문향이 느껴지는 실레이야기길. 2015년 3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옛 경춘선의 추억을 되새기다
약 5㎞에 이르는 실레이야기길을 거닐다 보니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가 선사하는 고마움을 느낀다. 바람결에 흩날리는 건강한 숲의 기운 덕에 청량감까지 드니 몸과 마음이 호사를 누린다. 이내 실레이야기길을 빠져나와 김유정역에서 지척인 강촌레일바이크로 걸음을 내딛는다. 70여 년이란 세월 동안 수도권과 강원도를 잇는 친근한 벗으로 우리 곁에 있었던 경춘선 기차는 이제 더 이상 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낭만을 아로새긴 레일바이크는 기차를 대신해 옛 철길을 달린다. 어떤 이에게는 사랑을, 또 다른 어떤 이에게는 이별을 안겨준 저마다의 추억을 마음 깊은 곳에서 끄집어 내 곱씹게 한다.

안전요원으로부터 간단한 숙지사항을 비롯해 주의할 점 등에 대한 교육을 받고 레일바이크에 앉았다. 김유정역에서 출발하는 레일바이크는 강촌역까지 8km 구간으로 이뤄진 코스다. 긴 세월 동안 사람의 발길의 거의 닿지 않아서 일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들꽃 군락이 시각적인 즐거움을 안겨준다.

페달을 밟아 나가는데 자연스레 노래를 흥얼거린다. “조금은 지쳐 있었나봐. 쫓기는 듯한 내 생활.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몸을 부대어보며. 힘들게 올라탄 기차는 어딘고 하니 춘천행. 지난 일이 생각나 차라리 혼자도 좋겠네. 춘천 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가수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다. 많은 이들이 청춘의 한 상징으로 춘천행 기차를 추억하는 것은 이 노래의 덕도 컸을 게다. 실제로 김현철의 노래를 듣고 춘천행 기차에 몸을 싣는 이들이 허다했으니 말이다. 갑자기 한국철도공사에서 김현철에게 경춘선을 홍보해줘 고맙다며 상이라도 줬는지 궁금하다. 쓸데없는 상념을 접자 오랜만의 기차 여행이라 그런지 당일치기로는 아깝다는 생각이 요동친다. 춘천에 왔으니 닭갈비에 소주 한잔도 간절하다. 온갖 사람들이 머물다 간 허름한 여관방에서 첫사랑 한번 떠올리며 잠에 빠져들고 싶은 날이다.

추천 일정
당일 김유정역-김유정문학촌-실레이야기길-레일바이크
1박2일 김유정역-김유정문학촌-실레이야기길-레일바이크-강촌역 숙소-자전거 하이킹

예상경비
4인 가족 기준(서울 출발)
당일 청량리~강촌 ITX청춘 운임 2만4400원 + 강촌~김유정역 지하철 운임 6600 +강촌레일바이크 3만5000원 + 식비 8만원 = 14만4000원
1박2일 청량리~강촌 ITX청춘 운임 2만4400원 + 강촌~김유정역 지하철 운임 6600 +강촌레일바이크 3만5000원 + 숙박비 12만원 + 식비 12만원 = 30만4000원

추천 숙소 강촌마운틴펜션
숙박료 주말 4인 기준 12만원
홈페이지 gcmountain.co.kr
주소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풀무골1길 26-1

추천 별미 시골장터막국수
가격 순메밀막국수 6000원, 메밀전병·감자전 5000원
주소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김유정로 1434 시골장터 

Tip
1. 김유정역에는 ITX청춘이 정차하지 않는다. 강촌역이나 남춘천역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야 한다. 두 역 모두 김유정역까지 5분 남짓 소요된다.
2. 김유정역 주변에는 숙소가 없어 강촌역으로 가야한다. 강촌역 주변에 자리한 강촌마운틴펜션은 강촌역에서 펜션까지 차량 픽업이 가능하다.
3. 강촌레일바이크는 2인승 2만5000원, 4인승 3만5000원이다. 김유정역에서 레일바이크를 타고 강촌역으로 가면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되돌아올 수 있다.
4. 김유정문학촌의 입장료는 무료이며, 매주 월요일 휴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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